(29)

무릇 사람의 형체는 긴 것이 짧은 것만 못하고

큰 것이 작은 것만 못하며 살찐 것이 여윈 것만 못하다.

사람의 피부색은 흰 것이 검은 것만 못하며

색이 엷은 것은 진한 것만 못하다.

살찐 사람은 습기가 많고 여윈 사람은 화()가 많다.

피부가 너무 흰 것은 폐의 기가 허한 것이며

검은 것은 신장의 기가 넉넉한 것이다.

이렇게 형체와 색이 달고 오장육부도 다르니,

비록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같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치료법은 확연히 다르게 된다.


(31)

부자는 몸이 편하되 마음은 불편하고

부자가 아닌 사람은 몸은 고달프되 마음은 편하네

어찌 같은 약을 쓸 수 있겠는가.

높은 곳은 건조하고 낮은 곳은 습하고 기압과 음식이 다르니

달리 써야 하지 않겠는가.


(90)

봄은 간장,

여름은 심장,

가을은 폐,

겨울은 신장의

기운이 강하다.


(92)

음식물에 넣어서 맛을 내는 것이 양념이다.

양념이라는 말은 약념(藥念)에서 나왔다.

약처럼 생각하고 음식에 첨가하라는 뜻이다.

양념으로 음식에 넣는 파, 마늘, 생강, 고추 등이 모두 약이다.

모두 따뜻한 성질이다.


(133)

네 병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먼저 네 마음을 다스려라.”

<동의보감>의 모든 가르침은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부님들은 결혼을 버리고 스님들은 세속을 버릴까.

의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을 비우고 좋은 것만 먹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바른 생활을 하면

누가 병에 걸리겠는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의학은

병든 사람에게 위안이 된다.

그래도 마음 다스리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온갖 나쁜 짓은 다 해놓고 의사와 약을 돈으로 사는 것은

가장 나쁜 일이다. 그런 일은 나에게 해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아가 자연에도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35)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온다.

환자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걱정, 공상, 불평을

모두 버리도록

치료해야 한다.

이것이 의사의 몫이다.


(201)

생각이 많으면 집중으로 못하고

욕심이 많으면 판단이 어둡고

일이 많으면 몸이 피곤해지고

말이 많으면 기가 빠지고

웃음이 많으면 마음이 흩어지고 오장이 상하며

즐거움이 많으면 감정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성을 많이 내면 맥이 진정되지 않고

너무 좋아하면 이치를 따지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이 많으면

즐거움이 없어진다.


(264-265)

목화토금수는 상생(相生)의 순서다.

나무()를 때서 불()를 만들고

()이 타고 나면 흙()이 생기고

() 속에서 쇠()를 캐고

() 표면에 물()이 생기고

이 물()을 주면 나무()가 잘 자란다.

반면 목토수화금은 상극(相克)의 순서다.

나무()는 흙()을 뚫고 들어간다.

()을 쌓아 물()을 막는다.

()은 불()을 끄고

()은 쇠()를 녹인다.

()는 나무()를 자른다.

모든 인간사와 자연사에 있어 상생과 상극은 매우 중요한 관계다.


(420)

어른들은 휴일이 있는데 청소년들은 왜 휴일이 없는가?

왜 없어요? 토일은 학교에 안 가는데요.

학교에 안 가지만 학원에는 가야 하지 않은가

쉬지 못하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기 어렵다.

토일은 공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네.

공부시키는 학부형은 잡아가든지 벌금을 많이 물게 해야 한다네.


(422)

성내면 기가 거슬러 오르는데

심해지면 피를 토하고 설사한다.

기뻐하면 기가 조화롭게 되고 잘 통해서 느슨해진다.

슬퍼하면 상초(上焦)가 막히고 기운이 흩어지지 못해서

열이 안에서 생기기 때문에 기가 사그러진다.

두려워하면 정이 도망가고 상초가 막혀

기가 아래로 돌아가서 하초가 꽉 차므로 기가 흐르지 못한다.

추우면 피부가 오그라들어 기가 흘러 다니지 못하니 모아지고

열이 나면 피부가 열리고 땀이 나기 때문에 기가 빠져나간다.

놀라면 마음이 기댈 곳이 없고

정신이 마음이 기댈 곳이 없고

정신이 안정되지 않아 기가 어지러워진다.

피로하면 숨을 헐떡이고 땀이 나서 기가 닳고

생각을 많이 하면 기가 돌아다니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기가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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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14 2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서가 동의보감 키워드 컬렉션에서 한참 서성이다 그냥왔는데 이책은 못보았네요^^담아 놓겠습니다

bookholic 2021-08-15 07:12   좋아요 0 | URL
핵심만 정리해서 유머와 함께 만화로 잘 그려주셨어요~~^^
그래서 더 머릿속에 가슴속에~~

scott 2021-08-14 2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발췌 문장만 읽어도 인생 꿀팁으로 새겨야겠네요 북홀릭님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bookholic 2021-08-15 07:14   좋아요 1 | URL
읽고 적고 했으니, 실천을 잘 해야하는데 쉽지 않아요.. 마음 다스리고 비우는 것...ㅠㅠ
soctt님도 광복절 연휴, 좋은 책과 좋은 음악과 즐겁게 보내세요~~^^

mini74 2021-08-14 22: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비우고 좋은 것만 먹는게 참 힘든거 같아요. 지금도 쫀드기 먹고 있는 일인 ㅠㅠ 아이들과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

bookholic 2021-08-15 07:15   좋아요 2 | URL
˝어떤 것이든 맛있게 먹으면 보약˝이라는 말도 저 책에 있었어요~~
쫀드기도 맛있게 먹으면 보약~~ㅎ
mini74님도 쫀드기와 책과 식구들 모두와 즐거운 광복절 연휴 되시길...^^
 
사할린 2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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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사할린> 2권을 해줄게. 일제시대 사할린은 일본말인 가라후토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가라후토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할린과 같은 지명이라고 생각하면 돼. 해방은 되었지만, 나라꼴은 가장 최악의 경우로 흘러갔단다. 해방이 되고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남과 북이 갈리고 왕래도 점점 어려워졌어. 주인공 이문근은 최숙경을 찾기 위해 최숙경이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 어느덧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살. 부모님뿐만 아니라, 절친 강화중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강화중의 동생 복희와 결혼하기로 했어. 그래도 생사를 모르는 최숙경이 있는데, 더 기다려야 했다고 봐.. 10년도 안되었는데

결혼 전 속죄라도 하듯 최숙경의 친정에 처음으로 인사 드리러 갔단다. 이문근과 결혼을 끝내 반대했었잖아. 그래서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한 장인어른과 장모님그 분들께 최숙경의 소식을 알리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만의 하나 최숙경이 친정이 있는 개성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하지만 그의 바램은 바램일 뿐이었어. 최숙경의 친정도 최악이었단다. 숙경의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잣집이었던 가세도 많이 기울었고, 숙경의 동생들은 일하러 나가고 집은 숙경의 할머니 혼자 지키고 계셨단다. 문근은 차마 숙경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숙경의 집을 떠났단다.

….

다시 집으로 돌아온 문근. 어느 날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연락이 왔어.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짧게 설명한다면, 과거에 좌익이었지만 지금은 전향한 사람들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하는 단체였어.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좌익으로 몰리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고발로 반강제적으로 가입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어. 문근도 그런 사례였단다. 가입을 거부한다면 자신은 좌익이었고 전향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거든. 그런데 문근은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고, 자신은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어. 도대체 누가 문근을 리스트에 올리게 했을까. 아마 척을 두고 있었던 (1권에서 이야기했던) 그 초등학교 교장이었었을 거야. 문근은 고민 끝에 가입을 거부하는 것보다 가입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가입했단다. 절친이자 학교 동료 선생인 강화중도 똑 같은 입장이었고, 그도 가입을 했어. 강화중의 여동생 복희와 결혼을 얼마 앞둔 1950 6월 하순정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단다.

1.

전쟁. 북한에서 결국 전쟁을 일으켜 남으로 밀고 내려온 것이야. 해방 5년도 안되어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단다. 어느 날 강화중이 찾아와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나라 경찰들이 보도 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놀래 끌고가 총살시킨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한 단체인데하지만, 어떤 흉악한 놈의 결정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었단다. 실제로도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이문근도 그날 밤 집을 떠나 일단 피하려고 했단다. 바로 그날 경찰들이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지. 옷도 챙겨 입지도 못하고 경찰서로 끌려간 이문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어. 문근은 도망갈 틈을 보았지만 쉽지 않았어. 몇 명 도망가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고 죽었단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어느 산골짜기그들 앞엔 깊이 파인 구덩이가 있었어. 수십 명씩 총알세례를 받고 죽었단다. 얼마나 억울할까. 하라는 대로 하고, 오라는 대로 왔을 뿐인데, 가족들한테 연락도 못하고 항변 한번 못하고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문근은 그 총알 세례에 정신을 잃고 죽은 줄 알았어.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는 살아났단다. 그 총알 세례가 문근을 피해갔던 거야. 이렇게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그런 무서운 경험을 했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단다. 정말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로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문근은 무조건 도망을 갔단다. 어떤 절에 들어가서 스님의 도움으로 승복을 입고 승려 행세를 하기도 하고, 미군을 만나 한동안 미군 통역으로 일하고 하고, 인민군 포로가 되었다가 우연히 처남 친구를 만나기도 했어. 그 처남 친구는 이문근의 사연을 듣고 허가증을 주었어. 이문근이 최숙경을 찾기 위해 사할린을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겠다고 했었거든. 그의 신분을 보장해는 그런 허가증이었어. 이문근은 그렇게 북으로 가서 함경도 땅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사할린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방법으로 찾아보려고 평양으로 왔단다. 평양에서 우연히 경성사범학교의 동창과 문근의 친척 형님인 준근을 만났어. 하지만 그들도 사할린으로 가는 방법을 잘 몰랐어.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 일본을 통해서 가는 방법이라고 해서, 문근은 다시 부산까지 내려와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단다. 부산으로 가면서도 그는 고향집에는 들르지 않았어. 그는 이미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 살아 왔다면 다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2.

문근이 이렇게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최숙경은 1951년 집에 돌아왔단다. ,,, 엇갈리는 운명문근이 조금만 더 똑똑해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고향집에 밤에 몰래 다녀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집에 돌아온 최숙경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문근의 사망 소식이었어. 그렇게 힘들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집에 돌아온 이유는 문근이었는데, 그가 죽고 없다니삶의 의미가 사라졌단다. 최숙경은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어. 남은 인생 아무 의미도 없이 살다가 1971년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삶을 살았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구나.

3.

이젠 사할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해방 후에도 6만명의 조선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해방이 되고 5~6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5만명 이상이 그곳에 살고 있었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그곳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어. 그들은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단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최악이었어. 전쟁이라니,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라니.. 완전히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을 거야.

===========================

(225)

특히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야기는 그들 모두 남조선 출신이지마는 남조선 당국에 대하여 심한 욕을 퍼부었다. 6만 명 가까운 조선 사람들을 이 사할린에 팽개쳐 둔 채 전쟁을 일으켜 북침을 하다니, 조국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조국이 불행했던 시절에 외지에 끌려나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구해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전쟁 놀음이나 벌이다니! 해방 전에는 왜놈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수모를 당했더니, 해방이 되자 로스케 놈들이 건너와, 들어온 놈이 동네 팔아먹는다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천대하고 멸시했는가. 왜놈들이 조선을 조센징이라고 멸시했듯이 이놈들도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까레이 혹은 까레스키, 하면서 천대와 구박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최해술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젊은 허남보 같은 사람도 울분과 슬픔으로 절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면서 눈물까지 고였다.

특히 조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남조선에 대하여 적의를 품게 된 이유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김과, 그 입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소련 당국의 영향이 무엇보다도 컸다. 남쪽에서 불법 북침을 했다는 것도 북조선에게 전해진 소리였다.

===========================

그들이 사할린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조선 사람 한 사람이 사할린에 왔다는 거야. 그래, 이문근이 일본에 갔다가 선박회사에 취업한 후 끝내 사할린에 도착한 거야. 사할린에 와서 문근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아내 최숙경을 찾아보았어. 최숙경을 아는 사람들도 만났어. 1권에서도 나왔던 최해술, 박판도이 문근에게 숙경의 소식을 알려주었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말이야. 힘들게 왔지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은 쉽지 않았어. 그는 일단 사할린에 있으면서 돌아갈 길을 알아보기로 했어.

최해술, 박판도 등 사할린에 정착한 이들은 사할린 조선 민족 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이문근은 이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그렇게 사할린에 있으면서, 이문근은 조선 귀국을 위해 소련 정부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방법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

일본 정부는 사할린에 억류된 일본인들의 국내 귀환을 위해 소련 정부와 협상하기도 했어. 여기에 기대를 하고 일본 정부에 조선인 귀환도 요청했지만, 매몰찬 답변만 돌아왔단다. 이제 너희들 정부가 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알 것이라고 말이야.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60년에 들어섰단다.

===========================

(340)

일본에 있는 사할린 억류 귀환 한국인회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쏟아 일본 정부에 재사할린 조선인의 귀환을 교섭했지만 일본 정부 당국자의 변명을 이러했다.

당신들의 고충이나 간절한 희망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 일은 정부가 수립되어 당당한 독립국이 된 당신네들의 나라 한국정부에서 맡아 할 일이거나 한국 국민 전체가 나설 일이 아니겠소. 당신들의 소망이 이처럼 절절한데 당신네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왜 말 한 마디 없겠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일한 간에 관계가 좀 더 본궤도에 올라 정상 가동되면 당신들의 희망은 보가 전향적으로 고려될 것이오.”

===========================

이렇게 <사할린> 2권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소설이 소설로 끝이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무능했던 옛 우리 정부를 생각하니 참 답답했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3권의 이야기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1949년 겨울방학, 문근은 화중과 함께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조선동포들이 연명으로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보낸 탄원서도 헛수고, 김형개가 애지중지 키운 딸로, 자신의 명예는 물론 조선 민족의 자존심과 영광까지를 생각하던 김형개의 꿈도 헛수고, 늦게야 아내를 얻어 인생살이의 또 다른 행복을 맛보겠다던 정상봉의 꿈도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북조선 편을 드는 조총련에도 가입하지 않았네. 사실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네. 미국과 소련이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없는 거네. 우리에게는 무슨 주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죄가 얼마나 많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또한 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통일이 돼도 나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런 통일이 돼야 한다고 보네. 자네 생각은 어떤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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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1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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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사할린( 3)>이라는 책은 몇 년 전에 녹색평론에서 추천하여 알게 된 책이란다. 슬픈 역사가 가득 담긴 일제 시대 사할린으로 끌려가서 돌아 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헤어져 끝내 만나지 못한 부부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고 했어. 아빠가 잘 알지 못하는 역사의 한 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소설이라고 하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고 싶은 목록에 추가했다가 이번에서야 읽은 것이란다.

일제 시대 강제 징용이라고 하면 일본 땅이랑, 동남아와 중국 등으로 끌려가 전쟁과 위안부로 고생하신 것만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할린 땅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지금이야 러시아 땅이지만, 당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사할린의 남쪽 지역을 차지하였고, 그곳에는 많은 탄광에 끌려가 노예처럼 일했던 우리 조상들이 있었던 것이야. 해방과 동시에 그들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그 수가 수 만 명에 이루고, 그들의 후예들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단다. 이 안타까운 일들이 100년도 안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구나.

지은이 이규정이라는 분은 대학교수이면서 여러 책을 쓰신 작가이면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민주화에도 힘쓰신 분이란다. 그가 1991년 사할린 강제 징용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마음먹고, 직접 사할린에 취재를 하고, 그 바탕으로 1996 <먼 땅 가까운 하늘>이라는 소설을 출간하셨단다. 그리고 20년이 흐르고 재출간한 것이 바로 <사할린>이란다. 머리말에 쓰신 이규정 님의 글을 읽어보니, 이런 역사관을 가지신 분이라면 존경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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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앉힌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지금도 일본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10억 엔을 주었으니 이제 아무 소리 말고 소녀상도 철거하라는 일본 당국자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그 낯짝에 오물을 뒤집어씌우고 싶습니다. 2015년 말에 일본 당국자와 서툰 협상을 벌여 일본에 꼬투리를 잡힌 등신 같은 우리 정부 당국자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우리 정부의 총체적 능력의 한계를 보는 듯한 비애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능하면 그것은 국가의 위상 추락은 물론, 국가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이 결국 나라를 망친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위안부 문제 협상은 반드시 다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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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이규정이라는 분을 처음 알게 되어 이규정이라는 분을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안타깝게도 2018년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뒤늦게 이규정 님의 명복을 빌어보았단다.

1.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사할린>. 그 중에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일제 시대 경성사범을 다니던 이문근은 인근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최숙경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대시를 했고, 최숙경도 이문근을 마음에 들어 했어. 이문근과 최숙경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개성의 잘나가는 부잣집이었던 최숙경의 부모님이 반대를 했단다. 시골 출신 이문근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지. 최숙경은 부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문근과 함께 절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고, 이문근의 시골집에 와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이문근이 담을 쌓는 일을 하다가 담이 무너지면서 중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문근의 병 치료를 위해서 돈이 필요했는데, 조선 땅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자원하여 사할린으로 향했단다. 그때가 1943년이었다.

당시 사할린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지만, 최숙경처럼 일제시대 말기에 혹해서 짧은 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원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고등학교까지 다닐 만큼 배운 사람이고, 똑똑했던 최숙경인데 사할린을 가더라도 좀더 알아보고 갈 일이지…. 비극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했단다.

사할린에 도착한 숙경은 비행장에서 일하다가 탄광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탄광 노동자의 밥 짓는 일을 했단다. 약속한 돈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으면서 말이야.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일.. 그 돈이라도 이문근의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어렵게 생활했단다. 조금만 참으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최숙경이 보내준 돈은 시댁 생활의 밑천이 되었고, 이문근도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게 되었어.

사할린에는 많은 탄광들이 있었고, 각 탄광에는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어. 그들은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끌려오기도 하고, 밭에서 일하다 끌려오기도 했어. 그렇게 끌려온 그들은 온갖 착취를 당하며 살았단다. 일본인 관리인들에게 폭행당하여 죽기도 하고, 의료 시설이 없어 병에 걸려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하여 죽기도 하고, 탄광이 무너져 땅속에 갇혀 죽기도 했단다.

….

지은이가 이 소설을 쓰기 전 직접 취재를 하고 쓰셨다고 하니, 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이름은 다르겠지만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구나. 만약 아빠가 그렇게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도 하고몇몇 등장인물들을 소개해줄게.

김형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 가는 길에 잡혀서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한 채 끌려온 곳이 사할린이었단다. 사할린에 와서야 편지로 집에 소식을 알렸어. 고향에 두고 온 애인 점옥이에게 알리지 못했는데, 그 점옥이 또한 정신대로 끌려갔다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김상문, 김상식, 김상주 삼형제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다른 이들보다 빠른 1933년에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에 정착했어. 우애가 깊은 그들은 사할린에서 함바식당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단다. 그들은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삼형제의 아이들 중에 가장 똑똑했던 김상주의 아들 종규를 도쿄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했단다. 그래서 김상주 식구들은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들 형제와 마지막이었어. 해방 이후 김상주 식구들은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은 돌아오지 못했거든

2.

드디어 해방이 되었단다. 사할린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어.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일본 사람들. 탄광 노동자들은 고향에 돌아갈 걱정보다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 걱정이 앞선단다. 그리고 그들의 귀향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일본은 지네 나라 챙긴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다. 언제는 한 국민이라고 하더만, 이제 와서는 비일본인 취급이었어. 하기야 자신의 국민이라면 그렇게 혹사시킬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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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초의 각서(SCAPIN 822)에 이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구일본인 점령지의 일본인 귀환 및 일본으로부터의 비일본 귀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동국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로부터의 일본인 포로 및 일반 일본인의 귀환과 더불어 북위 38도 이북의 북조선 재일 조선인의 귀환에 관하여 본 협정을 체결한다.”

이러한 협정을 보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의 귀환은 처음부터 귀환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게다가 소련 지배하의 사할인 여러 항구에서 일본 귀국선에 승선시키는 일체의 권한과 책임은 소련관헌에게 있었다. 일본의 강제연행에 의해 사할린까지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들은 당연히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조선에까지 귀국시켜야 함에도 일본은 이를 깨끗이 외면했다. 패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을 법적으로는 일본인과 같이 보았고, 국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었다. 그것뿐인가. 종전 직후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 일본 국적을 가진 비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전범자로 처벌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니 당시의 조선인은 이리 걸면 벌받아야 할 일본인이었고, 저리 걸면 절대로 귀국 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특수 일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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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방 조국이 그들을 챙길까. 해방은 했다고 하지만,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에 남북으로 나뉘어지려는 혼란멀리 사할린의 사람들을 챙길 이성들이 없었어. 그렇다고 러시아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줄까? 그들 눈에는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다 이방인. 결국 사할린 사람들은 각자 도생할 수 밖에 없었단다. 최숙경도 함께 있던 말숙과 함께 사할린을 떠났단다. 최숙경은 일단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다행히 일본인들 틈에서 일본행 배를 탈 수 있었단다.

해방이 되고 여러 탄광들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단다. 어떤 탄광에서는 해방 소식을 먼저 접한 일본 경찰들이 조선인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모두 총살해 버리는 사건도 있었단다. 이 사건은 극적으로 살아난 최해술이라는 사람에 의해 알려졌어. 최해술은 민족운동가인 아버지가 경찰에 잡힌 다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징용을 자원해서 사할린에 왔던 것인데, 이렇게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거야.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할린에 발이 묶이고 말았단다. 또 다른 탄광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뻔했는데, 그곳에서는 다행히 착한 일본인이 한 명 있었어. 이시무라라는 사람으로 전쟁 전에 천주교 신부였어. 이시무라는 평상시 알고 지내던 조선인 천주교 신자인 정상봉과 김형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려주었고, 정상봉과 김형개가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단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사할린을 벗어날 수 있을까.

3.

조선에 있는 최숙경의 남편 이문근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문근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단다. 해방이 된 이후 최숙경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었어. 그런데 오히려 해방이 된 이후 최숙경의 소식이 끊겼어. 그리고 돌아가는 국내 정세가 답답했단다. 나라는  둘로 쪼개졌지. 자신이 존경했던 민족주의자들이 하나 둘 암살당했지일제시대 그 모진 세상도 이겨내신 분들인데 말이야. 해방된 지 이삼 년이 되어도 최숙경의 소식이 없자, 부모들은 최숙경을 잊고 재혼하라고 성화였단다. 하지만 이문근에게 최숙경이 어떤 사람인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고 사할린까지 자원해서 간 사람 아닌가.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끝내 혼자 살더라도 끝까지 기다려야지. 이문근은 동료 선생님 중에 자신과 뜻이 같고 마음도 통하는 강화중이라는 선생님이 있었어. 이문근과 강화중은 교장 선생님한테 찍혀서 신변의 위협을 받는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별 이유 없이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단다. 경고이자 협박이었지나라와 학교 교장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라고 말이야. 이문근은 과연 최숙경을 만날 수 있을까. 2권에서 더 이야기해줄게.

해방 정국을 배경으로 한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속상하고 화가 나더구나. 왜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둘로 갈려야 했는가 말이야. , 억울하고 속상하고지금 억울하고 속상해도 과거가 바뀌지는 않지만, 그 때 잘려진 분단이 너무 오래가는구나.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이렇게 순 한문으로 된 포창문의 주인공 경주 최씨는 철환의 양모였다.

책의 끝 문장: 어디선가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식은 밤공기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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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운동이라고 하면, 물체가 움직이는 위치를 계속 눈으로 추적하면서 위치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위치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만약 위치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운동을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 대상으로부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만 가지고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원자의 경우에는 그게 바로 이런 숫자들이라는 겁니다.


(47-48)

본다는 것은 빛이 물체에 부딪혀 튀어나온 후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빛이 물체에 부딪히는 공안 교란이 전혀 없을 수는 없어요. 물론 대부분 물체는 너무 무거워서 빛에 맞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죠. 아이스크림을 맛 볼 때에도 아이스크림을 교란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처럼, 어떤 물리량일지라도 측정을 하려면 그 대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교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0)

관측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은 과학의 기본 전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보지 않은 걸 믿지 않는 거죠. 이게 그냥 과학자들의 믿음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아요. 양자역학, 아니 우주가 그렇게 굴러간다는 겁니다. 과학자들도 이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무슨 관념론 같잖아요. 사실 처음엔 저도 거부감이 좀 있었습니다. 무언가 우리의 의식이나 의지 같은 게 거기에 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약간 있어서 그래요.


(76)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양자역학이 이상한 것은 단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결정되어 있는데, 아직 우리가 모르지만 우주는 아미 알고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면 양자역학의 측정문제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을 숨은변수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숨은변수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겠죠?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아직 숨어있는 그런 것이 있는데, 이것이 결정론으로 된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숨은변수를 찾는 것뿐이죠.


(89)

하나는 국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성입니다. 말이 무척 어렵죠? 하나씩 풀어봅시다. ‘국소성이라는 건 빛보다 빠른 정보 통신이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상대성이론의 가정을 말하는 거지요. ‘실재성은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대로 측정하기 전에 물리량이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국소성과 실재성을 가정하면, 이것이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그런 숨은변수이론이 아니겠냐는 생각입니다.


(121)

실체(實體)나 실재(實在)라는 단어도 상황에 따라 어려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또는 어떤 철학적 배경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과학자들이 실재성 논쟁에서 염두에 두는 것은 오직 물리량이 측정 전에 정의되어 있으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물리량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측정하기 전 물리량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두고서 실제로 존재가 없는 거냐고 물으면 그건 다른 문제라고 답해드리겠습니다. 존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잖아요? 빨간 알약인지 파란 알약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적어도 알약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 적어도 색은 존재하는 것인 것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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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

19세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1901 1월에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연보>에 게재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막스 플랑크는 자신이 도입한 상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상수는 에너지와 시간이 곱해진 단위를 갖고 있으므로 에너지요소 hv와 구별하기 위해 기본작용양자(elementary quantum action) 또는 작용요소(element of action)라 부르기로 한다.”

이로써 1900 12 14일은 양자혁명이 촉발된 날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랑크 자신은 E=hv가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리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47)

막스 플랑크는 통계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정된 에너지 요소를 진동자에 할당하면서 그 물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은 플랑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원자나 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는 에너지가 복사와 물질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플랑크는 복사 공식을 유도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발상을 처음 도입했지만, 그의 강연록이나 논문 어디를 뒤져봐도 이 사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62)

러더퍼드는 실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중심부에 있는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처럼 그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원자의 내부는 거의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출간되는 물리학 관련 서적을 보면 원자의 내부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을 그려 넣곤 한다. 궁극적으로 맞는 모형은 아니지만, 원자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이것만큼 적절한 그림을 찾기 어렵다.


(110)

그 후 폴 디랙은 전자의 스핀 방향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원자의 각 궤도에 두 개의 전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론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궤도에 들어가는 두 개의 전자는 스핀 방향이 반대여야 한다는 뜻이다. 스핀이 반대인 한 쌍의 전자들이 짝을 이루어 궤도를 채우면, 그 궤도는 더 이상 다른 전자를 수용할 수 없다.

이것은 이론물리학의 커다란 진보였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많이 남아 있었다. 고전물리학에서 팽이처럼 자전하는 물체의 자전축은 임의의 방향을 향할 수 있는데, 전자의 자전축은 외부 자기장이 걸렸을 때 왜 두 가지 방향으로만 나타날까? 이런 제한 조건이 전자의 양자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심증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135-136)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양자역학은 매우 인상적인 이론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이 물리적 세계를 정확히 예견한다 해도,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탁월한 천재성과 직관으로 양자역학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결국에는 양자역학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쪽에 서게 되었다. 보른은 아인슈타인의 냉담한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그 뒤 물리학계는 양자 수준에서 실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과학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147)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엇걸렸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자신이 같은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안개상자 속에서 나타나는 전자의 궤적처럼 지극히 간단한 현상조차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렬역학에서는 궤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반면에 파동역학은 시간이 흐를수록 넓게 퍼지는 물질파의 개념을 이용하여 안개상자 속을 지나가는 전자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상자 속에서 전자가 남긴 궤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전자가 입자라는 주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153)

아인슈타인은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물리학 이론의 본분은 관측 가능한 양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관측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관측 장비 안에서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관측 장비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이것이 복잡한 단계를 거쳐 관측자에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연현상에서 뇌의 인식 작용에 이르는 이 모든 과정으로부터 우리는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야 하며, 현실적인 언어로 자연의 법칙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관측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158)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는 것은 고전물리학의 결론이 아니라 가정이다. 현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관측된 모든 것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우연히 선택되어 나타난 것이다. 양자역학의 통계적 특성은 부정확한 지각(知覺)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통계적 세계의 저변에 진짜세계가 숨어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식의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리학의 본분은 관측된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실험과 관측은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 그러므로 양자역학은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한 최후의 법정이다. 그 이상의 판결 기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175-176)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의 개념들을 원자 규모에 적용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그 특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관측장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고전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양자역학에서는 매우 생소한 결과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182)

실증주의든 실용주의든 간에, 보어는 명백한 -실존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관측 장비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물리적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며, 앞으로 이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감춰진 실체의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일상적인 물리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독립적 실체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나 관측 방식과 무관하다.”


(263)

1947년에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계기로 물리학자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지식은 모두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338-339)

서버는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인정했다. 전하가 분수인 입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겔만은 서버가 찾는 것이 완전히 어불성설이라며, ‘코크(quorks)’라는 이상한 단어를 갖다 붙였다. 그 뒤 이어진 강연에서 이 단어를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서버는 겔만이 지어준 이름을 쿼크(quirk, ‘기발함이라는 뜻의 명사)’로 알아듣고, 분수 전하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345)

자발적 대칭성 붕괴는 고체물리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양자장이론이나 입자물리학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물리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순수주의자로 생각했기에, 고체물리학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고체물리학을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시스템을 몇 개의 가정으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쯤으로 생각했다. 머리 겔만도 고체물리학을 너저분한물리학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417)

새뮤얼 팅과 버튼 릭터의 발견이 알려진 뒤 물리학자들은 소립자가 두 종류의 세대(generation)’로 존대한다고 생각했다. 각 세대는 두 개의 렙톤과 두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밖에 이들 사이에서 힘을 매개하는 매개 입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입자의 족보가 완성될 듯했다. 전자와 전자뉴트리노 그리고 위쿼트와 아래쿼크는 제1세대에 속하고, 뮤온과 뮤온뉴트리오, 맵시쿼크와 야릇한쿼크가 제2세대에 속한다. 1세대와 제2세대 입자들은 일대일로 대응되며, 세대 간의 차이점은 질량뿐이다. 그 외에 광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W 입자와 Z 입자는 약학 핵력을, 색전하를 갖는 글루온은 쿼크들 사이에서 강한 핵력을 매개한다.


(434)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질은 대부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중심부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자리잡고 있으며,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한 유령 같은 전자가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위쿼크와 아래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와 전자, 전자뉴트리노는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며, 이들은 표준모형에서 ‘1세대 물질 입자에 속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세계를 서술할 때에는 이 세 종류의 입자로 충분히다.


(438)

이 모든 체계의 저변에 신비하게 깔려 있는 것이 바로 힉스장(Higgs field)이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의 진공 속에 골고루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량이 없는 입자가 힉스장(또는 힉스 응축물’)과 상호작용을 하면 질량을 갖게 되는데, 이때 획득한 질량은 입자와 힉스장 사이의 결합강도(coupling)에 따라 달라진다. 힉스장의 장 입자는 스핀=0인 힉스 보존으로, 표준모형에서는 모든 입자에 질량을 주여하는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알려져 있다.

헤라르트 토프트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힉스 입자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지만 힉스장의 존재는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만일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표준모형의 대칭성이 너무 커서 모든 입자들이 거의 똑같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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