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말 3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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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시월의 말> 마지막 3권을 이야기해줄게. <시월의 말> 3권은 기원전 43 1월부터 기원전 12월까지의 이야기란다. 2권에서 카이사르가 죽었잖아. 그 이후 혼란스러운 로마의 이야기를 그렸고 말이야. <시월의 말> 3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단다. 이번 3권에서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옥타비아누스라고 봐야 할 것 같구나. 카이사르의 공식 후계자이니 말이야. 그리고 옥타비아누스가 그 위험한 후계자 자리를 피하지 않고,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니, 카이사르가 사람 보는 눈도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로마뿐만 이탈리아 전체에 혼란이 이어졌단다. 아무래도 거대한 산이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키케로는 입으로 계속 안토니우스를 비난하였단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는 이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한 것 같구나. 원래는 해방자들 편에 섰으나, 이제는 해방자들을 공격했어. 마치 과거는 모두 잊은 것처럼 말이야. 해방자 측에서는 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총독이 되었고, 안토니우스의 이 공격을 반란으로 규정했어.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옛 군단과 함께 하면서 사태를 지켜보았단다. 원로원 의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아래로 들어와 함께 싸우라고 이야기했지만, 옥타비아누스는 그럴 생각이 없었어. 카이사르를 죽인 이들과 어찌 함께 하는가. 오히려 그들은 죽여야 할 원수 같은 존재인데 말이야.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안토니우스와 전투에서 져서 갈리아로 도망쳤어.

그런데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갈리아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단다. 그는 갈리아 사람한테 잘 보이기 위해 자기 자랑을 했단다. 데키무스 브루투스 자신이 카이사르를 죽인 사람이라고오랫동안 카이사르와 싸운 갈리아인들이니 당연히 카이사르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고 한 이야기였어.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지. 갈리인들은 관용을 베푼 카이사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거든. 오히려 갈리인들은 데키무스 브루투스를 가둬 두었고, 안토니우스에게 데키무스 브루투스를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단다. 안토니우스는 갈리아인들에게 돈까지 보내면서 죽이라고 했어. 그래서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갈리인들에 의해 죽고 말았단다.

….


1.

옥바티아누스는 조금씩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일들을 했어. 옥타비아누스는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수석 집정관이 되었단다. 옥타비아누스가 집정관이 되어 로마에 있던 이즈음 서방에는 총독 레피두스와 안토니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고, 동방에는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해방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 옥타비아누스는 집정관이 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카이사르를 죽인 23명에 대해 기소를 한 것이란다. 그리고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어. 스스로 해방자들이라 부른 이들은 이제 모두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된 것이란다.

옥타비아누스는 동방에 있는 그 범죄자들을 바로 공격하러 가기에는 서방에 있는 세력들도 만만하게 볼 세력이 아니었단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결단을 내린단다. 서방으로 가서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협상을 하게 된단다.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는 처음에는 적대적으로 대했지만, 옥타비아누스의 설득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단다. 그의 제안은 셋이 함께 로마를 이끌어가자는 이른바 삼두정치이란다. 그 옛날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크라수스가 함께 했던 것처럼 말이야. 역사는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의 삼두정치를 2차 삼두정치 또는 2차 삼두연합이라고도 한단다.

그들의 지위는 집정관보다 위라고 정의했어. 독재관을 셋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옥타비아누스는 집정관도 그만두고, 셋이 하는 독재관을 하기로 했단다. 그들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어. 세금이 부족하다는 거야. 그들은 예전에 카토가 썼던 칼을 꺼내 들었단다. 그것은 바로 공권박탈. 공권박탈이란 죄를 지은 이들의 재산과 지위와 심한 경우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거야. 그 공권박탈의 1순위는 누구일까. 힌트는 안토니우스가 강력히 주장했어. 그래, 얼마 전까지 안토니우스를 맹비난했던 키케로였단다. 공권박탈이 법으로 제정되자마자 안토니우스는 사람을 보내 키케로를 죽였단다. 그냥 독약 같은 것으로 얌전히 죽인 것도 아니고, 참수하고 손목까지 자르는 등 잔인하게 죽였단다. 이것을 지켜본 옥타비아누스는 속으로 안토니우스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어. 현재 어쩔 수 없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어. 옥타비아누스는 더 확실한 적과의 동침을 하기로 했단다. 안토니우스의 의붓딸 클라우디아와 정략결혼을 하는 것이야. 아무리 정략결혼이라고는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클라우디아와 잠자리를 한번도 하지 않았어.


2.

카이사르를 죽인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동방 사정을 잠시 살펴보자꾸나.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동방의 여러 속주들을 차지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어. 그러면서 로마로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촉각을 세웠단다. 그리고 자신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어. 그리고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긴장했단다. 더 많은 군대와 군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속주들을 공격했어. 당연히 속주들의 민심은 잃은 것은 당연한 것.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어.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의견차가 점점 심해져서 주먹다짐까지 한 적도 있어.

옥타비아누스가 동방으로 공격을 가려고 했는데, 또 하나 남은 찜찜함도 해결하고 갔단다. 그것은 시칠리아에서 정세를 살피고 있던 폼페이우스의 둘째 아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동맹을 맺은 거야. 이것도 지금의 안전을 위한 일시적인 동맹이라고 생각했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관계를 보면 함께 할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야.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나서 동방으로 살인자들을 치러 갔단다.

그리고 필리피에서 커다란 전투가 벌어졌어. 필리피 회전이라고도 해. 서로 승리와 패배가 이어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 전투는 허무하게 끝이 났단다. 카시우스는 승리를 거둔 자신의 기병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적군이 오는 것으로 오해하고 이젠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결을 한 것이란다. 거참,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카시우스의 죽음 소식을 접한 브루투스…. 브루투스는 카시우스에 비해 군대를 이끌 능력이 부족했어. 그래서 카시우스 죽음 이후 브루투스 군대는 급격히 밀리게 된단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브루투스는 부하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했단다. 브루투스를 끝으로 암살자들이 이끈 군대는 더 이상 없었단다. 완패.

카이사르를 죽이기 전에 이것저것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23명의 암살자들그들이 계산에 넣지 않았던 하나, 그것은 바로 옥타비아누스였단다. 그리고 그 옥타비아누스로 인해 그들은 모두 파멸과 죽음의 길을 가고 말았단다. 브루투스의 시신을 본 옥타비아누스. 그 시신을 처리하는 데 있어 안토니우스와 작은 말다툼이 있었단다.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의 장례를 치러 주려고 했지만, 옥타비아누스는 가차없이 참수해 버렸단다. 옥타비아누스는 양아버지 카이사르만큼 영리하지만,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신은 달랐단다. 옥타비아누스가 생각하길 카이사르가 그렇게 죽은 이유도 다 관용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옥타비아누스의 사전에서 관용을 지어버렸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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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그것이 바로 내 아버지의 큰 실수였다. 아버지는 오래된 귀족들을 유지하고자 하셨고, 자신의 파벌을 오래된 귀족 가문 출신들의 이름으로 유지하고자 하셨다. 그의 독재는 표면상 민주적인 틀 안에서 제대로 확립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내 건강 상태와 취향은 화려함과 어울리지 않고, 나는 내 아버지의 웅장함을 절대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최고신관의 의복을 입고, 용기의 상징은 시민관을 머리에 쓰고, 천하무적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포룸 로마눔을 거닐고 다니셨다. 그를 쳐다보는 여자들은 활홀해했다. 그를 쳐다다보는 남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리며 괴로워했고, 자신의 무능함을 떠올리며 괜스레 그를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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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카이사르가 죽고 난 이후 이집트로 돌아온 클레오파트라. 자신의 후계구도에 대해 계속 고민했단다. 자신과 카이사르 사이에서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과 짝을 맺어줄 자신의 딸이 필요했단다. 당시 이집트는 기본적으로 근친간 결혼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상식이었단다.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편지를 보냈단다. 자신의 아이를 낳아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완벽한 거절 의사를 보냈단다. 정말 칼이구나, 옥타비아누스. 클레오파트라가 다시 아이를 낳지 못해서 그런지, 이집트는 다시 가뭄과 역병으로 어려움에 빠지고 말았단다. 여기까지가 <시월의 말> 3권의 이야기란다.

지은이 콜린 매콜로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쓰면서 6부를 마지막으로 끝내려고 했단다. 공화정도 끝난 시점이고, 카이사르도 죽었으니 말이다. <시월의 말>을 쓰고 난 다음 쓴 작가의 말에도 그런 내용이 있더구나. 그런데 작가들의 성화에 힘입어 7부까지 쓰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왼쪽 눈의 시력까지 잃어서 남편의 도움으로 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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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로마 공화정 시대에 끌린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다른 작가들에 의해 지겹도록 많이 다뤄지진 않았다. 둘째, 우리 사회의 사법, 정치, 상업 체계가 대부분 로마 공화정에 뿌리를 두고 있을 정도로 현대 서구문명과 연관이 깊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그토록 비범한 재능을 지닌 여러 인물이 비슷한 시기에 맞물려 서로 알고 지낸 사례는 극히 드물다.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와 술라, 폼페이우스를 모두 알았고, 이들 모두 어떤 식으로 카이사르의 인생항로에 영향을 끼쳤다. 그 밖에 카토 우티켄시스나 키케로 같은 다른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월의 말> 끝자락에 이르면 카이사르를 포함해 그들 모두 세상을 떠난다. 남는 것은 그후로도 계속되는 후대에 그들이 남긴 유산이며, 그 주인공은 카이사르의 생질손으로 훗날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최종적으로 아우구스투스가 되는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이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나는 절대 멈추지 못할 것이다!  - <작가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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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독자들의 열렬한 요청으로 추가된 7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하나만 남았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나라를 구했고 그 잊지 못할 집정관 임기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뒤(그는 들을 준비가 된 모든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는 다시 한번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섰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디라키온과 앙코나 사이의 아드리아 바닥 어딘가에 영원히 놓이게 되었다.


아그리파는 질투나 야망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옥타비아누스를 향한 그의 감정은 늘 순수한 애정, 온전한 존경, 부드러운 보호반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옥타비아누스를 비난하고 혐오하고 조롱할지 몰라도, 아그리파만큼은 옥타비아누스를 비난하고 혐오하고 조롱할지 몰라도, 아그리파만큼은 옥타비아누스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으며 옥타비아누스의 성격에서 가장 극단적인 면마저 나쁘게 보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지성이 그를 점점 더 하늘 위로 끌어올렸다면, 옥타비아누스의 아주 다른 사고방식은 그를 땅속까지 내려갈 수 있게 해준다고 아그리파는 생각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인간의 결점을 놓치는 법이 없었고 약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의 무게를 꼼꼼히 따졌다. 그의 본능은 파충류를 닮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섣불리 움직이는 실수를 범할 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움직일 때는 너무 빨라서 흐릿하게 보일 뿐이거나, 혹은 너무 느려서 가만히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 P49

"로마는 로마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로마의 종복일 뿐 로마의 주인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과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로마에 더 큰 영광을 가져다주고 로마의 국력을 키우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당신과 저, 마르쿠스 레피쿠스가 꼭 경쟁해야 한다면 로마의 더 큰 영광에 기여했다는 명성을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오늘 이 전투에서 죽든, 아니면 이후 평화로운 시기에 죽든 간에 우리는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로마는 영원하죠. 로마는 우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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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말 2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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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 제 6 <시월의 말> 2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시월의 말> 2권은 기원전 46 8월부터 기원전 44 12월까지의 로마 이야기가 담겨 있단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 담겨 있는 책이란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실질적인 주인공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마지막이 이번 책에 담겨 있거든.

카이사르의 죽음은 워낙 유명하단다. 이 책에서는 카이사르의 죽음 전후에 있었던 일들을 아주 자세히, 재미있게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다시 한번 지은이 콜린 매컬로의 천재성과 노력에 경의를 표해 본단다. , 그럼 <시월의 말> 2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꾸나.

1권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갈리아 전쟁과 내전으로 길고 긴 전쟁을 드디어 마쳤잖니. 이제는 로마를 재정비하여 안정을 되찾게 하는 일이 남았지. 그러면서 카이사르는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단다. 생질손인 옥타비우스를 고려하고 있어 그를 자주 만났어. 옥타비우스가 영리하긴 한데 한가지 단점이 있었단다. 어렸을 때부터 기관지가 좋지를 않아 천식이 있어 자주 가뿐 숨을 쉬기도 했고, 기관지 알레르기도 있고 그랬어. 그래서 고민을 더 하게 되었어. 그렇다고 망나니 같은 안토니우스에게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여전히 자신이 카이사르의 첫 번째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안토니우스는 자꾸 카이사르와 의견 충돌이 일어났지.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시켜서 카이사르를 죽이려고 했어. 그러면 카이사르의 전 재산을 자신이 물려 받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 안토니우스가 그렇게 배신을 때리는구나. 그렇게 카이사르의 재산을 물려 받으면 풀비아와 결혼하는데도 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안토니우스는 풀비아와 결혼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거든. 풀비아 기억나니? 로마 최고의 여자 갑부로 이미 두 번 결혼했으나 남편들이 모두 일찍 죽었잖아. 하지만 안토니우스의 카이사르 암살 계획은 생각과 달리 경비원들이 많아서 실패하고 말았단다. 눈치 빠른 카이사르가 대비하고 있었던 거야.

안토니우스가 그런 음모를 벌였던 다음 날,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에서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안토니우스가 벌였던 일을 이야기했단다. 아주 사소한 일인 것처럼 지나가듯 이야기했고, 그에게 더 중요한 로마 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했어. 안토니우스는 얼마나 당황하면서도 자존심 상했을까. 그래도 아직도 자신이 카이사르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바보 같은 녀석.


1.

어느날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에 방문했단다. 그것도 얼마 전에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도 데리고 왔어. 카이사르는 어린 아들을 처음 만났지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단다. 그래도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시간을 보냈단다. 불쌍한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 .

개선식과 딸 율리아를 기리는 체육대회도 열었단다. 그리고 공을 세운 이들에게 전리품도 넉넉히 나눠주었었다. 전리품들을 넉넉히 나눠주었음에도, 바보들의 놀이인 비교를 하고 불만을 갖는 이들이 있었어. , 저 녀석보다 내가 적게 받냐는 불만들그런 이들 중에는 안토니우스, 데키무스 브루투스, 트레보니우스도 있었단다. 아빠가 그 동안 이야기한 브루투스는 세르빌리아아의 아들 브루투스였는데, 그 브루투스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이고, 여기서 이야기한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와 전장을 누비던 옛 부하란다. 그러니까 예전에 함께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던 이들의 불만이 컸던 거야. 심지어 안토니우스, 데키무스 브루투스, 트레보니우스는 불만을 이야기하다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카이사르 암살에 대해 이야기도 했어.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와 많은 시간을 보냈단다. 옥타비우스를 수습군관으로 임명했던, 천식 치료도 잘 하라고 했고, 행동 가짐도 잘 하라고 했어. 동성애자가 되지 말고, 그렇게 보이는 의심을 사는 행동도 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리고 함께 히스파니아 원정에도 같이 갔었어.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에 머물면서 친하게 지내는 이들 중에는 오지랖 넓은 세르빌리아도 있단다. 세르빌리아 알지? 옛날 카이사르와 바람 폈던 여자. 세르빌리아의 오지랖 정도면 클레오파트라와 친할 만 하지.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투스는 나이를 먹으면서 엄마의 굴레에서 점점 벗어났어. 엄마 몰래 이혼을 하고, 예전부터 사랑했던 카토의 딸, 그러니까 자신의 사촌 되는 포르키아와 결혼을 했단다. 세르빌리아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에 가득 차서 아들 집에 쳐들어가서 한바탕 했는데, 브루투스도 예전의 여드름 소년이 아니었어. 엄마한테 만만치 않게 대들었단다. 자신의 사랑을 놓지 않았어.

트레보니우스와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실제로 카이사르 암살을 하기로 마음 먹었단다. 비밀리에 카이사르 살해 모임을 만들고, 입이 무겁고, 카이사르에 불만이 많고 싫어하는 원로원 의원들을 포섭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모은 원로원 의원이 23명이나 되었어. 하지만 숫자만 많았지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그래서 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포섭한 사람이 카시우스와 마르쿠스 브루투스란다.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넘어온 이유는 아내 포르키아의 영향이 컸단다. 포르키아의 아빠 카토가 카이사르에 의해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브루투스는 처음에는 모른 척은 하겠다, 하지만 참여하지는 않겠다고 했어. 하지만, 포르키아는 협박 가까운 설득으로 결국 참여하기로 했어. 이제 그들은 카이사르를 죽여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야 해. 가장 좋은 것은 카이사르가 왕이 된다는 소문을 내는 것이었어. 공화제를 지지하는 백성의 반감을 사게 하는 소문이었지. 그리고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불러서 신의 대접을 해주는 제도를 만들자고 했어. 그에게 왕에 가까운 권한을 갖도록 부추긴 것이지. 그래서 로마 시민들에게 미움을 사게 하고, 왕의 권한을 가진 그를 죽인다는 명분을 만들려고 말이야. 하지만, 카이사르는 절대 반대를 했단다. 자신은 공화제를 지지한다면서 말이야. 그러자 원로원은 이번에는 카이사르가 없을 때 카이사르를 종신독재관에 임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단다. 그들이 카이사르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를 죽이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

카이사르 살해 모임에 등 떠밀려 참여하기로 한 마르쿠스 브루투스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카이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단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아무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그런 일은 그냥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2.

트레보니우스는 계획을 하나하나 세웠어. 그리고 카이사르를 죽인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안토니우스에게 수습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당시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살해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어. 트레보니우스는 안토니우스에게 카이사르 사후 수습을 요청하면서, 카이사르 살해 모임에 참여했던 원로원 의원들은 절대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 카이사르 살해 모임 회원 중에 몇몇은 안토니우스도 죽이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트레보니우스는 안토니우스를 통해서 자신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 이젠 모든 것이 준비된 것 같구나.

카이사르는 파르티아에서 적군의 공격 소식을 듣고 출동 준비를 했어. 그리고 옥타비누스를 동방으로 유학을 보냈단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밝았단다.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는 조짐이 이상하다면서, 카이사르에게 그날만은 원로원 회의를 참석하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의 할 일을 하려고 했지. 그날의 회의는 폼페이우스 회의소에서 진행을 했어. 그리고 회의장에 도착한 카이사르…. 원로원 의원 23명의 칼을 받고 죽고 말았단다.

이 책에서는 카이사르가 죽기 전에 이야기했다고 하는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은 없었어. 지은이가 고증을 잘 해서 쓰셨으니 그런 말은 야사에 있었던 것 같구나. 아무튼 그렇게 허무하게 카이사르는 죽고 말았단다. 범행을 벌인 이들의 명분은 로마의 압제자로부터 로마를 해방시킨 사건이라고 했어. 일은 벌어졌는데, 일을 저지른 이들도 모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랐어. 우르르 신전으로 몰려가기도 했어.

안토니우스는 사전 약속과 달리 그 자리를 피했어. 트레보니우스만이 진정을 하고, 먼저 키케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어. 키케로는 상황을 정리해 보려고 했지만, 키케로도 잘 정리가 안됐어.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집으로 이 소식을 알렸고, 카이사르의 육촌인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서 카이사르의 시신을 수습하고 사후 정리를 했어. 로마에 머물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에게도 소식을 전했어. 그리고 카이사르의 유서를 보고 제 1상속자로 지명된 아폴로니아에 머물고 있는 옥타비우스에게도 소식을 전했단다.


3.

옥타비우스는 카이사르의 사망소식과 자신이 카이사르의 제 1 상속자이자 양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러니까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었다는 거야. 이제 고작 18살이었던 옥타비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 자리가 얼마나 위험한 자리인지 잘 알고 있던 옥타비우스의 양아버지 필리푸스는 곧바로 옥타비우스에게 편지를 썼단다. 카이사르의 상속을 포기하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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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편지를 끝맺기 전에 꼭 말해두어야 할 게 있다. 네가 상속받은 유산 말이다. 옥타비우스, 제발 유산을 물려받지 마라! 재산을 똑같이 나눠서 8분의 1만 받겠다고 하고 입양되는 것은 거부하렴. 이대로 유산을 받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짓이야. 너는 안토니우스와 해방자들과 돌라벨라의 등쌀에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야. 그들은 열여덟 살 어린애인 너를 박살대고 말 거라고. 안토니우스는 고작 어린애한테 밀려서 유산을 상속받지 못했다고 화가 나서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그가 카이사르의 암살자들과 공모했다고까지 말하진 않겠다. 그랬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자가 도덕이나 윤리 따윈 없는 인간이라는 건 분명해. 그러니 널 만났을 때 카이사르의 유산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듣길 기대하마. 오래오래, 늙은이가 될 때까지 살아라, 옥타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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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옥타비우스는 자신 스스로 상속자라고 하고, 카이사르를 아버지라고 하였어. 그리고 자신의 호칭도 카이사르 집안의 뜻이 담긴 옥타비아누스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단다. 로마 갈 준비를 했단다. 아폴로니아에서 친하게 지내던 아그리파, 마이케나스, 살비디에누스와 함께 길을 떠났단다. 곧바로 로마로 가지 않고, 이탈리아 반도의 남부 지역 브룬디시움에 머물며 향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했어. 옥타비아누스는 먼저 카이사르의 옛 병사들을 만났어. 카이사르의 옛 병사들은 옥타비아누스에게 그를 적극 지지하겠다고 했어.

한편 로마에서는 안토니우스와 돌라벨라가 집정관이 되어 사태 수습을 하면서 로마 전체의 혼란을 잠재우려고 노력했어. 카이사르 암살에 참여한 원로원들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았어. 그들은 스스로 해방자라 부르고 다녔어. 그렇게 조심씩 일상을 되찾아 갔단다. 시민들과 카이사르의 옛 병사들은 옥타비아누스를 지지했어.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찾아가 카이사르 상속자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단다.

당시 로마는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어. 옥타비아누스는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 있었고, 안토니우스도 옥타비아누스의 세력을 가볍게 볼 수 없었어. 그렇다 보니 카이사르를 죽인 이들과도 선 긋기를 하면서 또 다른 위치를 잡아갔단다. 그렇게 해방자들과 선을 긋는 안토니우스를 보고, 배신자로 울분을 토하는 이가 있었으니 키케로였단다. 카이사르에 비하면 키케로 캐릭터는 찌질남이긴 했지만, 키케로 또한 말빨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잖니. 그는 논리 정연하게 안토니우스를 비난하는 연설을 여러 차례 하게 된단다. 그러면서 카이사르 죽음에도 안토니우스가 깊게 연루되어 있다고 했어. 안토니우스가 반론을 내세웠지만, 키케로는 더 반격을 해 댔어.

카이사르라는 최고 엘리트는 죽었지만, 그가 없는 로마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것 같았단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고, 안토니우스는 그런 옥타비아누스의 눈치를 보면서 원로원들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어. 자칭 해방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방어막이 안토니우스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거리를 두려고 하니 겁이 나겠지여기까지가 <시월의 말> 2권의 이야기란다.

….

몇 년 전에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단다. 카이사르 사후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게 될 때까지를 이야기한 소설이란다. <시월의 말> 2권을 읽다 보니 그 책도 다시 생각나더구나. 그 책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야.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시월의 말> 3권도 곧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관저의 외관이 개선되었다.

책의 끝 문장: 그 끔찍한 3월 이두스의 해가 마친내 저물어갈 무렵,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답을 아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나는 꽤 오래 살았습니다.햇수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말이죠. 하지만 나는 아직 인생에 그리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살해당하는 것으로 삶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나를 제거해보십시오, 그러면 장담컨대 로마는 독재관 카이사르보다 훨씬 더 나쁜 병폐들을 겪게 될 겁니다. 로마의 현상황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독재관 직을 맡을 때와 다릅니다. 로마는 하나의 강력한 손이 필요하고, 그 손을 내게서 찾았습니다. 내 법들을 확립시키고 로마가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면 나는 독재관 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일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그때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고하겠습니다. 내게 예전의 영광으로 ‘공화국을 되돌려 놓으라’는 부탁은 이제 그만하십시오. - P41

문제의 핵심은 어느 특정 단체에 있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실패한 지점은 바로 그가 이 모든 일을 사실상 혼자 했다는 사실이었다. 독재관으로서. 그런데 로마에는 자기도 카이사르와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이사르가 독재관을 지내는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는 여생 동안 독재관 직을 유지해야 할 터였고, 그가 죽은 후 로마가 부디 충분한 교훈을 깨달아 후퇴가 아닌 전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전진이란 말인가? 그것은 그도 몰랐다. 카이사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가 도입한 변화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 훌륭함에 충분히 감화되어 이 변화들을 지속해나가리라고 믿는 것뿐이었다. - P203

해방자들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브루투스는 손등에 흐르는 피를 멎게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하지만 무언의 동의라도 한 듯 일제히 돌아서서 문을 향해 달렸다. 데카무스 역시 넋이 나가 있었다. 평의원들은 현장을 목격하자마자 이미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아난 터였다. 그가 죽었다, 카이사르가 죽었다! 해방자들마저 정원으로 뛰쳐나오자 밖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공황상태에 빠졌다. 해방자들의 토가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끈적끈적한 주먹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 P325

"원로원 의원 여러분,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아첨을 당장에 그만두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요구한 적도 바란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받지 않을 겁니다. 이것이 나의 지시이며, 이 지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합니다. 원로원에서 나를 로마의 왕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로마에서 왕정은 폐지되었고 그 대신 공화정이 탄생했습니다. 나는 왕정을 혐오합니다. 나는 결단코 로마의 왕이 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로마의 독재관이며 이 독재관 직만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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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마케도니아를 바라보는 관점은 카이사르가 로마를 바라본 관점과 달랐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기 자신을 우선시했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보다는 스스로가 신이 되기를 꿈꾸었다. 물론 그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은 그의 죽음과 함께 멸망했다. 반면에 로마라는 제국은 한 사람이 죽는다 해서, 아니 여러 사람이 죽는다 해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로마인은 한시적으로 태양의 자리를 차지할지언정 결코 자기 자신을 태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기 자신을 태양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도 그런 것인지 몰랐다. 그랬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그만의 태양을 원했다. 그리고 그의 태양은 로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의 태양은 로마의 것이 아니었다!


(145)

이 모든 생각을 하는 와중에 클레오파트라의 마음속에 남자이자 애인으로서의 마르투스 안토니우스는 단 한 차례도 수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을지 궁리하기에 바빴다. 안토니우스와 함께했던 시간은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 남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퍽 유쾌한 기분전환이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염증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단 한 번도 안토니우스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수단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를 통해 잉태했고, 나일 강이 범람했으며, 카리사이온은 결혼할 누이와 그를 도울 남동생을 얻었다. 지금 단계에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권력뿐이었다. 그러니 클레오파트라는 그가 가진 권력의 일부를 뜯어내야 했다. 어려운 주문이야, 클레오파트라.


(237)

저는 결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동방의 일을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즉 임페라토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일입니다. 우선 로마는 필리피 전투 직후, 그러니까 약 6년 반 전에 그가 동방의 트리움비르 직을 얻은 후로 공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 이탈리아와 섬들의 트리움비르인 제가 방금 일부 세금을 감면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자신이 노력한 결과입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도움이나 기여는 전혀 없었습니다. 앞쪽과 중간 벤치의 어느 분이 벌떡 일어나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처단한 제 작전을 위해 배 120척을 기여했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그 배들을 빌미로 로마에 돈을 요구했습니다. , 정말로 로마에 돈을 요구했습니다! 얼마나 요구했냐고요? 4 4천 탈렌툼입니다. 의원 여러분!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보물창고 내용물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액수죠! 나머지 6 6천 탈레툼은 제가 아니라 로마가 가져갔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받은 것이 없습니다! 로마로 들어간 자금은 엄청난 공적 부채와 상환과 곡물 공급 관리에 쓰였습니다. 저는 로마의 종이며, 로마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로마로부터 이익을 보는 경우는 그 이익이 유서 깊은 관습일 때뿐입니다. 안토니우스의 배 120척은 한 척당 360탈렌툼이 들었으며, 그가 빌려준 것이지 제공한 것이 아닙니다. 5단 노선 한 척의 값은 100탈렌툼이지만 우리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함대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고는 비어 있었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처리하기 위한 우리의 작전을 일 년 더 미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이름으로 저는 그 착취에 동의했습니다. , 정말이지 착취입니다!”


(357-358)

카이사리온은 어머니의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왜 안토니우스한테서 로마인다움과 독립성, 판단력을 박탈하려 애쓰는지도 알았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만이 어머니를 만족시킬 터였고, 그런 그녀에게 로마는 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로마 같은 명실상부한 패권 국가가 전쟁 없이 그녀에게 굴복할 가능성은 없으니까. , 그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더라면! 그러면 진짜 대등한 자로서 클레오파트라와 대면하여 그녀가 그를 위해 원하는 것을 그는 원치 않는다고 대담하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카리사리온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어린애의 생각이라고 무시해버릴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한 번도 진짜 어린애였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조숙한 지력을 닮았고 어릴 적부터 왕의 지위를 보유한 카리사리온은 피바다에 빠진 굶주린 개처럼 지식을 빨아들였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배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필요할 때 바로 기억해낼 수 있도록 저장하고, 한 주제에 관해 충분히 지식이 축적되면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권력에 현혹되지는 않았는데, 아버지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끔씩 카이사리온은 아버지도 그랬을 거라고 추측했다. 카이사르가 올림포스 산만큼 높이 솟은 이유는 그저 그러지 않으면 추방당하고 로마의 기록에서 모든 언급이 삭제될 처지였기 때문이라고. 그건 카이사르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아려고 그렇게 애쓰진 않았다, 왠지 카이사리온은 그걸 알 수 있었다. 내 아버지, 내가 아장아장 걷던 아기였을 때 본 그의 얼굴을, 훤칠하고 강인한 그의 몸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너무도 보고 싶은 나의 아버지. 안토니우스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카이사르가 아니다. 지금 내게 조언을 해 줄 아빠가 필요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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