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익주) 호구조사를 고려의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고려의 호구조사 결과를 몽골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전까지 고려에 설치되어 있었던 다루가치를 폐지하고 다시는 설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 낸 거죠. 또한 그 당시에 고려에 주둔하던 몽골군을 전부 철수하게 하고, 홍차구 같은 부원 세력이 고려의 정치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도 이제는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러한 쿠빌라이 칸의 약속이 쿠빌라이 칸이 죽은 다음 몰골의 후손들에게 세조가 정한 옛 제도라는 의미에서 세조구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 이후에는 몰골의 누군가가, 또는 고려의 부원 세력이 고려의 자주성을 해치려고 시도하면 언제나 이 세조구제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막아 냅니다. 그래서 고려가 끝까지 국가로서 유지될 수 있었죠. 충렬왕의 외교가 거둔 성과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63-64)

(이익주) 그래서 충선왕이 폐위된 지 10년 만에 복위합니다. 사실 충선왕의 전성기는 복위하기 한 해 전인, 무종을 옹립한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원에서 심왕으로 책봉받습니다. 지금의 중국 선양시와 랴오양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을 분봉받으면서 원의 여러 왕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마침 충렬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 왕까지 되어 두 개의 왕위를 겸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원에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정책이 어전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되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케식으로 부릅니다. 충선왕이 바로 케식의 일원으로서 원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면서 원의 실력자가 됐죠.


(84)

(이익주) 사실 기황후의 능력은 외모보다는 몽골 여인과는 다른 학식에 있었습니다. 한가할 때는 <여효경>과 각종 역사서를 읽으면서 중국의 역대 황후 가운데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 있는지 공부했다고 합니다. 또한 사방에서 올라오는 공물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태묘에 먼저 바친 후에야 그것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고, 수도 근방에 커다란 기근이 들었을 때는 자기의 사재를 털어서 무려 10만여 명의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황실 안에서 상당히 현명하게 처신했다는 기록을 보면 몽골 사람들은 잘 갖지 못했던 유교적인 덕목을 기황후가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86)

(신병주) 여기서 고려 왕의 계보를 잠깐 살펴보자면, 충선왕의 아들 강릉대군이 충숙왕이 됩니다. 그다음은 충숙왕의 장남인 충혜왕이 잇고요. 참고로 공민황은 충숙왕의 차남이죠. 충혜왕이 폐위되자 동생인 공민왕이 왕이 될 뻔했는데, 결국에는 아들인 충목왕이 고려 제29대 왕이 되죠. 충목왕이 즉위할 때 여덟 살이었는데, 4년 만에 열두 살의 나이로 병사해요. 그렇게 해서 공민왕이 이제는 자기 차례라고 생각할 때, 이번에는 충혜왕의 서자인 충정왕이 열 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니까 공민왕은 어린 조카 두 명에게 연이어 밀린 거예요. 충혜왕이 폐위되었을 때는 충목왕에게 밀려 재수하고, 충목왕이 죽었을 때는 충정왕에게 밀려 삼수한 거죠. 결국 공민왕은 삼수 끝에 고려 제31대 왕이 됩니다.


(108)

(류근) 뭐니 뭐니 해도 공민왕이 불굴의 자세로 추구한 자주성과 독립성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그 삼엄한 원 치하에서 어떻게든 고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려고 노력한 그 끈기와 오기에 아름다운 고려 정신이라고 박수를 좀 보내 주고 싶어요.


(128-129)

(이익주) 공민왕은 반원 운동을 시작으로 기황후와 싸우고 덕흥군에 의해 폐위당할 뻔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기죠. 그래서 이쯤 되면 권문세족들을 상대로 개혁을 추진했을 때 자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왕권을 대행하는 신돈이라는 사람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개혁도 추진하고 자기의 안위도 보장받는 길을 택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153-154)

(이익주) 그랬을 겁니다. 무신 전체는 아니고, 최영을 비롯한 몇몇 사람의 문제인데, 공민왕 대에는 홍건적과 왜구 등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변란이 계속되면서 무장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그런데도 공민왕은 이들이 더는 세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고, 개혁을 통해 제거하려고 했어요. 신돈이 개혁을 시행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최영을 경주의 지방관으로 좌천시켜 내보낸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 관한 불만이 최영을 비롯한 무장들 사이에는 계속 있었는데, 공민왕이 시해당하고 우왕이 즉위하자 기회를 잡은 거죠. 개혁의 흐름을 중단하게 하고 그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면에서 이인임과 최영이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66)

(신벙주) 이인임 세력은 권력을 휘둘러 뇌물을 수수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강제적으로 뺏는 일들을 자행해요. 혹시 수정목이라는 나무 들어 봤어요? 물푸레나무예요. 이 나무가 아주 단단합니다. 야구방망이로 만들어도 되는 나무인데, 이때 이인임의 수하들이 수정목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토기를 내놓으라며 때렸죠. 그러다 보니까 몽둥이가 국가에서 발급한 공문보다도 더 효과가 크다고 해서 수정목 공문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공포의 대상이 됐다는 거죠.


(206)

(이익주) 그래서 왜구는 단순히 고려와 일본의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모두 관련된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1388년에 중국에서 원과 명이 교체되는데, 공교롭게도 139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바로 같은 해에 일본에서 북조와 남조가 통합됩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왕조 교체에 준하는 변화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관점에서 왜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 볼 필요가 있죠.


(226)

(이익주) 그렇죠. 이성계가 이렇게 강력하고 길게 자기 얘기를 한 것은 이 때가 처음입니다. 이성계가 군인에서 정치가로 점차 변신하는 모습이 보이죠. 이성계가 요동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며 내놓은 주장을 흔히 사불가론(四不可論)’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여름철에 군대를 발해서는 안 된다.”요동에 군대를 보냈을 때 왜구의 공격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장마철에 전염병이 돌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세 가지는 군인으로서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맨 처음에 제시한 이유는 이소역대(以小逆大)’라 해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면 안 된다입니다. 이 말은 성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명분론입니다. 군인인 이성계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이때 정몽주나 정도전 같은 신흥 사대부들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해석됩니다.


(246)

(이익주) 저는 최영이나 이성계 모두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영에게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최영은 개인적으로는 참 청렴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개인의 청렴함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죠. 그랬기 때문에 최영 개인은 청렴했지만, 공민왕 때는 개혁의 걸림돌이 되었고, 우왕 때는 이인임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요. 사회가 구조적으로 부패해 가는 것을 막지 못한 거죠. 어쨌든 최영의 죽음으로 고려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사라집니다. 이때부터 고려가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데, 고려 왕조로서는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 된 최영에게 국제적인 감각과 사회 변화에 관한 안목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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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 삶과 태도에 관하여 조우성 변호사 에세이
조우성 지음 / 서삼독 / 202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우리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 드라마는 실제 있었던 재판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았다고 했어. 드라마에서 나왔던 재판들이 담긴 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작년에 읽은 신민영 변호사님의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가 그 중에 하나이고, 또 다른 책이 조우성 변호사님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2>이란다. 그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오늘은 먼저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지은이 조우성 변호사님은 변호사 경험이 25년이라고 하시는구나.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보고 들은 재판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음 책이란다. 1권은 <삶과 태도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부제는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단다. 1, 2권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단다. 지은이 조우성 변호사님께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셔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술술 읽히더구나.


1.

1권에 나온 에피소드들 중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에피소드에 나왔던 사건들은 <몇 대 맞으시면 됩니다> <횡재가 횡액이 되는 순간>라는 재판이었어.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일은 정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놀랍구나. <몇 대 맞으시면 됩니다>는 삼형제가 거액의 상속을 받게 되는 내용이었어. 드라마에 있었던 것 기억나지 못된 형들이 막내의 돈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에피소드. 실제 사건도 비슷했단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내던 막내. 논의 명의도 막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땅이 개발이 되면서 큰 돈을 받게 되었어. 그런데 형들이 찾아와서 아버지의 논이었으니 큰형이 50, 둘째 형이 35, 막내가 15로 나눠야 한다고 강압적으로 이야기했대. 그리고 이때 발생하는 세금도 막내가 모두 지불하는 것으로 해서 각서까지 썼다고 하는구나. 막내 분의 아들이 지은이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드라마에서처럼 형들에게 상해를 당하는 것이었단다. 그 작전이 성공해서 증여는 취소할 수 있었고, 드라마에서처럼 막내는 형들과 돈을 똑같이 나누었다는 이야기란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하려고 만들어낸 에피소드인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막내라는 분도 또한 대단하구나. 그렇게 못나게 군 형들에게 돈을 똑같이 나눠주다니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는 로또 당첨금에 대한 이야기란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그 로또 이야기.. 친구들과 당첨금을 나눠 갖기로 했는데 한 친구가 꿀꺽해서 열린 재판. 결국 재판에서는 친구들에게 똑같이 당첨금을 나누라는 판결이 나왔지. 그런데 그 이후 당첨금을 받은 이는 바람을 피우고 이혼까지 했다고 했어. 그 이후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교통사고 당시 법률적으로 부인이 없던 그의 유일한 상속인은 아이들이었어. 그래서 그의 로또 금액과 생명보험금의 그의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대신해서 상처를 받았던 전처가 관리하게 되었다는구나. 이 에피소드도 좀 각색이 되긴 했지만, 드라마에서 거의 비슷하게 그려졌단다. 세상에 참 별난 일이 많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잘못한 사람은 결국 천벌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

이 책에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쭉 나와서 일일이 소개하기는 그렇고 나중에 너희들도 좀 더 크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더구나.


2.

아빠는 법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단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법률 상식을 얻을 수도 있는데, 부모님이 빚을 남기고 돌아가실 경우 상속을 포기하면 빚도 갚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단다. 그런데 상속인이 사망하게 되면 손자에게 넘어갈 수 있으니, 손자도 상속에 개시되기 전에 상속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는구나. 이런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한 빚을 내는 일은 없어야겠구나.

========================

(49)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상속으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된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식들이 부모의재산이 아니라을 물려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중에는 부모의 빚을 물려받지 않기 위한 상속포기라는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3개월의 상속포기 신고기한을 놓치는 바람에 부모의 빚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법에서 규정한 절차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기에 결코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

...

친족 간에 일어나는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해 주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지.

========================

(109)

우리 형법은 친족 간에 일어나는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해주고 있는데 이를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고 한다. 김 사장 아들의 경우처럼 직계혈족 간의 절도죄에 대해서는 형벌 자체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

이 책을 읽다 보니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가 가더구나. 수 많은 사례들에 맞는 법을 찾아내야 하니 말이야. 아무튼 앞으로도 법적인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법적인 일에 휩싸일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변호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간단히 끝내고 조만간에 2권의 이야기도 해줄게.

이상.


PS:

책의 첫 문장: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6개월 전에 위암 선고를 받으셔서 현재 항암 투병 중이십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이 법에 기대어 법정을 찾게 되는 때는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경험하고 있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만, 소송 이후의 삶은 천차만별로 달랐다. 어떤 이는 승소를 해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했고, 어떤 이는 패소를 해도 후련한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다. 2년의 재판 끝에 승소를 했음에도 분노에 젖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이 사건은 이길 수 없습니다. 패소가 확실합니다."라고 말해도 끝까지 철회하지 않고 심지어는 패소했음에도 나를 지인에게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다. - P6

먼저 1단계는 ‘당혹감’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좀더 신간이 지나면 이런 상황을 초래한 상대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2단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곧 화가 누그러지면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누구를 탓하겠어. 사람을 잘못 본 것도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도 모두 내 탓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3단계다. 이를 넘어서 4단계에 들어서면 상황을 ‘직면’하고 ‘성찰’하려 한다. ‘좋아, 어차피 일이 어떻게 된 거 최대한 잘 처리하도록 하자. 냉정을 잃지 말고 아울러 이번 일을 나의 교훈으로 삼자. 분명 이 경험도 내겐 득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이다. - P93

노자의 <도덕경>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굉장히 크고 넓어서 얼핏 봐서는 성긴 듯하지만 선한 자에게 선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일은 조금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 P151

사람들이 소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 때문이기도 하고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서로 자존심을 걸고 법정싸움을 벌일 때는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서로 양보하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 이득일 텐데 자존심이 걸려 있으면 달라진다. 합리적인 선택을 그 자존심이란 녀석이 가로막는다. 사람은 그만큼 감성적인 존재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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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

(이익주)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모든 군현이 같은 등급에 있지 않고,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눠집니다. 가장 위에 있는 등급인, 지방관이 파견되는 군현을 주현으로 부릅니다. 주인 주() 자를 쓰지요. 그다음 등급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옆에 있는 주현으로부터 간접 통치를 받는 속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향**부곡이 있는데, 이 향**부곡에 사는 사람들은 좀 어려운 말로 잡척(雜尺)으로 부르지요. 이 작첩들은 일반 군현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세와 공물, 역 같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유지를 경작하거나 자기가 사는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생산해 국가에 납부하는 역을 더 지므로 살기가 더 힘듭니다. 사회적으로는 천대받고요.


(33)

(신병주) 한때는 국사 시간에 향**부곡을 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가르쳤는데, 최근에 바뀌었어요. 양인과 천민을 나누는 가장 큰 구분점은 국역을 지는지 안 지는지입니다. **부곡에 사는 사람들도 국역을 지기 때문에 일단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죠. 다만 하는 일이 천역(賤役)이어서 일반적인 양인과는 좀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소라는 지역은 수공업을 전문으로 해서 물품을 조달하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금소에서는 금을 생산하고, 은소에서는 은을 생산하죠.


(76)

(이익주) 다소 역설적이긴 합니다만, 최충헌이 그렇게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왕실은 그대로 두고 그 권위를 이용하면서 자기의 실질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세습까지 했죠. 그래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신하가 권력을 4대에 걸쳐 세습할 수 있었던 겁니다.


(78)

(이익주) 최충헌에서 시작된 최씨 정권이 자리를 잡고 62년간 이어지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역사에서 공과 사가 뒤섞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관리들이 국가에 충성한다고 했을 때, 이 충성은 언제나 공적인 것이고 공적인 충성의 대상은 명분과 대의가 있어야 하죠. 그런데 이 시기에는 무신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충성하고 그 충성의 대가를 바라는, 사익을 위한 충성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충성이 갖는 의미가 흔들리죠. 예를 들어 몽골과 싸운 것이 고려를 위해 싸운 것인지, 또는 최씨 정권을 위해 싸운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뒤섞입니다. 이처럼 권력의 사사로이 쓰는 일이 최충헌에게 시작됐다고 해도 큰 과언은 아닐 테니, 최충헌이 남긴 부정적인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87)

(이익주) 고려에 호감이 있었다기보다는 고려를 고구려와 같은 나라로 알았다는 점이 컸을 겁니다. 훗날인 1259년에 고려 태자가 몽골에 가서 쿠빌라이를 만납니다. 그때 쿠빌라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고려는 만 리나 되는 큰 나라다. 옛날에 당 태종이 친정했어요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그 태자가 나에게 왔으니 이건 하늘의 뜻이다.”

(류근) 진짜 고려를 고구려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 몽골이 그 정도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는데도 패권 국가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나마 고구려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간 보기 정도로 형제가 되자는 카드를 내밀어 본 거 같아요.


(102)

(최태성) 그 정체는 바로 초적입니다. 초적은 고려 민주이에요. 먹고살기 어려운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무리를 지어 도적질하는 무리가 된 거죠. 사실 이 초적들은 무신 정권에 반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몽골군이 오니까 무신 정권에 손을 내밀고 몽골에 대항해 함께 싸우자고 한 거예요. 심지어 마산, 이 마산은 오늘날의 경기도 파주인데, 그 마산에 있는 초적 우두러미 두 명이 직접 최우에게 와서 몽골과의 전쟁에 자기들을 써 달라고 자원합니다.

(류근) 초적들이 평소에는 관군들에 쫓기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나라에 위기가 닥치니까 일단 묵은 감정은 접고 외적과 싸우자는 거네요.


(110)

(신병주) 귀주성의 승리는 이끈 김경손에 관한 기록을 보면 몽골군이 쏜 화살에 팔을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끝까지 부대를 지휘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김경손이 아주 중요한 곳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데, 몽골군이 쏜 포탄이 계속 날아오자 부하들이 김경손에게 너무 위험하니까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권합니다. 근데 김경손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가 움직이면 부하들이 동요할 것이다.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라면서 끝까지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부대를 지휘하죠. 정말 대단한 장군입니다. 명장이죠.

(류근) 당대의 영웅이었는데, 우리가 잘 몰랐던 거네요. 진짜 감동적입니다.


(135)

(신병주) 그래서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논란이 많아요. 강화 천도가 전략적 천도인지 도피성 천도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거든요. 전략으로 보는 쪽은 강화 천도가 항전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강조하고 해석합니다. 강화도라는 천연의 요새에서 오랫동안 버팀으로써 몽골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죠. 반면에 도피로 보는 쪽은 어차피 몽골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우라는 집권자가 자기 안위를 위해 안전이 보장되는 강화도로 천도했다고 해석하죠. 이런 지적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무렵에도 여전히 초적들이 준동하고 백성들이 반란을 계속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몽골이 아니더라도 최우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너무 많은 거예요.


(179-180)

(신병주) 후대의 역사는 김윤추가 높이 평가받기에는 상당히 불리한 여건으로 지속됩니다. 원 간섭기에는 몽골에 저항한 인물이니 제대로 평가받기가 어려웠고,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승려인 김윤후가 크게 활약한 것을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별로 없었죠. 하지만 조헌이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에 김윤후를 언급할 정도로 그 당시에 많은 백성 사이에서, 특히 의병장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윤후가 대몽 항쟁의 상징으로 분명히 회자되었다는 거죠.


(216)

(이익주) 그 당시 고려의 상황을 평가할 때는 몽골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대제국이라는 점,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 가운데 국가를 유지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전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때 고려라는 국가를 유지하게 한다는 쿠빌라이 칸의 약속을 뒷날 세조구제(世祖舊制)로 부르는데, 고려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고려 측에서는 세조구제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반대해 국가를 유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점에서 쿠빌라이와 원종의 만남이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죠.


(252)

(이익주) 우리가 흔히 삼별초의 항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삼별초만의 항쟁이 아니라 삼별초를 중심으로 하는 고려 전 백성의 항몽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세에 대항해 싸웠다고 해서 무조건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겠죠. 고려가 28년 동안 몽골과 싸운 점, 강화를 통해 왕조를 유지하고자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해 삼별초를 중심으로 하는 항몽도 종합적으로 새롭게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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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하루 2023-03-11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넘 좋네여! 맨 마지막 홉니다 오타요!

bookholic 2023-03-12 01:04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저는 오타가 무척 많습니다~~^^
 
블리딩 엣지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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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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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서핑하다가 알게 된 책 <블리딩 엣지>를 읽었단다. 지은이라는 토머스 핀천이라는 사람으로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사람이야. 먼저 읽은 이들의 평을 보면, 토머스 핀천이라고 하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 뜨자마자 구매하겠다는 평들이 있었단다. 아빠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말이야. 아직 아빠의 책읽기의 레벨은 한참 낮은 것 같구나. 그리고 이 책이 2001 9 11일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했어. 9.11을 다룬 추리 소설인가 보다 하고 책을 펼쳤단다. 아참, 지은이의 대표작에 <V>라는 소설이 있더구나. 아빠가 어렸을 때 TV 드라마로 엄청 인기를 끌었던 그 드라마의 원작 작가로구나. , 재미있겠네, 이러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찾아보니 토머스 핀천의  <V>는 아빠가 알던 그 <V>가 아니었더구나. 책도 무척 힘들게 읽었단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큰 코를 다쳤다고나 할까. 만약 토머스 핀천이 어떤 소설을 써 왔는지 알았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책을 펼쳤을 텐데, 아빠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펴서 크게 당한 것 같구나. 먼저 읽은 이들이 독서의 고수라서 그런 평들을 적은 것인데, 아마추어 독서가가 그런 리뷰들만 믿고 덥석 책을 편 잘못도 있는 거지 뭐… 700 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을 힘겹게 읽어 내려갔단다. 간신히 줄거리만 쫓아가는 수준이라고 할까. 지은이 토머스 핀천은 1937년생이고 이 책이 2013년에 나왔으니 70대 중반에 쓰신 것인데, 최신 IT 기술에 관련된 용어들을 그렇게 잘 알고 계시다니정말 많이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어떤 분인가 알아보려고 인터넷 좀 찾아봤더니, 꼭꼭 숨어 지내는 작가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의 최근 사진은 전혀 없고, 젊은 시절의 사진, 그것도 흑백 사진이 전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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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는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주인공은 맥신 터노라는 사람이란다. 직업은 사기 조사관으로 각종 사기를 조사하여 밥벌이를 하는 프리랜서란다. 이혼을 하고 딸 지기와 아들 오티스과 함께 살고 있어. 남편 호스트와도 가끔은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 주변 인물을 살펴 보면 아이들의 친구 피오나의 엄마 바이어바라는 이웃이 있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하이디가 있단다.

그리고 레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다큐멘터리 제작자이기도 해. 그런데 그 레지가 해시슬링어즈라는 회사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데, 그 회사의 자금 흐름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 제보로 맥신은 해시슬링어즈라는 회사를 조사하기 시작했단다. 해시슬링어즈는 컴퓨터 보안회사이고 대표는 게이브리얼 아이스라는 사람이었단다. 이 회사를 조사해보니 정말 자금 흐름이 좀 이상했어. 이 회사의 돈이 파산한 닷컴 회사를 통해서 중동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거야. 그것도 엄청난 돈이 말이야. 그런데 맥신이 해시슬링어즈를 조사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맥신은 미행을 받기 시작했단다. 정보부 요원 같긴 한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어. 미행도 아니고 대놓고 윈더스트라는 사람이 찾아왔단다. 그리고 다음날은 누군가 윈더스트라는 사람의 정보가 담긴 USB가 배달되었단다. 맥신이 조사를 하려고 하던 사람이 죽기까지 했단다.

이 정도면 상당히 위험한 일인데, 아빠 같았으면 조사하던 것을 그만두었을 텐데... 자금의 흐름이 중동으로 넘어가고, 무엇인가 큰 사건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난단다. 2001 9 11일 아침. 아빠도 그 당시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구나.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시점, 지방 출장을 갔다가 업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박혀 있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았단다. 영화보다 더 무시무시한 장면이 뉴스로 송출되고 있었어.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 한 대의 비행기가 옆의 건물에 쾅. 얼마 뒤에는 그 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데 정말 무시무시한 장면이었단다.

알카에다가 일으킨 테러였어. 그 이후 아프간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어. 그것도 어느덧 20년이 넘었구나.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구나. 아무튼 이 소설 속에 등장인물들도 그 무시무시한 사건을 겪었단다. 그런데 맥신의 전남편인 호스트의 사무실이 바로 세계무역센터에 있었어.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 때문에 온 식구들이 걱정을 하였지. 하지만 다행히 사무실에 있지 않았고 괜찮다는 연락이 왔단다. 나중에 호스트와 관계가 좋아지면서 맥신을 다시 합치기로 했단다.

....

당시 911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 아니 음모설들이 돌았단다. 이 소설도 그런 음모설을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인 듯 싶구나. 911 배후에 깊이 관여한 한 컴퓨터 보안회사의 이야기. 그 뒤에는 더 큰 세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로 아빠는 이해했단다.


2.

이 소설의 제목 블리딩 엣지(Bleeding Edge)라는 말은 유용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고, 위험성이 커서 오직 얼리어댑터만이 편하게 느끼는 최첨단 과학기술로서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벤처자본가들이 고위험을 무릅쓰고 덤벼드는 IT 기술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더구나. 그런 만큼 소설에서는 9.11 배후를 쫓는 이야기 이외에 해시슬링어즈를 중심으로 한 가상공간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그것이 9.11 배후 세력들과 연관성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하지만, 아빠는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단다. IT 용어들이 난무하고 금융 용어들도 난무해서,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읽기 쉽지 않았단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고, 다시 읽어보겠냐고 하면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구나. 이런 소설은 만렙의 독서가들에게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구나.

마지막으로 옮긴이에 대한 이야기 하나. 옮긴이는 박인찬 님이란 분인데, 외래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일반적으로 거센소리를 사용하는 말들을 모두 된소리로 옮겼을까? 궁금하더구나. 예를 들어 이탈리아가 아닌 이딸리아, 아르헨티나가 아닌 아르헨띠나, 과테말라가 아닌 과떼말라 등그 밖에 모든 외래어의 거센소리들을 된소리로 옮긴 듯 했어. 그래도 못 알아먹는 것은 아니지만, 괜한 고집처럼 보이더구나.


PS:

책의 첫 문장: 2001년 봄의 첫날, 몇몇 사람들의 데이터에 여전히 로플러로 저장되어 있는 맥신 터노는 아들들을 학교에 바래다주는 중이다.

책의 끝 문장: 그래도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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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류근) 제가 처음에는 몽진이라는 말만 듣고 경기를 일으켰는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까 (조선) 선조의 몽진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요. 선조의 몽진이 지극히 보신적 도망이었다고 한다면 (고려) 현종의 몽진은 강감찬이 사태를 분석해 선택한 전략적 결단이었잖아요. 어떤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에 걸맞는 대안을 사유해 내는 능력을 보여 준 건데, 이래서 인문학적 교양이 필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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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수) 별무반은 기병을 강화한 특별 군대입니다. 크게 기병인 신기군과 보병인 신보군으로 나누고, 그 외에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전문 부대들이 있습니다. 강한 활을 쓰는 경궁군이 있고, 노 하나가 아니라 두세 개를 연결한 강력한 노를 쓰는 정노군이 있죠. 또한 돌을 그냥 던지기도 하고 돌팔매에 끼워 먼 거리를 던지기도 하는 석투군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각, 즉 뿔로 만든 악기를 입으로 부는 이 대각을 불어 신호를 보내게 돼 있습니다. 사람이 옆에서 죽어 나가는 매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끊임없이 대각을 불어 추정되는 도탕군이 있는데, 도탕군은 돌격 부대인데도 기병이 아니라 보병이었어요. 그래서 이 도탕군의 임무는 적이 공격대형을 제대로 형성하기 전에 돌입해 분탕질을 치며 적의 기세를 꺾는 소수 정예부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85)

(최태성) 이자겸의 본관이 어딘지 아십니까? 인주입니다. 인주 이씨죠. 인주가 어디냐면 지금의 인천이에요. 인주 이씨는 대대적으로 왕실과 혼인하면서 세력을 키워 나갔던 대표적인 외척 세력인데, 가계도를 보면 정말 복잡합니다. 순종, 선종, 예종, 인종에게 시집을 간 인주 이씨 집안의 딸이 총 열 명이나 됩니다. 그중에서도 제16대 왕 예종과 결혼 사람이 이자겸의 둘째 딸 문경태후입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태자가 바로 제17대 왕 인종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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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 척준경은 고려 시대 때 곡주라는 곳의 향리 아들이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집이 가난해 공부를 하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어울렸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다가 윤관을 따라 여진과의 전쟁에 참전해 윤관을 위기에서 구하는 공을 세웁니다. 그래서 윤관이 척준경에게 내가 너를 아들처럼 대할 테니, 너도 나를 아버지처럼 대하라.”라고까지 했죠. 그 공으로 아주 고속으로 승진하고, 이자겸의 아들과 척준경의 딸이 결혼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자겸과 정치적인 행보를 같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조선 시대와는 조금 다르게 부자간 또는 형제간의 정치 세력이 규합되는 것보다 이렇게 사돈 간의 정치 세력이 규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07)

(류근) 근데 제가 인터넷에서 이자겸을 검색해 봤더니 아주 재미있는 연관 검색어가 나와요. 영광 굴비가 나오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이자겸이 영광에서 말린 생선을 맛있게 먹고 난 다음에 비록 귀양을 온 몸이지만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에서 그 이름을 지어 줬다는 겁니다. 그 생선이 바로 영광 굴비고요. 굴비가 한자로 굽힐 굴()자에 아닐 비() 자래요.


(117)

(최태성) 그런 인식에는 우리가 존경하는 신채호의 영향이 크죠. 일제강점기 때 항일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인데, 그 신채호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관해 정의를 내렸다는 말이죠. 그 뉘앙스를 보면 묘청은 자주, 김부식은 사대라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듯하니까 많은 사람, 특히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라는 식으로 외울 수밖에 없습니다.


(144)

(신병주) 묘청의 난을 이제까지는 개경파 대 서경파 또는 문벌 귀족 세력 내부의 분열과 같은 식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은 국제 정세의 변화도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특히 묘청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수립되는 과정의 현장에 있었던 김부식이라는 인물이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고려가 나아갈 길을 어떻게 고민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도 함께 고려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168)

(이익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용어를 정리해 볼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환관은 거세한 남성이고, 궁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내리라고도 하는데, 고려 시대에는 내시와 환관이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환관은 우리가 아는 그 환관인데, 내시는 거세한 남성이 아니라 국왕에게 총애받는 젊고 유능한 문신 관료들입니다. 내시들은 늘 왕과 함께 있으면서 지근거리에서 왕을 시종하는 사람들이죠. 문벌 귀족의 자제들 또는 과거에 급제한 유능한 젊은 관료들은 내시가 되는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려 시대에는 환관과 내시가 다른 개념인데, 의종은 왕권을 강화하면서 친위군뿐 아니라 환관마저도 권력자로 만들어 놓아 그들과 함께하는 측근 정치를 해 왔던 것입니다.


(179-180)

(이익주) 무신 정변을 세 가지 다른 층위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신 정변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 의종의 측근 가운데 무신과 기타 세력 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고, 조금 멀리서 보면 무신 전체와 문신 전체의 대립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멀리서 보면 무신 대부분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문제까지 생각이 미치죠. 그 당시 고려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중하층을 구성했던 지방의 향리 계층이 무신 대부분의 원류입니다. 향리들이 서울로 올라가 무신이 되고, 무신 정변을 통해 권력을 드디어 장악한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무신 정변으로 일어난 권력 교체를 중하층의 무신이 상층의 문신들을 타도하고 권력을 잡았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무신 정변은 권력의 상하이동을 의미하고요. 이때 권력을 잡은 무신들, 그리고 그 공급원이 되는 지방의 향리층이 이후 전개되는 고려 후기 사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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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흔히 하는 말로 가늘고 길게 살자라는 신조에 딱 맞는 왕이에요. 명종이라는 왕은 1170년에서 1197년까지 무려 28년간 재위했어요. 우리 역사에서 왕권이 없이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왕으로는 아마 1위일 겁니다. <고려사절요>를 쓴 사관들의 평가가 핵심을 찌르죠. “왕은 천품이 아주 나약하고 여러 번 변고를 겪어서 놀랍고 두려워하여 아주 심기가 약했다. 그래서 모든 군국의 기무는 무신들에게 견제 되었다. 심지어 회노애락까지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했다. “슬프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명종으로서는 자기가 왕위를 유지하는 한 집권 세력은 누구로 바뀌어도 상관없다고 적절하게 타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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