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여성주의‘ 도서인 클레어 혼의 <재생산 유토피아>를 읽기 시작했다.
이번 5월을 마지막으로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프로젝트는 잠시(?) 잠정 중단이라시는 다락방 님 글 읽었을 때 참 많이 아쉬웠다. 매월 참여하지는 못했고 느즈막히 참여하기 시작한 터라 꽤 오랜시간 동안 계속하고 있었단 걸 알았을 때 부러웠다. 이미 오래 전에 참여해서 꾸준히 책을 읽어오신 그분들이...
혼자서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거란 걸 안다~~~헤~~
언제 돌아오시려나...

1장
온실,화초, 인공자궁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여러분이 한 사람이 될 때까지 몸 안에 품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낳아 주었다.

*온실: ‘화초‘ 비유와 관련성을 드러내고자 ‘인큐베이터‘를 ‘온실‘로 옮김. - P8

이 문장을 쓰는 지금, 내 자궁 안에서는 아기가 움직인다. 여러분을 임신했던 사람이 지금의 어머니든 아니든, 틀림없이 여러분의 어머니도 자신의 살갗 아래에서 여러분의 팔다리가 움직이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을 임신했던 어머니의 몸은 여러분이 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심지어 아기의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여러분의 고향이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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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5-11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에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하시대요~~
내년 기약 댓글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5-05-12 07:16   좋아요 2 | URL
내년에 꼭 다시 시작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그동안 계속 시동걸고 기다리겠습니닷~~~^^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내가 고래를 아무리 해부해보더라도 피상적인 것
이상은 알 수 없다. 고래에 대해서는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ㅡ허먼 멜빌, 『모비 딕』

텍스트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나? 그것을 꿰뚫지 않으면, 그것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번역은 불가능하다. 번역은 텍스트를 투명해질 정도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벽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고 해도,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텍스트 너머의 침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 P20

아니, 번역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투명하다는 말조차 사람들이 서로 다른 뜻으로 쓰는데(사실 나도 이 글에서 같은 말을 두 가지 이상 다른 뜻으로 썼다)? 그래서 번역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번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같은 용어와 개념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번역이란 무엇이다, 번역은 어떠해야 한다는 논쟁은 특수한 상황과 개별 사례를 아우르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맴돌고 만다. - P20

나는 번역을 명료하게 정의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으니, 비유를 통해 비스듬하게 다가가려 한다. 내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흰 고래를 정의하려는 이슈메일의 시도 같은 것이 될지 모른다. 이슈메일이 그랬던 것처럼, 번역의 사례를 들고, 번역을 분석하고, 번역을 해부하고, 번역을 설명하려다가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 쓴 글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번역을 어떻게 (같은 말로) 다르게 말하고 있느냐는 이야기이자, 번역이라는 실체 없는 행위를 말로 설명하려는 기도이자, 불가능한 번역을 정의하려는 불가능한 몸짓이자, 흰 고래를 그리려는 시도다. - P21

이슈메일이 열거한 흰색의 의미만큼, 바벨과 연관된 의미들도 다 합하면 흰색이 될 만큼 한없이 다채롭다. 바벨은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띠며 종교, 문학, 정치, 기술, 언어 등 숱한 분야에서 우뚝 선 상징이 되었다. 바벨의 의미가 탑처럼 끝없이 쌓여 무한으로 뻗는다. 바벨은 은유적 잉여다. 의미가 겹치고 겹치면서, 기호는 한 가지 의미를 안정적이고 고정적으로 띨 수 없다. 의마가 벽돌처럼 하나하나 쌓였다가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바벨은 흰 고래처럼 모든 것을 표상하지만 아무 것도 나타내지 않는다. - P30

바벨탑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언어를 썼을 뿐 아니라 단어의 의미가 하나였다. 아담이 이름 붙인 대로 사물과 이름이 일대일로 대응했고 언어는 명징했다. 바벨의 등장과 함께 그런 명징함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바로 바벨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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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한참을 기다려 예약 도서로 빌려왔다.
도서관 신간을 보려고 신청하고 기다리고 받아오는 긴 시간에 지친다.
한참이 지난 후 받았을 땐 책을 읽고 싶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지고...

그래도 평소 좋아하는 번역가인 홍한별 님의 책이라 힘을 내어 읽어보려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하얀 석고상을 그리라고 시킨 일이 있었다. 아니, 그 선생님은 말 같은 것을 하는 분이 아니어서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에 석고상을 들고 와 교탁위에 올려놓았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한숨을 토하듯
‘아그리파‘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게 갓 태어난 것처럼 순결하고 눈부신 하얀 머리의 이름이었다. 선생님이 말없이 내어준 과제는 우리 눈에 보이는 새하얀 형체를 종이 위에 그림으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 P9

그날의 준비물인 스케치북과 4B 연필만을 가지고, 흰 도화지와 시커먼 연필을 가지고 어떻게 하얀 것을 그리라는 걸까. 막막했지만 흰 종이에 더듬더듬 선을 그어 형상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을 댈수록 석고상 그림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흰색을 그린다는 불가능한 과제.
수업 종이 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를 포함한 예순 명의 아이들이 전부 시커먼 형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 P9

수업 종이 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를 포함한 예순 명의 아이들이 전부 시커먼 형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저마다의 좌절감을 담은 그림 예순 장. 흰 석고상을 그린 검은 그림은 번역 불가능성의 증거다. 이게 이렇게 생겼는데, 눈에 뚜렷이 보이는데, 왜 종이에 그대로 그려지지 않나. 이게 이런 뜻인데, 너무나 빤한데, 왜 글로 옮겨지지 않나.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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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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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주 셜리폴스에서 버지스 세 남매는 줄곧 가족의 중심이었던 짐의 불륜 사건, 잭이 일으킨 사건의 이질성으로 인한 갈등, 그리고 어린 밥이 아니라 짐이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고백으로 인해... 거기다 소말리족은 어리둥절해하며 정착하려 휘청거린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 이곳에서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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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스스로 묻는다. 나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나의 삶이든, 다른 어떤 삶이든, 삶은 무엇에 달려있는가? 삶은 - P70

사소한 것들에 달려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선 아무것도 하지않는다. 그것은 삶 속 모든 것들의 덧없는 실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무용(無用)으로 빛난다. 기본적으로 여분의 것들이다. 이 쓸모없는 것들이 아주 많은 것들을 대신한다. 세상을 대신하거나, 영혼을 또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대신한다.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을 저버릴 수 있지만 그것만은 예외이다. 그 이름, 영원히 사라진 생(生)의 그 봄 하늘만은 저버릴 수 없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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