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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학교
허남훈 지음 / 북레시피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잿빛 건물 앞에 경직된 자세로 서 있는 스무 명의 학생들. 하나같이 짧은 머리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일제 강점기에 찍은 졸업사진. 워낙 오래된 사진이라 학생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그런데 희한하게도 한 사람만은 또렷했다. (-19-)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강연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조국 대한제국은 2년 전인 1905년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궁궐을 포위했을 뿐 아니라 기병과 포병 대대까지 성내로 들어와 협박했습니다. (-76-)
2학년 8반 교실에는 점심을 빨리 먹고 온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지난밤 이곳은 지금의 교실보다 훨씬 크고 넓었지만 창 너머로 뻗어나간 열차선로를 생각하면 이 교실은 플랫폼 정도가 될 것이다. (-128-)
"우리 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말과 글, 이름까지 모두 없애면서 철도를 깔아준 걸 근대화라고 생각하는 거야?심지어 그 철도조차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자원과 농사물을 수탈하고 전쟁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만든 건데도?" (-136-)
"많지. 낯설고 이로운 외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는 동지들의 이야기나, 고향에 두고 온 내 첫사랑과의 이야기도 활동사진으로 만들어보고 싶고."
유 동지의 얼굴이 조금 붉게 상기된 것 같았다. (-187-)
기옥이 은서와 기웅이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주머니에 있던 커피 땅콩을 침대 맡에 서 있던 은서의 손에 쥐여주었다. 지금이야말로 권칠성의 정체를 밝힝 절호의 기회다. 눈치 빠른 은서가 권칠성에게 말했다.
"권선생님 , 혹시 커피 좋아하시나요?"(-251-)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권기옥 지사는 상하이 사변 3년 후 장제스의 부인인 송미령 중국항공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선전비행을 제안받는다. 종착지는 일본이었다. 권기옥 지사는 장거리 비행 훈련을 하며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갑자기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선전비행이 출발 당일에 어이없이 취소가 되고 말았다. (-270-)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1979년 10월 26일에는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두 날을 우리는 탕탕절이라 하고,역사적 전환기로 생각한다.역사의 방향은 어떤 사건 하나로 바뀔 수 있다. 삶과 죽음 앞에서,용기를 내고,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희망을 품었다.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 보이지 않는 곳에서,이름모를 독립지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중요한 인물들은 그들이 추구하였던 역사적 가치와 일치할 때,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그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할 때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서,그들의 삶은 어떤 것인지,가치관,인생관에 대해서,생생하게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타임슬립 소설이 등장한 이유는 우리의 욕구가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함과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다시 이어 나간다. 이 소설에서, 100여 년전 , 간토 대지진 당시 15엔 50전을 읽지 못하는 재일 조선인을 무분별하게 죽음을 당했던 것은 나라 잃은 설음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나 다름없다.
송묭규, 권기옥, 안중근,안창호, 지금 우리가, 과거에 살았던 이들과 만남을 가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 까 생각해 보았다. 역사를 예측하고, 그 안에서,우리는 역사적 흐름을 바꾸려 들것이다.역사적 인물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과거로 돌아간다면,센스있게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다.그러면서 눈치도 챙기며, 모른 척할 수도 있다.이런 모습들이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유도, 이 소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들은 밤의 학교에서 일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그것이 결코 우리 삶에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역사적 변곡점은 서서히,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면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