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 교정만으로 체중이 조절되지 않으면,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된다. 지금까지 다양한 비만치료제가 개발됐지만, 많은 약물이 우울증, 자살충동, 심혈관질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시장에서 금지되거나 퇴출됐다. 그래서 시중에 사용되고 있는 비만치료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현재 사용되는 비만치료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식욕을 억제해 음식을 적게 먹도록 하는 ‘식욕억제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상품명 큐시미아), 날트렉손·부로피온 복합제(상품명콘트라브) 등이 있다. 이들은 시상하부의 멜라노코르틴 경로에 작용하는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 양을 증가시켜 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대사량을 늘려준다.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의 체중 감량 효과는 1년 복용 시 평균 6.8%, 날트렉손·부로피온 복합제의 경우는 평균 4%로 알려져 있다. 다만 식욕억제제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기 때문에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며, 그만큼 부작용이 심해 4주 이내, 최대 3개월까지 단기적으로만 복용할 수 있다. 특히 펜터민의 경우 필로폰으로 유명한 메스암페타민 계열의 약물로, 체중 감소 효과가 크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 두 번째로 ‘지방흡수 억제제‘가 있다.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는 지방 분해 효소인 리페이스(lipase, 리파아제)를 분비한다. 리페이스는 몸에 들어온 지방을 지방산과 모노글리세리드로 분해해 우리 몸으로수시킨다. 지방흡수 억제제는 바로 이 리페이스를 억제해 섭취한 지방의 소화와 흡수를 줄이고, 지방의 체내 축적을 막는다. 대표적으로 오르리스타트(상품명 제니칼 혹은 알리)라는 약물이 있다. 오르리스타트는 1999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세계 최초의 비만치료제이며, 25년이 필씬 넘은 지금에도 꾸준히 처방되고 있다. 오르리스타트는 섭취한 지방의 약30%를 배출시킨다. 임상시험에 따르면, 저칼로리 식단과 함께 오르리스타트를 1년간 복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 2.9% 이상 체중을 더 감량했다. 체중 감량 효과가 크지는 않지만, 지방 분해 효소 이외의 다른 효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위장관 내에만 작용하기에 식욕억제제와는 달리 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지방이 많은 식사를 할 경우, 흡수되지 않은 지방이 대장까지 이동해 기름지고 묽은 대변을 볼 수 있다. 지방흡수 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고지방 식품을 피하고, 균형 잡힌 저칼로리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 또 지용성 비타민(A, D, E, K)은 잘 흡수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따로 챙겨 먹어야한다. - P50
마지막으로 최근 비만치료제 시장을 휩쓸고 있는 주인공, ‘글루카곤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가 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라고도 하며, 삭센다, 위고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GLP-1 유사체는 처음에는 비만치료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원래 GLP-1 유사체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다. 우리가 섭취한 탄수화물은 위와 소장을 거쳐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혈액 속에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면,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해 포도당을 간이나근육으로 보내 글리코겐으로 저장하도록 하면서 혈당을 낮춘다. 당뇨병은이런 인슐린의 분비가 감소하거나, 인슐린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질병이다. 과학자들은 1980년대 초, 당뇨병과 혈당 조절을 연구하던 중 GLP-1을 발견했다. GLP-1은 음식 섭취 후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 중 하나로,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한다. 글루카곤과 비슷해 글루카곤 유사(glucagon-like)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름과 달리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GLP-1이 당뇨병 치료제로 처음 개발됐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우리 몸에서 GLP-1은 분해 효소인 DPP-4에 의해 금방 분해된다. 어떤 물질의 농도가 절반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GLP-1의 반감기는 고작 1~2분 이내에 불과했다. 이에 제약회사들은 GLP-1과 구조가 비슷하고 체내에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반감기를 늘린 GLP-1 유사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GLP-1 유사체 ‘리라글루타이드‘는 GLP-1의 34번째 아미노산을 바꾸고, 26번째 아미노산에 탄소원자 16개 길이의 지방산 사슬을 붙인 분자다. 이 물질은 DPP-4가 분해하기 어려워 반감기가 13시간으로 길다. 그러면서도 GLP-1처럼 GLP-1 수용체에 붙어 효과를 나타낸다. 게다가 GLP-1 유사체는 기존 인슐린 분비 촉진제보다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컸고, 저혈당을 일으킬 위험도 적었다. GLP-1 유사체로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던 중,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GLP-1 유사체가 당뇨병 치료뿐 아니라 체중 감소에도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추가 연구를 통해 GLP-1이 식욕 조절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쥐의 뇌에 GLP-1을 주입했더니, 쥐가 음식을 덜 먹는다는것을 확인한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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