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의 유지를 받들어, 같은 생각은 해본 적 없었고 애당초 유지라는 게 있지도 않았으며방역업을 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그것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지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논거를 깔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일찍 죽기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던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것은 훌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류를 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 P264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망설이는 듯한 강박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뒷덜미를잡아당긴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말은 그녀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중얼거림에 가깝지만, 그녀는 지금 그 떨떠름한 한마디로 무저갱에서 건져진 것 같다.
"압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이것이어서, 고개를 돌리고걷기 전 흘끗 본 얼굴이 증오보다는 처절한 슬픔이 고조된간절함으로 빚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그 표점을 다르게 그려줄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 - P282

나가기 전에는 언제나처럼 잊지 않고 프로젝트 창의 잠금장치가 걸려 있지 않은지 확인하며, 현관을 닫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번 일만 끝나고 날씨가 풀리는대로 녀석에게 산책을 좀 더 자주 시켜줄 것이다. 보통의 노부인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목줄에 개를 끌고 다니고, 조금만 가면 사람이 개를 끄는지 개가 사람을 끄는지 모를 만큼 빨라지는 걸음을 바삐 쫓아가며, 역시 개를 산책시키는 다른 이들과 눈인사도 나눌 것이다. 동네의 다른 개들도 만나게 해주고, 서로 눈 마주치게 놔두어 탐색의 시간을 줄 것이다. 어쩌면 다른 개 주인들은 혈통이나 천것을 운운하며 꺼릴지도 모르지. 분명한 것은 일상생활에 불과한 이런 평범한 약속을 운명처럼 걸어두어야 할 만큼 투우는 쉽지 않은 상대다. - P286

"아버지는 어떠신가요?"
조각이 묻는 것은 눈앞의 40대 한 씨가 아닌 아버지 한씨, 그러니까 원년 멤버의 파트너였던 사람을 가리키는데,
대장암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치료란 그야말로 상징적, 형식적으로서 외아들의 면피에 불과하다. 아버지 한 씨는 이미 일흔넷으로, 운동을 계속해온 조각과는 달리 몸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며 수술 과정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평균수명이 아흔이든 백이든 그것이 노구 자체의 건강을 재는 척도는 되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높아진 것은 다만 죽음이 급습하는 시기를 과학과 의학이 지연시켰기 때문이고 그것은 효율이나 질을 완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생명 연장의 꿈에서 ‘연장‘에 포인트를 맞춘 것으로서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노인이란 어디까지나, 소원을 빌적에 ‘젊은 모습으로 예쁘게‘라는 옵션을 잊어 주름 잡힌 얼굴과 휜 허리로 구차한 영생을 잇게 된 예언 무녀의 운명에 불과하다. - P287

 그러나 그쪽은 당연히 일찍 도착했으리라는 생각에 그녀는 프로젝트 창고리를 풀고 가방과 각종 연장 장착을 마친 뒤 밥그릇은 안다미로 채워놓고 아직 잠들어 있는 무용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다녀온다. 잘자고 집 잘 봐라."
그 순간 손에 닿는 한기에 그녀는 소스라친다.
털에는 윤기가 없다. 후각이 잘 듣지 않아 모르고 지나칠뻔했는데 두어 번 코를 킁킁대니 이상한 냄새가 난다. 모로누운 무용의 엉덩이 아래로 묽고 검푸른 똥이 퍼져 있다. 그녀는 잠든 무용의 목에 손가락을 대고 깊이 파고들어보다가, 무용 앞에 퍼더버리고 앉아 한참을 그 자세로 손가락만대고 있다. 슬며시 흔들어보는 무용의 몸은 무겁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하나의 존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혼이라는 게 빠져나갔는데도 육신이 더 무거워진다는 것은.
그녀는 몸을 부스스 일으켜 풀어둔 프로젝트 창 고리를 다시 잠근 다음 집을 나선다. - P292

그녀는 점점 무거워져 화물칸에 적재하지 못한 짐짝 같은 자신의 몸이 이순간만큼은 순전히, 투우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아직 시간을 충분히 벌지 못했다고 생각할 즈음 그녀의 늑골 아래를 투우의 칼이 깊게 베고 지나간다.
"무슨 생각을 멍청하게 하고 있어."
투우는 슬슬 부아가 끓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조각의눈에서 이기겠다는 생각 없이 가능한 한 시간을 끌겠다는의도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모욕감과 함께 돌연 마음이 고요와 공허로 가득해지며 그 무게만큼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따라서 그는 온몸의 감각을 두드리는 실망감과 분노의 리듬을 유지한 채 그녀의 숨통을 끊고 아이의 목을 베기로 작정한다. 군데군데 자잘한 상처로 과다 출혈 끝에 사망이라니 그것만큼 그녀에게 시시한 마지막은 없을 것이다. - P321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헤드에 아무렇게나 손가락을 걸고 잡아 뽑은 녹화 테이프 같지만 그중 의식이 닻을 내리고 정박할 수있는 장면은 하나뿐이다.
"갈 때가 되면 떠오른다고."
투우가 두어 번 턱을 까불다 피식 웃자 입안에 고여 있던피가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신은 아직 갈 때가 안 됐다는 거네." 희미해지던 양치식물의 냄새가 사라지고 그녀는 투우의 눈을 감긴 다음, 역시 무심코 중얼거린다.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 P326

"기본 케어를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손님 왼손이 없었다고요, 왼손이 열 손가락 아니고 다섯 손가락. 그래서 마치고 가실 적에 5만원으로 깎아드렸어요. 그게 정말 잘못한건가요? 한손 없는 손님이 그래도 있는 손이나마 꾸며보겠다고왔는데, 그걸 손가락 수대로 계산해서 반값 처리한 제가 정말 숍의 질을 깎아먹은 거냐고요."
그러면서 말끝에 막내는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는데, 그울음은 본질적으론 자신을 질책하는 선배들에게 억울함을호소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고 거기에 처음 맞이한 손님이한 손이 없었다는 데 대한 당혹감이나 두려움이 살짝 곁들여졌을 뿐인 듯했지만, 어쩐지 그 순간 원장은 이 아이의 눈물이 아마도 다시 올 일은 없을 노부인에 대한 동정 때문이라 믿고 싶어졌으며, 원칙대로라면 손님 손을 처음 잡을 적에 두 손을 먼저 쇼 글라스에 올려놓고 확인하지 않은 데 대해 한마디 해야겠으나,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듯싶었던 이 막내의 유일한 장점이 타인의 불행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라면 데리고 있으면서 쓸 만하게 키워보아도 되겠다고,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잘했다." - P339

시니어패스를 단말기에 대다가, 편의점에서 지갑을 뒤지고 지폐를 내밀다가, 그런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속에서 누군가들은 스쳐 지나가듯이 이 손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손톱을 보고 바로 이어서 손톱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뜰지도 모르지. 도저히 당신과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 어울리는 장식이 아니라는 편견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다만 침묵하거나 헛기침하며흘끔거리겠지.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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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과 맞붙은 강적들 중 한 명은 옛 동지 타오청장이었다.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그는 줄곧 "거짓말쟁이",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 "동지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자"라며 쑨원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천치메이는 타오청장을 영원히 침묵시키기로 결정했다. 그의 심복 중 한명이 이 일을 맡았다. 바로 미래 중화민국의 총통이 될 장제스였다. 타오청장이 상하이의 가톨릭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장제스는 양복을 점잖게 차려입고 병실로 걸어 들어가서는 침대 위의 타오청장을 코앞에서 총으로 쏘아 죽였다. 장제스는 이 일을 일기에 자랑스럽게 적었다(암살자들이 혁명 세력에게 칭송을 받던 시기였다). 이 일로 자신이 쑨원의 호감을 샀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천치메이가 지배하는 상하이가 혁명의 진원지는 아니었음에도, 쑨원은 그를 "혁명의 으뜸가는 공로자"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쑨원이 당선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 P87

 정식 대총통은 적당한 때에 전국 총선거를 실시하여 선발될 예정이었다. 대표단의 말에 따르면 사실 이번 투표는 청조와 "평화교섭을 주재할 공화파의 대표를 뽑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던 공화주의자들은, 황제가 자진해서 권좌를 내려놓도록 설득해준다면, 그리하여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피하게 해준다면 임시 대총통을 주겠다고 청조의 내각총리대신 위안스카이에게 약속해둔 상태였다. 그들은 쑨원에게도 이 합의에 따라야 한다고 통보했다.
쑨원은 조건을 수락했고, 12월 29일 임시 대총통으로 선발되었다. 그는 상하이발 특별 열차를 타고 난징으로 향했다. 취임식은 1912년 1월 1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쑨원은 황제가 물러나면 위안스카이에게 임시 대총통자리를 양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서약해야 했다. - P89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쑨원은 위안스카이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평화교섭이 성공적으로 끝나야 위안스카이가 임시 대총통이 된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쑨원은 교섭을 중지하고 무력 항쟁을 계속하자며 공화주의자들을 설득했다. 대표단은 물론 대부분의 공화주의 세력 지도자들이 쑨원의 말에 반대했다. 직접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평화 교섭을 하면 안 된다는 거요? 임시 대총통 자리를내놓고 싶지 않다는 거요?"
쑨원은 비밀리에 일본 정부와 접선하여 군자금 1,500만 위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전투를 계속하려면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금전적 지원의 대가로, 청조를 무너뜨리고 나면 만주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일본이 프랑스와 영국을 합한 것보다도 더 넓고 자원이 풍부한만주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쑨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2월 12일 청 황제가 퇴위하면서 공화주의자들에게 정권이 넘어가자, 이튿날 쑨원은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난징을 수도로 삼고, 위안스카이의 취임식도 그곳에서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대부 천치메이가 장악한 난징에서라면 위안스카이가 절대취임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이었다. 대표단은 이 ‘조건‘을 기각하고 베이징을 수도로 선정했다. 쑨원은 불같이 화를 내며 재투표를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서 위안스카이를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모셔오겠다‘는 위협도 덧붙였다. 그러나 대표단은 이번에도 쑨원의말을 듣지 않았다. 베이징에 보낼 군대가 애초부터 없었던 쑨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3월 10일, 위안스카이는 베이징에서 중화민국의 임시 대총통으로 취임했다. 쑨원은 고작 40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 P90

1912년 4월 쑨원은 상하이로 돌아와서 위안스카이를 밀어낼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상하이의 가장 큰 매력은 중국이 아닌 외국 법의 지배를 받는조계지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싸움을 준비하는 동안 쑨원은 위안스카이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머물고자 했다. 상하이는 서구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도 쑨원의 취향에 잘 맞았다. 이제 마흔다섯이 된 쑨원은(열두 살 때부터) 생애 대부분을 외국에서 지냈고, 중국 땅을 밟은 적은몇 번 없었다.
상하이에서 쑨원은 약 20년 만에 쑹자수와 다시 만났다. 오랜 세월 쑨원을 아낌없이 지원해준 쑹자수는 이번에도 그를 열렬히 환영했고, 머물 곳을 제공했다. 쑹자수는 쑨원을 중국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전향한 위안스카이 때문에 쑨원이 임시 대총통직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쑹자수가 보기에 위안스카이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기회주의자였다. 쑨원은 쑹자수의 집에 집무실을 차렸다. 이때 열아홉 살의 칭링과 열네 살의 메이링은 아직 미국에 있었고, 쑹자수의 세 딸 가운데 스물세 살 아이링만 상하이의 집에 있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쑨원에게 힘을 보탤 날을 간절히 기다려온 아이링은 쑨원의 영어통번역 조수로 일하겠다고 나섰다. - P91

어느날 쑨원은 수줍어하는 모습도 귀여운 아이링이 사무실을 지나가자, 책상 너머로 도널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속삭였다. 도널드는 당신은 이미 결혼한 몸이니 그런 욕구는 참았다가 다른 좋은 일에 쓰라고 권했다. 그러나 쑨원은 지금의 아내와는 이혼할 거라고 대꾸했다." 도널드는 아이링이 당신 조카뻘이라며 쑨원을 말렸다(쑨원은 아이링보다 스물세 살 연상이었다). 쑨원은 대답했다. "알아, 안다고. 그래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네." 상하이의 혁명 세력 사이에서 쑨원이 아이링과 살림을 합쳤다는 소문이 퍼졌다. 헛소문이었다. 유부남과의 불륜은 결코 쑹자수 부부가 용납하지 않을 일일뿐더러, 부모님의 신앙심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링으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이링은 분명 쑨원이 품은 흑심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모를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링은 그 눈빛에 절대 응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관심은 그를 열렬히 지지하고 싶은 마음마저 사그라들게 했다. 현실에서 마주한 쑨원은 고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아이링은 아이들을 데리고 쑨원과 함께 사는 그의 아내 루무전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이링은 언제나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루무전을 대했고, 함께 놀러나갈 때에는 전족한 발 때문에 걸음을 떼기 어려운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매번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쑨원에게 보내는 신호였을것이다. - P93

그러나 새롭게 광명을 찾은 쑨원에게 천추이펀은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다. 첩을 들이는 관습은 새로 세워진 공화국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쑨원은 기독교도인 쑹씨 집안이 축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는 쑨메이에게 편지를 보내서 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친구 한 명에게 1만 위안을 지불할 테니 천추이펀을 첩으로 데려가겠냐고 물어봐달라는 것이었다. 축첩에 관대한 사회적 기준에서도, 성공한다음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여자를 내치는 남자는 냉혈한을 넘어서 배신자라고 비난을 받았다. 화가 단단히 난 쑨메이는 쑨원의 부탁을 거절하고 천추이펀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대가족과 함께 살게 된 천추이펀은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루무전에게는 친동생 같은 존재가 되었다. - P97

전 인구 4억1,000만 명가운데 투표권을 부여받은 사람은 170만 명에 불과했지만, 이만하면 전국적인 투표의 첫걸음은 뗀 셈이었다.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놀랍게도 중국인들은 선거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높은 관직을 얻기 위해서 공정한 경쟁을 치르는 것은 중국의 뿌리 깊은 전통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모든 남성에게 응시 자격이 있는 과거시험으로 전국적인 경쟁을 거쳐서 선발되었다. 이러한 과거 제도는 1905년 근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폐지된 상태였다. 낙담한 엘리트 계층에게 의회는 과거 시험을 대신하여 권력을 얻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고, 상당수의 교육받은 남성들이 의원 선출 경쟁에 뛰어들었다.
공화주의 혁명이 일어날 즈음에는 ‘의회‘가 장차 국가의 최고 통치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국가를 통치하는 헌법이 있어야한다는 데에도 모두가 동의했다.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선발했던 각성의 대표단이 당시 의결된 ‘임시 헌법‘에 따라서 ‘임시 의회가 되었다. 이 ‘의회‘는 임시 대총통직을 유지하려는 쑨원의 시도를 기각했고, 선거를 통해서 위안스카이의 승계를 못 박았다. 대표단이 쑨원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었다. 쑨원은 복종받기를 원했다. 일찍부터 동료들에게 ‘독재자‘라는 평을 듣고 있던 그였다. 그는 의회 정치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 P103

자신을 지도자로 하는 정당에서 정력적으로 선거 운동을 벌였음에도, 쑨원은 이 역사적인 사업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 쑨원의 정당, 즉국민당을 만든 사람은 서른 살의 신예 쑹자오런이었다. 후난 성 출신으로 콧수염을 기른 쑹자오런은 보기 드문 지략가였다. 민주주의 신봉자였던 그는 민주주의를 중국에 도입하기 위한 청사진을 머릿속에 구상해두었고, 임시 헌법의 초안을 짤 때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망해가던 쑨원의 중국동맹회를 넘겨받아서 다른 정치 조직 4개와 병합하여 국민당을 조직했다. 1912년 8월 베이징에서 출범한 국민당의 명예 수장으로는 쑨원이 선출되었지만, 실질적인 지도자는 타고난조직책이자 달변가인 쑹자오런이었다. 그가 연설을 하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이후 몇몇 사람들은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미국의대통령 존 케네디에 비유하기도 했다). 쑹자오런의 지도 아래 국민당은 효과적인 선거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국회에서 과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쑹자오런은 중화민국의 첫 번째 국무총리 자리를 마음에 둔 듯했고, 위안스카이는 임시 대총통으로 선출될 예정이었다. 쑨원의 자리는 어디에도없었다. - P104

임시 대총통 위안스카이는 쑨원이 철도 사업을 구실로 거액의 자금을 운용할 권한을 얻은 다음 그 돈으로 군대를 양성해서 정권을 탈취하려고한다고 확신하고, 나름의 대응에 나섰다. 자신을 철도 사업 책임자로 임명하고 자신이 들여오는 차관에 중국 정부가 무조건 보증을 서라는 쑨원의요구를 거절하고, 철도 사업을 교통부 관할하에 둔 것이다. - P107

쑨원은 끝내 아내와 딸, 또는 아이링을 보러 도쿄에 가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국민당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쑹자오런이 암살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3월 20일 밤, 쑹자오런은 국민당 대표단을 이끌고 국회 개회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베이징으로 향하고있었다. 상하이기차역 개찰구에서 총에 맞은 그는 얼마 후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쑨원은 위안스카이를 암살의 배후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고는 이튿날 상하이로 달려가서 위안스카이 타도를 외치며 전쟁을 시작했다.
암살자는 금세 붙잡혔다. 우스잉이라는 이름의 거렁뱅이였다. 그는 잡히자마자 범행을 자백했지만, 구금되어 있는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연사했다. 암살을 지시한 자가 결국 누구였는가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위안스카이와 쑨원 모두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둘 다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안스카이는 쑹자오런과 권력을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고, 쑨원은 이미 쑹자오런 때문에 모든 정치적 역할을 상실하고 철저히 소외된 상태였다. 쑹자오런 본인은 위안스카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자신의 죽음이 막 싹트고 있는 중국의 의회 정치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지 말아달라며 "대총통위안스카이"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명예 수장 쑨원에게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 P108

공화주의 세력의 실질적인 2인자 황싱은 중국에도 이제 근대적인 사법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니, 이번 사건을 법적 절차에 따라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을 일으키자는 쑨원의 주장에도 반대했다. 내전은 갓태어난 공화국을 산산조각 낼 것이고, 공화파가 패배할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황싱은 총격이 가해졌을 당시 개찰구에서 쑹자오런 옆에서 있었고, 총알이 조금만 빗나갔어도 쑹자오런 대신 목숨을 잃을 뻔했다. 전쟁 개시 여부를 두고 다투면서 그는 결국 쑨원과 갈라섰다. 쑨원은 사적인 자리에서 황싱을 "반역자", "아주 못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황싱은 3년 후인 1916년에 죽었다). 쑨원은 전쟁 계획을 밀어붙였고, 일련의 봉기를 조직해서 위안스카이가 퇴진하도록 압박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자 했다. 신생 공화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중국은 수십 년간 피비린내 나는 내분을 겪게 되었다. 그 막을 올린 것은 중국의
‘국부‘ 쑨원이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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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대동소이한 읊조림에 리듬이 실리고 한때의 평온함이 몸속에 번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무용의 등을쓸어내린다. 무용은 촉촉한 코를 그녀의 턱에 비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꼭 개라서가 아니다. 사람한테라고 다를 바 없지. 늙은이는 온전한 정신으로 여생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늙은이는 질병에 잘 옮고 또 잘 옮기고 다닌다는•••••• 누구도 그의 무게를 대신 감당해주지 않는다는. 다 사람한테 하듯이 그러는 거야. 너를 잘 돌봐주진 못했어도 네가 그런 지경에 놓이는 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죽어서도 마음이 불편하겠지. 그러니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저리로 나가.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 있는데, 처치 곤란의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에." - P138

이때 조각의 마음속 시선은 몇 갈래로 분산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그 모든것을 떠올릴 만큼 머릿속의 신호등이 아직 쓸 만한 것 같았다. 그중 하나는 지금껏 골몰해온 대로 늑골을 다 열어 심장을 꺼내보기 전에는 그 심리를 알지 못할 투우-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묘한 방해 공작에 대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조금 편찮은 정도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장 박사에 대한 안쓰러움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그 느낌은 리어카노인을 거들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그렸으며,
서로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을 포함하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선택 특진제도 아닌 다음에야 의사를 골라 진료실에 들어갈수 없는 만큼 남은 두 명의 내과의 가운데 강 박사를 마주칠절반의 확률에 대해서였는데, 이때 그녀는 자포자기인지 일종의 기대감인지 모를 것이 폐에 차올라 세찬 맥놀이와 함께 간섭음이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절반의 확률 안에 포섭되었다. - P203

조각은 주인 여자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귤을 받아 껍질을 벗긴다. 말랑말랑한 감촉으로 봐서 그리시지 않을 줄이야 알았지만 입에 넣으니 주인 여자의 말이상이다. 혀에 감긴 귤 알맹이가 부서지자 입안이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감각으로 채워지고, 세로토닌이 한껏 상승한상태에서 조모와 손녀를 바라보니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스럽다.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건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 P211

주인 여자의 한숨 앞에 조각은 자기가 강 박사의 어머니를 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일을 사는 것 말곤 달리 없을 것 같아 귤 한 망태기를 달라고 한다. 여남은 개들어 있는 한 망에 8천 원이면 싸지는 않지 싶으면서도 지갑을 여는 그녀 옆으로 그림자가 하나 드리워진다. 문득 지폐를 세던 그녀의 손가락이 굼떠진다. 한기가 들면서 불안감섞인 흥분이 땀으로 맺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며, 그녀는 동요하는 눈동자에 힘을 주어 옆으로 밀어본다. 그녀의팔꿈치와 거의 붙을 듯이 서서 바구니에 담긴 단감을 한 개들어 만지작거리는 투우의 옆모습이 거기 있다.
"홍시 있으면 좀 보여주실래요?"
투우는 조각을 짐짓 모른 척하며 주인 여자에게 말한다. - P213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집에 와서 그녀는 꼭 한 개를 먹었을 뿐이고, 그 뒤로 잊어버린 모양이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채소칸 벽에 붙어 있던 걸 떼어내느라 살짝 악력을 높였더니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건져 봉지에 담고, 그러고도 벽에 단단히 들러붙은 살점들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긁는다. 그것들은 냉장고안에 핀 성에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쯤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 나오자 무용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짖기 시작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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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보인 것은 진주색 등으로, 목뒤로 늘어뜨려진스카프가 홈이 깊이 파인 셔츠를 걸친 등을 반쯤 가리고 있었으나 달빛에 반사되는 단단한 척추와 견갑골이 두드러져이제 곧 거기서 날개가 돋기라도 할 것 같았다. 바깥쪽으로 돌아선 자세로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사람이 숨기에 고개를 반쯤 돌려서는 태연한 표정으로 소년을 흘겨보았는데, 그것이 지난 엿새간 가사를 맡아준 도우미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소년은 기억에 입력해야 하는 몇 가지사실들 ㅡ추정 40대 초중반 여성, 마른 단신에 세미 롱의 직모ㅡ을 잊어버린 채 그녀의 실루엣을 따라 일어난 미풍이 창밖에 휘날리는 꽃잎들을 실어 날라 오는 것만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아버지를 저렇게 만들어놓고 어째서 당신의 옷이나 얼굴에는 단 한 방울의 피가 튀지 않고 그토록 깨끗한가요 그것은 대체 무슨 기술인가요, 소년은 이 순간 진심으로 그것이 궁금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녀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을지도 몰랐다. - P106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마주친 첫 순간 투우는 그녀의 버들눈썹과 옴쏙한 두 뺨이며 강퍅해 보이는 입술을 바로 알아보았고 물론 상대편에서는 소 닭 보듯 멀뚱히 건너다보며 이쪽에서 선배에게 건네는 인사를 거절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고 지내도 되네. 팀워크로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알고 지내서 이익 될 만한 사람도 아닐세.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못함이 확실해지자 그의 몸 한 귀퉁이에서 약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시절과, 그것을 이루거나 부순 몇몇 장면들이 요동하며 그의 눈꺼풀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신은 이미 늙었고 완고하며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지.
그렇게 무심히 고개 돌리는 순간 언제라도 내 손가락 다섯개를 펼쳐 당신의 머리를 쥐어 터뜨릴 수 있지. 당신은 방심할까. 당신은 막거나 피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겠지. 시선의 속도와 마음의 움직임을 몸이 따라잡지 못하리라는 걸스스로도 잘 알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시시껄렁한 놈들처럼 최저가 입찰이나 클릭하고 앉았다면 그건 그거대로 실망스럽겠지.
어떻게, 한때 내 아비의 대갈통을 박살 냈던 여자가 고작 그런 일을 그것만은 있어선 안 되는 일.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자기도 모르게 뻗은 손을 슬그머니거둬들여 입 맞추며 그는 다만 바라보았다. 끌어당겨 손가락에 감아보고 싶었던 머리카락 대신, 거기엔 푸석하고 건조하며 구불거리는 잿빛 머리카락이 손 닿지 않는 선반 위의 해묵은 먼지처럼 뭉쳐 있었다. 그것은 기억과 호환되지않는 현재였고 상상에 호응하지 않는 실재였으며, 영원히 괄호나 부재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감촉이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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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는 동안 좌절도 많이 겪었지만, 쑹자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했다. 여섯 아이의 아버지가 된 후, 그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식들에게 미국식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고, 실제로 버는 데에 성공했다. 수입의 대부분은 자녀를 교육하는 데에쓰였다. 쑹자수의 딸들은 세 명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고, 막내 메이링은고작 아홉 살에 미국으로 가서 10년이나 머물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돌봐주는 어른 한 명 없이 스스로 생활했다는 점이다. 감리 교회와미국 사회에 대한 쑹자수의 신뢰는 그 정도로 두텁고 굳건했다.
쑹자수는 겉으로는 언제나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미국인 친구들 중에는 그를 "진중한 생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들도있었다. 그러나 쑹자수는 이미 굳은 결심을 한 상태였다. 조국 중국을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처럼 만드는 데에 일조하겠다는 다짐이었다. 1885년 말 쑹자수는 사랑하는 미국을 뒤로 하고 상하이로 향했다. - P61

특권에 대한 칭링의 반응은 아이링과 매우 달랐다. 칭링은 이렇게 회고했다. "어릴 적에는 일요일마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에 갔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면목사와 전도사들은 옷차림이 남루한 여자들을 앞자리에서 서둘러 쫓아냈다. 우리에게 좋은 자리를 주겠다고 말이다!" 이때의 기억은 칭링이 선교사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훗날 공산주의로 전향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면서도 상냥했던 그녀가 사귄 친구는 몇 명 되지않았지만, 우정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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