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나아서 회복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양한 우울증 치료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원래는 말하자면 의료 보수주의자랄까, 우울증에 듣는 치료법은 약, 전기 경련 요법, 일부 대화 치료 등 두어 가지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차츰 마음이 바뀌었다. 상상해 보자. 당신에게 뇌종양이 있는데 하루에 삼십분씩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가글을 했더니 기분이 나아졌다면, 그야 기분은 나아졌겠지만 모르면 몰라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뇌종양이 있을 테고 다른 치료법을 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죽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우울증이 있는데 하루에 삼십 분씩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가글을 했더니 기분이 나아졌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치료된 것이다. 우울증은 기분의 질병이고, 만약 당신이 기분이좋다면 더 이상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372

그리고 나는 기분이 나아졌다. 정말 나아졌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비록 내가 그 의식의 밑바탕에 깔린 애니미즘을 믿지는않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나를 응원해 준 것은 신나는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오 년 뒤, 다음 책을 쓰려고 조사차 르완다에 갔을 때신기한 일이 있었다. 그곳의 누군가와 대화하던 중 내가 세네갈에서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상대가 말했다. 「아, 여기에도 비슷한 의식이 있습니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이고 여기는 동아프리카라서 꽤 다르긴 하지만, 여기 의식에도 비슷한 점들이 있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멎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학살 직후 이곳에 온 서양의 정신치료사들과 우리 사이에 갈등이 많았죠. 어쩔 수 없이 그중 일부에게는 떠나 달라고 말해야 했습니다.」「뭐가 문제였습니까? 나는 물었다.
「그들의 치료법에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밖으로 나가 해를 쬐는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신이 기분이나아진 건 밖에서였잖아요. 그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피를 다시 돌게 만드는 음악도 북도 쓰지 않았는데, 기분이 저조할 때는 피를 다시 돌게 만들어야 합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루 일을 접고모여서 당신의 기분을 띄워 주고 기쁨을 되찾아 주는 일이 얼마나중요한지도 이해하지 못했죠. 우울증은 밖에서 몸으로 들어온 것이니 도로 내쫓을 수 있다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았고요.」 그는 의미심장하게 잠시 뜸을 들였다. 「그들은 그 대신 사람들을 한 명씩작고 우중충한 방으로 데려가서 한 시간쯤 앉혀 두고 그들에게 벌어진 나쁜 일을 말하게 했어요.」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 나라를 떠나 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 P379

그러나 세네갈 사람들이 정신 질환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그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여 보듬는 것이다. 보통 가족이 환자를 돌보고, 공동체도 가령 스스로를챙기지 못하는 환자에게 식사를 챙겨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돕는다. 예전에는 정식 정신과 의사들이 전통 치유법과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요즘은둘을 나누는 선이 지워지고 있고 협동 작업도 흔해졌다. 다카르의 정신병원들은 집단치료를 할 때 곧잘 은데웁의 요소를 도입하여, 전통적인 방식처럼 동그랗게 원을 이루어 실시한다. 사례가 유달리 까다로울 때는 은데옵치유사를 불러와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 P380

놀랍게도 탈레반은 초기에 오히려 예술을 지원했고 문화 보존프로그램에도 관여했다. 체제 말기에 와서 테러 집단 알카에다와 외국 요원들이 전횡을 휘두르게 되고서야 탈레반은 반예술 정책을수립했고, 그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을, 국보도 2천 점쯤 포함하여 마구 파괴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의 정체성을 깡그리 지움으로써 새 체제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적 정서가 힘을 못 쓰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 소련이나 마오주의 중국이 예술에 개입했던 것은 애국적 선전에 동원할수 없는 역사를 선별적으로 제거하려는 요량이었지만, 탈레반은 그냥 깡그리 말살하려고 했다. 아프간적인 것이라는 개념 자체를 근절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지식인과 예술가에게만 개입해서는 부족했고, 보통 사람들과 그들이 누리는 일상적 즐거움에도 개입해야 했다. 라힘은 말했다. 탈레반은 우리 문화적 정체성의 약 80퍼센트를 파괴했습니다. 더구나 소련이 이미 피해를 입힌 뒤였는데,
소련은 아프간의 1천 년 역사를 19세기 마르크스주의로 축소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싶어했죠 - P385

탈레반 치하에서나 미국이 이끈 침공의 첫 단계에서는 카불에서파티를 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갔을때도 아직 그곳은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였다. 그러나 가까운 역사에서 끔찍한 상처만을 입은 그 도시에는 이제 좀 즐기고 싶어 하는사람들이 많았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환대는 전설적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전쟁 중 조국에 대해서 괴롭게 느꼈던 점 중하나는 외국인들에게 환대를 베풀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에 가면서 그곳에서 고난을 목격하리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여러 참혹한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또한 그곳 사람들의 따스함과 자긍심도 느꼈는데, 그것은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으로 복귀한 작은 기쁨들에서도 느껴졌다. 사람들은 그토록 오래 금지당했던 그 기쁨들을 선선히 개방적으로, 너그럽게 우리와 나누었다. 세상에는 깊이 애통해 본 사람들만이 아는 기쁨이 있다. 행복은 독자적인 성질이기도 하지만 대비가 빚는 효과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음식과 음악을좋아하는 것을 아주 기뻐했다. 우리는 그냥 필라우와 부러니를 함께 먹기만 해도, 사린다과 라밥과 깃작에 맞춰 함께 춤추기만 해도 외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우리의 저녁은 수피교도들의 의식에 뒤지지 않는 우리 나름의 황홀경이었다. 우리의ㅍ음악은 마침내 충족된 열망으로 한 음 한 음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 음악을 나는 달리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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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한 반사적 행동으로 외투를 활짝 열어젖혔다. 나를 공격하던 자는 내 알몸 정도가 아니라 한창 팔딱거리고 있던 내 혈관과 대부분의 장기를 보았으리라.
그는 비틀거리다가 스르르 허물어져 버렸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그를 도우러 와서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렇듯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누가 폭력을 당하는 광경은 견뎌 내지만, 어떤 사람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은 참지 못한다.
구경꾼들은 공격당한 나를 돕기보다 공격자를 보살피는 데에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문득 그들에게도 나의 기이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들의 반응은 턱없이 과도했다. 나는 가까스로 몰매를 모면했다.
그들은 내 모습에서 그들 자신의 이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이 순전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살덩이이자 갖가지 빛깔의 기관들 속으로 이상한 액체들을 순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장기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는것을 상기했으리라. 말하자면 나는 살가죽을 한두 꺼풀 벗기고보면 우리 인간의 모습이 진정 어떠한지를 그들에게 일깨워 준셈이다. 내 모습은 하나의 진실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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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 삶은 책기둥에서 시작되었다.


결혼 후 목동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다. 옆집에는 대기업에 다니는 아저씨와 아이들 둘을 키우며 집에서 미술 교실을 운영하는 아줌마가 살았다. 하루는 아줌마가 사정이 생겼다며 자기 대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마 했다. 행여나 놓칠세라 다섯살 아이의 손을 꼭 잡고길 건너로 갔다. 그런데 어린이집 입구에서 선생님을 보자마자, 아이는 안 들어가겠다고 엉덩이를 뒤로 빼더니 흐앙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어 교사에게작고 보드라운 아이 손을 넘겨주었고, 곧 문이 닫혔다. 무슨 사이렌처럼 울리는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돌아서자니 마음이 찌르르해지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눈물도 전염이 되는걸까. 예기치 못한 감정에 괜스레 머쓱했다. 인간은 아무리나이가 어려도 저마다 감당해야 할 슬픔의 몫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 P5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인터넷에서 인종차별 철폐 집회 사진을 봤는데 흑인이 든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평화는 백인의 단어다. 해방이 우리의 언어다 모아놓고 나니 이 책에도 해방이란 말이 꽤 여러번 등장한다. 읽는 사람이 되고부터, 즉 고정된 생각과 편견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해방감을 느꼈기에쓴 것 같다. 나도 해방을 우리의 언어로 삼는다. 비록 앎이주는 상처가 있고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무신경함이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으며, 적어도 약자의 입막음이 평화가 아님은 알게 되었다. 더디 걸리더라도 배움을 통한 해방은 내적 평안에 기여하고 낯빛과 표정을 바꿔놓는다고 믿는다. 해방은 평화를 물고오는 것이다. - P23

‘욕구란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캐럴라인 냅 Caroline Knapp은 『욕구들』에서 정의해요. 그런데 이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여자는 하지 말아야 해요.
"먹지마, 커지지 마, 멀리 가지 마, 많이 원하지마."
꽤나 익숙한 명령이죠. 사랑눈이 다이어트 실패기를 두페이지나 되는 글로 썼던 것처럼 먹지 말아야 하고요. 사랑눈이 전문직이지만 직업적 야망을 갖지 않게 된 것처럼 남자보다 잘나가도 안 되고요. 사랑눈이 수업 하나 들으면서배우자, 아이, 동료들에 대한 죄의식에까지 시달리는 것처럼 나의 필요는 가족의 필요를 위해 포기해야하고....
이렇게 ‘하지마‘의 세계에 갇힌 사람은 최초의 욕구가 발동했을 때 ‘잘하는 법‘을 고민하기도 전에 내가 이걸 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기 의심과 싸우게 됩니다. 캐럴라인 냅이 떠올리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죠. "애초에 자신에게 욕망하고 원할 권리가 있는지조차 확신하지못하고, 자신의 필요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심지어 그 필요들을 거의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를 상상하게 된다." 22-23) - P53

Y에게 연애 개시 문자를 받고 제가 덕담을 건넸죠. 사람깊게 사귀는 게 큰 공부니까 부디 잘해보라고요. 그 말은 이사랑의 정의에서 왔어요. ‘사람 깊게 사귀는 일‘이란 "유아론적인 ‘나‘의 삶, 즉 ‘하나‘의 삶을 포기" (164면)하고 ""둘의 무대‘가 가져오는 고통과 충돌, 불확실성 등을 감수하고, 그것과 지속적으로 대면하는 것"(159면)을 뜻하고요, ‘큰 공부‘는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의 구축‘이겠지요.
Y, 사람은 잘 안 변한다고 하잖아요. 대개는 그렇죠. 그런데 한 존재가 자기를 격하게 바꿔내는 계기가 두가지 있는것 같아요. 하나는 사랑으로 아플 때, 하나는 돈을 벌어야 할때. 그래서 사랑을 쉽게 하고 돈을 쉽게 벌고 그러면 좋겠지만타자 체험의 기회가, 즉 다른 내가 되어볼 계기가 없다는측면에서는 그리 좋은 삶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삶에서 사랑을 중히 여기고 사랑을 공부하는 사랑을 해야한다는 믿음을 갖는 이유이지요.
근데 저자인 알랭 바디우의 연애는 어땠을까요. 실전에서는 문자메시지의 조사 하나, 구두점 하나에 웃고 우는 마당에 이런 철학 개념과 사유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한대요. 그래도 저는 작은 쓸모를 믿는 편입니다. 암기해둔 이사랑에 관한 비장한 말들과 옳은 말들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혼란의 순간에 불쑥 솟아나 생각과 판단의중심추가 되어줄 거예요.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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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텐장의 작업실에서 그가 <국민당의 승객 사고방식>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논했다. 그것은 지금 타이완의 정부란 본토에서 건너온 중화 민족주의 정부가 언젠가 본토를 다시 정복하기 전에 잠시 이곳에 머무는 것뿐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우톈장은 말했다. 「이곳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모두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으로 왔습니다. 타이완에는 초고속 도로망이 없습니다. 국민당은 가급적 빨리 이곳을 뜰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이 섬에는 합판으로 지어진 화려한 건물들뿐입니다. 튼튼한 토대나 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가짜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죠. 이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 P298

이튿날 우리는 동물들이 선선한 기온을 활용하여 활동하는 아침 일찍 나섰다. 거대한 바오바브나무 밑에서 싸간 음식을 먹은 뒤, 어스름을 틈타 사냥하는 포식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우리 네명은 아직 무엇이 되었든 동물만 봤다 하면 경이롭게 느끼는 순진한 단계였던지라, 잠비아에서는 지저분한 개의 몸에 들끓는 벼룩만큼 흔하기 짝이 없는 불그스름한 푸쿠 영양만 봐도 차를 세우고 구경했다. 우리는 악어들을 보았고, 하마들이 제 몸을 미끄럼틀 삼아 미끄러져서 얕은 웅덩이에 몸을 잠그고 흡족해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이에나 한마리가 얼룩말 떼를 노리는 것을 보았다. 무엇보다 멋진 것은 코끼리들이었다. 녀석들은 진흙탕에서는 흡사 거대한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걸었고, 단단한 땅에 닿아야 발바닥을 다폈다. 밀렵의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곳 야생 동물들은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익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코끼리 수컷 한 마리는 우리 심장이 덜컥 멎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고, 우리는녀석이 제 코를 진흙탕 속에서 휘둘러 마치 그 속에서 별을 찾는 망원경처럼 사용하는 모습을 삼십 분쯤 지켜보았다.
둘째 날 처음 사자를 보았다. 암컷 사자는 공포에 몸이 굳은 어린 푸쿠를 향해 눈을 번득이면서 살금살금 교묘하게 다가갔다. 그어떤 일곱 베일의 춤도 안무가 그보다 더 세심하게 짜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상대의 저항을 그보다 더 완벽히 무력화하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날 우리는 꼭 머나먼 원정에 나선 성미 나쁜 중늙은이들처럼 보이는 누 떼를 보았다. 크고 사랑스러운 쿠두, 워터벅, 호리호리한 임팔라도 수백 마리 보았다. 기린들이 짝짓기를 준비하는모습을 보았다. 수컷 기린은 암컷이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하려고 암컷의 오줌을 입에 머금어 본다. 우리는 창조주가 최고로 장난기 넘치는 날에 발명한 것 같은 기린의 엉뚱하게 긴 목과 큼직한 눈에 감탄했다. - P316

그날 밤, 우리는 여행 가방 맨 밑에서 끄집어낸 옷, 자글자글 구겨졌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한 옷을 떨쳐입고 나서서 빅토리아폴스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밴드가 연주했다. 사람들이 춤췄다. 우리는 메뉴에서 요리를 골라 주문했고, 샴페인으로 오지에 축배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개빈과 마저리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나는 가슴을 저미는 듯 강렬한 무언가가 이로써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을 떠날 때 느낀 기분과 비슷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테고 그것은 또 그것대로 괜찮겠지만, 그래도 이번과 같은 것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글로 쓸 때는 그럼으로써 내가 그곳을 알린다는 책임이 따른다. 잠비아의 관광산업은 21세기 들어 유례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이것이 썩 좋은 일인 것 같다. 대형 야생 동물을 위협하는 밀렵이나 벌목이나 그 밖의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유일한 방법은 사회가 동물 보호를 지지하는 기반구조를 갖추는 것인데, 관광산업은 그런 보호 장치의 동력이 되어 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방문한이래 구리 가격이 하락하여 잠비아는 관광 산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고 황열병이 근절됨으로써 관광객들에게도 더 매력적인 나라가 되었다우리는 방치된 지역을 곧잘 낭만화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방치가 치명적이다. - P326

1970년대, 혁명가 폴 포트는 크메르루주라고 이름 붙인 마오주의 독재 정권을 캄보디아에 세웠다. 이후 오랫동안 피투성이 내전이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인구의 5분의 1이 학살되었다. 엘리트지식인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농민들은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고, 그 속에서 조롱과 고문을받았다. 온 나라가 만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살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부분 말투가 부드럽고, 온화하고, 매력적이다. 이 사랑스러운 나라에서 폴 포트의 잔혹 행위가 벌어졌다는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크메르루주가 어떻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 저마다 다른 설명을내놓았지만, 나는 그중 어떤 설명도 잘 납득되지 않았다. 문화 혁명이나 스탈린주의나 나치즘에 대한 어떤 설명도 납득되지 않는 것처럼. 물론 사후에 돌아보면 왜 특정 나라가 그런 체제에 유달리 취약했던가 하는 것쯤은 알 수 있지만, 대체 어떻게 인간의 상상력에서 그런 행위가 나올 수 있었는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런 악은모든 사회가 품고 있는 일상적인 악과 비슷하기는 하되 너무나 극단적이라서, 그런 악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어떤 법칙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사회 구조란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늘 더 취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것이 그토록 깡그리 증발해 버릴 수 있는지는 통 모를 노릇이다. 캄보디아의 미국 대사는 내게 크메르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캄보디아 전통 사회에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가 발생하면, 이 사람들은 애써 부정하며 꾹꾹 눌러 두거나 칼을 꺼내 싸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현 캄보디아 정부의 한 관료는 내게자기네 민족은 너무 오랫동안 절대 군주 체제에 굴종해 왔던 터라 독재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도 다 늦을 때까지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쉽게 운다. 생글생글 웃던 사람이 아무런 전이 과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할 때마다, 내 귓전에는 미국 대사의 저 말이 울렸다. 나는 크메르루주의 손아귀에서 잔혹한 짓을 당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보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사적인 과거를 말해 달라고 채근하면, 그들은 내 눈앞에서 갑자기 과거로 스르르 돌아가서 고통스러운 과거 시제에 빠져드는 듯했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만난 모든 성인 인구는 보통 사람들 같으면 대개 미쳐 버리고 말 법한 충격적 사건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 마음속에서 견뎌 온 것은 그와는 또 다른 차원의 끔찍함이었다. 나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로 결심했을 때 타인의 고통에내가 겸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정말로 더 이상 겸허해질 수 없을 만큼 겸허해졌다. - P328

일단 이렇게 착수 단계가 마무리되면, 이후에는 정형화된 방법으로 넘어갔다. 「나는 세 단계로 진행합니다. 첫 단계에서는 여자들에게 잊는 법을 가르칩니다. 완벽하게 잊을 수는 없는 것들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잊어 가도록 연습하죠. 음악을 들려주고, 자수나직조를 하게 하고, 공연을 보여 주고, 가끔은 텔레비전도 보여 주고 그 밖에도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일, 여자들이 좋아하는 일을 총동원해서 생각을 딴 데로 돌려 주죠. 우울증은 살갗 밑에 숨어 있습니다. 전신의 살갗밑에 우울증이 있기 때문에 홀홀 벗어 버릴 수는없지만, 비록 우울증이 계속 거기 있더라도 잊으려고 노력할 수 있어요. 여자들이 잊는 법을 잘 배우면, 다음에는 그들에게 일을 가르칩니다. 무슨 일이든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가르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냅니다. 간단히 집 청소나 아이 돌보기를 배우는 여자들도 있고, 고아들을 돌볼 때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진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하는 여자들도 있죠. 여자들은 일을 잘하게 되어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껴야 합니다.
여자들이 일하는 법을 다 배우면, 마침내 그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나는 그것이 과연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인지 의아한 심정을 팔리 누온에게 털어놓았다. 「글쎄요, 아무튼 나는 매니큐어와 페디큐어를 통해서 가르치죠 팔리 누온은 대답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썹을 치켰다. 「수용소에서, 건물에 덧댄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뒤 그곳을 한증탕으로 만들었어요. 프놈펜에도 비슷한 시설을 좀 더 낫게 지었지요. 여자들을 그리로 데려가서 몸을 씻게 합니다. 그다음 서로에게 매니큐어나 페디큐어를 발라 주는 법을 가르쳐 주고, 손톱 관리하는 법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그들에게는 그런 느낌이 절실하게 필요하죠. 게다가 그러려면 자기 몸을 남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토록 방자하고 폭력적인 일을 겪었던 여자들이 자기 손과 발을 남에게 내미는 것,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는 상대를 믿고 자기 몸에 날카로운 도구를 대도록 허락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움찔하지 않게 된 여자들은 육체적 고립에서 빠져나온 셈이죠. 그러면 감정적 고립도 무너진답니다. 여자들은 함께 씻고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점차 믿게 되고,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고,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게만 들려주었던 각자의 사연을 서로에게 들려주기 시작하죠.」 - P333

나담 축제를 떠난 우리는 우부르항가이주(州) 안쪽으로 들어갔다(카라코룸은 우부르항가이주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곧 포장도로가 끊겼다. 당신이 차로 달려 본 길 중 가장 엉망이었던 비포장도로를 떠올려 보라. 그 최악의 길이 길게 뻗었다고 상상하고, 길게뻗은 그 최악의 길이 비에 젖었다고 상상하고, 길게 뻗고 비에 젖은그 최악의 길이 얼마 전 발생한 지진으로 갈라진 상태라고 상상해보라. 그것이 바로 몽골에서 사정이 그나마 나은 도로에 해당한다.
우리는 길이 아예 보이지 않는 진흙탕을 달렸고, 운전사가 판단하기에 다리가 너무 불안할 때는 그냥 강물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건넜다. 거친 여정 중 한 번 넘게 모두 차에서 내려 차를 밀어야 했고, 아니면 오도 가도 못하는 다른 차들을 도와주어야 했다.
그렇듯 격렬하게 덜컹거린 여정이었지만, 그 길의 장엄함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것이다. 큼직큼직한 언덕들은 거의 산맥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무는 없었다. 우거진 풀밭을 동물들이 하도 바싹 뜯어먹어서, 초원은 골프장처럼 매끄러웠다. 계곡에 흐르는 개울 주변에는 노란 꽃이 지천이었다. 군데군데 흩어진 게르들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물들은 만찬을 즐겼다. 야크와 소와 양과 염소가 있었고, 간간이 고비 사막에서 흘러들어 온 외톨이 낙타도 있었으며, 놀랍도록 많은 말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포식자는 없었고, 숨을 곳도 없었다. 숭고한 평화가 느껴졌다.
이따금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가축을 지켜보는 목동이 보였다. 물가에서 뛰놀며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게르에서 나온 여자들은 그 정경을 만족스레 바라보다가 지붕에 널어 말리고 있는 치즈를 정돈했다. 높은 하늘에서는 독수리들이 교묘한 동선을 그리며 맴돌았고, 그보다 작은 새들은 더 낮게 날았다. 땅에서는 마멋들이 구멍에서 쏙 빠져나와 깡총거리면서 우리 눈에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했다. 전혀 착취된 적 없고 일부러 보존된 적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처럼 장엄하면서도 그처럼 위협적이지 않은 자연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곳에는 자연의 무시무시한 힘을 암시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황금색과 빛과 완벽함이 있을 뿐이었다. - P342

몽골의 모든 동물을 통틀어 가장 내 마음에 든 것은 야크였다. 큰 덩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 도도한 얼굴, 빅토리아 양식 소파에붙은 술처럼 다리를 가리고 거치적거리게 늘어진 털이 달린 야크들은 유행이 낡고 한물간 옷을 차려입고 매사 언짢은 듯한 기색으로 늠름하게 움직이는 노부인들 같았다. 개중 팔팔한 녀석들은 터무니없이 숱진 꼬리를 양산처럼 쳐들어 흔들었고, 아니면 봄의 열병에 들뜬 나머지 정신이 살짝 나간 대고모님처럼 겁도 없이 도로를 횡단했다. 야크들은 우리를 수상쩍은 눈으로 보았다.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야크들은 또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는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추파를 던지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 P343

「게르를 옮길 때면,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에 신이납니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에든 집을 세울 수 있고, 동물들을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죠. 사람들이 도시를 세운 몇 군데 좁은 장소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목동은 내게 낙타 젖을 탄 차를따라 주느라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물었다. 「어때요, 미국도자유로운 나라인가요? 애국자로 살아온 내 평생 처음으로, 이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몽골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선 아래에 있지만, 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하자 목동은 물었다. 아들이 왜 아버지와 다른 삶을 원합니까? 나는 우리 발치에서 놀고 있는 목동의 어린아이들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목동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애들을 학교에 보낼 겁니다. 그리고 이 애들이 정치인이나 사업가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야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나도 학교에 다녔지만 목동이 되는 길을 선택했죠. 아이들도 나처럼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다고말하지만, 몽골을 떠날 즈음 나는 애초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서로의 대립항인 적이 없었으며 유목 생활이야말로 그 두 체제 모두의 진정한 대립항이라고 믿게 되었다. 유목 생활이야말로 인류가 이제껏 일군 여러 삶의 양식들 중 즐거운 무정부주의에 가장 근접한 양식이라고. - P344

그린란드로 가기 전, 나는 그곳의 주된 문제는 계절성 정동장애SAD가 아닐까 추측했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햇빛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일 년에 석 달씩 해가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장소에서는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초가을에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2월이 되면 나아지지않을까 하고 예상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린란드에서 자살이 가장많이 발생하는 달은 5월이다. 북부 그린란드로 이주해서 사는 외국인들은 긴 어둠의 시기에 곧잘 우울해하지만, 이누이트들은 과거오랜 세월 동안 계절적 빛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 왔다. 많은사회에서 봄은 자살의 선동자다. 작가 A. 앨버레즈는 이렇게 썼다. <자연이 더 풍요롭고 부드럽고 즐거워질수록 내면의 겨울은 더 깊어지는 듯하다. 내면 세계와 바깥세상을 갈라놓는 심연이 더 넓어지고 더 끔찍해지는 듯하다.> 봄이 가져오는 변화가 온대 지방에비해 두 배는 더 극적인 그린란드에서,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그린란드의 삶은 고되다.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에 보편 무상의료 제도, 교육 제도, 실업 급여 제도까지 마련해 두었다. 병원들은 흠 한 점 없이 깨끗하고, 수도의 교도소는 교정 시설이 아니라 여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린란드에서는 자연의 힘이 상상을 초월하리만치 모질다. 유럽을 두루 여행했다는 한 이누이트 남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른 문명처럼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위대한 건물을 짓진 않았지만, 이 기후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습니다. 나도 이편이 틀림없이 더 위대한 성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58

밖은 너무 춥고 어둡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 가장인 아버지만은 예외로, 여름에 잡아 말렸다가 비축한 생선을 보충하고자 한 달에 두어 번은 나가서 사냥이나 얼음낚시를 한다. 이렇게 강제로 다 함께 붙어 있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불평할 여지도, 마음속의 고민이나 화나 비난을 말로 꺼낼 여지도 없다. 과거 이글루시절에는 내리 몇 주씩 물리적으로 접촉한 채 살아야 하는 상대와싸운다는 것은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도 이들은 몇 달동안 한방에서 지내고 함께 식사해야 한다. 이 기후에서 불쑥 화가치민다고 뛰쳐나갔다가는 틀림없이 동사하고 말 것이다. 누군가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글루 시절에는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면 그저 잠자코 고개를 돌려서 벽이 녹는 걸 바라봤습니다. 이누이트 사회의 극단적인 육체적 밀접성은 필연적으로 감정적 과묵함을 낳았다. 옛 생활 양식에 가깝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이야기꾼이 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냥에서 겪었던 모험이나 거의 죽다 살아난 이야기 따위를 들려준다. 이누이트들은 대부분 잘 참는다. 잘 웃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묵묵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각자 성격이 어떻든, 자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린란드 우울증의 독특한 특징은 기온과 빛이 직접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터부의 결과다. - P360

역경이 삶의 표준인 세상에서는 삶의 고난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상태와 우울증을 나누는 경계가 그렇지 않은 세상과는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일리마나크에서 만난 가족들은 침묵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역경을 견뎌 왔다. 침묵은 실제로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이었고, 덕분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춥고 긴 겨울을 무수히 견뎌 왔다. 한편 오늘날 서양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문제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만 더 잘 풀 수 있다고 믿고, 일리마나크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한증거다. 그러나 말은 그 범위에도 장소에도 한계가 있다. 우울증을겪는 일리마나크 주민들 중 문제를 그 문제의 대상에게 직접 털어놓은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 그들이 세 여성 장로에게도 정기적으로 털어놓은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떤 사람들은 오직경제적으로 발달된 사회의 유한 계층만이 우울증에 빠진다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은 우울증을 말로 표현하여 논의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한편 이누이트족에게는 우울증이 삶의 무수한 다른 문제들에 비해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에, 또한 거의 식물인간이 될 만큼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삶에 당연히 존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그냥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누이트처럼 침묵하는 방식과 우리처럼 자신을 속속들이 말로 표현하는 방식 사이에도 정신의 고통을 인식하고 드러내는 다른 방식들은 무수히 많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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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당신 심장과 똑같은 것을 내 가슴속에 감추고 있어.
지구상에 진정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이미 오래전의 일이야. 우리는 모두 기계야.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 환상을 품도록 우리 뇌가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야. 땅콩 자동판매기와 당신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뿐이야. 꿈에서 깨어나야 해.」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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