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우리는 헤리티지 익스피디션 여행사의 격의 없는 분위기를 가식적이지 않은 태도로 여겨서 좋아했고, 로드니가 자아내는발견의 아우라를 즐겼다. 우리 님로드 백주년 기념 여행이 재앙으로 바뀐 것은 자연에 엄연히 존재하는 장애물이 그 못지않게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의 아마추어리즘과 맞물린 탓이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우리와 같은 시기에 같은 얼음을 만났던 <마리나 스베타에바>라는 배는 항로를 바꿔서 코먼웰스만(灣)을 통해 남극 대륙에 닿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헤리티지의 허세에는 약간 귀엽고 신선한 면이 있었다. 우리 승객들이 모두 한배를 탄 운명이라는 느낌에는 거의 가슴이 뻐근해지는 어떤 감동이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여행 상품을 구매한 관광객이라는 기분은 전혀 품지 않았다. 서로 낯선 사람들이지만 우연히 우정으로 만나서 세상에 남은 야생의 자연 중 가장 위대한 곳으로 함께 손잡고 용감하게 전진해 들어가기로 한 것이라고 느꼈다. 이런 여행은 낭만적이다. 하지만 위험도있는데, 아, 아쉽게도 우리의 경우에는 위험이 낭만을 능가했다. 만일 우리가 희고 거대한 세계의 바닥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 실패한 여행에서 내가 한탄했던 바로 그 특징들을 나는 오히려사랑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거의 보지 못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았으니, 딱딱한 얼음 같은 아쉬움 대신 그 따스한 행복감을 마음에 남겼다. - P553

호주 언어학자 니컬러스 에번스를 알게 된 것은 2006년 우리가 같은 펠로십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그가 내게 발리의어느 마을에 선천적 청각장애가 유전되어 농인이 표준이 된문화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 말을 듣고는 줄곧 그 마을에가보고싶었는데, 남극여행에서 좌절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발리에 들러서 그 마을을 가볼 기회가 생겨 기뻤다.
내가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 칼라를 이상향처럼 묘사한글을 보고, 일부 독자들은 내가 이른바 고귀한 야만인의 원시적인 삶을 칭송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벵칼라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윤색할 마음은전혀 없다. 벵칼라가 낙원인 것은 장애인 인권의 측면에서보았을 때뿐이다. 전 세계에서 농인들은 사회적 배제를 겪는다. 이상향이라는 곳이 비록 척박한 땅에서 농사로 자급해야하는 고단한 곳이더라도, 모든 사람이 수화로 말할 줄 아는 사회란 모든 사람이 공통된 언어로 유창하게 소통하는 세상이라는 이상에 대한 한 응답임에 분명하다. - P557

이런 지형은 또 다른 사회적 이상 현상도 낳았다. 리우의 특권층은 산사태 염려가 없는 해변 평지에 산다. 조나 술(남쪽 구역)이라고 불리는 그런 구역에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레블롱 같은 유명 해변들이 있다. 그런 동네 사이사이 우뚝 솟은 언덕이 있는데, 그 고지대에는 지난 백여 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이 정착했다. 리우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가 파벨라라고 불리는 그런 가파른 산동네에 살지만, 대부분의 시내 지도에는 파벨라 내부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 데다가 예로부터 파벨라에는 전기, 쓰레기 수거, 매립 하수관, 경찰의 보호가 없었다. 배타적인 동네인 조나 술에서도 어디서든고작 5분만 가면 파벨라가 나온다. 무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가디슈에 둘러싸인 생트로페에서 사는 셈이다.
파벨라 내에서는 건축물이 규제를 받지 않고 세워지기 때문에, 비만 오면 집들이 무너진다. 도시의 번듯한 영역으로부터 고립된파벨라는 갱들이 지배하는 곳으로, 폭력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계 대부분의 도시에 빈민가가 있지만, 브라질의 다른 도시들도 포함하여 많은 경우 그 빈민가는 시 외곽에 있거나 시내라면 한군데에 고립되어 있다. 반면 리우의 파벨라는 쿠키에 박힌 초콜릿 칩처럼 도시 전체에 띄엄띄엄 박혀 있다. 특이한 지리 구조 때문에, 판자촌에서 발생한 총격 소리가 최고의 부자 동네에서도 들린다. 리우에서는 사회적 거리가 지리적 거리를 능가한다.
브라질 문화의 많은 부분이 리우의 파벨라에서 유래했다. 삼바가 파벨라에서 생겨났고,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펑크 음악도 그렇다. 많은 축구 스타가 파벨라 출신이고, 브라질에서 제일 유명한 모델 중 몇 명도 그렇다. 사순절 이전에 열리는 축제 중에서는 세계최대 축제로 하루 200만 명이 거리로 나와 파티를 벌이는 리우의 카니발은 파벨라의 <삼바 학교들>에 크게 의지하고, 학교들은 누가 누가 더 화려하게 치장하나 경쟁한다. 프랑스 귀족들은 파리의 빈민가가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테고, 이탈리아 상류층은 대부분 마피아를 부끄러워하며, 대부분의 미국인은 힙합 문화가 아무리 좋아도 교외를 택하지만, 리우에서는 특권층이 특권을 못 가진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 P570

베우트라미는 내게 이토록 많은 인구가 UPP로 득을 보고 있으니 시민들은 결코 갱단이 지배하던 옛체제가 다시 득세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정사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표를 잃을 겁니다. 그런 선태은 불가능할 겁니다. 시민들의 삶이 너무나 나아졌으니까요.」UPP의 진정한 성공은 사회적 경제에서 두려움이 차지하던 역할을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가르치는 영국의개발도상국 전문가 그레이엄 데니어 윌리스는 리우의 목적이 <시민과 국가 사이의 거리를 공간적, 사회적,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PP가 파벨라에 계속 상주하겠다는 계획은 파벨라 주민을 얕잡아 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치안 세력이 눈에 뻔히 보이지 않으면 주민들이 금세 범죄로 돌아갈 게 틀림없다고 여기는 것 같으니까. 미국의 도시 계획 전문가로 현재 리우에서사는 크리스토퍼 개프니는 이렇게 말했다. 「UPP 치어리더들은 <보세요, UPP가 들어가서 무장한 마약 밀수꾼들을 없앴습니다>라고 말하지, <우리가 한 무장 세력을 다른 무장 세력으로 교체했습니다>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 사회가 새롭게 번성할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 그들이 한 일은 사실 그것이 전부입니다. - P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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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은 예술에 가까운 행위다. 뉴욕에서 한평은 차이나타운의 웨이터에게 원하는 요리를 말하는 데만 삼십분씩 걸린다. 가톨릭 성인들의 초상화를 보면 각자 가장 두드러진 속성을 상징하는 물건과 함께한 모습일 때가 많은데, 그렇다면 한펑은 메뉴판을 든 모습으로 그려져야 할 것이다. 그녀는 메뉴를 시처럼 읽고 편집이 필요한 시다 자신의 까다로움과 열정으로주방에 영감을 안긴다. 그녀는 재료가 얼마나 신선한지 묻는다. 뜨거운 요리와 차가운 요리와 미지근한 요리가 다 있도록, 매운 요리와 안 매운 요리가 다 있도록, 생선과 고기와 야채가 다 있도록, 무거운 맛과 가벼운 맛이 다 있도록 균형을 맞춘다. 식사 전체를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중국인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수입 중식비 지출의 비율이 높다. 고전이 된 책 『중국 문화 속 요리』를 쓴 K. C. 장(장광즈)은 <사회적 언어로서의 음식>이 있고 <음식 언어학>이 있다고 말했다. 왕조 시대 중국에서는 하인이 있더라도 주인이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는 것이 손님을 존중하는 행위였고, 모든 사람이 조상에게 드릴 음식을 만들어서 제사를 올렸다. 음식이 곧 사회다. - P506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법은 갈수록 엄격해지지만, 집행은 충분하지 않다. 많은 중국인들이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이를테면 유기농으로 선전되는 제품이 실제로는 유기농이 아닐 것이라고 여긴다. 부자들은중국산보다 오염이 덜할 것이라고 믿는 외국산 신선 식품을 소비한다. 수입과일 시장만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애초에 정치적 연줄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팔고 보통사람들에게는 아예 팔지 않는 유기농농장들도 있다. 다른 한편, 서양 패스트푸드 음식점들이 속속 들어옴에 따라 건강에 나쁜 음식을 먹는 인구가 늘었다. 중국인의 소금 섭취량은 늘 아주 높았지만, 이제 중국인은 지방도 더 많이 먹는다. 쌀 판매는 줄었고, 옥수수가공제품 섭취는 치솟았다. ‘포장된 가공식품 구매량은 미국을 넘어서서 연간 25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시장이 되었다. 비만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그리고 중국 총 인구의 약 12퍼센트가 당뇨를 앓고 있어, 세계에서 당뇨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가 되었다.  - P517

재난관광이란 사라져 가는 장소로 사람들을 데려가서 그곳이 사라지기 전에 보여 준다는, 약간 미심쩍은 사업이다. 그런 곳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곳을 구하려고 애쓸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일이지만, 남극은 몹시 취약한 장소다. 남극의 거대한 얼음덩이들이 녹고 바다의 수온이 변함에 따라 전세계 생태계가 위기에 처했다. 위대한 인간이 몰락하는 모습은 하찮은 인간이 몰락하는 모습보다 늘 더 충격적이다. 우리가 역사적 비극을 몰입해서 읽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고,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이 왕일 때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남극은 녹아내릴 위기에 처한 힘센 제왕과 같다.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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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 전까지 프레드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 그래도 자기네 자식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맹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그런 행동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의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하였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 다음에는 피부와 신장과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동결시켰다.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프랑스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것은, 그 담화가 75세 노인의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 자체가 상당부분 첨단 의학의 보살핌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 것임에도 아무도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P77

7. 인간을 기르다가 싫증이 나면 어떻게 할까?
우리의 어린 세대는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애완 인간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싫증을 낸다. 애완 인간을 사 달라고 조를 때와는 생판 달라진 모습이다(우리의 자녀가 <제게 애완 인간을 선물해 주세요. 잘 돌보겠다고 약속할게요>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녀석들의 그 말은 그저 나흘 동안만 잘 돌보겠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어린 세대가 애완 인간에 싫증을 낼 때, 우리가 보이는가장 간단한 반응은 인간들을 세면대나 쓰레기통이나 하수도에 버림으로써 그 골칫거리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만일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우리의 하수도에 사는 인간들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지구에서 잡아와 길들인 인간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이 전혀 없다. 너무나 <유순한> 그들은 하수도 인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수도 인간들은 그들보다 훨씬 빨리 달리며 끝까지 그들을 추격해서 목숨을 빼앗고 말 것이다. 우리의 귀여운 놀이 동무였던 그들을 그런 식으로 저버리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 우리 (특히 지구의 야생 인간을 기르던 우리)를 어떻게 처분해야 좋을지 모르는 어린 세대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것은 애완 인간들을 가난한 친구들에게 선물하라는 것이다. 그친구들은 아마도 애완 인간을 대신 맡아 기름으로써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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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 전까지 프레드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 그래도 자기네 자식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맹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그런 행동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의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하였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 다음에는 피부와 신장과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동결시켰다. 대통령은 신년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프랑스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것은, 그 담화가 75세 노인의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 자체가 상당부분 첨단 의학의 보살핌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 것임에도 아무도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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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관료들은 좀처럼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사람들은 아랍권에서 널리 쓰이는 <IBM>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인샬라, 보크라, 몸켄>의 머리글자인 이말은 <신이 허락한다면 어쩌면 내일은>이라는 뜻이다. 모든 계획이 임시적이다. 정부 최고위층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영 석유회사사장을 한 시간 전에 연락해서 당장 만날 수도 있고, 사전에 몇 주동안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 P460

리비아 총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고용하는 공무원 조직은 엄청나게 과잉 충원된 상태다. 국영 석유 회사의 직원 4만 명은 실제 필요한 인원의 두 배쯤 될 것이다. 임금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직장에서 봉급을 받는다. 그리고 만약 직장감독자가 같은 부족 사람이라면, 직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식량에 국가 보조금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적은 생활비로도 살아갈 수 있는지라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못미친다고 여기는 일자리는 쉽게 거절한다. 고된 노동은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도맡고, 그보다 좀 더 기술이 필요한 일은 이집트 사람들이 한다.
「우리 경제는 역설적입니다. 리비아인 중에는 실업자가 많죠.」공식 실업률은 3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는 또200만 명이나 됩니다. 이 불균형은 재앙입니다.」 가넴은 말했다. 높은 국내 실업률과 수입 노동력이라는 조합은 석유로 부유해진 모든 나라들의 특징이지만, 리비아는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하다. 한 결혼에서 아이를 열네 명씩낳은 사람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구의 약 절반이 15세 미만이다. - P462

『녹색서』는 내분을 피하기 위해서 한나라에는 하나의 종교만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그것이 이슬람교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카다피는 자신의선언서에 코란의 기본 교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고(이를테면 자신이 제창한 사회 복지 재분배 정책을 코란에 나오는 자선 개념과 멋대로 동일시했다). 따라서 자신의 선언서는 샤리아 법과 동등한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와 카다피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그는 이슬람교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지만,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는 일절 허락하지 않기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어진 20년의 급진적 행보는 공개 교수형이 텔레비전으로중계되었고, 서양 책과 악기를 불태웠고, 사기업이 갑자기 금지되었고, 반유대주의가 심해졌고, 테러리스트나 게릴라 집단과 공식적으로 연대했다-국제 사회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 그러나 불량 국가라는 리비아의 지위 덕분에 카다피는 궁지에 몰린 국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을 다졌다. 그것은 그가 뛰어나게 잘해내는 역할이었다. - P465

 석유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SPLAJ체제는 노동 윤리에 구애받지 않는 인구를 탄생시켰다. 리비아 사람들은 일주일에 닷새 오전만 일한다. 그게 전부다. 그조차 직업이있을 때의 이야기다. 즐리트니는 이렇게 엄하게 말했다. 「사람들이기꺼이 일하겠다고 하면, 가령 건설 현장 일을 하겠다고 하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유한 나라라서, 젊은이들은 힘들게 일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석유 같은 자원에 기반을 둔 경제는 다변화하지 않는 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많은 대학생들은 현재 개혁 논의가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재능은 결국 활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한 학생은 내게 불평했다. 「이 MBA 과정을 마쳐도 일자리를 못 구할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온 나라가 고용이 아니라 석유로 굴러가죠. 열심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부는 없어요. 나는 열심히 일할 마음이 있지만, 무슨 소용입니까?」 재무장관 압둘가데르 엘카이르는 내게 말했다. 「석유가 없었다면, 우리도 개발을 했을 겁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차라리 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 P479

나는 과거의 낙관주의가 잘못이었음을 깨닫는 뼈저린 경험을 숱하게 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불명예스러운 최후에 뒤이어 혼돈으로 빠져든 리비아의 경우만큼 씁쓸한 사례는 또 없었다. 서구가 카다피 타도를 지지했던것이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서구가 그에 뒤이어 벌어질 일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던 점이다. 거악이 제거되더라도 그 빈자리를 메울 일관된 선이 없는 한 별다른 성과가 날 수없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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