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함께, 하지만 늘 혼자

오늘날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인류사의 그 어느 사건과도 닮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항시적 연결‘ 상태에 있다. 바로 이 항시적연결이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독특한 본질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자에게 미소 짓지 못하게 하는 것, 버스에서 다른 승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단지도시 생활의 분주함과 속도만이 아니며,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규범만도 아니다. 휴대전화 스크롤을 내리고 영상을 시청하고 트윗을 읽고 사진에 댓글을 다는 매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과 함께 있지않으며, 우리가 더 큰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줄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는다. 앞서 봤듯이 이처럼 남에게 우리를 보여주고 우리 존재를 확인받는 소소한 순간이 진정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변하고 우리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변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을 때 낯선 사람과 미소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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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에는 17년째 가시가 걸려 있다. 모두가 그럴리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느껴진다. 하얗고 긴 가시. 그것은 기도로 넘어가기 직전의 통로에 단단히 박혀 있다.
열세 살 때였다. 우리 가족은 해안가에 위치한 소도시에 살았다. 근처에 사는 이모는 수산물 시장에서 물횟집을 했는데, 뱃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 끼를때우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자주 이모의 가게에 모여 식사를 했다.
밤이 되면 음울해지는 시장의 서늘한 공기와 묵은 비린내, 검다 못해 우주처럼 느껴지는 바다를 지금도 기억한다. 어항에 가까운 작은 수족관에는 그날 팔고 남은 해산물들이 아직 살아 헤엄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꼭 제 죽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 P7

생에 대한 미련과 분노를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아직 하천을 오가는 이들이 남아 있을 적의 이야기였다. 가끔 들르는 낚시꾼, 은밀한 곳을 찾아 흘러온 연인들, 어른들 말을어기고 싶어서 안달 난 어린애들. 물은 그런 이들을 자주 골탕 먹였다.
눈만 빼꼼 내민 채로 다가가거나, 안개 낀 날 고요한 표면 위로 희끄무레한 손목을 흔든다거나, 물장구치는 이들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면서. 사람들은 매번 놀라 도망갔다. 헐레벌떡 멀어지는 뒷모습을 볼 때면 증오와 부러움, 그 두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자신의 영역에 멋대로 침입한 이들을 쫓아내고 싶다가도 발목을 붙잡고 가지 말라 외치고 싶었다. 장난은 짧았지만 외로움은 길었으니까.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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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핵폭탄들이 모든 대도시를 가루로 만들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폭탄이 떨어지자마자 반대 진영의 핵폭탄이 비오듯 쏟아졌다. 혹자는 컴퓨터 시스템 때문에 그렇게즉각적인 반격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핵미사일 수백 개가 음산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갈랐다. 아마도 그 미사일들 가운데 하나가 진로를 이탈해서, 인간 세상을 산산조각 내는 대신에 태양계의 중심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또 금성이나 수성에 부딪히지도 않고 태양에 도달했으리라.
그 충돌로 어마어마한 빛이 발생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카미유는 잠을 자느라고 그 빛을 보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재난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불이 꺼졌다. 모든 불이 꺼졌다.
그리하여 지구는 어둠과 추위 속에 떨어졌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새벽빛은 밝아 오지 않았다. 그날부터 세계는 절대적인 암혹 속에 잠겨 버렸다.

카미유는 그날 이후로 매일 그랬듯이,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친 다음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차갑고 매끈매끈한 거울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건 아쉬움의 표현이 아니라, 살아갈 힘을 잃지 앓기 위한 의식일 뿐이다. - P230

몇 분 후 카미유는 웬 사람과 마주 앉게 되었다. 에테르 냄새를풍기는 그 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때리세요?」나는 나 자신을 방어했을 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누군데 감히 나한테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지?」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할아버지는 쓰레기차에 부딪히실 뻔한 적도 있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치이실 뻔한 적도있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혼자 길을 건너는 게 위험할 것 같아서 어떤 젊은이가 도와주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하얀 지팡이로 그 젊은이를 마구 때렸대요.」「지팡이라니?」「양로원에서 준 지팡이 말이에요.」「그건 지팡이가 아니라, 브뤼슬리앙드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지. 내가 잠을 자다가 받은 거야.」「이제 명백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해요.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실 수는 없어요.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세상이 어둠에 잠기지도 않았고요.」상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
「태양이 꺼지고 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빛을 감지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제가 안과 의사로서 말씀드리는데, 할아버지의 시신경은 하룻밤 사이에 급격히 퇴화했어요. 그래서•••••• 카미유는 그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셨어요.」 - P234

우리 어린 신들은 누구나 조금은 우쭐대는 경향이 있다. 그건신의 속성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시조 신이 이르신 것처럼, <서로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험담은 종교 전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흰소리를 칠지언정 다른 신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비슈누가 내 등을 치면서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어본 그 어떤 험담보다 고약한 말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재밌어. 하지만 너 혹시 이런 생각 해본적 없니?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신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마치 우리가 인간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말이야」 까닭은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렸다. 내가 어떤 우월한 존재들의 장난감이라니!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가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존재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니! 왝, 나는 구토를 하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이튿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비슈누에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신들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신의 웃음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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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여기에는 개인적이거나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파급효과가 있다. 다른 생쥐가 ‘거슬려서‘ 공격적으로 행동한 우리 안의 외로운 생쥐를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가 이웃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환경이 얼마나 적대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지 생각해보자. 비접촉 시대의 위험성은 우리가 서로에 관해 잘 알지 못하게 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좀처럼 들지 않게 되고, 서로의 필요와 욕구에 무관심해진다는 점에 있다. 집에서 혼자 딜리버루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비접촉 생활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 편익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바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불가피성, 이 세 가지의 함수관계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이미 분리와 원자화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 P127

이 벤치가 앉기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그것이 이 벤치의 오롯한 목적이다. 거기서 노숙자가 쉬어가기 힘들게만들면, 거기서 스케이트보드 묘기를 펼치기 힘들게 만들면, 청년 무리가 거기서 무릎이나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기 힘들게만들면 사람들은 모여 쉴 만한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캠든 벤치는 이례적인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는 갈수록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이들을 몰아내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적대적 건축물‘이다. 배제에 초점을 둔 도시 설계, 공동체를 해치면서까지 누가 환영받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도시 설계. - P128

함께 노는 것이 금지된 아이들을 보는 것은 특히 충격적이다. 사실 과거나 현대나 이것은 매우 불편한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킨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부터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을 가운데 두고 설치된 시소를 타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35 문제는 이런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단속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자꾸 분리를 시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리라는 것이다. 사립학교, 사립대학, 사유지, 전용 리무진, 놀이공원의 ‘프리패스‘, 식당과 호텔의 특별 고객 전용 구역, 비행기 일등석, 클럽의 VIP 구역의식지 않는 인기를 생각해보라. 흔히 부유층은 스스로를 대중에게서 분리하기 위해 할증료를 지불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이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이러한 배제조치가 용인되지 않을까? 도덕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개인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앞서 봤듯이 배제된 느낌은 우리 모두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확인했듯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를 때 혐오와 공포를 키울 가능성이 더 크다. 반이민자 정서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곳은 이민자가 가장 적은 지역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들지역 사람들은 이민자와 직접 마주치거나 교류하거나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더 적다. 다양한 소득 집단·배경 · 민족 출신의 아이들이 자기동네에서조차 어울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해체와 사회 분열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 P135

사람들이 결속감을 느끼려면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공장소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곳에서 다름을 초월한 관계는 물론, 모든 관계가 태동하고 발전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 인종, 민족,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교류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반이 없다면 우리는 공통의 기반을 발견할 수 없다.
이 점은 특히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밀려들 새로운 경제적 어려움의 파고를 생각하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앞으로 몇 달, 몇 년 동안 이러한 공간에 대한 공공 지출을 줄이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그 어느때보다 뚜렷해진 사회적 분열을 이제라도 바로잡으려면 이런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08년 경기 침체 이래 생명력을 잃어버린 공공장소에 다시 자금을 투여해 예전의 활기를 되살리는 일은 이제 더는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기존의 공공장소에 다시 자금을 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새로운 건설사업에서 포용의 원칙을 중심에 둘 것을 약속해야 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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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유럽에서 3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조사(많은 사회과학자가 사용하는 집중적인 조사)에서 이민에 대한 극단적인거부감을 보인 사람의 공통점은 젠더나 연령 같은 기본적인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아닌 경제적 불안정, 동료 시민과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 사회적 고립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정치적으로 힘이 없고경제적으로 불안정하며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이이민자에게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특성이 무엇인가? 모두 외로움의 핵심 동인이다.
대신 탓할 수 있는 누군가 당신과 다르게 묘사되는 누군가 당신이 사실상 알지 못하는 누군가(반이민 열풍이 가장 거센 곳은 일반적으로 이민자 수가 적은 지역들이다)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증명된 필승 전략이다. 이것은 세계 경제나 신자유주의나 자동화나 공공지출 삭감이나 정부 지출의 불공정한 우선순위를 탓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스스로 주변화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들임에도 그렇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감정이 이성과 복잡성을 이기며 두려움이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은 타자를 적으로 만드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이 사실을 악용한다.  - P92

아렌트의 통찰은 1930년대 독일에서 21세기의 우리 세계까지, 외롭고 박탈당한 사람들의 정서를 하나로 모은다. 빌헬름이라는 청년이 이 정서를 정확히 대변한다. 빌헬름의 말만 들어본다면 그는 독일 제3제국에 사는 청년으로도 보이고 경제적 고난을 겪는 오늘날의어느 국가에 사는 청년으로도 보인다. "키 180센티미터 남짓의 호리호리한 체격에 머리칼과 눈동자가 검고 굉장히 지적인 인상의 잘생긴 청년인 빌헬름은 경기 침체로 수년간 실업자로 지냈다. 빌헬름은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를 위한 자리도 없었다. 내 세대는 그저 피하고 싶은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대학을 마치고 나는 1년간 실업자로 지냈다. [...] 실업자로 지낸 지 5년째 되어가자 몸도 영혼도 부서졌다. 독일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세상 그 어디에도 나를 원하는 곳은 없을 터였다. [...] 내 인생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빌헬름이 묘사하는 것은 사실 1930년대다. 빌헬름의 이야기는이렇게 이어진다. "바로 그때 나는 히틀러를 만났다. [...] 내 인생은 새로운 의미로 가득 채워졌다. 이후 나는 독일의 부활을 위한 이 움직임에 내 몸과 영혼과 정신을 바쳤다." - P94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무언가, 더 중대한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남을 친근하게 대하거나 남이 우리를 친근하게 대할 때 그 행위가 진정성이 있든 아니면 아주 짧은 순간 연출된것이든 우리는 우리가 공통으로 지닌 것, 즉 우리가 공유하는 인류애를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는 혼자라는 느낌이 덜 든다.  - P110

킴 타이나 핵찌와 함께 먹는 것이 혼자 먹는 것보다는 틀림없이낫겠지만 나는 이런 식의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관계가 우리 사회에불러올 결과가 우려스럽다. 돈으로 우정을 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우려하는 이유는 이렇게 거래로 이루어진 관계가 외로움을 완화해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상당 수준 외로움을 완화해준다. 거래 기반의 관계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정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매우 적기(돈으로 산 것이지 힘들여서 얻은 것이 아니므로) 때문에 우리가 결국 이것을 더 선호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인류학이나 경영학 분야의 연구를 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실제로 브리트니의 손님 가운데 몇 명은 "각자 나름의 문제로 각자 나름의 짐을 지고 있을 누군가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것보다는 그녀를 대여하는 것이 훨씬 만족스럽다고 했다.
아마도 이것이 먹방 팬들이 ‘현실‘ 우정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 여성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대학 시절 룸메이트의 전화를 받고 짜증을 느낀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제 막 식탁에 앉아 유튜브를 보려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친구와 통화하면서 식사를 해야 했죠. 정말 짜증났어요."그렇다. 이 젊은 여성은 친구 - 그녀를 개인적으로 아는 누군가 - 와 대화하는 것보다 혼자 앉아서 먹방 유튜버 니코카도 아보카도가 4,000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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