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시야가 희게 물들었다. 점멸 다음에는 괴성이 찾아왔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수면이 흔들리고 바닥이 진동했다. 젖은 흙냄새가 물씬 쏟아졌다. 물은 젖은 육지에 마른 발을 댄 채로, 제게로 쏟아지는 흙더미를 바라봤다. 산이 흐르고 있었다. 그토록 높고 단단했던 산이 물처럼 흘렀다. 마을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의 비명과 웅성임과 후회도 함께 물의 귀에 닿았다.

[산사태입니다. 주민 여러분들은 모두 긴급히 대피를 하여 주시기•••]

방송은 지직이는 잡음과 함께 멎었다. 물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곳곳에서 굴러떨어진 흙더미와 바위가 하천을 메워 갔다. 하천이 없어지면 물귀신은 어떻게 되려나. 사라질까? 그렇게 원하던 끝이었는데 반갑지 않았다.

이영을 보고 싶었다. 쏟아지는 비와 흙과 돌 사이에서 물은 이영을 기다렸다. 이영은 분명 올 테니까. 빗줄기가 얼굴을 아프게 때려서 눈을 제대로 뜰수가 없었다. 물은 힘겹게 눈을 떴다. 탁하게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흰 손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낯선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여울." - P71

1

평소와 다름없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김치콩나물국의 시큼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고,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올렸다. 주연은 애꿎은 밥알을 괴롭히며 맞은편에앉은 엄마를 바라봤다. 국에 밥을 마는 손등에 푸르스름한 핏줄이 돋아 있었다.

"밥 안 먹고 뭐 해?"

엄마가 툭 물었다. 주연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되물었다.

"이 상황에서 멀쩡하게 식사하는 게 더 이상한거 아니야?"

엄마는 김치를 집어 올리며 답했다.

"안 될 건 뭐니?"

주연은 사각형 식탁 앞에 앉은 아빠를 가리켰다.
창백한 안색의 아빠는 느리게 눈을 끔뻑이며, 빈 그릇에 헛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눈에 초점이라고는없었고, 그의 주위에서는 은은한 쉰내가 풍겨 왔다. 주연은 화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이 끓어오르는것을 꾹꾹 눌러 참고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 P75

"괜찮을 거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아 보였다. 당연히 울 줄 알았던 엄마는 울지 않았다. 이번엔 자신이 울 거 같아서 주연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옆에 눕는 엄마를향해 주연은 말했다.

"내 옆에 눕지 마. 내가 갑자기 좀비로 변할 수도있잖아. 내방 가서 자."
"상관없어. 좀비가 되면, 엄마 꼭 물어 줘."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진심이야. 꼭 물어야 해."
- P98

집안에 은은한 향내가 맴돌았다. 굿판이 끝난 뒤에 거대한 뱀의 시신은 나무 아래 묻혔다. 주연도 그저께, 제사를 지내자 바스라진 뱀의 가루를 엄마와 함께 동네 뒷산에 묻었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라 망신이다. 저게 뭐 하는 짓이래니?"
"엄마도 제사 지냈으면서."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엄마는 빠르게 말을 돌렸다.

"다음 주에는 네 아빠한테 다녀오자."

주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가 남긴 잇자국을 더듬었다. 그 잇자국은 꽤 오래 갔지만 분명하게 옅어졌고, 결국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었다. - P108

내가 떨어뜨린 비닐봉지를 주워 들었다. 안에는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초밥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제일 좋아하던 연어 초밥과 새우 초밥을 꺼내 뒤틀린 그녀 앞에 두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눈은 감겨있었다. 만약 뜨여 있었다면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문어 초밥을 골라 입에 넣었다. 문어 초밥은 그녀가 왜 싫어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초밥을 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더 빨리 집에 왔다면 달라졌을까?

내가 초밥을 사러 나가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전날 사과를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면 달라졌을까?

집안의 모든 과도를 버렸다면 달라졌을까?

어머니는 죽지 않고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상황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는 굳이 사과가 아니어도 언젠가 무슨 핑계로든 어머니를 찔렀을 것이다. 나 역시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 아버지를 죽였을 것이다. 동기나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언젠가는 벌어지고야 말 일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날이 오늘이었던 것뿐. 질긴 문어 초밥을 꼭꼭 씹어 삼키자 모든 미련이 사라졌다. 그리고나는 개운한 마음으로 칼을 들어 내 목을 찔렀다.

사라져 가는 의식 사이로 들어서는 안 될 생각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상황이 조금만 달랐다면 누군가는, 기왕이면 어머니가 살 수는 있지 않았을까? - P113

처음엔 아버지가 집에 온 것이라 생각했다. 배가고파서 부엌을 뒤지다가 멀쩡해 보이는 초밥을 발견했겠지. 나는 좁은 집 안을 샅샅이 뒤졌다. 아버지는 없었다. 만약 그사이에 다시 나갔다면 내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절대로 조용히 나가지않는다. 열려 있는 안방 너머로 모로 누워 잠든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사왔던 두 개의 초밥 상자 중 하나가 깨끗이 비워진채로 놓여 있었다. 마음에 작은 빛이 들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일어나 눈을 뜨면 다시 피 묻은 과도가 날 반기더라도, 기쁘게 내 목을 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P127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다.
내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게 아니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의 눈과 나의 눈을 보고서야,
누구를 막고 누구를 먼저 죽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의 시발점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어머니가표정을 잃기 전, 아버지가 술을 마시기 전,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기 전, 그리고 우리가 행복했을 때보다 더, 더, 더 전에 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 두 명이 만나기 전에.

"이제 한 번 남았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나는 이제 진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어떤 확신이들었다. 나는 목소리에게 물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으로도 갈 수 있어?"
"당연하지."

목소리가 기다렸던 대답이란 듯이 깔깔깔 웃어댔다. - P136

터덜터덜 걷는 뒷모습을 붙잡고, 손수건을 건네주고, 손도 한 번 더 잡고, 기왕이면 입맞춤도 한 번더 하고, 그럴 생각에 나는 설렜다. 이윽고 골목의코너를 돌았을 때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듬직한 뒷모습이 아닌, 목에 칼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찬석이었다.

찬석은 목에 박힌 칼을 붙잡은 모습으로 정지해있었다. 멀겋게 눈을 뜬 채였다. 검은 눈동자로 찬석의 붉은 피가 비쳤다. 찬석이 뽑지 못한 칼을 뽑은 것은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검은 옷의 남자였다. 남자는 꺾인 찬석의 목을 쥐고 칼을 쏙 뽑았다. 칼이 뽑혀 푹 꺾인 머리는 부서진 마네킹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남자는 그 모든 걸 지켜보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것도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비명을 지르는 것도, 도망을 가는 것도, 경찰을 부르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그모든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검은 옷의 남자는 우는 것 같이 웃었다. 찬석을 찌른 칼로 나 역시 찌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게 마지막이에요."

뒤돌아 골목길을 뛰어가는 남자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무엇이 마지막이라는 것인지, 무엇이 다행이라는 것인지,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남자가 뛰는 발소리를 알았다. 그 숱한 밤, 나를 따라오던 골목길의 발걸음. 나의 스토커. 그가 결국 찬석을 죽였다.

그리고 모든 게 암흑인 상태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기회는 세 번이야. 시간을 되돌려 줄까?" - P132

다음 날 나는 그들이 지나가는 골목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서로 <작은별>을 한 소절씩 나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아, 이노래.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추운 밤거리를 배회하며부르던 노래. 이 노래도 결국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불러 주는 노래였던가. 서로의 미래를 모르고마냥 행복해하는 그들이 안쓰럽고, 부러웠다. 부럽고 슬펐다. 너무 슬퍼서, 나는 그 좁은 골목 틈에서어머니를 데려다주고 홀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울었다. 젊은 아버지를 마주할 때까지 계속울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된 거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왜 이때처럼 계속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던 거지.
이렇게나 반짝반짝 빛나던 그들이었는데. 품 안의 과도를 버릴까 고민하던 그때, 쭈그려 앉아 있던 나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얹었다. 맑고 반짝반짝한, 작은 별이 박힌 동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추운데, 괜찮으세요?"

아, 나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나의 젊은 아버지는 어머니 말씀대로 좋은 사람이 맞았다.

그리고 나는 품속의 칼을 고쳐 잡았다. - P149

아이가 어릴 적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르던이름인데, 언제부터인가 부르지 않게 되었다. 부르지 않았다기보다는 부르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아마 아이의 키가 점점 커지고, 얼굴의 윤곽이 잡혀 가면서부터였다. 나는 차마 그 아이를 우리들의 이름으로 부를 수가 없었다. 커가는 아이의얼굴이 점점 ‘검은 옷의 남자‘의 얼굴이 되어 갔기때문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세 번이나 찬석을 죽이려했고 그중에 두 번은 진짜로 죽였으며, 결국 한 번은 내가 죽였던 그 얼굴을. 내 눈앞에서 홀연히 증발해 버린 그 남자를. 우리의 아이가 그 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얼굴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가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지만 아이를 바라볼 수 없었고 우리의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아이를 보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았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에서 도망치려면, 외면하는 수밖에없었다.

역시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오늘 문득, 모든것이 귀찮아졌다. 찬석은 이미 내가 사랑했던 찬석이 아니고 나 역시 그때의 내가 아닌데 아무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내가 사람을 죽여서까지 지켜냈던 나의 사랑이, 삶을 견디지 못하고저 아래로 곤두박질쳐 바닥을 기는 것을 지켜보는것도 너무 힘들었고 끔찍한 남자의 얼굴을 한 사랑하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데에도 질렸다.  - P155

그리고 마침내 이성이 나간 찬석이 마구잡이로그것을 휘두르다 내 목을 그어 버린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은 옷의 남자의 얼굴이 왜 아이의 얼굴인지, 나는 왜 그때 엉엉 울었는지, 아이가 왜 과거의 찬석을 죽이려고 했는지, 왜 그 자신이 사라지고 말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닥은 이미 내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흥건하다.
찬석의 표정을 보고 싶은데 고개를 들 수 없다. 멀리서 아이가 초밥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아이와 초밥을 함께 먹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세 번의 기회를 다 써 버렸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수십 년 만에 머릿속에서 울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는 깔깔깔, 하고 웃는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지. 깔깔깔."

나는 눈을 감는다.

아이가 현관을 들어오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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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구 결과들은 소셜 미디어 사용과 외로움의 연관성을 보여주었지만 거의 모든 연구에서 인과관계를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다시 말해 외로운 사람이 소셜 미디어를 더 사용하는 걸까, 아니면 실제로 소셜 미디어가 외로움을 유발하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최근 두 건의 획기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두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 사용 습관을 단순히 보고할 것만을 요청받은 것이 아니라 습관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라는지시까지 받았다. 이러한 변화가 행동과 기분에 미치는 효과를 직접 관찰·비교해봐야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구 결과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한 연구에서는 페이스북·스냅챗·인스타그램 사용량을 플랫폼당 하루 10분으로 제한한 결과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후속 연구들의 표준이 된 또 다른 연구는 두 달간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 절반은 페이스북을 평소처럼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소위 ‘치료‘ 집단)은 페이스북 계정을 전부 비활성화했다. 연구 결과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한 집단은 전에 페이스북에 쓰던 시간을 다른 웹사이트에서쓰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인터넷 자체를 덜 사용했고 친구나 가족을 직접 만나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행복감은 더 크게, 삶에 대한 만족감도 더 크게, 불안감은 더 적게, 그리고 외로움은 그리 현저하게는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로 더 적게 느낀다고 응답했다. 주관적 웰빙을 증진시키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페이스북 삭제는 심리치료를 받는 것과 최고 40%까지 동일한 효과가 있었다 - P172

‘포모FOMO‘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피어 오브 미싱 아웃 Fear Of Missing Out‘의 약어로 당신은 혼자 집에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른 어딘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봐 걱정하며 느끼는 초조한 기분을 말한다. 하지만 클로디아의 이야기는 단언컨대 그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데가 있다. 자기를 제외한 모두가 친구인 세상에서 혼자만친구가 없는 것 같은 두려움이다. 이 현상이 곳곳에 만연하자 최근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나는 이 현상을 ‘어 빌리프 댓 아더스 아 모어 포퓰러 A  Belief that Others are More Popular(남들이 더 인기 있다는 믿음)‘의 줄임말로 ‘봄프BOMP‘라고 부른다. 포모와 마찬가지로 봄프도 소셜 미디어로 인해 악화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굉장히 흔하게 경험하는 느낌이다.
봄프는 굉장히 괴로울 수 있고 나이와도 상관없다. 사회성이 뒤처진다거나 남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기분이 결코 유쾌할 리 없다. 실제로 나는 조사 과정에서 스스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고 느끼는 성인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클로디아의 홈커밍댄스 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성인 집단에서 겪은 탓이었다. 그들은 오랜 학교 친구들이 술자리에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거나 가족 모임에 아무도 자기를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라인에서 알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사실을 알 길이 없지만 오늘날에는 우리가 따돌림당한 사실이 실시간으로 총천연색으로, 필터와 렌즈와 음향효과까지 동원되어 우리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 - P178

소셜 미디어에는 우리 시대의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유해 요소가 있다.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공개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기가 없거나 또래 집단에게 거부당한 사실이 소셜 미디어에 공개된다. 아주 평범한 사교 모임조차 곧잘 인스타그램에서 기념되고스냅 스토리 Snap Story에 게시되기 때문에 우리의 부재는 쉽게 눈에 띈다. 이보다 더한 것은 ‘리트윗‘, ‘좋아요‘, ‘공유하기‘ 등 새로운 사회적유행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글을 게시하고도 남들에게 반응을 얻지못하면 단지 거절당했다거나 스스로 보잘것없다는 느낌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개적으로 거절당했다는 창피함마저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 P181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유해 콘텐츠를 스스로 규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고, 마크 저커버그도 이를 인정했다. 우리는 거대 기술기업이 스스로를 개혁하도록 강제할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혐오 콘텐츠를 신속히 제거하지 않았을 때 벌금이 부과되었지만, 거대 기술기업의 어마어마한 기록적 수익을 고려하면 액수가 너무 적어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중대한 위반을 범한 기업들은 총결산액에 영향을 줄 정도의 벌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어쩌면 마침내 변화가 임박했는지 모른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 두 군데에서 51명이 사망한 총격 사건이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되었다. 이후 호주는 혐오. 폭력물 공유 금지법을 도입했다. 이 법으로 ‘혐오·폭력‘ 자료를 ‘신속히‘ 제거하지 않은 기업은 전 세계 총매출액의 최고 10%까지 벌금을 부과받게 되었다. 115 이 법은 극단적인 콘텐츠("살인이나 살인 미수, 테러 행위, 고문, 강간이나 납치)를 공유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플랫폼 기업에 부과되는 벌금의 규모를 고려할 때 실로 획기적이다.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임원은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있다.  - P193

온라인 예의를 지킬 기술적 해결책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자밀자키 교수의 제안처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조정해 분노가 아닌 친절을 보상하거나 "열린 자세와 긍정적인 태도가 담긴 게시글이 더 빨리 올라가도록" 조치할 수 있다. 최소한 분노와 울분이 담긴 게시물이 그렇게 빨리 맨 위로 올라가지는 않도록 알고리즘을 손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니면 타인을 괴롭히는 표현이나 악플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달라고 이용자에게 소셜 미디어 플랫폼 기업이 부탁하면 어떨까? 인스타그램은 최근 몇몇 시장에서 이 방법을 시험해보고 있다.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를테면 "넌 너무 못생겼고 바보 같아"이라고 인공지능이 인식하면 게시 전에 이용자에게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보라는 내용의 팝업창을 띄우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기업들이 그동안 보여준 애매한 태도와 이일에 걸린 돈의 액수를 고려할 때 머리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칼(신하의 머리 위에 말총 한 가닥으로 칼을 매달아 권력자의 행운과위험은 한자리에 있다는 교훈을 준 디오니시오스 왕의 일화에서 온 표현 옮긴이) 같은 규제 없이 그들 스스로 충분한 조치를 취하리라고는 기대하출출을 지원기 어렵다. - P195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칸막이식 사무실에서 오픈플랜식사무실로 옮긴 직원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추적 조사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픈플랜식 사무실은 활기찬 면대면 협력과 심도 있는 관계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사교적으로 위축되는반응을 촉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사무실을 옮긴 후에는 대화보다 이메일이나 메신저가 더 많이 이용됐다. 사람들의 위축된 반응은 부분적으로는 오픈플랜식 사무실이라면 당연히 따라오는 요소, 즉 과도한 소음이나 산만한 주변 환경, 반갑지 않은 방해 등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도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았다.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과 어수선한 불협화음에 압도되어 우리 자신만의 고치 안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동이기도 하다. 여러 연구에서 55데시벨 이상의 소음(크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정도)은 우리의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큰 스트레스를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픈플랜식 사무실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크게 말하기 때문에 소음 수준이 이보다 높을 때가 많다"
소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마존 알렉사가 명령에 반응하려고 항상 대기 중이듯, 오픈플랜식 사무실에서 우리의 뇌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누군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옆 책상에서의 대화, 전화벨 소리 등 우리의 뇌는 주변의 소음을 항상 모니터링하고 있다.주변의 모든 소리를 듣는 동시에 무시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과제를 마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 P204

우리가 직장 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데에는 물리적 환경이나 기업 문화,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 우리 대다수가 일터에서 외로운 이유는 일터 밖에서 외롭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기분을 집에 떼어두고 일터에 출근하지 않으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토록 외로운이유 가운데 하나가 너무 많은 시간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전체 인구를 놓고 봤을 때 오늘날 평균 노동시간은 대다수 지역에서 몇십 년 전보다 감소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의 노동시간은 현저히 증가했다. 대개 대졸 학력의 전문 인력이 여기 해당한다.
이 집단의 경우 거의 모든 서유럽 국가에서 1990년대 이래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주당 50시간 이상)이 현저히 증가했다. 영국에서는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다. 일본에서는너무나 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말 그대로 죽도록 일하고 있어서이러한 현상을 일컫는 ‘카로시즌(과로사)‘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한편 중국에서는 특히 금융, 기술, 전자상거래 전문 인력들 사이에서오전 9시 출근과 저녁 9시 퇴근에 주 6일 근무가 흔해서 이것을 ‘996‘이라고 일컫는다.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대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오늘날 중산층 생활비가 20년 전보다 현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장시간 일하고 동시에 여러 개 직업을 갖는 것"이 직업인들 사이에서 갈수록 흔한 일이 되고 있다.  - P224

이유야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우리 대다수는 다음 날 다시 출근할 때까지 미뤄둘 수 있는데도 가족과의 시간에, 자녀의 학예회에서, 심지어 늦은 밤 침대에서조차 상사와 의뢰인과 동료에게 답장을 쓴다. 이렇게 가족이나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이 엉망이 되면 우리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까지 더 단절되는데도 그렇다. 관계를 돌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봄은 대충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봤듯이 공동체에 소속된느낌을 받으려면 먼저 공동체에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서나 가능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21세기 노동 환경과 결합된 지금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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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 하지만 늘 혼자

오늘날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인류사의 그 어느 사건과도 닮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항시적 연결‘ 상태에 있다. 바로 이 항시적연결이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독특한 본질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자에게 미소 짓지 못하게 하는 것, 버스에서 다른 승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단지도시 생활의 분주함과 속도만이 아니며,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규범만도 아니다. 휴대전화 스크롤을 내리고 영상을 시청하고 트윗을 읽고 사진에 댓글을 다는 매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과 함께 있지않으며, 우리가 더 큰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줄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는다. 앞서 봤듯이 이처럼 남에게 우리를 보여주고 우리 존재를 확인받는 소소한 순간이 진정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변하고 우리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변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을 때 낯선 사람과 미소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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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에는 17년째 가시가 걸려 있다. 모두가 그럴리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느껴진다. 하얗고 긴 가시. 그것은 기도로 넘어가기 직전의 통로에 단단히 박혀 있다.
열세 살 때였다. 우리 가족은 해안가에 위치한 소도시에 살았다. 근처에 사는 이모는 수산물 시장에서 물횟집을 했는데, 뱃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 끼를때우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자주 이모의 가게에 모여 식사를 했다.
밤이 되면 음울해지는 시장의 서늘한 공기와 묵은 비린내, 검다 못해 우주처럼 느껴지는 바다를 지금도 기억한다. 어항에 가까운 작은 수족관에는 그날 팔고 남은 해산물들이 아직 살아 헤엄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꼭 제 죽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 P7

생에 대한 미련과 분노를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아직 하천을 오가는 이들이 남아 있을 적의 이야기였다. 가끔 들르는 낚시꾼, 은밀한 곳을 찾아 흘러온 연인들, 어른들 말을어기고 싶어서 안달 난 어린애들. 물은 그런 이들을 자주 골탕 먹였다.
눈만 빼꼼 내민 채로 다가가거나, 안개 낀 날 고요한 표면 위로 희끄무레한 손목을 흔든다거나, 물장구치는 이들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면서. 사람들은 매번 놀라 도망갔다. 헐레벌떡 멀어지는 뒷모습을 볼 때면 증오와 부러움, 그 두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자신의 영역에 멋대로 침입한 이들을 쫓아내고 싶다가도 발목을 붙잡고 가지 말라 외치고 싶었다. 장난은 짧았지만 외로움은 길었으니까.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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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핵폭탄들이 모든 대도시를 가루로 만들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폭탄이 떨어지자마자 반대 진영의 핵폭탄이 비오듯 쏟아졌다. 혹자는 컴퓨터 시스템 때문에 그렇게즉각적인 반격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핵미사일 수백 개가 음산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갈랐다. 아마도 그 미사일들 가운데 하나가 진로를 이탈해서, 인간 세상을 산산조각 내는 대신에 태양계의 중심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또 금성이나 수성에 부딪히지도 않고 태양에 도달했으리라.
그 충돌로 어마어마한 빛이 발생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카미유는 잠을 자느라고 그 빛을 보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재난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불이 꺼졌다. 모든 불이 꺼졌다.
그리하여 지구는 어둠과 추위 속에 떨어졌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새벽빛은 밝아 오지 않았다. 그날부터 세계는 절대적인 암혹 속에 잠겨 버렸다.

카미유는 그날 이후로 매일 그랬듯이,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친 다음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차갑고 매끈매끈한 거울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건 아쉬움의 표현이 아니라, 살아갈 힘을 잃지 앓기 위한 의식일 뿐이다. - P230

몇 분 후 카미유는 웬 사람과 마주 앉게 되었다. 에테르 냄새를풍기는 그 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때리세요?」나는 나 자신을 방어했을 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누군데 감히 나한테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지?」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할아버지는 쓰레기차에 부딪히실 뻔한 적도 있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치이실 뻔한 적도있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혼자 길을 건너는 게 위험할 것 같아서 어떤 젊은이가 도와주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하얀 지팡이로 그 젊은이를 마구 때렸대요.」「지팡이라니?」「양로원에서 준 지팡이 말이에요.」「그건 지팡이가 아니라, 브뤼슬리앙드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지. 내가 잠을 자다가 받은 거야.」「이제 명백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해요.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실 수는 없어요.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세상이 어둠에 잠기지도 않았고요.」상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
「태양이 꺼지고 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빛을 감지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제가 안과 의사로서 말씀드리는데, 할아버지의 시신경은 하룻밤 사이에 급격히 퇴화했어요. 그래서•••••• 카미유는 그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셨어요.」 - P234

우리 어린 신들은 누구나 조금은 우쭐대는 경향이 있다. 그건신의 속성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시조 신이 이르신 것처럼, <서로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험담은 종교 전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흰소리를 칠지언정 다른 신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비슈누가 내 등을 치면서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어본 그 어떤 험담보다 고약한 말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재밌어. 하지만 너 혹시 이런 생각 해본적 없니?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신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마치 우리가 인간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말이야」 까닭은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렸다. 내가 어떤 우월한 존재들의 장난감이라니!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가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존재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니! 왝, 나는 구토를 하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이튿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비슈누에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신들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신의 웃음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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