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바로 디테일에있습니다. 예컨대 거대한 석상 문화로 유명한 이스터 섬의 문명이 몰락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는 무자비한 삼림 파괴에서 시작되어 그로 인한 전쟁, 지배계급의 전복,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인과의 궤적을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파괴야말로 문명 붕괴 요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공통적인 부분이라고 역설합니다. 즉 문명 붕괴 뒤에는 늘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와 무시가 있었다는 주장이죠.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문명의 붕괴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환경 파괴와 기아로 허덕이는 소말리아나 르완다, 모든 종류의 환경 훼손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중국, 심지어 오랫동안 자원 ‘채굴‘에 혈안이 됐던 오스트레일리아의 ‘현재‘가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하고있습니다. - P313
우리는 ‘이유‘를 찾는 동물입니다. 무언가가 우연히 일어났다는 설명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죠. 불확실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인과 스토리(어째서 그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설명)‘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진화과정에서 유리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유를 찾는 능력이 발달한 것이지요. 저자는 이것을 ‘믿음 엔진‘이라 부르며, 이 엔진의 과열과 오작동으로 인해 그런 이상한 믿음들이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가령 극히 일부의 암환자만이 민간요법의 효과를 보는데도 그 효력을 신봉한다든지, 출퇴근 방향이 비슷해 마주칠 개연성이 높았을 뿐인데도 그 만남을 운명으로 착각한다든지, 본인의 부주의로 생긴 교통사고를 신의 깊은 뜻에 의한 사건으로돌린다든지, 장로 또는 불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잘된다고 믿는 것 등이 그런 이상한 믿음의 예일 것입니다. 평소에 멀쩡한 사람들도 입시, 취직, 결혼, 건강, 자녀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엄습해오는 불안감으로 인해 믿음 엔진을폭발 직전까지 과열시킬 때가 있습니다. 이 폭발을 막으려면 순정품 냉각수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믿음의 근거를 돌아보게 하고 합리적 생각을 북돋아주는 회의주의 정신이야말로 그런 냉각수라고 말합니다. - P336
지난 40여 년 동안 대형 참사의 메커니즘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해온 예일 대학교 명예교수 찰스 페로Charles Perrow(1960-)는<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에서 불가피한 대형 사고를 유발하는 시스템의 복잡성과 상호연계성을 분석했습니다. 저자는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비롯하여 몇몇 석유화학 공장폭발 사고, 항공기 사고, 해상 사고, 광산 폭발 사고, 우주탐사사고의 실제 사례들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복잡하고 강하게상호 연결된 시스템이 수많은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오싹한 진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원전이나 우주탐사와 같이 수많은 요소들, 즉 부품, 절차, 운용자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시스템에서 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시스템의 속성상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붕괴로 이어지는 시스템의 속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자는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상호작용적복잡성이고, 다른 하나는 긴밀한 연계성입니다. 전자는 선형적복잡성 또는 순차적 복잡성과 다릅니다. 아무리 복잡한 생산 라인이라도 한 지점에서 문제가 생기면 경보가 울리고 그 라인이 정지될 것이며, 감독자는 점검을 한 후에 다시 시작을 하면 그만입니다. 이것은 순차적인 복잡성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잘못이 다른 오작동과 상호작용하여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요. 가령 드라이어가 과열되어 불이 났는데 집안의 화재경보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외출한 사이에 집이 몽땅 타버린 경우가 있을 수 있지요. - P377
이렇게 책읽기를 ‘저자와의 대담‘이라고 여기는 순간, 독서는지겨운 안구 운동에서 흥미진진한 대뇌 운동으로 진화합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코스모스>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세이건이 대담자로 초대된다는 사실을요. 제가 여기서 ‘대화‘보다는 ‘대담‘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도 있습니다. 대화는 대담에 비해 더 사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 있는데, 저는 고수의 책읽기는 좀 더 객관적이고 성찰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즉, 저자와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지요. 이를 위해서는 대화가 아닌 대담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 느낌과 감상만을 이야기하는사적 수준을 넘어서서, 새롭게 배운 것이 무엇이며 동의할 수없는(있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지를 성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책읽기가 더 흥미진진한 지적 게임이 됩니다. 좀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서평집에서 ‘대담으로서의 독서‘를 들고 나온 이유입니다. - P399
‘자신의 용어와 문장‘으로 저자의핵심 논지와 적절한 사례들을 요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후에 생각할 거리들 그것들이 어떤 쟁점들을 던져주며 어떤-함의들을 이끌어내는지까지 발굴해서 덧붙이면 금상첨화겠지요. 저는 이것이 바로 ‘토크로서의 독서‘이며 적극적 독서의궁극적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읽기의 끝은 지식의 비판적 ‘전수‘가 아닐까요? 많은 영장류 학자들이 침팬지는 ‘공동 주의집중joint attention 과 ‘문화 전수 cultural transmission‘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공동 주의집중‘이란 제3의 대상을 가리킴으로써 관심을 공유하는 행위를말합니다. 가령 제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여러분은 달을 함께 바라보겠지만 침팬지는 제 손가락 끝만 쳐다봅니다. ‘문화전수‘란 남들로부터 배움으로써 또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주는행위를 말합니다. 예컨대 침팬지는 우리처럼 패러디물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동료 침팬지에게 전수해줄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소개해주는 책들에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공동 주의집중), 그 책의 내용들을 자신의 언어로 타인에게도 이야기해주는 것(문화 전수)은 지구상에서 오직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서평집의 과학적 존재론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년 3월 보스턴에서 장대익 드림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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