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바에즈는 앞줄에 꼼짝도 없이 가만 앉아 있었다.
아일랜드식 옷깃과 소맷동이 달린 긴팔 감색 원피스를 입고무릎에 양손을 포개고 앉아 있었다. 사진보다 훨씬 더 범상치 않은 외모였다. 카메라는 그 얼굴에서 인디언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고 놀랍게 섬세한 골격과 눈을 놓치는 경향이있다. 특히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완벽한 직설, 꾸밈없는 솔직함을 포착하지 못한다. 훌륭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소유자, 옛날이라면 숙녀라고 불렀을 법한 모습이다. "인간쓰레기." ‘양차 대전 참전 용사‘라고 밝힌 노인이 씩씩거렸다. 똑딱이 나비넥타이를 한 노인은 이런 회합에 단골로 참석했다. "스패니얼 개 같으니라고." 미스 바에즈의 머리카락길이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지팡이로 톡톡 두드려 미스 바에즈의 관심을 끌려 했지만, 강단에 못 박힌 눈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스바에즈는 한참 후에 일어나서 장내가 완벽히 정숙해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반대편은 바짝 긴장한 채로 앉아서 정치나 학교나 턱수염이나 ‘버클리대학교 스타일‘ 시위나 기타 전반적 무질서에 관해 뭐라고 변명을 하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 반박할 태세를 가다듬었다.
"다들 4만에서 5만 달러 상당의 주택과 사유지의 가격하락을 걱정하시는데요! 미스바에즈는 마침내 느릿느릿 말했다. 낭랑한 목소리를 나직하게 깔고 감리위원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냥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캐멀 밸리에 1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역시 제 사유지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토지 소유주는 펫커스 박사와 부인을 바라보며 천진하게 미소 짓고 나서 완벽한 침묵 속에 제자리에 앉았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움직임은 나무의 일부가 된다. 도시는 콩배나무 안에 있다. 콩배나무는 진동을 받아 흔들리면 뿌리를 더 뻗어 자신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데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뿌리는 흔들림과 구부림에 저항할 수 있도록 뻣뻣해진다. 섬유소와 목질소 가닥이 증가하여 길이 방향의 힘도 커진다. 따라서 도시의 나무는 시골의 사촌보다 더 단단하게 땅을 움켜쥔다. 나무줄기는 움직임에 반응하여 둘레가 굵어진다.
내부에서는 목질부를 이루는 세포들이 더 촘촘하게 자라 벽을 강화한다.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금언은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의미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관계 학교에서는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경계선을 지우고는 나의 일부가 된다. 나무는 몸을 구부려 바깥에 있던 것을 안으로 품는다. 식물의 삶, 땅의 진동, 바람의 하품이 나누는 대화가 몸을 얻으면 나무가 된다. - P246

도시의 소리는 그 밖의 새로운 감각과 결합하여 이곳의 많은 종을 혼란에 빠뜨린다. 전자제품과 무선 신호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아지랑이는 시골보다는 전선과 송신기로 가득한 도시에서 더 강한데,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새의 나침판을 교란한다. 새들은 전파의 안개 속에서 갈 곳을 모른다. 경유 매연은 꽃향기의 화학물질과 결합하고 이를 왜곡하여 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도시의 향에 둘러싸인 나방은 냄새로 길을 찾지 못한다. 나뭇잎에 사는 미생물은 서로를 찾고 말을 걸지 못하는 듯하다. 도시에서는 미생물의 다양성이 매우 낮다. 이 새로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은 소수의 몇 중에 불과하다. 콩배나무도 그중 하나다. 비결은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이다.
밤 10시가 되자 콩배나무 꼭대기의 꽃들이 보름달 달빛을 반사하여 은빛으로 빛난다. 빛은 직진하지 않는다. 꽃잎이 받아들이는 것은 도시 협곡의 창문에서 반사된 달빛이다. 달 또한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빛은 꽃에서 꽃으로 흘러내린다. 아래쪽에서는 달빛이 뉴스가판대 네온등의 붉은 기둥과 뒤섞인 채 호박색 가게 정문을 비춘다.
해에서 석탄으로 전구로, 꽃잎으로 햇빛은 느릿느릿 지상을 활보하며 브로드웨이 대로에 아치를 드리운다. 남동쪽으로 몇 블록 가면 골목길이 온통 은은하게 빛나는 콩배나무 꽃터널이다. 운수평 (중국 청대의 화가 옮긴이)이 달빛 머금은 꽃을 그리다 이곳에도 붓질을 한 듯하다.
아침이면 17세기 중국의 이미지는 자취를 감춘다. 맥주 운반 트럭이 정차한다. 연소실에서 폭발이 일어나 피스톤 로드가 위아래로 움직이면 흰 배꽃 1만 송이가 흔들린다. - P250

연안도沿岸島의 이름이 마나하타에서 니우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뉴욕으로 바뀌는 동안 인간 아닌 생물의 다양성이 급감했다. 도시에서 생물이 감소하는 이러한 패턴이 전 세계에서 되풀이되었다. 주변 시골에 서식하는 토착종 조류 중에서 도시에 깃들어 사는 것은 평균 8퍼센트에 불과하다. 식물은 상황이 조금 나아서, 토착종의 4분의 1가량이 도시에서도 서식한다. 토착종의 다양성이 낮아지는 것과 더불어 균질화 현상이 일어난다. 전 세계 도시의 96퍼센트에 새포아풀Poa annua자란다. 유럽이 원산지로 키가 작은 새포아풀은 여러 풀이 교잡하여 진화했다. 이처럼 계통이 섞인 탓에 새포아풀은 부모가 많으며, 유전적 기억 덕에 도시에 적응하여 인류의 이동을 따라 전 세계 도시에 잽싸게 퍼졌다. 조류 공동체도 몇몇 코스모폴리탄 종이 지배한다. 콩배나무에서 본 비둘기, 찌르레기, 참새는 전 세계 도시의 80퍼센트 이상에서도 관찰된다.
이런 패턴을 보면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도시를 반대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도시는 지표면의 3퍼센트를 차지하고서 인구의 절반을 수용한다. 이러한 인구 밀집은 효율적이다. 뉴욕 시민이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은 미국민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뉴욕은 애틀랜타나 피닉스처럼 확장 중인 도시와 달리 교통수단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지난 30년 동안 제자리다. 덴버는 잔디밭이 아주 많은데도, 콜로라도 주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덴버 시민의 물 소비량은 주 공급량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골의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도시 인구가 모두 시골로 이주하면 토착종 조류와 식물은 날벼락을 맞을 것이다. 숲이 벌목되고 개울이 흙탕물로 바뀌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을 것이다. 이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도시 거주민이 교외와 준교외로 피신하면서 숲이 개간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한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도시 지역에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전 세계적 패턴을 개탄하기보다는, 빽빽한 도시 덕분에 시골의 생물 다양성이 증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254

이곳에서는 여러 공동체가 한 장소에 존재한다. 날, 철, 달의 시간이 장소를 나눈다. 오전 7시 30분에는 통근자들, 오후 2시 30분에는 유모차들, 한밤중에는 기침 환자와 담배꽁초 줍는 사람들, 일요일 아침에는 회당에 가는 유대교도들, 토요일 밤에는 취객들, 여름 새벽에는 조깅하는 사람들, 겨울 오후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사회적 토양의 각 층에서 사람들이 뒤섞인다. 사회적·경제적 계층의 장벽을 넘어. 내 시골 고향에 장이 서면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잡담하고 눈빛을 교환하고 상대방을 나무 아래에 데려가 낮은 목소리로 심각한 얘기를 하고 웃고 울고 끌어안고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수천 명이 지나치는 와중에 사회망의 이러한 발현을 알아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남은 주변의 움직임에 가려 흐릿해진다.
처음에 익명성처럼 보이던 것은 알고보니 수많은 공동체의 공존이었다. 나는 거리의 소음을 방향 잃은 원자들의 충돌로 착각했다. 내가들은 것은 관계의 팽팽한 끈 수천 개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였다. 마을장날이 떠들썩하기야 하겠지만, 이 소음을 만들어내는 그물망 개수에는 한계가 있다.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도 높다. 장터에서는 장애인의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는 고장나고 집은 저 아래 먼지투성이 길가에 있고 말동무라고는 시커먼 지빠귀뿐인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간 데 없다. 시골은 빈민과 환자를, 도시가 못 하는 방식으로 숨긴다. - P275

올리브나무

예루살렘
31°46‘54.6" N. 35°13‘49.0" E

고양이 세 마리 - 얼룩이, 노랑이, 커다란 검둥이 - 가 올리브나무 아래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야옹거리면서 서로 때리고 잘 다져진 흙 위를 뒹군다. 알 악사 사원의 금요 기도회는 몇 시간 전에 끝난 터라. 예루살렘 옛 성벽의 다마스쿠스 성문으로 빠져나오는 인파가 수천명에서 수십 명으로 줄었다. 올리브나무를 둘러싼 낮은 벽 아래쪽 광장에서 노점상들이 고함을 지른다. 신발, 오이, 오디, 허리띠, 자두, 커피머신 등이 든 상자가 주 통행로 주변을 덮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군중의 의복이나 말소리에 묻힐 일이 없기에, 상인들의 고함 소리는 성문의 높은 돌벽에서 부딪혀 메아리친다. "아샤라, 아샤라, ‘열‘ 냥이요!‘
군인 몇 명이 손가락을 총열에 올려둔 채 광장 주변에 서 있지만, 이날 오후에 경비를 서던 검은색 복장의 보안군 수십 명은 떠났다. 그들의 무장 트럭과 눈가리개 쓴 말도 막사로 돌아갔다. 해가 지평선에접근할 때 깨어난 서풍이 열기와 먼지를 가라앉힌다. 올리브나무는 빗자루 같은 가지를 흔들어 바람에 응답한다. 혹투성이 줄기는 2미터를 뻗었다가 네 가닥의 가지로 갈라져 2~3미터를 더 올라간다. 돔 형태의 무성한 우듬지는 8미터 너비로 벌어졌다. 올리브나무가 서 있는 곳은 도로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돌계단의 안쪽 만곡부다. 해가 중천에 뜨면 잎들이 이곳의 유일한 그늘을 드리운다. 고양이 세 마리가 등을 대고 뒹굴며, 허브 상인의 짐에서 떨어져 발길에 짓밟힌 세이지와 박하에 털을 비빈다. - P278

올리브나무는 지중해의 고된 여름에 잘 적응했다. 가장 뜨거운 시기에는 왁스를 잔뜩 칠한 것 같은 불투수성 잎의 숨구멍을 꽉 닫은채 혼수상태로 여름을 난다. 여름이 지나면 성문 옆 올리브나무의 잎들은 모양을 바꾼다. 햇볕에 마르지 않으려고 주맥 둘레로 대롱처럼 말려 가지 쪽으로 구부러지는 것이다. 그래야 다공성인 은빛의 잎밑면을 햇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밑면이 은빛인 것은 잎의 표면바로 위에 있는 투명한 세포 수천 개가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이 세포들은 작디작은 파라솔처럼 기둥에 얹혀 있으며 숨구멍 주변의 잎 표면 가까이에 수증기를 붙잡아두어 얇은 수분층을 만들어냄으로써 숨구멍이 더 오래 열려 있도록 한다.
대다수 올리브나무의 뿌리는 빗물을 흡수하기 위해 표토에 넓게 퍼져 있다. 이곳의 빗물은 깊이 스며들기 전에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과 수분의 공급 패턴이 달라지면 올리브나무 뿌리의 구조는 환경에 맞게 변화한다. 관개 시설이 있는 과수원에서는 뿌리가 관개수로 근처에 뭉쳐 있으며 1미터 넘게 파 들어가는 일이 드물다. 성기고 마른 흙에서는 굵은 뿌리 대여섯 가닥이 제각각의 경로를 따라 6미터깊이로 뻗는다. 나무뿌리는 다 적응력이 있지만, 올리브나무 뿌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뿌리의 역동성은 줄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늙은 나무의 줄기는 근육질의 이랑 사이사이에 깊은 골이 파여 있어 세로로 홈이 난 모습이다. 이랑 하나하나가 원뿌리 하나하나와 이어져있다. 그 뿌리가 물을 찾으면 거기에 연결된 줄기와 가지는 수십 년 동안 생장한다. 뿌리가 죽거나 뿌리 주변에서 물이 마르면 연결된 땅 위부분들도 죽는다. 수령이 몇십 년 이상인 올리브나무는 이렇듯 반半독립적인 뿌리·가지 덩이의 결합체다. - P281

‘나크바의 날‘ 시위가 끝나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마스쿠스성문 앞 장터가 다시 열렸다. 그 모든 공간의 아래에서는 물이 돌 위로 흘렀다. 병사들은 서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관개수로를 갖춘 잔디발, 물놀이장, 분수가 있는 곳으로 시위대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장벽을 통과하고 나서는 옛집 열쇠를 써보지 못한 채 서안지구와 수용소로 돌아갔다. 서안지구는 50년간 군사 통치를 받았다(오슬로 협정이후로 제한적 자치가 허용되기는 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장벽과 경비대가 보호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마을, 농장과 붙어 있다. 정착촌과 마을은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구분된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지붕에는 검은색 물탱크가 빼곡하지만, 이스라엘 정착촌의 지붕에 있는 (수로를 갖춘 야자나무 뒤로 슬쩍슬쩍 보이는) 저수 시설은 몇 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생존이 아닌 태양열 난방용이다. 현지 타운과 마을을 그대로 통과하여 정착촌으로 곧장 흐르는 이 수로는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필라테의 수로를 연상시킨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지붕 물탱크는 군사적·정치적 갈등으로 물 공급이 차단되거나 연례행사처럼 (이스라엘 정착촌에는 풍부하게 공급되면서) 배급이나 제한 급수가 이루어질 경우를 대비한 비상용이다. - P288

1950년대에 이스라엘 발명가들이 유속 조절용 플라스틱 상자와 구멍을 개발했다. 이 방식에다 호주와 유럽의 점적관수(가는 구멍이 뚫린 관을 땅속에 약간 묻거나 땅 위로 늘여서 작물 포기마다 물방울 형태로 물을주는 방식_옮긴이) 파이프를 접목한 덕에 젊은 나라 이스라엘의 농부들이 독립 선언을 재천명하고 메마른 땅과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할" 수 있었다. 관개용수는 저수지나 희석한 하수나 (일부 지역에서는) 짠물에서 얻었다. 아마겟돈 숲에서는 키부츠와 교도소에서 배출된 하수가 파이프를 통해 흘렀다. 겨울철 몇 달간만 비가 내리는 곳에서 는 남들이 폐수로 치부하는 것이 귀중한 액체가 된다. 이스라엘 농부나 올리브 연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필요는 좋은 스승이다"라는 유럽의 옛 속담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점적관수는 올리브나무에 물을 공급했을 뿐 아니라 나무의 성질자체를 바꿨다. 아마겟돈의 올리브나무는 다마스쿠스 성문의 근육질나무나 껍질에 골이 파인 고목처럼 빗물에만 의존하는 나무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이곳의 올리브나무는 신품종의 어린 나무로, 빨리 자라고 기름을 많이 내도록 개량되었다. (포도 수확기를 개조한) 집채만한 수확기가 가랑이를 벌린 채 굉음과 함께 올리브나무 위로 지나가며 가지의 올리브를 흔들어 따서 호퍼(석탄, 모래, 자갈 따위를 저장하는큰 통_옮긴이)에 담는다. 흙이 축축하면 가지를 흔들 때 줄기가 통째로뽑히기도 하는데, 그러면 새 어린나무로 대체한다. 어떤 나무도 수확기입구보다 높거나 넓게 자랄 수 없다. 높이는 약 2미터, 너비는 1미터가 최대다. 나무들을 양팔 간격으로 심어서 울타리처럼 우듬지가 겹친다.
이 방식을 개발한 이스라엘인 라비 시몬Lavi Shimon은 국제 학술회의에서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것처럼 관개수로를 설치하고 올리브나무를 빽빽하게 일렬로 심어 재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의 혁신적 재배 방식은 스페인과 호주에까지 보급되었다. - P290

우리는 나무 아래에 천막을 깔고 손으로 올리브를 땄다. 올리브는1950년대식 트랙터가 끄는 트레일러 화물칸에 실려 운반되었다. 당나귀들이 근처 밭에 서 있다가 일꾼들에게 물을 날라주고는 올리브 자루를 집과 압착기로 가져갔다. 나 같은 풋내기가 올리브를 따는 밭에서는 머뭇머뭇 띄엄띄엄 소리가 났다. 농부와 가족은 수확 솜씨가 뛰어나서, 손가락이 잔가지를 훑으면 올리브가 두두둑 우박 소리를 내며 천막을 두드렸다. 사람 목소리가 각각의 나무를 후광처럼 둘러쌌다. 나의 서툰 아랍어 실력과 유창한 동료들의 통역을 통해 몇 마디는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다리에 올라선 남자들은 가지치기 하는 법, 양고기 요리하는 법, 올리브유를 최대한 많이 짜내는 법을 놓고 설전을벌였다. 여자들은 남자 방문객이 있으면 대부분 입을 다물었지만, 외국인이 다른 나무로 이동하면 웃음소리와 가족 이야기가 가지 사이로터져 나왔다.
수확하는 동안 각 나무는 인간적 스토리텔링의 중심이 되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사람, 나무, 땅, 그리고 이들의 관계였다. 들판의 수확이끝나갈 즈음이면 수만 개의 단어가 입에서 귀로 흘러들었다. 이렇듯풍경의 마음-기억, 연결, 리듬 중 일부는 인간의 의식 속에 간직된다. 올리브나무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름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생태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지어내고살을 붙이는 것이다. 다마스쿠스 성문 옆의 올리브나무와 맨해튼의 콩배나무는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소식과 물건을 교환하는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다. 맨해튼에서는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매일 수천 명이 나무 주위에서 교류한다 - 도시의 교류는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장에서 가족과 이웃이 나누는 대화의 단단한 매듭에 비하면 짧은 접촉에 불과하다.
분리 장벽 건너편에서 올리브를 따는 것은 대부분 기계 아니면 태국 이주 노동자다. 태국 노동자들은 수학과 괭이질과 땅파기를 하던 팔레스타인인과 시오니스트 농민을 대신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파견되었다. 여느 산업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사회망은 이제 나무에게서 거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스라엘인의 수가 하도 적어서 키부츠의 95퍼센트가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한다. 농장 노동자 중에서 히브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에레츠 이스라엘Eretz Yisrael(‘이스라엘의 땅‘이라는 뜻으로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옮긴이)에 대한 농업 지식은 이제 태국어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된다. 농업부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농업을 장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시민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일꾼들은 여권에 외국인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토종이다. - P297

나와 이야기를 나눈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 군이나 분리장벽이나 정착민에게 나무를 빼앗겼다. 장벽이나 정착촌 울타리 때문에 땅이 잘려나간 사람도 많았다. 농부들은 정착민들이 나무를 베고 제초제를 뿌리는 장면, 사람들을 쏘거나 때리는 장면, 농장에 불을 놓는 장면을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장벽 너머의 과수원을 방문하려고 해도 군인들이 잠깐씩밖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어떤 농가는 할아버지만 허가를 받았는데, 올리브 농장을 손으로 가꾸고 수확하려면 1헥타르당 300~400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방치된 채 농장이 폐허가 되어간다. 많은 관문에서 연장과 물병의 반입이 금지되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자기네 예전 과수원을 차지한 이스라엘 정착민에게서 마실 물을 사야 한다.
이런 조치가 나무와 사람의 유대 관계를 끊는 데는 몇 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농장은 잡초밭이 되고 화재에 취약해진다.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는다. 서안에서는 장벽 너머의 올리브 수확량이 평균 75퍼센트 감소했다. 3년간 경작하지 않은 땅은 국가에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안보에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땅은 군대에 징발된다.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의 행동이 이스라엘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면 불법이던 정착촌이 합법으로 둔갑한다. 서안의 땅은 한 조각 한 조각 합병되고 주민들은 점점 좁아지는 거주 구역으로 내몰린다. 희망도 점점 쪼그라든다. 농부 한 명이 장벽 너머의 몇 그루 남지 않은 나무를 돌보고 나서 철조망 사이를 걸어 돌아오며 내게 말했다. "지금보다 더 비참해질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그는 예전에는 트랙터를 타고 왔다 갔다 했지만 지금은 늙은 당나귀를 몰고 걸어다닌다.
선동가들이 이 좌절을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비좁은 통로와 급조된 콘크리트 주택뿐인 지닌 난민촌의벽에 붙은 포스터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거나 자살폭탄 공격을 저지른 사람들을 기리는 것뿐이다.  - P3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미를 끌 만한 것은 바 뒤편에 내리던 파란색 인공 비뿐이었다. 남들만큼 나도 그 비가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걸 보면서여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내 동생은 영화를 보러 갔다.
우리는 일주일에 사나흘씩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 역할을 하던 어두운 반원형 막사의 접이의자에 앉았고,
밖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1943년 여름 그곳에서 처음 존 웨인을 보았다. 그 걸음걸이를 보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와일드캣의 전쟁>이라는 영화에서는 존 웨인이 여자에게 "미루나무가 자라는 강가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나는 서부영화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여자로 자라나지 못했고 내가 사귄 남자들도 장점이 많았으며그들이 데려가준 장소들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남자들은 존 웨인이 결코 아니었고 미루나무가 자라는 강가로 데려가준 적도 없다. 영원히 인공 비가 내리는 내 심장 깊은 곳 한켠에서, 아직도 나는 그 대사를 듣게 될 날을 기다린다.
자기현시의 차원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기억까지 불러오려 애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존 웨인이 말을 달려 내 유년기를 가로질렀을 때, 아마 당신의 유년기도 가로질렀을 때,
그 남자가 우리 꿈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형성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런 남자가 병에 걸린다니, 몸속에 병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치료하기 힘든 병을 품고 다닌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소문은 어떤 모호한 불안을 건드려 느닷없이 우리로 하여금 유년기를 회의하게 했다.
존 웨인의 세계에서는 존 웨인이 대장인 줄 알았는데, "달리자" 존 웨인은 말했다. "말을 타." "앞으로!" 그리고 "사나이는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어이, 안녕하쇼" 처음 여자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했다. 건설현장 숙소일 수도 있고 기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웃자란 수풀을 헤치고 말을 달려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포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아무튼 존 웨인이 말하면 의도의 곡해가 있을 수 없었다. 그처럼 강렬한 성적 권위는 어린애라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돈 욕심과 의혹, 사람의 손발을 묶는 모호성으로 규정된다고 우리가 일찌감치 알아본 상황에서 존 웨인은 다른 세계를 암시했다. 과거에는 있었을수도 있고 과거에도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인간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저 나름의 도덕적 코드를 만들어 지키며 살 수 있는 장소, 남자가 해야할 일을 한다면 여자를 얻고 역경을 헤치고 달려가서 끝내는 자유인으로서 자기 집에 살게 되는 세상 말이다. 그 남자는 몸속 어디가 잘못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게 아니라, 꽃다발과 약과 억지 미소에 둘러싸여 높은 병상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반짝이는 강물 어귀 이른 아침 햇살에 은은히 빛나는 미루나무 숲속에 있어야만 한다.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흙이 레드우드를 덮었을 때 시작된 한화는 오늘날까지 계속되었다. 에오세의 기후와 마찬가지로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갈지자걸음이 내리막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가 탄생한 것은 이러한 한랭화 추세 덕분이다. 유난히 춥고 건조한 기후 때문에 아프리카의 숲이 후퇴하면서 우리의 선행인류 조상들은 갓 출현한 사바나와 초원으로 이동했다. 탁 트인 평원에 살던 이 유인원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했으며 인류의 모든 역사는 비교적 추운 시기에 전개되었다. 큰그루터기 주변 풍경- 한랭 건조 기후로 인한 광활한 초원과 잡목림의 풍경을 둘러볼 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이러한 판단이 나의 인간적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로리선트의 에오세 레드우드 가지에서 곤충을 사냥하던(주머니쥐 닮은) 동물이나 아래쪽에서 잔가지를 뜯어 먹던 난쟁이 말은 안개비 너머로 보이는 높고 무성한 식물의 풍경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 P186

생태적 아름다움은 자극적인 예쁨이나 감각적 참신함이 아니다. 생명 과정에 대한 이해는 종종 이런 피상적 인상을 뒤엎는다. 화상 ‘흉터‘는 실은 오래도록 기다린 재생일 수도 있다. 발밑의 미생물 공동체는 산에 깔린 석양의 뚜렷한 장관보다 더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썩은 것과 더러운 것에서 찐득찐득한 숭고미를 찾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생태미학, 즉 생명 공동체의 특정한 부분 안에서 지속적이고 체화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능력이다. 관찰자, 사냥꾼, 벌목꾼, 농부, 포식자, 음유시인, 유해 미생물과 공생 미생물의 서식처 등 생명 그물망 내의 다양한 존재 양태로서의 인간도 이 공동체에 포함된다. 생태미학은 인간의 자리가 없는상상 속 황무지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의 속함을 향해 발을 내디디는 것이다. - P193

 잎을 수색하는 사이사이에 녀석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잔가지 끝에 덜 자란 단풍나무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한참 뒤에 떨어질 시과翅果(열매의 껍질이 얇은 막 모양으로 돌출하여 날개를 이루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 흩어지는 열매_옮긴이) 헬리콥터의 축소판으로 두툼하고 윤기가 난다. 단풍나무의 잎은 자라면서크기가 커진다. 많은 잎이 이미 곤충의 입에 잘리고 말리고 뚫렸다.
4월 초에는 조용하던 산들바람이 단풍나무의 목소리인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를 얻었다. 잔가지를 따라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의 진동은 살랑거리는 잎보다 1000만 배 느리다. 맥박 치며 피를 순환시키는 대동맥처럼, 잔가지는 밤새도록 부풀어 있다. 세포가 물로 포동포동해지기 때문이다. 여명이 밝아 태양이 잎에서 수증기를 뽑아내면잔가지는 빨대를 쭉 빨아서 쪼그라들듯 굵기가 줄어든다. 이 축소 현상은 아침 내내 계속되어, 정오가 되면 잔가지는 해 뜨기 전보다 40마이크로미터 가늘어져 있다. 대개 한낮이 되면 뿌리는 흙 속의 수분을 모조리 빨아들인 뒤다. 그러면 물의 상승이 멈춘다. 물이 오후의 공기중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잎이 숨구멍을 닫으면 잔가지를 꽉쥐고 있던 힘이 느슨해진다. 저녁이 되면 물이 뿌리와 줄기로 돌아오고 잔가지의 둘레가 커진다. 이 리듬에 더해 세포가 새로 생기고 팽창하면서 지름이 매일같이 조금씩 증가한다. 화창한 일주일 동안 단풍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면 그래프에서 정오의 골이 일주일 전 꼭두새벽의 마루보다 높아진다. - P206

20년 전에는 구름이 더 두터웠다. 그때는 소금과 모래를 오늘날보다 세 배 많이 살포했다. 호흡은 지질학적 경험이었다. 축축한 허파꽈리는 공중을 떠다니는 암석층(먼지) 때문에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이제 도로관리청에서는 소금을 훨씬 효율적으로 쓰지만, 요즘도 이따금 소금이 쌓여 전력선이 단전된다. 19세기에 콜로라도를 홍보한 이들은 "사철 밝은" 햇빛과 "상쾌하고 건강에 좋은" 공기를 약속했지만, 날씨야 어떻게 되든 신속하고 정확하게 고무로 아스팔트를 마찰시키려는 우리의 집단적 욕망에 공염불이 되었다.
눈이 녹고 비가 내리면 길거리와 공기가 깨끗해진다. 하지만 뭍의 청결은 물의 혼탁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소금, 모래, 미사는 대부분 사우스플래트와 체리크리크로 흘러든다. 토사에 오염된 물은 도시의 가래침이다. 미루나무 앞의 개울물은 여느 때는 수돗물처럼 깨끗하지만겨울 눈이 녹으면 뿌옇고 흐릿해진다.
덴버의 물은 잠깐 동안 복대기(광석을 쌓아 금을 골라낸 뒤 남은 돌가루-옮긴이)가 된다. 들판미루나무plains coltonwood 종의 분포도는 북아메리카 대륙 중앙에 불규칙한 타원형으로 나타난다. 어느 해안에서도몇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하지만 흙이 메마른 탓에 나무는 주기적인 소금 범람에 적응해야 했다. 비가 찔끔 왔다가 땅이 마르는 일이 반복되면 깊은 토양층에서 염분이 끌려 올라온다. 비가 내릴 때마다 토양의 염분이 녹는데, 증산 작용과 흙 입자의 모세관 인력으로 물이 딸려 올라오면 태양이 이 용질 용액에 녹아 있는 물질 옮긴이)을 더 높이 끌어 올린다. 땅이 완전히 젖으면 염분이 씻겨 내려가지만, 미루나무가있는 지역에서는 큰비가 드물다. 따라서 서부 미루나무의 조상은 소금기 있는 흙을 겪어봤으며, 살아남은 나무는 이 지식을 현 세대에 전해주었다. 미루나무는 끈기로는 사발야자나무를 당해낼 수 없지만, 미루나무의 세포는 염분을 방에 격리할 수 있고, 염분의 친수성을 완충하는 방어 화학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소금기 있는 표토보다 아래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또한 미루나무 뿌리는 염분에 저항력이 있는 균류와 그물망을 형성하여 물, 영양소, 방어 화학물질을 얻는다. 땅 위에있는 미루나무 싹은 폰데로사소나무와 마찬가지로 나무 전체에서 가장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 깃대를 올린 것은 땅속 공동체다 - P219

송어 낚시꾼 한 명당 장비 가격이 1000달러는 되는 것 같다. 내 의류는 상대도 안 되지만, 내 배낭에는 소리를 낚고 빛을 피는 전자기기가 들어 있는데 가격이 얼추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일이나 가족으로부더 하루 동안 해방될 여유, 입장료와 기름 값을 낼 돈, 들판에서 협곡까지 주파할 수 있는 튼튼한 자동차가 있다. 우리는 모두 남성이며, 몇십 년째 퇴직금을 붓고 있을 것이다.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는 21세기 초 미국에서의 경쟁을 간결하게 요약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모두 자신이 백인이라고 믿는다. 예전 같으면 우리는 겉보기에는 같아도 "가톨릭교도, 코르시카인, 웨일스인, 메노파 교도, 유대교도의 계층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특권을 타고났으며 백인공작으로, 들로 산으로 다니며 셰익스피어의 공작처럼 ‘속세의 잡답을 피해서 나무에서 혀, 시내에서 책, 돌에서 설교/ 어디서나 좋은것을 찾을 수 있다. 같은 나무와 돌이지만 혀와 책과 설교는 다르다.
주디 벨크udy Belk는 미국 서부의 평원을 가로질러 가족과 자동차 여행을 했는데, 그녀의 아들은 "오클랜드 출신의 흑인 네 명이 몬태나주 시골길을 달린다는 계획을 처음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 "미쳤군아들의 반응은 캐럴린 피니Carolyn Finney의 말을 빌리자면 "두려움의 지리의 표출이었다. 미국 역사와 현재의 인종 간 불평등으로 보건대 야외에서 아무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극소수의 인구 집단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나이 든 백인으로서 내가 숲과 강, 제복 차림의 무장한산림 경비대에게 접근하는 맥락은 흑인 십대와는 전혀 다르다. J. 드루래넴. Drew Lanham의 ‘흑인 탐조인을 위한 아홉 가지 규칙‘ 중 하나는이것이다. "후드티를 입고 새를 관찰하지 말 것. 절대로"
숲, 개울산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 이곳 또한 ‘보이지 않는 숲orestunseen(저자의 전작 숲에서 우주를 보다」의 영어 원제_옮긴이), 들리지 않는 숲이다. 이 외로운 개울에 백인들은 자신이 죽인 것의 시체를 내다버린다. 나무에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신기한 열매strange fruit"(백인에게 살해당해 나무에 매달린 흑인의 시신을 상징한다_옮긴이)가 매달려 있다. ‘야외‘들, 숲, 녹지에는 폭력의 기억이, (지금도) 폭력의 위협이 서려 있다. 국립공원 관리소의 빌 귈트니Bill Gwaltuney가 산림 경비대원이되겠다고 가족에게 말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경고했다. "숲에는 나무가 많고 밧줄은 값이 싸단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올가미에 목매달려 죽었다) 언론인이자 산악인 제임스 에드워드 밀스James Edward Mills는 과거와 현재의 위험이 남긴 유산을 ‘사회적 기억에 주조된 문화적 장벽" 이라고 부른다. - P223

인간의 이동 패턴이 독수리, 하루살이, 기러기, 사향뒤쥐 같은 동물의 패턴과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근원이지만 인공적 환경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던 생명 공동체를 다시 자각하게 된다. 물의 흐름과 신체의 움직임이 이렇게 합일되면 속함은 더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안무를 통해 표현된다. 하지만 안무가는 개체가 아니라 많음 사이의 관계다. 강은 생명 없는 물 분자의 통로가 아니라 생명체다. 아마존 사라야쿠 운동가의 말이 들린다. "강은 살아서 노래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 전략입니다."
인간은 이 많음의 일부다. 사우스플래트와 체리크리크는 상류의 많은 저수지와 샛강이 합쳐진 물줄기다. 덴버 수자원 관리국의 현황 표와 관리 계획은 하천의 물방울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개입이 강을 길들여 야성적 본성을 사라지게 할까? 그럴 리 없다. 물 관리 계획을 작성하는 손, 글자가 표시되는 종이나 화면, 댐을 고안한 기술자, 사우스플래트강의 도심 속 물길은 (연방에서 지정한 ‘보호‘ 구역인)상류의 물 못지않게 야생이고 자연적이고 편안하다. 우리도 자연이다. 떼어낼 수는 없다. - P229

자연과 비자연의 이분법적 풍경은 한번 고착되면 스스로를 강화한다. 녹지와 무분별한 개발의 대조가 극명해질수록 ‘녹지‘의 필요성이(겉보기에) 커지는 반면에 나머지 풍경은 더더욱 비자연적으로 보이게된다. 이런 세상에서 도시는 환경주의자들에게 멸시받지만, 사람이 없는 공원, 숲 보호구역, 지정 녹지는 칭송받는다. 풍경의 이중성이 커짐에 따라 인간이 세상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환경주의 전통, 농업 전통, 과학 전통 깊은 곳에서는 도시에 대한 적의가 흐르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이렇게 썼다. "대도시의 군중이 순수한 정부를 뒷받침한다는 말은 상처가 근력을 뒷받침한다는 말과 같다." 미덕은 시골의 백인 ‘농부‘에게서 찾아야 했다. 뮤어가 자연을 만난 것은 "우둔한 도시의 계단과 죽은 보도와의 교류에서 탈출한 뒤였다. 앨도 레오폴드의 ‘땅‘에는 "토양, 물, 식물과 동물은 포함되지만 인간 거주지의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레오폴드가 보기에 ‘인간이 야기한 변화는 진화적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며 마치 질병과 같은 혼란을 낳는다. 학계에서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생태학이 생태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외콜로기(kologie"19세기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그리스어 ‘오이코스-기아kactovrier‘에서 작명한 독일어 신조어라는 이 분야의 이름은 ‘거주지 연구‘라는 뜻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주력 사업인 장기생태연구Long-TermEcological Research 프로그램에 도시 지역에 추가된 것은 1997년 들어서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생물학 현장 연구 시설은 대부분 도시와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자연이 타자이고 별개의 영역이며 인간의 비자연적 흔적에 오염된다는 믿음은 우리 자신이 야생의 존재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콘크리트보도, 페인트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액체, 덴버 시의 성장을 계획하는 시청 문서는 환경을 조작하는) 영장류의 진화된 정신 능력으로부터 발현되었다는 점에서 미루나무 잎 부딪히는 소리, 새끼 아메리카물까마귀의 부름소리나 삼색제비의 둥지 못지않게 자연적이다.
물론 이 모든 자연 현상이 슬기롭고 아름답고 정당하고 좋은가는 별개 문제다. 이 수수께끼를 가장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연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코틀랜드가 현재 석탄에 의존하는 한 가지 이유는 산림 훼손이다. 15세기와 16세기가 되자 스코틀랜드 숲 지대의 95퍼센트가 벌목되었다. 남은 연료는 땅속에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공장의 보일러와대다수 가정의 난로에서 나무가 사라졌는데도 나무는 말 그대로 석탄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탄광의 모든 갱도는 돌의 무게에 작용하는 중력과의 도박이다. 탄광 연보와 탄광 조사관 보고서는 탄광주의 지질학적 도박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이들들은은 "천장이 무너지고 석탄이 무너지고돌이 무너지고잔해가 무너져 죽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재난을 막아줄 것이라고는 나무 말뚝과 가로대로 만든 ‘갱도지주차‘뿐이었다. 현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남유럽에서 잘라 온받침목들이 포스강에 늘어선 선착장에 하역되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스코틀랜드 지주 젠트리 계급은 땅을 조림지로 전환하여 갱도지주를 공급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광부들은 목숨을 부지하려면 갱도지주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나무는 부서지기 전에 끼익, 빽하는 소리를 낸다. 뒤틀린 나무의 비명 소리는 천장이 무너지기 전에피신하라는 신호였다. 탄광주들이 갱도지주를 철제로 교체한 것은 철의 뛰어난 강도로 보건대 개선인 것 같았지만, 문제는 경고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철은 사전 경고 없이 파국적으로 무너진다. 이 때문에 광부들은 목재 갱도지주를 철제 지주에 덧대어 청각적 조기 경보 시스템을 복원했다. 광부들의 목숨을 구한 공로는 카나리아보다 나무에게 돌아가야 한다. 카나리아는 21세기의 혁신적 발견으로, 재난이 닥친 뒤에 구조대원들이 주로 활용했다. - P152

 어떤 지역이 부유해지면 자기네 숲을 보호하고 숲 면적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목재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입이 증가하여 목재 수입국의 무성한 숲 지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림 훼손이 일어날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 북부 나라들은 현지의 정치적 압력이 아니더라도 임목만 가지고는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 땅과 숲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재 펠릿을 다른 곳에서 구해야 한다. 미국 남동부의 목재 소유주들은 국내 판매량이 당장 급증할 기미가 없으므로 기꺼이 유럽 구매자들과 장기 계약을 맺는다.
각국의 국민과 나무는 예전에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단단히 매여 있다. 영국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캐롤라이나와 조지아의 숲과 조림지가 벌목된다. 파운드로 납부된 세금은 달러로 짓는 펠릿 공장에 흘러든다. - P156

펠릿이든 석유, 재생가능 에너지이든 아니든 수입 연료는 그 사회의 에너지원에 대한 모든 감각적 연결의 끈을 끊는다. 우리의 연료 탱크는 세상에 연결되어 있으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중석기인처럼 불에 의존하나 이제는 화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지구적 에너지 교역의 이러한 약점은 구체적인 정책 규제보다 더 심각하다. 규제는 다시 쓰면 되지만 단절은 복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유럽의 ‘녹색‘은 사실 무지개색이다. 전 세계에 걸쳐 식물에게 수집되고 정책의 안개를 통해 굴절된 햇빛의 여러 색깔인 것이다. 이 무지개가 땅에 닿는다. 유럽 시장에 도착한 목재, 에탄올, 바이오디젤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프레리와 숲에서 온 것이다. 이곳에서의 확장된 삶의 경험은 에든버러, 런던, 브뤼셀의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에 몸으로 체득한 지식을 더할것이다. - P159

우렁찬 소리는 폰데로사소나무의 뻣뻣한 바늘잎에서 난다. 다른 나무의 잎은 흐르는 공기에 순응하지만 폰데로사소나무는 구부러지지않는다. 가지와 잔가지가 바람에 까닥거릴지언정 바늘잎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바늘잎은 수천 개의 굳센 살로 바람을 써레질하여 바람에 사납게 골을 판다. 이 골에서 나는 소리는 잔향이 없다. 팔락팔락 흔들리는 잎의 에너지가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무는 바람의 성격을 시시각각 알려준다. 돌풍이 지나가면 음역을 한껏 올렸다가 공기의 움직임이 달라짐에 따라 가늘어지거나 부풀거나 잦아든다.
존 뮤어John Muir도 폰데로사소나무의 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묘사는 내게 수수께끼였다. 바람에 대한 폰테로사소나무의 반응에서 그는 바늘잎에서 나는 "최상의 음악"과 "자유롭고 날갯짓하는 듯한 허망"을 들었다. 써레질은 어디로 갔나? 다급한 경고음은? 뮤어는 자신의 솔숲에서 아이올로스(호메로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바람의 지배자_옮긴이)의 화음을 들었지만 나는 아리엘(셰익스피어, 「폭풍」에 등장하는 공기의 정링_옮긴이)이 감옥에서 허공을 할퀴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듯상반된 경험은 기질의 차이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른다. 뮤어의 끊임없는 황홀경은 필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식물 분류학 문헌을 읽어보니 뮤어가 들은 소리와 내가 들은 소리는 서로 다른 방언이었다.
폰데로사소나무는 변이가 다양한 나무다. 나뭇진 냄새가 장소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언어의 형태와 뻣뻣함도 지역적 변이가 있다. 로키산맥의 폰데로사소나무는 바늘잎 길이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뮤어의 폰데로사소나무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 로키산맥의 나무는 바늘잎표면 아래의 두터운 세포벽 때문에 더 뻣뻣해서 태평양 연안에서 자라는 말보다는 철선솔에 가깝다. 바늘잎은 짧고 뻣뻣할수록 소리가세다. 아리엘은 캘리포니아에 행복하게 사로잡힌 채 비교적 촉촉한 흙에 뿌리 내린 나무에서 달콤하게 노래하는 듯하다. 건조한 여름과 무거운 겨울 눈에 적응한 바늘잎이 신음을 내뱉는 것은 메마른 콜로라도 산지에서뿐이다. - P166

이따금 용광로의 열이 화염으로 번지기도 하는데, 폰테로사소나무는 여기에도 대비가 되어 있다. 늦여름 비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번개는그렇지 않다. 뇌우 때문에 숲을 찾지 못한 적도 여러 번이다. 지금 내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를 비롯한 상당수는 껍질에 골이 파여 있다. 이좋은 우동지부터 뿌리까지 죽 이어진다. 벌어진 곳을 막으려고 상처좌우로 껍질이 부풀어 있지만, 번개로 인한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일은 드물며 헐벗은 목질부는 고산의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 회색으로 바랜다.
내 엉덩이 밑의 마른 바늘잎과 풀은 불이 엄청나게 잘 붙는다. 번개가 숲바닥에 불을 피우면 불꽃이 숲밑을 따라 기어오르거나 솟구친다. 이렇듯 땅에서 불이 나면 숲은 새카맣게 타버리지만 나이 든 폰데로사소나무는 용의 피부처럼 두꺼운 판으로 이루어진 껍질이 열과 화염을 막아주어 무사하다. 아스펜을 비롯한 다른 나무들은 불에 견디는 힘이 약하며, 약한 산불은 폰데로사소나무의 경쟁자들을 몰아낸다. 10년에 한 번꼴로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면 폰데로사소나무는 승승장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용이 어떤 불에도 무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불은 더뜨겁고 더 높이 올라간다. 이런 불은 땅바닥에서 숲지붕까지 기어올라가 무성한 잔가지를 집어삼킨다. 우듬지가 절반 이상 타면 폰데로사소나무는 죽는다. 사나운 불은 살아있는 나무를 모조리 쓸어버린다. 숲이 복원되려면, 씨앗이 싹트고 어린나무가 생장하는 수십 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숲의 성격은 큰불과 작은 불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산불의 리듬을 좌우하는 요인은 여러가지다. 산지기와 땅임자는 작은 불을 진화하여 큰불의 연료를 비축하고, 가뭄으로 약해진 소나무의 향은 치명적인 나무좀 떼를 끌어들여 마른 땔나무를 남기며, 무엇보다 습도와 온도의 변화-단기적 날씨변동과 장기적 기후 추세가 불을 부추기거나 억누른다. - P173

산불은 열대림과 한대림을 둘 다 변형시키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개간을 위해 놓은 산불이 번져 연기가 여러 나라를 덮기도 한다. 이 나라들에서는 미립자 물질-불타는 우림에서 발생하여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부스러기 - 을 들이마시는 것이 공중 보건에 심각한문제를 일으켜 국가 간 협정으로 산불을 통제하려 한다. 아마존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산불 때문에 (대규모 개간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에서조차)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한대림 극북 지대에서는 재생 속도가 산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산불은 탄소의 대기 중 유출을 가속화한다. 전前산업 시대 이후로 대기중에 초과 방출된 이산화탄소의 5분의 1이 산불에서 비롯했다.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