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칼러>에서 내가 하루가 다르게 더욱 불신하게 되는 단어인 ‘도덕성‘에 대한 글을 다소추상적인 방식으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지만, 내 마음은 완강하게 구체적인 것들로 향한다. 여기 구체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어젯밤 자정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데스 밸리 인터체인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차 한 대가 숄더를 박고 전복되었다. 아주 젊고 만취한 상태가 분명한 운전자는 즉사했다. 여자친구는 발견 당시 살아있었지만 내출혈이 심하고 쇼크 상태로 의식이 없었다. 나는이날 오후에, 여자를 데리고 제일 가까운 병원까지 운전해서 밸리 바닥을 가로지르고 치명적인 산길을 세 번 넘어 185마일(300km)을 달려간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활석을 캐는 광부인 남편이 고속도로에 남아, 검시관이 오늘 새벽 비숍에서 출발해 산을 넘어올 때까지 청년의 시신 곁을 지켰다고 한다. "고속도로에 시체를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간호사는 말했다. "부도덕한 일이에요." 이런 경우에는 나도 이 단어를 불신하지 않는다. 간호사의 말은 아주 구체적인 무엇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분이라도 시체를 사막에 혼자 버려두면 코요테들이 다가와 살점을 먹어치운다는 뜻이었다. 코요테가 시체를 갈가리 뜯어먹게 둘 것인가 여부는 감상적인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연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서로 약속하는 한가지는 사상자의 시신을 수습하려 노력하겠다는 것, 우리의죽은 자들을 코요테 먹잇감으로 버리고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면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교육을 잘 받고 자랐다면 우리는 시체와 함께 남을 테고, 그러지 않으면 악몽을 꿀 것이다. - P221
무슨 뜻이냐고?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오늘 밤 이곳 노지의 공기에는 불길한 히스테리아가감돈다. 인간적 관념을 떠올릴 수 없는 흉측한 변태성의 흔적이 비친다. "나는 내 양심을 따랐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광인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말을 한 살인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핵정보를 팔아넘긴 스파이 클라우스 푹스도 그 말을 했고, 마운틴 메도스 학살(1857년 9월, 몰몬교도 무장군이 마운틴 메도스에서 개척민을 대량학살한 사건. 옮긴이)을 저지른 자들도 그 말을 했으며 나치 전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도 그말을 했다. 그리고 오늘날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귀에못이 박이도록, 다소 주제넘게, 상기시켜주듯이 예수님도 그말을 하셨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 말을 해본 적이 있을것이고 아마도 틀렸을 것이다. 원초적인 수준의 양심-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충의ㅡ을 제외하면, 개인적 양심을 우선에 놓는다는 주장보다 더 오만한 일이 있을까? ("어디 말해보세요."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어렸을 때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자 랍비가 물었다. "하느님이 신경이나 쓰실 것 같습니까?") 적어도 가끔 내 눈에는 세계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처럼 아수라장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내 양심을 따라간다면 [사슴사냥터] (노먼 메일러가 1955년에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쓴 소설-옮긴이)에서 매리언 페이가 동쪽의 로스앨러모스를 바라보며 비가 내리듯 숙청이 벌어지기를 기도하던 자리, 그 황량한 사막에 함께 서게 될지도 모른다. "...와서 먼지와 악취와 오염을 씻어내게 하라. 어디에나 모두에게 오게 하라. 그렇게 와서 새하얗고 죽은 새벽에 세계가 맑게 서게하라" - P226
대단히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갈수록 점점 더 거론되는 횟수가 적어지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이라도, 양심에근거한 윤리는 ‘틀리면‘ 위험하고 ‘옳으면‘ 존경스럽다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심란하리만큼 신속하게 태세 전환을 한다. 보다시피 나는-이 사회적 코드에 대한 근본적 충의를넘어서면- 무엇이 틀렸는지‘ 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 인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입장을 아주 완강하게 고수하고자 한다. ‘도덕성‘이라는 말의 가장 심기 불편한 자질은 활용 빈도다. 언론, 텔레비전, 건성으로 하는 대화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단순한 권력(또는 생존)정치의 문제, 중립적인 공공 정책의 문제, 거의 모든 문제에 이 당파적 도덕성의부담이 지워진다. 뭔가 안일한 태도, 자기만족이 작동하고있다. 물론 우리 모두 뭔가 ‘신봉하고 싶고, 공적인 명분에 서사적인 죄책감을 달래고 싶고, 지긋지긋한 자아를 잊고 골몰하고 싶고, 아마도 자기 집에 걸린 항복의 백기를 떼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펄럭이는 멋진 흰색 깃발로 바꾸고 싶어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태고적부터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왔으니까.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과 이유에 관해 스스로 기만하지 않는다고 전제할 때만 괜찮은 거다. 즉석 결성된 온갖 위원회, 피켓 라인들, 《뉴욕 타임스》의근사한 서명, 온갖 선전선동의 도구들이 자동으로 도덕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목적이란 임시방편이거나 아닐 수 있고, 좋은 생각이거나 아닐 수 있으나, 어쨌든 ‘도덕성‘과는 무관함을 숙지할 때만 그래도 괜찮은 거다. 실용적 필요성이 아니라 도덕적 중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뭔가를 원하고 꼭 필요하다고 자기를 기만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우리가 유행하는 광인의 대열에 합류할 테고, 그때는 히스테리아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뭍에서 들릴 것이며, 그때는 우리가 크나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어쩐지 우리가 이미 그곳에 다다른 것도 같다. - P228
집에 와 있으면, 내가 이처럼 시대와 단절된 사고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뚜렷해진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찬장을 열 때마다 나의 과거를 만나다 보니 신경증적무기력이 도져 아무 일도 못 하고 정처 없이 이방 저방서성거린다. 차라리 정면으로 맞붙어야겠다 생각하고 서랍 하나를 싹 비워 내용물을 침대 위에 늘어놓는다. 열일곱 살에 입었던 수영복. <더 네이션>에서 보낸 원고 거절 편지, 아버지가 쇼핑센터를 지으려다 만 부지의 1954년 항공사진. 작은 장미를 손으로 그려넣고 할머니의 이니셜인 "E. M."이라고 서명된 찻잔들. 《더 네이션>에서 받은 거절 편지와 1900년에 핸드페인팅한 찻잔에는 최종 해결책이 없다. 스키를 타고 1910년의 도너 패스를 둘러보는 청년 할아버지의 사진에도 답이 없다. 나는 사진의 구김살을 펴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내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서랍을닫고 어머니와 커피 한 잔을 더 마신다. 우리는 사이가 아주 좋다. 우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에 게릴라 전쟁을 치른 참전 용사들이다. - P232
대고모님들을 찾아뵈러 간다. 내가 내 사촌, 혹은 젊어서 죽은 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는 1948년에 마지막으로 본 친척의 일화를 듣고, 대고모님들은 내게 아직도 뉴욕시에 사는 게 좋냐고 물으신다. 로스앤젤레스에산 지 3년째지만 나는 좋다고 한다. 아기한테는 박하사탕을 먹어보라고 하고, 내게는 달러 지폐 하나를 슬쩍 찔러주며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하신다. 질문은 말끝이 흐려지고 답은 버려지고 아기는 한줄기 오후 햇살을 받으며 먼지티끌과 논다. 아기의 생일파티를 할 시간이다. 하얀 케이크, 스트로베리 마시멜로 아이스크림, 다른 파티에서 쓰고 남은 샴페인 한 병. 저녁에 아기를 재우고 나는 요람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애의 얼굴이 요람 울타릿살 사이로 삐져나온 부분에 내 얼굴을 대었다. 그 애는 열려 있고 잘 믿는 아이다. 불쑥불쑥 뜻밖의 일들이 발목을 잡는 대가족의 삶에 대책도 없고 익숙지도 않은 아이니, 내가 그런 삶을 주지 못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주고 싶다. 사촌들과 강과 대고모들의 찻잔을 느끼며 자라나게 될 거라고 약속하고 싶고, 머리도 안 빗고 프라이드치킨을 들고 강가로 피크닉을 가자고 약속하고 싶고, 생일 선물로 고향을 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다르게 살고 나는 그 애에게 그런 건 전혀 약속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실로폰과 마데이라의 자수 원피스를 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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