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기에 개인적. 집단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역병이 가져오는 도전과 인간의 웅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좋은 면에서건 나쁜 면에서건 그렇다. 역병은 사회질서를 재편하고, 사람들을 흩뜨리고, 경제를 황폐화하고, 신뢰 대신공포와 의심을 부추기고, 타인을 비방하게 하고, 거짓이 난무하게하고, 비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의와 협력, 희생과 창의성을 끌어내기도 한다.
예전 역병 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도시는 극도로 밀집되어 있고, 전자 기술과 현대의학이 발전했으며,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고, 실시간으로 세상 소식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병의 확산 추이를 우주에서 (도시 활동의 마비를 관측함으로로써), 지상에서(휴대전화 이용자들의 위치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그리고 분자 수준에서(유전 기술로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분석해 확산 경로를 파악함으로써)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SARS-2 바이러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없는 완벽한 상황이다. 바이러스는 지금 제 세상을 만났다. 진화생물학 용어를 빌리자면 ‘생태적 해방ecological release‘을 맞았다. 이는 어떤 종이 기존에 얽매였던 제약에서 풀려나면서 서식 범위와 개체수가 치솟는 현상을 가리킨다. 전형적인 예가 인간이 새로운 지역에 침입종invasive species을 도입하는 경우다. 호주를 장악한 사탕수수두꺼비, 뉴질랜드를 뒤덮은 쥐(뉴질랜드에서 수백만 년간 살아온 공룡의 후손 투아타라를 1250년 무렵 거의 절멸시켰다), 미국 남동부의 칡 등이 그 예다. 모두 외래종이 갑자기 무주공산을 만나 마음껏 증식한 현상이다. 인간은 SARS-2에 자연적인 면역이 없다. SARS-2는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병원체니까. 그래서 이른바 ‘미개척지 유행병virgin soil epidemic‘이 일어났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세상을 휩쓸었다. - P64

공중보건 관점에서 이와 같은 공기 전파는 일반적인 비말 전파복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겨진다. 비말 전파는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거나 힘주어 말을 할 때 바이러스를 다량 포함한 비말이 뿜어 나오면서 이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형태다. 비말은 비교적 무거워서 보통 배출자 주변 2m 이내의 땅에 떨어진다. 2020년 범유행기에 2m 이상의 신체적 거리두기 지침이 시행된 것도 그 때문이다(물론 2m가 반드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면 공기 전파는 매우 가볍고 미세한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전파되는 형태다. 아모이가든스 확산 사태는 공기 전파에 의한것으로 보이며, 감염원은 다름 아닌 배설물이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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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캘리포니아를 찾기는 어렵거니와, 그중 어디까지가 그저 상상이거나 즉흥적으로 꾸며낸 것이었을까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사람의 기억에서 진짜 기억이 아니라 누구다른 사람의 기억, 가족 네트워크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을 깨닫는 일은 울적하다. 예컨대 내게는 금주법이 새크라멘토 주변의 홈 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생한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이 알던 홉 경작자의 여동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밍크코트를 사 가지고왔는데, 도로 갖다주라는 얘기를 듣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코트를 꼭 껴안고 울고 있었다. 나는 금주법이 폐지되고 일 년 후에 태어났지만 그 장면은 실제 내가 나오는 기억보다도 더 현실적‘인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여행길을 기억한다. 뉴욕에서 밤비행기를 혼자 타고 잡지에서 우연히 본 W. S. 머윈의 시를읽고 또 읽었다. 타국에 오래 살았지만 이제 집에 돌아가야한다는 걸 아는 한 남자에 대한 시였다.

•••하지만 꼭
금세라야 한다. 이미 나는 뜨겁게 옹호한다
두둔할 수 없는 우리 흠결들을 확신하면서
기억을 되살려주면 원망한다. 이미 내 마음에서는
우리 언어는 그 어떤 공통어도 약속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묵직하게 짊어지고 있는데, 산과
드넓은 강들은, 지상 그 어디와도 다르고
- P247

그러면 바로 얼마 전에 새크라멘토에 갔던 기억이 아득해질것이다. 미니트맨, 폴라리스, 타이탄, 탄도 미사일 섬광이 번득인다. 커피 테이블은 온통 항공 일정으로 뒤덮여 있고 최첨단이며 외부 세계와 잘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몇 마일 더 멀리로, 은행에 아직도 ‘앨릭스 브라운네 은행‘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소도시들로 당신을 데리고 갈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호텔 식당에 아직도 팔각형 타일 마루가 깔려 있고 먼지 낀 종려나무 화분과 커다란 실링팬이 있고 모든 가게- 종자 사업, 하베스터식당 분점, 호텔, 백화점과 메인 스트리트까지 이름이 하나같이 도시 건설자의 이름을 딴 소도시로 데려가줄 수 있다.
몇 번의 일요일 전에 나는 그 같은, 아니 그보다 작은 소도시에 있었다. 아니, 호텔도 없고 하베스터 식당 분점도 없고은행도 불타 없어진 강가 마을에 있었다. 친척의 금혼식이었는데 기온이 44도에 달했고 주빈들은 리베카 홀의 글라디올러스를 앞에 두고 등이 똑바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기서만난 사촌에게 에어로젯 제너럴을 방문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흥미롭지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캘리포니아일까? 그게 우리 모두 궁금한 바다. - P249

로스앤젤레스에는 절벽이 부스러져 파도에 휩쓸릴 정도로 비가 내렸고 아침에 옷을 차려입을 마음도 나지 않아서 우리는 뜨거운 날씨를 찾아 멕시코 과이마스로 가기로 했다.
청새치를 찾아가지 않았다. 스킨다이빙을 하러 가는 것도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거고,
그러려면 드라이브밖에 길이 없었다. 녹음이 우거진 어여쁜 장소들이 빛바래고 어딘가 어려운 장소, 사막을 제외한 그무엇도 상상력을 흔들지 못할 때, 그럴 때 노갤러스를 지나쳐 차를 몬다. 사막은, 세상의 모든 사막은 실제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계곡이다. 사막에서 돌아오면 새로 태어난 알케스티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의 아내로, 남편 대신 죽음을 맞지만 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싸워 되살려낸다. 옮긴이)가 된 기분이 든다. 15번국도를 타고 노갤러스를 지나면 소노라 사막밖에 아무것도없다. 메스키트와 방울뱀과 동쪽 하늘에 떠 있는 시에라마드레 산맥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간간이 북쪽으로 치달리는 페멕스 트럭과 아주 간혹 페로카릴 델 파시피코의 먼지덮인 풀먼 차량이 지나갈 뿐 인간의 노력일랑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마그달레나는 15번 국도상에 있고 다음에 에르모시요가 나오고, 에르미시는 과이마스에서 불과 85마일(137km) 북부에 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가면 요점을 놓치게 된다. 요점은 열기와 기만적인 시점과 사체의 위압적인 감각에 방향감각을 잃고 쭈그러드는 데 있다. 도로는 은은히 빛난다. 눈은 감기고 싶어한다. - P296

이날 오후 로스앤젤레스의 대기에는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부자연스러운 정적, 어떤 긴장감. 오늘 밤부터 샌타애나(남캘리포니아와 멕시코 북부에 부는 강한 계절풍.- 옮긴이)가 불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바람이 우는 소리를 내며 카혼과 샌고르고니오 고개를 지나쳐 66번 국도를 따라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산야와 신경줄을 바짝바짝 말려 인화점까지 밀어붙인다.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는 협곡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밤에는 사이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샌타애나가 불 때가 됐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고 신문에서 읽은 적도 없지만 나는 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이 알았다. 우리는 느낌으로 안다. 아기가 보챈다. 가사도우미가 퉁명스러워진다. 나는 전화 회사와의 잦아들던 말다툼에 새삼 불을 붙였다가 괜히 마음만 상해 전화를 끊고 자리에 누워 공기 속에 감도는 기운에 몸을 맡긴다. 샌타애나와 공존한다는 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인간 행동을 보는 심오하게 기계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외딴 해변에 살던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쁜 바람이 불면 인디언들이 바다에 몸을 던진다는 얘기였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샌타애나가 부는 시기에 태평양은 불길하게 번들거리고, 밤에는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비명을 지르는 공작들뿐 아니라 파도조차 없는 섬뜩함 때문에 잠을 설친다. 열기는 초자연적이었다. 하늘에는 누런빛이 감돌았다. 가끔 ‘지진 날씨‘라고 불리는 그런 빛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이웃은 며칠 동안 집 밖 출입을하지 않고 밤에 불도 켜지 않았으며, 그이의 남편은 손도끼를 들고 주변을 배회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침입자 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다음 날은 방울뱀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샌타애나에 대해 예전에 쓴 글이 있다. "그런 밤이면 술이 들어가는 파티는 무조건 싸움으로 끝났다. 온순한 아내들은 고기 써는 칼의 날을 만지며 남편의 목덜미를 찬찬히 살폈다. 그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 P300

그러니까 나는 뉴욕에서 희한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거기서는 실제로 생활을 영위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언제나 거기 몇 달만 더, 크리스마스부활절까지만, 아니면 5월의 따뜻한 날이 오기 전까지만 머무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남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편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디든 그네들이 소속된곳으로부터 무한정 연장된 휴가를 떠나온 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래를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한시적인 망명객들은 뉴올리언스나 멤피스나 리치먼드나, 내 경우에는 캘리포니아로떠나는 비행기 시각을 항상 알고 있었다. 항상 서랍 속에 비행기 일정을 마련해두고 사는 사람은 살짝 다른 달력에 맞춰 생활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는 다른 계절이다. 다른사람들은 거침없이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스토(버몬트 주 북부의 소도시-옮긴이)에 가거나 외국에 가거나 코네티컷의 어머니 댁에 하루 일정으로 다녀온다. 그러나 우리처럼 어딘가 다른 곳에 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예약했다 취소하고, 1940년 리스본을 떠나는 마지막 비행기편을 기다리듯 악천후에 발이 묶인 비행기를 기다리다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유년기의 오렌지와 기념품과 훈제굴 스터핑을 마련해 서로 꼭 붙어서 머나먼 국가로 파병된 제국의 군인들처럼 함께 지내곤 했다. - P318

 그리고 5월의 어느 날 아침(우리는 1월에 결혼했다) 남편은 내게 전화해 뉴욕에서 한동안 멀리 떠나 있고 싶다고, 6개월 정도 휴가를 내고 우리 같이 어디론가 가자고 말했다.
그이가 내게 그 말을 한 건 3년 전이었는데, 우리는 그후로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다. 우리가 아는 많은 뉴욕 사람들이 이상한 기벽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대꾸도 적절한 답도 없어서 우리는 그냥 누구나 하는 틀에 박힌 답을 한다. 우리가 지금 뉴욕의생활비를 "감당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우리한테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뭐 그런 얘기를 한다. 사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뉴욕에서는 내가 아주 젊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황금의 리듬이 깨어졌고 이제 나는 젊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뉴욕에 갔을 때는 추운 1월이었고 모두들 아프고 피곤했다. 내가 거기서 알던 사람 여럿이 댈러스로 이사 가거나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하러 가거나 뉴햄프셔의 농장을 샀다. 우리는 열흘 머물렀고 오후 비행기를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 그날 밤 공항에서 집으로가는 길에는 태평양 위에 뜬 달이 보였고 사방에서 재스민향기가 풍겨서 우리는 둘 다 뉴욕에 여전히 갖고 있던 아파트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로스앤젤레스를 ‘코스트‘라고 부르던 세월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주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1967-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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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이 달리기 시작하자, 역전의 혼란스러운 소음도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 저 대문을 지나가는 거예요?" 옥희가 물었다. 집을 떠난 이래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단이가 말했다. "주변에 벽이 없다고 해서 대문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건 아니란다. 저게 없으면 다들 경성에 도착했다는 걸 어떻게 알겠니? 게다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 땐 그걸 기억하렴." 단이가 쾌활하게 말했다. 묘하게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능력또한 그의 특별한 재능 중 하나였다. "이제 들어간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너희들도 알게 될 거야!"
인력거가 아치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옥희는 형언할 수 없는 눈부신 고양감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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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에는 중국 대부분 지역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그 직후 내 중국인 제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른바 ‘봉쇄관리‘ 조치가 시행된 지역의 총인구는 9억3400만 명에 달했다. 중국의 봉쇄 조치는 마오쩌둥 시절의 사회통제를 연상케 할 만큼 규모와 강도가 엄청났다.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규모의 공중보건 조치였다.
‘봉쇄관리‘에 따라 여러 조치가 시행됐다. 주민들은 집 밖으로나올 수 없었고, 일주일에 1회 또는 2회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만 허락됐다. 구매자들은 2m 간격을 유지한 채 줄을 섰다. 평소 중국의 보행자 밀도를 생각하면 누가 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리고집 밖에선 누구나 예외 없이 마스크를 써야 했다. 모든 지역 간의 행인과 차량 이동은 검문을 통해 특별 출입 허가증을 소지한 경우에만 허락됐다. 작게는 동네 단위로 출입 통제가 이루어졌다. 출입 허가중에 적힌 문구(‘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만인의 책무)에서 거리에 내걸린 붉은색 대형 현수막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과거를 연상케 하는집단주의식 표어가 등장했다. 모든 장소의 입장객은 체온을 측정했고,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실시했으며, 차량과 공공장소를 주기적으로 소독했다. 식품과 기타 생필품이 엄청난 규모로 치밀하게 배송됐다. 중국 당국은 배달 회사의 상품 배달을 장려했고, 배달 회사는주문용 앱을 통해 차량 운전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했고 열이 없음을 보증했다.
봉쇄 규칙을 시행하는 역할은 구역 담당자, 지방공무원, 공산당원등의 몫이었다.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와 집단주의적 사회규범 덕분에 통제가 수월했다. 봉쇄는 그저 상의하달식으로만 시행된 것도 아니었다. 가령 시골 주민들은 베어 쓰러뜨린 나무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기도 했고, 지역 방언으로 방문객을 심문하여 불청객을 가려내기도 했다. 
통제는 현대적인 방식으로도 이루어졌다. 2월에 한 국영 군용 전자기기 제조사가 공개한 앱은 사용자가 이름과 신분증 번호를 입력하면 비행기 · 열차·버스 이용 중 바이러스 보유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이런 기술이 등장한 데 섬뜩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곧 자국 역시 비슷한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더 나아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 P38

바이러스 유전체 지도 작성의 중요한 장점 하나는 바이러스의 변이체를 정확히 가려내 전 세계 확산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미세한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즉 유전암호에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이러스의 기능에는 대개 영향이 없다. 변화의 발생 주기는 상당히 일정해서, 평균적으로 2주마다 한 번씩 미세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유전암호의 어느 곳이 바뀔지는 알 수 없다. 돌연변이 위치는 무작위적으로 선정되며, 따라서 바이러스는 지역에 따라 그 유전체가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된다. 세계 각지에서 수천수만 건의 검체를 수집해 무작위적으로 누적된 돌연변이를 조사하면,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를 재구성할 수 있다. 마치 여권에 찍힌 도장처럼, 바이러스가 어디를 거쳐 왔으며 언제 국경을 넘어왔는가 하는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랜드 프린세스호 발병 사태가 시애틀 발병 사태와 연관된 것이고, 시애틀은 우한의 최초 발병과 연관된 것임을 신속히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기법 덕분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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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스칼러>에서 내가 하루가 다르게 더욱 불신하게 되는 단어인 ‘도덕성‘에 대한 글을 다소추상적인 방식으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지만, 내 마음은 완강하게 구체적인 것들로 향한다.
여기 구체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어젯밤 자정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데스 밸리 인터체인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차 한 대가 숄더를 박고 전복되었다. 아주 젊고 만취한 상태가 분명한 운전자는 즉사했다. 여자친구는 발견 당시 살아있었지만 내출혈이 심하고 쇼크 상태로 의식이 없었다. 나는이날 오후에, 여자를 데리고 제일 가까운 병원까지 운전해서 밸리 바닥을 가로지르고 치명적인 산길을 세 번 넘어 185마일(300km)을 달려간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활석을 캐는 광부인 남편이 고속도로에 남아, 검시관이 오늘 새벽 비숍에서 출발해 산을 넘어올 때까지 청년의 시신 곁을 지켰다고 한다. "고속도로에 시체를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간호사는 말했다. "부도덕한 일이에요."
이런 경우에는 나도 이 단어를 불신하지 않는다. 간호사의 말은 아주 구체적인 무엇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분이라도 시체를 사막에 혼자 버려두면 코요테들이 다가와 살점을 먹어치운다는 뜻이었다. 코요테가 시체를 갈가리 뜯어먹게 둘 것인가 여부는 감상적인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연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서로 약속하는 한가지는 사상자의 시신을 수습하려 노력하겠다는 것, 우리의죽은 자들을 코요테 먹잇감으로 버리고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면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교육을 잘 받고 자랐다면 우리는 시체와 함께 남을 테고, 그러지 않으면 악몽을 꿀 것이다. - P221

무슨 뜻이냐고?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오늘 밤 이곳 노지의 공기에는 불길한 히스테리아가감돈다. 인간적 관념을 떠올릴 수 없는 흉측한 변태성의 흔적이 비친다. "나는 내 양심을 따랐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광인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말을 한 살인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핵정보를 팔아넘긴 스파이 클라우스 푹스도 그 말을 했고, 마운틴 메도스 학살(1857년 9월, 몰몬교도 무장군이 마운틴 메도스에서 개척민을 대량학살한 사건. 옮긴이)을 저지른 자들도 그 말을 했으며 나치 전범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도 그말을 했다. 그리고 오늘날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귀에못이 박이도록, 다소 주제넘게, 상기시켜주듯이 예수님도 그말을 하셨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 말을 해본 적이 있을것이고 아마도 틀렸을 것이다. 원초적인 수준의 양심-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충의ㅡ을 제외하면, 개인적 양심을 우선에 놓는다는 주장보다 더 오만한 일이 있을까? ("어디 말해보세요."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어렸을 때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자 랍비가 물었다. "하느님이 신경이나 쓰실 것 같습니까?") 적어도 가끔 내 눈에는 세계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처럼 아수라장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내 양심을 따라간다면 [사슴사냥터] (노먼 메일러가 1955년에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쓴 소설-옮긴이)에서 매리언 페이가 동쪽의 로스앨러모스를 바라보며 비가 내리듯 숙청이 벌어지기를 기도하던 자리, 그 황량한 사막에 함께 서게 될지도 모른다.
"...와서 먼지와 악취와 오염을 씻어내게 하라. 어디에나 모두에게 오게 하라. 그렇게 와서 새하얗고 죽은 새벽에 세계가 맑게 서게하라" - P226

대단히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갈수록 점점 더 거론되는 횟수가 적어지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이라도, 양심에근거한 윤리는 ‘틀리면‘ 위험하고 ‘옳으면‘ 존경스럽다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심란하리만큼 신속하게 태세 전환을 한다.
보다시피 나는-이 사회적 코드에 대한 근본적 충의를넘어서면- 무엇이 틀렸는지‘ 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
인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입장을 아주 완강하게 고수하고자 한다. ‘도덕성‘이라는 말의 가장 심기 불편한 자질은 활용 빈도다. 언론, 텔레비전, 건성으로 하는 대화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단순한 권력(또는 생존)정치의 문제, 중립적인 공공 정책의 문제, 거의 모든 문제에 이 당파적 도덕성의부담이 지워진다. 뭔가 안일한 태도, 자기만족이 작동하고있다. 물론 우리 모두 뭔가 ‘신봉하고 싶고, 공적인 명분에 서사적인 죄책감을 달래고 싶고, 지긋지긋한 자아를 잊고 골몰하고 싶고, 아마도 자기 집에 걸린 항복의 백기를 떼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펄럭이는 멋진 흰색 깃발로 바꾸고 싶어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태고적부터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왔으니까.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과 이유에 관해 스스로 기만하지 않는다고 전제할 때만 괜찮은 거다. 즉석 결성된 온갖 위원회, 피켓 라인들, 《뉴욕 타임스》의근사한 서명, 온갖 선전선동의 도구들이 자동으로 도덕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목적이란 임시방편이거나 아닐 수 있고, 좋은 생각이거나 아닐 수 있으나, 어쨌든 ‘도덕성‘과는 무관함을 숙지할 때만 그래도 괜찮은 거다. 실용적 필요성이 아니라 도덕적 중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뭔가를 원하고 꼭 필요하다고 자기를 기만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우리가 유행하는 광인의 대열에 합류할 테고, 그때는 히스테리아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뭍에서 들릴 것이며, 그때는 우리가 크나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어쩐지 우리가 이미 그곳에 다다른 것도 같다. - P228

집에 와 있으면, 내가 이처럼 시대와 단절된 사고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뚜렷해진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찬장을 열 때마다 나의 과거를 만나다 보니 신경증적무기력이 도져 아무 일도 못 하고 정처 없이 이방 저방서성거린다. 차라리 정면으로 맞붙어야겠다 생각하고 서랍 하나를 싹 비워 내용물을 침대 위에 늘어놓는다. 열일곱 살에 입었던 수영복. <더 네이션>에서 보낸 원고 거절 편지, 아버지가 쇼핑센터를 지으려다 만 부지의 1954년 항공사진. 작은 장미를 손으로 그려넣고 할머니의 이니셜인 "E. M."이라고 서명된 찻잔들. 《더 네이션>에서 받은 거절 편지와 1900년에 핸드페인팅한 찻잔에는 최종 해결책이 없다. 스키를 타고 1910년의 도너 패스를 둘러보는 청년 할아버지의 사진에도 답이 없다. 나는 사진의 구김살을 펴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내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서랍을닫고 어머니와 커피 한 잔을 더 마신다. 우리는 사이가 아주 좋다. 우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에 게릴라 전쟁을 치른 참전 용사들이다. - P232

대고모님들을 찾아뵈러 간다. 내가 내 사촌, 혹은 젊어서 죽은 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는 1948년에 마지막으로 본 친척의 일화를 듣고, 대고모님들은 내게 아직도 뉴욕시에 사는 게 좋냐고 물으신다. 로스앤젤레스에산 지 3년째지만 나는 좋다고 한다. 아기한테는 박하사탕을 먹어보라고 하고, 내게는 달러 지폐 하나를 슬쩍 찔러주며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하신다. 질문은 말끝이 흐려지고 답은 버려지고 아기는 한줄기 오후 햇살을 받으며 먼지티끌과 논다.
아기의 생일파티를 할 시간이다. 하얀 케이크, 스트로베리 마시멜로 아이스크림, 다른 파티에서 쓰고 남은 샴페인 한 병. 저녁에 아기를 재우고 나는 요람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애의 얼굴이 요람 울타릿살 사이로 삐져나온 부분에 내 얼굴을 대었다. 그 애는 열려 있고 잘 믿는 아이다. 불쑥불쑥 뜻밖의 일들이 발목을 잡는 대가족의 삶에 대책도 없고 익숙지도 않은 아이니, 내가 그런 삶을 주지 못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주고 싶다. 사촌들과 강과 대고모들의 찻잔을 느끼며 자라나게 될 거라고 약속하고 싶고, 머리도 안 빗고 프라이드치킨을 들고 강가로 피크닉을 가자고 약속하고 싶고, 생일 선물로 고향을 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다르게 살고 나는 그 애에게 그런 건 전혀 약속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실로폰과 마데이라의 자수 원피스를 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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