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분이. 즉 광진테라 아줌마는 이 모든 것을 견뎌냈다.
아줌마가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바로 자기의 삶이라는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양복점 뒷방에서 강제로 순결을 잃은 순간 이미 자기의 삶은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자기의 삶이 아니라는생각이 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런 생각을꿈에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번 발을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을 개간한다.
나는 아줌마가 자기의 삶을 한 발짝 벗어나서 바라보았으면 하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의 삶에 드리워지는그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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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보니 상실감은 더 컸다. TV 화면에 킥복싱이 커져 있는일도 없었고, 현판 바깥에서 운동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일도 없었고, 계단 꼭대기에서 엄마한테 뭐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쳐 묻는 소리도없었다. 덩치가 나만 한 사람이 나를 ‘기인‘이라고 부르거나 "아빠, 셔츠멋진데요. 혹시 베트남 난민에게서 뺏어온 건 아니죠?" 하고 묻는 일도없었다. 그제야 나는 그 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큰아이가 여기 없는 것 같았어도 사실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이곳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나는 차 뒷좌석에서 발견한 둘둘 말린 스웨터나 아무데나 붙여놓은 씹다만 껌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눈물이 났다. 하지만 아내는 그마저도 필요 없이 마냥 눈물을 흘렸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멍청하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농구공이나 큰아이가 달리기 대회에서 탄 트로피, 오래 전의 명절 때 찍은 사진 등을 쳐다보는, 그리고 그 물건들을 통해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는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아들이 여기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예전의 그 아이도 영영 가고 없다는 갑작스런 깨달음이었다. 아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삶은 계속되며, 아이들은 자라서 집을 떠나기 마련이다. 아직 이것을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내 말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이들이 집을 떠날 날은 여러분이 상상했던 것보다 빨리 온다.
그러므로 나도 이쯤에서 펜을 놓고 집 앞 잔디밭에서 막내아이와 야구를 해야겠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1이슈 발치하 미국학 151 - P151

지금은 고전이 된 <북미대륙 중동부 나무들의 자연사)에서 피티는 좋게 말해야 학자답게 썼다고밖에 할 수 없는 문체로 434쪽을 단조롭게 기술하고 있지만("오크 나무는 우람하고 묵직한 나무로 나무껍질에는 기다란 홈이 파여 있으며, 잔가지는 단면이 대개 오각형으로 되어 있고 그주변을 다섯 개의 잎사귀가 둘러싸고 있다" 같은 표현이 대부분이다), 뉴잉글랜드의 사탕단풍과 그 선명한 빛깔에 대한 설명에 이르면 마치 누군가가 그의 코코아 잔을 뒤엎기라도 한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그는 숨 가쁘게 사탕단풍의 빛깔에 대한 비유를 늘어놓는다.
"대군의 함성 같고•••••••, 불의 혀 같고•••••• 교향곡의 바다의 물마루를 타넘는, 그리고 그 울부짖는 듯한 노랫소리로 오케스트라의 모든 계산된 불협화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찬 선율 같다."
그의 아내가 옆에서 "알았어요. 도널드. 이제 약 드실 시간이에요"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은가.
피티는 열띤 어조로 그렇게 두 단락에 걸쳐 사탕단풍의 색깔을 묘사하다가 돌연 축 처진 엽액)과 비늘에 싸인 잎눈, 하늘거리는 잔가지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킬링턴봉 정상의 초자연적으로 맑은 공기 속에서 시야가 온통 가을빛으로 물든것을 보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두 팔을 벌린 채 목청껏 존 덴버의 노래들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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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가 살인의 방조자로 기소되었다면 유죄라고 인정했을까? 아마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조건들을 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은 회고를 할 때에만 범죄일 뿐, 자기는 언제나 법률을 준수하는 시민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최선을 다해 수행한 히틀러의 명령은 제3제국에서는 법의 효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피고 측은 아이히만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제3제국 시대에 가장 유명한 헌법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현재 바바리아의 교육과 문화장관으로 있는 테오도어 마운츠의 말을 인용하려 할 것이다. 그는 1943년에 "총통의 명령은...... 현재 법적 질서에서 절대적인 중심이다"라고 썼다). 오늘날 아이히만에게 그가 달리 행동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단적으로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알지 못했거나 아니면 잊어버린 것이다. 그는 이제 와서 ‘자신들은 언제나 반대한 척하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실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수행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마운츠 교수처럼 그도 "다른 통찰에 도달했다." 그가 한 일들은 한 것이고, 이를 굳이 부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구상의 모든 반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로 공개적인 교수형을 당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말은 그가 무엇을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후회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 P77

재판 내내 아이히만은 ‘기소장이 의미하는 바대로는 무죄‘라는 주장의 이 두 번째 논점을 해명하려고 애썼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기소장이함축하고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부정하지는 않은 점인 그가 고의로행동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비열한 동기와 그의 행동의 범죄적인측면을 전적으로 인지한 상태에서 행동했다는 것도 함축하고 있었다.
비열한 동기에 대해 자기 자신이 마음 내면에서부터 더러운 후레자식(innerer Schweinehund)은 아니라는 점을 그는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것은 받아들이기 힘든일이다.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그들 가운데 한 명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다‘ 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지고, 또 다른 한 명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그의 태도, 그의 모든 정신적 상태가 정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끝으로, 대법원에서 그의 항소를 들은 후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모든사람들에게 확인해 주었다. 이 영혼의 희극 뒤로 전문가들은 그의 경우가 법적인 이상 상태는 물론 도덕적인 이상 상태도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내놓고 있다(최근 하우스너 씨가 새터데이 이브닝포스트』에 밝힌 ‘자신이 재판에서 털어놓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예루살렘에서 비공식적으로 제공된 정보와 상반된다. 아이히만은 살인에 대한 위험하고 탐욕스러운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이며, ‘도착적이고 가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정신과 의사들이 생각했다고 지금우리는 듣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더심각한 것은, 그의 경우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나, 열광적인 반유대주의나 세뇌교육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유대인에게 거부감을 가질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유대인 증오자가 되지 않을 많은 ‘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 P78

나치스 시절 이후로 변하지 않은 그의 신앙에 의하면(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을 신을 믿는 자(Gottgläubiger)라고 했는데, 이 말은 기독교와 결별한 사람을 지칭하는 나치스의 용어이다. 그는 성경에 대고 맹세하기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의미를 전달하는 더 높은 사자(使者)‘에 귀속된다. 이 사자는 ‘우주의 운행‘과 어떤 면에서 동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그 자체로 ‘보다 높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 인간의 생명이 종속된다. (이 용어는 매우 암시적이다. 신을 뜻을 전하는 더 높은 사자(Höheren Sinnestrager)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상으로 볼 때 그에게 군대질서에 속한 어떤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치스는 군대를 명령을 받는 자(Befehlsempfänger)에서 명령을 전달하는 사자(Befehlsträger)로 바꾸어 놓았다. 이는 옛날의 ‘나쁜 소식의 사자‘와 같이 명령을 실행해야하는 자들 위에 놓인 중요하고 책임성 있는 부담을 암시했다.  - P80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의 규정을 위반하면서 일반징병제를 도입하고, 공군과 해군 건설을 포함하는 재무장 계획을 공표한 것이 1935년이었다. 또한 1933년에 국제연맹에서 탈퇴한 독일이 조용하지도 비밀스럽지도 않게 라인란트 비무장 지역을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해였다. 또 히틀러가 "독일은 평화가 필요하며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폴란드를 위대하고 민족적 의식을 지닌 국민의 나라로 인정한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국내문제에 간섭하거나, 오스트리아와 합병하거나, 무엇보다도 합방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으며 할 생각도 없다"라는 평화 연설을한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해는 불행하게도 나치 정권이국내외에서 일반적으로 진정한 인정을 받았고, 히틀러가 모든 곳에서 위대한 정치가로서 존경받은 해였다. 독일 내에서는 변화의 시기였다. 엄청난 재무장 계획 때문에 실업은 사라졌고, 노동계급의 초기 저항은무너졌다. 그리고 처음에는 주로 ‘반파시스트‘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좌파 지식인, 그리고 높은 지위를 가진 유대인)에게 향한 정권의 적대감이 아직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탄압하는 쪽으로 완전히 전환되지는 않았다 - P92

유대인의 일에 대한 그의 학습이 거의 전적으로 시온주의와 관련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모두 오랫동안 지위를 유지해온 저명한 시온주의자인 유대인 지도층인사들과 그의 첫 개인적인 접촉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가 ‘유대인문제‘에 그렇게 매혹된 이유는 그 자신의 ‘이상주의‘ 때문이었다고 그는설명했다. 그가 언제나 멸시한 동화론자들이나 그를 지루하게 만든 정통파 유대인과는 달리 이 유대인은 그와 같은 ‘이상주의자‘였다. 「아이히만의 생각에 따르면 ‘이상주의자‘란 단지 어떤 ‘이상‘을 신봉하거나, 또는 도둑질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조건은 필수불가결하기도 하다.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한 사람이었고(따라서 사업가 같은 사람은 아니었음).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심문에서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 명령을 받고 있었는지만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자신이 얼마나 ‘이상주의자‘로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 P97

 재판관들이 피고에게 그가 말한 모든 것이 ‘공허한 말뿐이라고 드디어 말한 것은 옳았다. 다만 그들은 이 공허함이 가장된 것이며, 피고가 공허하지 않은 끔찍한 다른 생각들을 감추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반박될 수 있는 것은, 아이히만은 기억력이 상당히나쁨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나 사건에 대해 동일한 선전문구와 자기가 만든 상투어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반복한 점 때문이다(자기가 스스로 만든 문장을 하나 말하더라도 그는 이말이 상투어가 될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있었기 때문이다. - P105

아이히만의 정신은 그런 문장들로 넘치도록 채워져 있었다. 실제로일어난 일에 대한 그의 기억은 상당히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격분하게 된 몇 안 되는 순간에 란다우 판사는 피고에게 (만일 당신이 갖가지 살상방법에 대해 다룬 이른바 반제회의에서 이루어진 토론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무엇은 기억할 수 있습니까?"라고물었다. 그 대답은 물론, 아이히만은 그 자신의 출셋길의 전환점들은상당히 잘 기억한다는 것이지만, 그러한 전환점들과 유대인 몰살 이야기에서의 전환점, 즉 사실상의 역사의 전환점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않았다. (그는 언제나 전쟁이 시작된 날이나 소련 침공이 개시된 날짜를 기억하는 데 힘들어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에게 어느 순간이든 ‘의기양양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던 그 자신의 문장들은 하나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질심문에서 판사들이 그의 양심에 호소하려고 할 때마다 ‘의기양양‘함을 마주치게 되었다. 피고가 자신의 인생의 모든 시기와 모든 활동마다 그것에 대해 의기양양함을 느끼게 하는 다른 상투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판사들은 당황한 동시에 분노했다. 그의 정신 속에서는 종전 무렵에 걸맞은 "나는 내 무덤에 웃으며 뛰어들 것이다"라는 말과 "나는 지상의 모든 반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로 기쁘게 공개적으로 교수형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 사이에는아무런 모순도 없었다. 이 말은 아주 다른 상황들 가운데서도 그의 기분을 북돋우는 데 완전히 똑같은 역할을 했다. - P111

검찰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괴물‘이 아님을 알수 있었지만, 광대라고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의심은재판의 전체계획에 치명적일 수 있고, 그와 그 같은 이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안겨준 고통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의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가 행한 최악의 광대짓들은 거의 주목받지 않았고, 거의보도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허송한 젊은 시절에 배운 단 한가지는 바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대단히 강조하며 선언하고는("오늘 그 누구도, 어떤 판사도, 나로 하여금 증인으로서 선서한 진술을 하도록 할 수 없고, 선서상태에서 무엇을 단언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거절합니다. 나는 그것을 도덕적인 이유로 거절합니다. 내 경협상 누군가가 맹세를 성실하게 따르면 어느 날 그 대가를 치르게 되기때문에, 나는 앞으로 영원히 이 세상이나 어떤 다른 권위로도 나로 하여금 맹세를 하거나, 선서 하의 증언을 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자발적으로 선서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 후에 판사로부터 자신의 변호를 위한 증언을하고 싶으면 "선서를 한 뒤 할 수도 있고 선서 없이 할 수 있다"는 말을 분명히 듣고 난 뒤, 두말 않고 즉시 선서 아래에서 증언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과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또는 경찰심문관에게 그랬듯이, 법정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짓은 자신의 진정한 책임을 벗어나 자신의 목숨을 위해 싸우거나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매우 감정적으로 확언한 뒤, 자신의 변호인의 지시에따라 자비를 호소하는 자필 문서를 제출한 사람과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이히만에게는 이것은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이었고, 그가기억 속에서나 즉흥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북돋우는 관용구들을 찾을수 있다면 그는 모순‘ 따위는 한 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이 끔찍한재능은 죽음의 순간에도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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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 P5

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 카페는 정원에 조명이 밝혀져 유럽풍의 화려한 실내장식과 함께 더욱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냈다. 무심코 창밖을 향해 있던 시선 속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쥐가 들어왔다.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막 입술 사이로 포크를 빼내려는 참이었다.
처음에는 잘 손질된 정원수 사이로 뭉클뭉클 움직이는 저 더러운 잿빛 털뭉치가 무엇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연한 수피에 쉴새없이 이빨을 갉작거리고 있던 쥐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머리를 꺼덕일 때마다 그 반동으로 가지 꼭대기가 둔하게 휘청일 만큼 살찐 놈이었다. - P9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깨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엄마가 죽은 것은 내가 여섯 살 때라고 한다. 내게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리움도 없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고, 내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한사코 감추려 하는 할머니이다. - P15

우리집 어른들은 모두 나를 귀여워한다. 장군이 엄마는 내가 부모 없이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것이 불쌍해서라고 하고 광진테라 아줌마는 공부를 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사진관 아저씨는 인사성이 밝아서 그렇다고 하는가 하면 또 뉴스타일양장점의 시다 미스 리 언니는 내가 속이 깊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저당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비굴함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내가 어른들의 비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어린애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다루기 쉽도록 어린애를 그저 어린애로만 보려는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어린애로 보이기 위해서는 귀엽다거나 영리하다거나 하는 단순한 특기만으로 충분하다.
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낸다. 그래서 어른들 비밀의 겉모습은 조금 엿봤을망정 그 비밀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 그것이 어른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면서 또한 귀여움을 촉발시키는지 모른다. 비밀이란 심술궂어서 자기를 절대 보이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와 공유되어지기를 간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 P20

머리를 다 만지고 난 할머니는 기름기 자르르한 붉은 참빗의 빗살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을 훑어내고 왼쪽 오른쪽 어깨 위에서도번갈아 머리카락 몇 올을 집어낸 다음 그것들을 함께 말아서 뭉쳤다. 그러고는 머리 위로 흰 수건을 둘러 뒷목에서 매듭을 짓고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오른쪽 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짚으며 끙 소리를 내고 일어설 때 보면 언제나 아래는 몸뻬 차림이었다.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꼭 한 번은 이모와 내가 잠들어 있는 아랫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눈을 뜨고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더 자라는 표시로 오른손을 들어 가만히위아래로 흔들었다. 마치 허공에 누워 있는 아기를 토닥이는 것같은 몸짓이었다. 그러면 나는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할머니의 뒷모습이 빠져나간 뒤 그 문틈으로 스르르 들어와서 방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는 여명을 어렴풋이 느끼며, 아침 준비를 끝낸 할머니가 깨우러 올 때까지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나에게 있어이 모든 것은 아침을 시작하는 평화로운 습관이었다. 그런데 장군이의 책 읽는 소리 때문에 그 평화가 깨진 거였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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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지난 어느날 밤, 내가 유난히 늦게까지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방충망의 그 벌어진 틈으로 고양이가 들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내 옆에 이미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다시 그 쪽을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스컹크였다. 게다가 그 스핑크는 포치의 유일한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어서 내가 도망칠 수가 없었다. 곧장 테이블로 다가오는 스컹크를 보며 나는 녀석이 매일 밤 이맘때쯤 테이블 주변의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으려고 이곳을 어슬렁거렸음을 알았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러 가거나 그레이비소스를 더 가져오려고 자리를 뜬 사이에 아이들과 내가 벌이는 ‘야채 올림픽‘ 놀이 때문에 음식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가 많았다.)
스컹크가 분사하는 액에 맞는 것은 피를 흘리거나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다. 스컹크 냄새는 멀리서 맡으면 그다지 고약하지 않다. 오히려 묘하게 정이 가는, 매력적이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지만 역하지도 않은 냄새다. 멀리서 스컹크 냄새를 처음 맡은 사람은 누구나 ‘그리 나쁘지 않은걸. 별것도 아닌 것 갖고왜들 그렇게 야단법석이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맡으면, 혹은 스컹크가 내뿜는 액을 맞으면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다른 누군가로부터 춤 신청을 받을 수 있다. 스컹크 냄새는 독하고 불쾌할 뿐만 아니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냄새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토마토 주스로 온몸을 씻어내는 것이지만, 토마토 주스 수십 리터를 들이부어도 냄새가 조금 가실까말까 한 정도다. - P140

2미터 반쯤 떨어진 곳의 스컹크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동안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스컹크는 한 30초쯤 코를 킁킁거리며 테이블 밑을 돌아다니더니 들어온 곳을 통해 조용히 다시 나갔다. 포치를 떠나면서 스컹크는 ‘나는 줄곧 당신이 거기 있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내게 액을 분사하지는 않았다. 그점, 나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다음날 나는 방충망의 벌어진 곳을 압정으로 붙여놓았지만 고마움의 표시로 계단에 고양이 먹이를 한 줌 놓아두었고, 한밤중에 스컹크가 나타나서 그것을 먹어치웠다. 그 후로 2년 동안 나는 여름이면 스컹크가 와서 먹을 수 있게끔 정기적으로 고양이 먹이를 계단에 놓아주었다. 올해에는 스컹크가 다녀가지 않았다. 작은 포유동물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아서 스컹크와 너구리, 심지어 다람쥐까지도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1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자연계의 순환 현상이다.
우리 집에 찾아오던 스컹크도 죽은 것 같다. 1, 2년 뒤에 다시 스컹크의 수가 늘어나면 또 다른 스컹크가 찾아오리라. 그러기를 바란다. 스컹크로 살아간다는 것은 친구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 사이에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죽은 스컹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또 부분적으로는 아내한테 들키는 바람에 야채 올림픽 놀이를 그만두었다. 비록 금메달은 내 차지가 될 게 확실했지만.
1/2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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