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아이들을 화성에 보내겠습니까?"

첫아이인 당신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원대한 꿈을 가진 생면부지의 억만장자가 최초의 화성 영구 정착지에서 살아갈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그 아이를 선택했다고 상상해보라. 우수한 학업 성적(거기다가당신이 동의한 기억이 없는 유전체 분석 결과)을 바탕으로 선정되었다고한다. 우주를 좋아하던 딸은 당신 몰래 그 임무에 지원했는데, 게다가 딸의 친구들도 모두 그 임무에 지원했다고 한다. 딸은 제발 화성으로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 P15

자, 이래도 딸을 화성으로 보내겠는가?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어린이를 화성으로 보낸다는 이 계획은 완전히 미친 짓으로 보인다. 도대체 어느 부모가 이를 허락하겠는가? 이 계획을 추진하는 회사는 화성에 대한 우선권을 놓고 다른 회사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지도자들은 아동 발달에 관한 세부 내용은 전혀 모르고, 아동의 안전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회사는 부모의 승인을받았다는 증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부모의 승인을 받았다는 칸에 체크만 하면, 그 어린이는 화성으로 날아갈 수 있다.
어떤 회사도 부모의 동의 없이 어린이를 화성으로 데려가 위험에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했다간 막중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P17

사회심리학자 진 트웽이 Jean Twenge의 획기적인 연구 덕분에 우리는세대 간 차이가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사건들(전쟁과 우울증 같은)을넘어서고, 어릴 때 사용한 기술의 변화(라디오, 텔레비전, PC, 인터넷, 아이폰 순으로 이어진)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P21

네 번째 트렌드는 불과 몇 년 뒤에 시작되었는데,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에게 훨씬 큰 타격을 주었다. 스마트폰이 전면 카메라 기능을 추가하고(2010년)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되면서(2012년)인기가 크게 높아지자,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게시하는 유행이 크게 확산되었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촬영해 세심하게 편집한 사진과 비디오를 또래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이 단지 보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가까지 할 수 있도록 게시하는 청소년 수가 크게 늘어났다. Z세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돌려 흥미진진하고 중독성이강하고 불안정하며, 그리고 곧 보여주겠지만) 아동과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대체 우주로 오라고 유혹하는 ‘포털‘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춘기를 보내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그 우주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의식 중 상당 부분을 자신의 온라인 ‘브랜드‘를 관리하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끊임없이 계속). 이제 또래 친구들로부터 청소년기의 산소인 인정을 받고 청소년에게 악몽과도 같은 온라인 따돌림을 피하려면 이것은 꼭 필요한 활동이 되었다. 십대 Z세대는 친구, 지인 그리고 잘 모르는 인플루언서의 화려하고 행복한 게시물을 살펴보느라 매일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로 사용자가 만든 비디오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점점 더 많이 보는데, 이것들은 그들을 온라인에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설계된 자동 재생 기능과 알고리듬을 통해 제공된다. 이들은 친구와 가족과 함께 놀고 대화하고 접촉하고 심지어 시선을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그래서 성공적인 인간 발달에 필수적인 체화된 사회적 행동에 참여하는 양도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Z 세대는 급진적인 새로운 성장 방식, 즉 인류가 진화한 소규모 공동체의 현실 세계 상호 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성장하는 방식을 시험하는 대상이다. 이것을 ‘아동기 대재편Great Rewiringof Childhood‘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것은 마치 이들이 화성에서 성장하는 첫 세대가 된 것과 비슷하다. - P22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상 세계‘는 불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다음 네 가지 특징을 지닌 관계와 사회적 상호 작용을가리킨다.

1. 비체화된disembodied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몸이 필요 없고오직 언어만 필요하다는 뜻이다. 파트너는 인공 지능AL, artificial intelligence이 될 수도 있고,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2. 비동기화된asynchronous 방식으로 일어나며 그 정도가 매우 심한데, 주로 텍스트 기반 게시물과 댓글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영상 통화는 동기화된 방식으로 일어난다.)
3. 수많은 잠재적 청중을 상대로 방송을 하면서 일대다 의사소통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다중 상호 작용이 병렬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4. 진입과 퇴출 장벽이 낮은 공동체 내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면 상대방을 차단하거나 그냥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공동체는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관계는 보통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P27

 첫 번째 단서는 정신 질환증가가 불안과 우울증과 관련된 장애에 집중되었다는 점인데, 정신의학에서 이들 장애는 뭉뚱그려서 내면화 장애internalizing disorder로 분류한다. 이 장애는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증상을 내면적으로 느낄때 나타난다. 내면화 장애가 있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슬픔, 절망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들은 반추를 자주 한다. 또 사회적 관여에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외면화 장애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그 증상과 반응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밖으로 표출할 때 나타난다. 행동 장애, 분노 조절장애, 폭력 성향과 과도한 위험 감수 성향 등이 이에 포함된다. 나이와 문화, 국가에 상관없이 내면화 장애는 여자아이와 여성에게서 더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반면, 외면화 장애는 남자아이와 남성에게서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그렇긴 하지만 양성 모두 두 장애로 고통받으며, 양성 모두 2010년대 초반 이후에 내면화 장애가 증가한 반면에 외면화 장애는 감소했다. - P49

인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집단 의례가 인간의 보편적인 문화라는사실에 주목했다. 16세기와 17세기의 유럽인 탐험가들은 모든 대륙의 공동체들에서 모든 구성원이 함께 모여 북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비트가 강한 음악을 연주하는 등의 집단 의례를 행한다는 사실18을 발견했다. 집단 의례는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균열이 생긴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기능이 있다고 널리 이야기되었다. 위대한사회학자 다비드-에밀 뒤르켐David-Émile Durkheim은 그러한 의례에서생겨나는 ‘사회적 전기 social electricity‘에 관한 글을 썼다." 그는 교감과소속감을 북돋는 데 의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 P93

따라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지금까지 발명된 것 중 가장 효율적인 동조 엔진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똑바른 자세로 앉으라거나 칭얼대지 말라고 몇 년 동안 훈육을 해도 실패하고 마는 반면, 소셜 미디어는 청소년에게 용납되는 행동에 대한 심적 모형을 불과 몇 시간 만에 형성할 수 있다. 부모는 동조 편향의 힘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소셜 미디어의 사회화 힘에는 상대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수를 모방하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전략이 있다. 그것은 권위를 포착하고 권위자를 모방하는 것이다. 권위 편향에 관한 주요 연구를 한 사람은 로버트 보이드 밑에서 배운 진화인류학자조 헨릭 Joe Henrich이다. 헨릭은 비인간 영장류의 사회적 위계가 지배성(결국은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구축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람은 권위를 기반으로 한 대안 등급 체계가 있는데, 옛날에는 사냥이나 이야기를 잘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 사람에게 그러한 권위가 부여되었다.
사람들은 탁월한 능력을 스스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만약 대다수 사람이 프랭크가 공동체에서 가장 뛰어난 활쏘기 명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리고당신이 활쏘기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프랭크가 활을 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당신은 그를 ‘존경‘할 것이다. 헨릭은 사람들이 권위 있는 사람을 (스타처럼) 크게 존경하는 이유는, 유대를 통해학습을 최대화하고 자기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그와 친해지고싶은 동기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권위 있는 사람은일부 추종자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용하는데, 추종자(헌신적인 수행원과 팬) 무리는 공동체에 자신의 높은 지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플랫폼 설계자들은 모든 게시물과 사용자의 성공을계량화해 전시할 때(좋아요, 공유, 리트윗, 댓글 등으로) 이러한 심리학적체계를 정조준했다.  - P97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11세 무렵에 스마트폰을 처음 소유한 뒤 나머지 십대 시절 동안 인스타그램과 틱톡, 비디오게임, 온라인 생활을통해 사회화되는 미국 어린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놀이 기반아동기 시절에는 나이에 어울리는 경험을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표준이었고, 그런 경험은 민감기에 잘 조율돼 있었으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에는 아이들이 정해진 순서 없이 쏟아지는 성인 콘텐츠와 경험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진다. 현실 세계가 아닌 온라인 세계에서 발달한다면, 그들의 정체성과 자아와 인간관계가 확 달라질 것이다. 받는 보상이나 처벌, 우정의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것, 이 모든 것은 아이가 매주 보는 수천 개의 게시물과 댓글, 평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민감기를 보내는 아이의 마음은 그사이트들의 문화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Z세대의 정신 건강 결과가밀레니얼 세대에 비해 그토록 나쁜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Z세대는 스마트폰으로 문화 학습을 하면서 사춘기와 민감기를 보낸 첫 번째 세대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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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 나도. (그는 초조하게 기침을 시작하고 곧 발작적인 기침이 이어진다. 제이미는 근심과 연민이 어린눈길로 동생을 흘낏 본다. 메리, 앞응접실을 통해 들어온다. 얼핏 보기엔 아까보다 덜 초조해하고 아침 식사 직후의 상태와 비슷해진 걸 제외하곤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눈이 더반짝거리고,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듯 목소리와 태도가 묘하게 초연해진 걸 알수 있다.)
메리 - (걱정스럽게 에드먼드에게로 가서 어깨를 안으며)이렇게 기침을 하면 안 되는데, 목에 안 좋아. 감기에다 목까지 아프면 안 되지. (에드먼드에게 키스한다. 에드먼드는 기침을 그치고 걱정스런 눈으로 어머니를 흘낏 살핀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정함이 그의 의심을 잠재워 잠시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반면 제이미는 한 번 유심히보고는 자신의 의심이 적중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방어적인 냉소가 어린 쓰라린 표정이 된다. 메리는 에드먼드의 의자 팔걸이에 살짝 걸터앉아 아들의 어깨를 안고 말을 잇는다. 그녀의 얼굴은 에드먼드의 뒤쪽 위에 있어서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볼 수가 없다.) - P69

에드먼드 - (불안해서)형, 그만둬! (제이미, 다시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어머니도요. 왜 갑자기 형한테 그러세요?
메리 - (매정하게) 눈만 뜨면 남을 비웃잖니. 다른 사람들 약점이나 찾고. (그러다 돌연 감정 없는 초연한목소리로 변하며)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에드먼드는어머니의 이상한 태도에 겁이 난다.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시선을 피하고 있다.
제이미는 어머니를 돌아봤다가 다시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 P72

2막 2장

같은 장소, 반 시간쯤 뒤. 탁자 위에 있던 술 쟁반이 치워지고 없다. 막이 오르면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돌아온다. 메리가 맨 먼저 뒷응접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이 그 뒤를 따라나온다. 그는 아까 1막에서 아침을 먹고 등장할 때와 비슷한 상황인데도 아내와 함께 나오지 않는다. 그는 아내를 만지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표정의 얼굴에는 이제 지치고 무력한, 해묵은 체념의 빛까지 어려 있다. 제이미와 에드먼드가 아버지 뒤를따라 나온다. 제이미의 얼굴은 방어적인 냉소주의로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에드먼드도 형의 이러한 방어술을 흉내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몸이 병들었을뿐더러 마음까지 아프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P83

메리 - (아들에게 초연하게 키스한다.) 잘 다녀와라. 집에서 저녁 먹으려거든 늦지 않도록 해.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너도 브리지트 성질 알잖니. (에드먼드, 서둘러 나간다. 티론이 현관에서 외친다. "다녀오겠소. 메리." 제이미도 외친다. "다녀올게요. 어머니." 메리, 대답한다.) 다녀들 와요. (그들이 나가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탁자 옆에 와서 서서 한 손으로는 테이블을 두드리고 한 손으로는 머리를 매만진다. 겁에 질린 고독한 눈으로 실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린다.) 여긴 너무 쓸쓸해. (지독한 자기 경멸로 얼굴이 굳어진다.)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이 보이는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함께 있는 게 싫었으면서. 저들이 나가서 기쁘면서. (절망적인 웃음을 흘린다.) 성모님.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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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 나도. (그는 초조하게 기침을 시작하고 곧 발작적인 기침이 이어진다. 제이미는 근심과 연민이 어린눈길로 동생을 흘낏 본다. 메리, 앞응접실을 통해들어온다. 얼핏 보기엔 아까보다 덜 초조해하고 아침 식사 직후의 상태와 비슷해진 걸 제외하곤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눈이 더반짝거리고,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듯 목소리와 태도가 묘하게 초연해진 걸 알수 있다.)
메리 - (걱정스럽게 에드먼드에게로 가서 어깨를 안으며)이렇게 기침을 하면 안 되는데. 목에 안 좋아.
감기에다 목까지 아프면 안 되지. (에드먼드에게 키스한다. 에드먼드는 기침을 그치고 걱정스런 눈으로 어머니를 흘낏 살핀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정함이 그의 의심을 잠재워 잠시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반면 제이미는 한 번 유심히보고는 자신의 의심이 적중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방어적인 냉소가 어린 쓰라린 표정이 된다. 메리는 에드먼드의 의자 팔걸이에 살짝 걸터앉아 아들의 어깨를 안고 말을 잇는다. 그녀의 얼굴은 에드먼드의 뒤쪽 위에 있어서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볼 수가 없다.)  - P69

메리 - (매정하게) 눈만 뜨면 남을 비웃잖니. 다른 사람들 약점이나 찾고. (그러다 돌연 감정 없는 초연한목소리로 변하며)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에드먼드는어머니의 이상한 태도에 겁이 난다. 그는 어머니의눈을 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시선을 피하고 있다. 제이미는 어머니를 돌아봤다가 다시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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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유대 민족에 대한 범죄는 무엇보다도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국제 재판소에 대한 타당한 주장이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주장은 아이히만이 재판받고 있는 법과 심각한 모순을 이룬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1950년의 나치스 및 나치 부역자 (처벌)법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모순되며,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주장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살인자가 처벌되는 이유는 그가 공동체의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가 스미스 집안에서 그 남편이자 아빠이며 생계를 위해 일하는 자를 빼앗았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국가가고용한 근대의 대량 살인자들이 재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류의 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수백만 명을 죽였기 때문은 아니다. 살인이라는 범죄와 대량학살이라는 범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따라서 후자가 "적절히 말하면 새로운 범죄가 아니다"는 일반적인착각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범죄에 대한 이해에서 더 위험한 것은, 또는 이러한 새로운 범죄를 다룰 수 있는 국제형사법의 출현에 더욱 방해가 되는 것은 없다. 대량학살이라는 범죄의 핵심은 전적으로 다른 질서가 붕괴되고 또 전적으로 다른 공동체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 P373

 일단 한번 등장하여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행위는 그러한 발생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하나의 가능성으로 인류에게 남는 것은 인간적 사건들의 본질 속에 놓여 있다. 어떠한 처벌도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충분한 억지력을 가진적이 없었다. 반대로 일단 어떤 특정한 범죄가 처음으로 발생한다면 처벌이 무엇이든 간에 그 범죄의 재출현은 그의 최초의 출현보다도 훨씬가능성이 높다. 나치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가 재발할 가능성에 대해말하는 특정한 이유들은 훨씬 더 그럴듯하다. 근대의 인구 폭발과 기술적 장치들의 발견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두려운 사실, 게다가 기술적 장치들은 자동화를 통하여 심지어 노동을 보더라도 그 인구의 많은 부분을 ‘잉여‘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또 핵에너지를 통하여 마치 히틀러의가스 시설을 사악한 아이들의 서투른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이러한 이중적 위협을 처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점은 우리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 전례 없는 일이 일단 발생했다면 그것은 미래에 선례가 될 것이고,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해 다루는 모든 재판은 오늘날 아직 ‘이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만 한다.  - P375

아이히만의 경우 성가신 점은 바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다는 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도착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다는 점, 즉 그들은 아주 그리고 무서울만큼 정상적이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법률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판결에 대한 우리의 도덕 기준의 관점에서보면 이러한 정상적인 모습은 잔혹한 일들을 모두 모아놓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뉘른베르크에서 피고와 그의 변호사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언급된 것처럼) 사실상 인류의 적인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거나느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히만 재판에서 나온 증거는 주요 전법들에 대한재판에서 제시된 증거보다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 자신은 분명한 양심을 갖고 있었다는 항변은 보다 쉽게 기각되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항변은 ‘상관의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 한다는 논지와, 간헐적인 불복종에 대한 여러 형태의 자부심이 결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피고의 나쁜 신념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해도, 죄를 느끼는 양심이 실제로 입증되는 유일한 근거는 나치스, 특히 아이히만이 속한 범죄 조직들이 전쟁 끝나기 전 몇 달 동안 그들의 범죄의 증거들을 그토록 아주 열심히 파괴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근거는 다소 위태롭다. 대량학살의 법은 그것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다른 나라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인정만을 그것은 입증할 뿐이었다. 혹은 나치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들은 인류를 ‘하류 인간들의 지배‘로부터, 특히 시온의 장로들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싸움에서 패했다는 것이다. 또는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패배에 대한 인정을 입증할 뿐이었다. 만일 그들이 승리했다면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가 죄책감에 물든 양심으로 고통을 받았겠는가?
아이히만 재판에서 논란이 된 보다 큰 문제들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것은 잘못을 행하려는 의도가 범죄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모든 현대 법체계에서 통용되는 가정이었다. 문명화된 사법권이 이처럼 주관적 요소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것보다 더 자부심을 가진 것은 없었다. 이러한 의도가 결여된 곳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심지어 도덕적 불건전성의 이유에서라 하더라도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손상된곳에서는, 우리는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 P379

운 좋게도 우리는 그만큼 멀리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피고 자신은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주된 정치적 목적이 된 국가에서 산 모든 사람의 편에 서서 그 죄가 현실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잠재적으로만 유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이고 외적인 어떠한 우연적 상황을 통해 피고가 범죄인이 되는 길로 내몰렸는지 간에, 피고가 행한 일의 현실성과 다른 사람들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잠재성 사이에는 협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피고가 한 일에만 관여할 뿐, 피고의 내적 삶과 피고의 동기에서 가능한 비범죄적본성 또는 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 가능성에는 관여하지않습니다. 피고는 피고의 이야기를 불운에 찬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만일 상황이 보다 유리했더라면 피고는 우리 앞이나 또는 다른 형사재판소로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점도 당신에게 인정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피고와 피고의 상관들이 누가 이 세상에 거주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 P382

나는 재판에 직면한 한 사람이 주연한 현상을 엄격한 사실적 차원에서만 지적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경찰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앉아 자신의 마음을 그 사람 앞에 쏟아 부으며 어떻게 자기가 친위대의 중령의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기가 진급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을 하면서 4개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력이 결여 때문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는 이 모든 일의 의미에 대해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법정에서 있었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나치] 정부가 처방한 가치의 재평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더구나 교수대 아래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생전에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것 외에 생각해 낼 수 없었다는것은, 그리고 이러한 ‘고상한 말‘이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분명코 아주 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 P39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집단적 죄나 집단적 무죄 같은 것은 없다는 점에, 그리고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어느 한 개인은 유적이거나 무죄일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집단의 개별 구성원이 한 일과는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정치적 책임과 같은 것이 있어서 도덕적 관점에서 판단될 수도 또 형사재판에 세울 수도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부는 그의 선임 정부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으며, 모든 민족은 과거의 행위와 과실에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는다. 나폴레옹이 혁명을 통해 프랑스에서 정권을 장악한 뒤에, 자기는 생 루이에서 공공안전위원회에 이르기까지프랑스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진다고 말했을 때, 그는 모든 정치적 생명의 기본적 사실들 가운데 하나를 다소 강조하여 서술했을 뿐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든 세대가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탄생함에 따라 선조들의 행위에 의해 축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조들의 죄에 의해서도 짐을 지게 되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임은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은유적 의미에서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의 아버지 또는 자기의 민족이 한 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말해 만일 어떤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일에 대해서 죄가 있다면 그가 모든 죄에 대해서 자유롭게 느낀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어떤 일을 하지도 않고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느 날 국가들 사이의 어떤 정치적 책임들이 국제 재판소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아주 상상 가능한 일이다. 상상이 가능하지 않은 일은 그러한 법정이 개인의 유죄와 무죄를 선언하는 형사재판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개인적 유죄와 무죄에 대한 질문, 피고와 희생자 모두에게 정의를 부여하는 행위는 형사재판소에서 문제가 되는 유일한 일이다. 아이히만 재판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이곳의 법정이 법전에서 발견되지않는 범죄, 그와 유사한 것이 적어도 뉘른베르크 재판 이전에는 어느 법정에서도 알려진 적이 없었던 범죄를 직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보고서는 예루살렘 법정이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정도 성공했는가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다루고 있지 않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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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주장한 ‘음모‘ 죄는 기각되었는데, 이 항목으로 그는 ‘주요 전범‘이 되어 최종 해결책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자동적으로 책임지도록 되어있었다. 그들은 비록 몇몇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를 시키기는 했지만 15개의 기소 항목 모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죄목과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범했다. 즉 1)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상함으로써‘ 2)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신체적인 파멸로 이끄는 상황으로 몰아감으로써, 3) 그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끼침‘으로써, 4)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유대인 여성들의 출산을 금하고 임신을 방해함으로써 이 민족을 파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에 대해범죄를 저질렀다는 4가지 기소 항목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그들은 1941년 8월 이전의 시기에 대해 부과된 어떠한 죄목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는데, 그 시점은 총통의 명령이 전달된 때였다. 그 이전의 시기의 활동들과 베를린 및 빈, 프라하에서 그는 ‘유대인을 파멸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 P339

11항에서는 ‘수천 명의 집시들‘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한 것을 다루었다. 그러나 판결문에서는 "피고가 집시들을 파멸 지역으로 이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가 우리 앞에서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말의 의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대량학살 죄목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집시들의 처형이 상식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아이히만은 경찰심문 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힘러의 명령이었다는 것. 유대인에 대해서 있었던 것과 같은 ‘지시사항‘이 집시들에게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집시 문제‘에 대해서는 기원과 관습, 습관, 조직•••••• 민요•••••• 경제‘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없었다는 것을 아이히만은 희미하게나마 기억했다. 그의부서는 제국의 영역으로부터 3만 명의 집시들을 ‘소개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가 세부사항들을 아주 잘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은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시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제거되기 위해 이송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는 결코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유죄인 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집시들의 학살에 대해서도 유죄였다.  - P340

자신이 기소된 범죄들에 대해 ‘교사‘한 부분에서만 유죄일 뿐이며, 공공연한 행위를 자행한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아이히만이 줄곧 주장한 점은 기억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판결문은 검찰이 이 점에서 아이히만이 유죄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한편으로 인정했다. 이 점은 중요했다. 그것은 일상적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 이 범죄의 핵심 자체에 닿아 있으며, 일반 범죄자가 아닌 이 범죄자의 본질 자체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함축적으로 판결문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제로 살상 수단들을 손으로 조작한 사람들은 통상 수감자들과 희생자들이었다는 섬뜩한 사실을 역시 인정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했던 것은 정확성 이상의 것이었으며, 그것은 진실이었다. "우리의 형법 제23조에 따라 그의 행동들을 표현하자면, 그들은 타인에게 [범죄적] 행위를 하도록 돕거나 사주한 사람이거나, 또는 자문이나 충고를 함으로써 유혹한 사람이라고 말해야만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범죄의 경우처럼 엄청나고 복잡한 경우, 즉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그리고 다양한 행동방식(그들의 다양한 지위에 따라 입안자, 기획자, 실행자)으로 참여한경우 범죄를 저지르도록 자문하고 유혹했다는 일상적 개념을 사용하는것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범죄들이 희생자의 수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범죄에 개입한 사람들의 숫자의 측면에서도 집단적으로 이루어졌기때문에, 이 수많은 범죄자들 가운데 희생자들을 실제로 죽인 것에서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있었던가 하는 것은, 그의 책임의 기준과 관련된 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와 반대로,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 P342

원래의 판결문과 명백히 대조된 점은 "항소자가 ‘상관의 명령‘을 전혀 받지 않았음"이 이제는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상관이었으며,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그가 모든 명령을 내렸다." 더욱이 그는 "중요성에 있어서는 뮐러를 포함한 그의 모든 상관들을 능가했다." 아이히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유대인의 운명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것이라는 피고 측의 주장에 대해, 판사들은 이제 "최종 해결책이라는 아이디어는 항소자와 그의 공범자들의 억누를 수 없는 피의 갈증과 광신적 열정이 없었다면 수백만의 유대인의 벗겨진 살갗과 고문당한 살이라는 연옥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검찰의 논리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언어 자체도 차용한 것이다.
같은 날인 5월 29일에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벤츠비는 ‘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4장의 친필로 된 아이히만의 사면 청원서를 린츠에 있는 그의 아내와 가족으로부터 온 편지와 함께 받았다. 대통령은 또한 전 세계로부터 온 관대한 조치를 호소하는 수백 통의 편지와 전문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저명한 인사로는 미국랍비중앙회, 미국개혁주의 유대교대표단, 그리고 마르틴 부버가 이끄는 예루살렘 소재 히브리 대학 교수의 한 그룹이 있었다. 부버는 처음부터 이 재판에 반대했으며, 이제는 벤구리온에게 관대한 조치를 내리도록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지 이틀이 지난 5월 31일에 벤츠비씨는 모든 자비의 청원을 물리쳤다. 그리고 같은 날 몇 시간이 지난 뒤(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자정이 되기 직전 아이히만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사체는 화장되었고 재는 지중해의 이스라엘 수역 밖에 뿌려졌다. - P345

마르틴 부버는 이 재판을 "역사적 차원에서의 실수"라고 불렀다. 이 일이 "독일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상하게도 아이히만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부버는 아이히만이 독일 청년들의 어깨에서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을 공개처형해주기를 원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부버처럼 저명할 뿐만 아니라 아주 위대한 지성인이 이 같은 아주 대중화된 죄책감이 필연적으로 얼마나 기만적인가를알지 못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만일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 데도 죄책감을 느낀다면 이는 유쾌한 일이다. 이 얼마나 고귀한일인가! 반면 죄를 인정하고 회개를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상당히 우울한 일이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생활의 모든 면과 모든 행로에서 실제로 죄가 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부 당국이나 공공기관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런 사태에 대한 정상적반응은 분개하는 것이겠지만, 분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생명과 신체에 위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취업에 결정적으로 장애가 된다. 아주 가끔씩, 「안네의 일기』와 같은 소동이나 아이히만 재판과 같은 경우, 히스테리컬한 죄책감의 분출로 우리들을 대하는 그들 젊은 독일의 남녀들은 과거의 부담, 즉 그들의 아버지의 죄 아래서 혼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바로 현재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주는 부담으로부터 값싼 센티멘털리티로 도망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 P347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그는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셨다. 그는 그에게 성서를 읽어주겠다고 제안한 개신교 목사 윌리엄 헐 목사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는 두 시간밖에 더 살 수 없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감방에서 형장에 이르는 50야드를 조용히 그리고 꼿꼿이 걸어갔다. 간수들이 그의 발목과 무릎을 묶자 그는 간수들에게 헐렁하게 묶어서 자신이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겠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로 남긴 기괴한 어리석음보다도 이 점을 더 분명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P349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은 그들의 범죄가 지역으로 구분될 수 없는 전범들을 위해서 수립되었는데, 그 외 모든 다른 전범들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나라들로 보내졌다. 오직 ‘주요 전범들만이 지역의 한계 없이 활동했고, 아이히만은 분명히 그러한 사람들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다. (이것이 그가 뉘른베르크에서 고발되지 않은 이유였다.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그의 잠적이 이유가 아니었다. 예컨대 마르틴 보르만은 궐석으로 고발되고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았다.)만일 아이히만의 활동이 점령지 유럽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그가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어서 지역적 제한이 그에게는 적용되지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그의 부하들이 전 유럽대륙을 돌아다닌 것이 그의 업무, 즉 모든 유대인을 모아서 이송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범죄가 뉘른베르크 헌장의 제한적인 법적 의미에서 ‘국제적 관심사로 만든 것은 유대인이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유대인이 그들 자신의 영역, 즉 이스라엘 국가를 갖게 되자 마치 폴란드인들이 폴란드에서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심판할권한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의 권한을 유대인은 자기 민족에 대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분명히 가지게 된 것이다.  - P357

희생자가 유대인인 한에서는 유대인의 법정이 재판하는 것이 옳고도 적절하다. 그러나 그 범죄가 인류에 대한 범죄인 한, 그 범죄를 심판하는데는 국제 재판소가 필요했다! (법정이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은 그 차이에 대한 구분이 전 이스라엘 법무장관 로젠 씨에의해 과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놀랄 만한 일이다. 로젠 씨는 1950년에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위한]이 법안과 대량학살 방지 및 처벌법의 차이점"에 대해 주장했는데, 이러한 구분이 이스라엘 의회에 의해 논의되었으나 통과되지는 않았다. 법정은 국내법의 한계를 넘어설 권리가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법에 해당되지 않는 대량학살은 그 논의의 적절한 대상이 될 수 없었음이 분명했다.)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는 데 대해 반대하며 국제 재판소를 선호한 수많은 고도의 자격을 갖춘 목소리들 가운데 오직 하나, 카를 야스퍼스의 목소리만이 (재판이 시작되기전에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 나중에 『모나트」에 인쇄되어)나왔다. "유대인에 대한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점과 "따라서판결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법정에서만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사실과 관련된 증언을 청취한 뒤 예루살렘법정은 스스로 판결을 ‘내릴 자격이 없음‘을 공표하면서 판결의 권리를 ‘철회할 것을 제안했다. 왜냐하면 문제가 된 범죄의 법적 성격이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어 있고, 그에 이어지는 질문, 즉 누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판결을 내릴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야스퍼스는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게 주장했다. "이 범죄는 일반적 살인 그 이상이면서 동시에 그 이하이다." 그래서 비록 이것이 ‘전쟁범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국가들이 그러한 범죄가 지속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인류는 분명 파멸될 것이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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