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운옥 - 맞습니다. 모든 조선족이 범죄자일 수 없고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그중 극히 일부일 텐데, 그럼에도 내국인이 그와 관련해 지나친 공포를 느끼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미디어가 그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하거나 과잉 보도 경쟁을 벌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예컨대 <범죄도시> 같은 영화에서 조선족이나 중국인에 대한 과도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들을 재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저도 조선족을 비롯한 이주 외국인 범죄 관련 정확한 통계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적해주신 것처럼 대중의 차별적인 공포를 해소하는 일에 있어서 ‘통계상의 디테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통계를 발생 추이나 ‘몇건당 몇 건이다‘ 식의 단순 비율로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칫 어떤 집단을 범죄자 집단으로 규정해버리는 ‘과잉 일반화의 오류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나와 있는 외국인 범죄 증가 추이에 관한 통계상 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매우 자세한 통계, 예를 들어직업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통계가 대중에게 제공되어야한다는 거죠. 단순 범죄율 증가 추이 같은 것만 이야기하고 ‘외국인 수의 증가 폭보다 범죄 증가율이 더 높다‘ 식으로만 알리면 오히려 정확한 실상을 알기 어렵다고 봅니다. - P229
이렇게 생명이 무성생식으로 번식하고 대를 이어가는 방식의 생태계에서는 다양성 자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당시에 다양성이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생명이 다음세대에 유전자 세트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매우 낮은 빈도로 에러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일종의 다양성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다가 15억 년 전쯤 희한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어떤 특정 호스트가 기생자의 침입을 받게 된 겁니다. 기생자의 침입을 받은 호스트는 무척 고생하는데,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생명체라면 자기 유전자 세트, 그리고 기생자의 침입을받은 그 상태를 그대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심한 경우 앞세대 생명체에게서 유전자 세트를 물려받은 생명체는 그 탓에 죽고 맙니다. 그것으로 그 생명체의 번식과 유전자의 여정은 끝나는 거죠. 그런데 이때 만약 유전자가 이미 다양성을 획득한 상태라면 죽지 않고 생존하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런 맥락에서 호스트, 즉 숙주가 되는 생명체가 개발하고 진화한 것이 ‘성(性)‘이에요. 성에는 예컨대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이 있잖아요? 두 성이 섞이는 과정에서 일종의 ‘유전자 칵테일‘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가15억 년 전쯤부터 ‘알록달록‘해졌어요. 생명의 세계에 다양성이 크게 확장된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역사에서 다양성은 근원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P251
장대익 - 진화학자의 관점에서 사회를 볼 때마다 특별히 느끼는 게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잖아요. 저는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부인하려고 해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체계는 다양한 변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우리에게 남겨준 놀라운 지적 유산은 ‘진화는 변이로부터 시작된다‘라는 명제인데요. ‘변이‘가 없이는 ‘선택‘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변이의 요소가 충만합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다름을 불편하게 느끼는 본능‘도 내재해 있어요. 실제로 이와 관련해 심리 실험을 해보면 자기 자신과 여러면에서 유사하거나 자신과 교류를 많이 하고 소통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공감을 잘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컨대 우리가 이주외국인, 탈북자, 장애인 등 자신과 다르게 생겼거나, 다른 가치관을 가졌거나,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을 어려서부터 일상적으로 접촉하거나 만나지 못했다면 그 감정이 아예 길러지지 않거나 그러한 감정을 쉽게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그러므로 저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공감 지수‘라고 생각해요. 즉, 다른 사람의 처지와 관점으로 사물과 상황을 볼 줄아는 능력. 그것이 다양성 지수와 맥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 P257
반면 기성세대는 BLM 운동이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correct)‘ 것이니까,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직접 참여하지는 않겠어. 왜냐하면 나는 그들(흑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까!‘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어려서부터 다른 인종, 다른 백그라운드, 다른 환경의 아이들과 뒤섞여(mingle) 지내왔기 때문에 BLM 운동에 실제로 동참하는 일이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한 게 아닌 거죠. 단지 자기 친구이자 동료일 수있는 한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보거나 심지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그런 분위기를 진심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거예요. - P259
장대익 - 앞서 교수님이 ‘블랙 라이브스 매터‘를 말씀하셨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2세대 · 0세대 등젊은 세대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말씀하신 대로 이 세대가 한편으로는 자신이 경험한 일에 깊이 공감하고 또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다른한편으로는 뭔가를 지나치게 혐오하는 경향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경향이 이 세대의 주요 소통 도구인 소셜 미디어의 영향 탓일수도 있고, 갈수록 극심해지는 양극화로 인한 부작용일 수도 있을텐데요. 아무튼 어떤 일에는 교수님이 말씀하신 BLM 경우처럼 깜짝 놀랄 만큼 깊이 공감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일에는 지나치게 무관심하거나 불필요한 혐오감과 적대감을 드러낸다는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 잘파세대가 대륙과 국가, 지리적·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같은 세대 간에 형성되는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다양성의 세계로 나가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DNA를 지니고 있다는 교수님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매우 우려되는 점도 있거든요. - P269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이들이 거의 태어날 때부터 SNS 등의 소통 도구에 익숙해 있고 몸에 체화돼 있다는 점이에요. 그런 점이 바로 다양성을 키워주는 요소라고 보는데, 그도 그럴 것이 SNS 공간에서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 다양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SNS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 특성상 자기가 좋아하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계속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터링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양극화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고요. 말하자면, 갈수록 점점 더 ‘넓은공감‘이 아닌 ‘깊은 공감‘이 강화되어서 다양성을 오히려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 P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