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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독약 ㅣ 창비세계문학 28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평점 :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은 무기력과 피로감, 체념으로 양심마저 잃어버린 일본.
미군포로를 생체해부한 사건을 일본인의 시선으로 그려낸 책.
사람의 인연 따위는 의지가 안되는 세상, 홀몸인 저는 전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몰랐고 신문 한줄 읽을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조국이 이기든 지든 관심도 없었습니다. 한밤중 눈을 떴을 때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요즘 들어 왠지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둠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그저께 밤보다는 어젯밤이, 어젯밤보다는 오늘밤이 파도의 수런거림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제가전쟁을 느끼는 것은 이때뿐이었습니다. 커다란 북소리 같은 어두운 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높아짐에 따라 일본은 패망하고 우리는어디론가 끌려들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p106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이런 수기를 쓰는 이유는 웬지 무섭기 때문 이다. 타인의 이목이나 사회의 벌만을 두려워하고, 그것이 제거되면 두려움마저 사라지는 자신이 어쩐지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무섭다는 건 좀 과장된 이야기이고 이상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도 역시 나처럼 한꺼풀을벗기면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가. 약간의 나쁜 지이라면 사회로부터 벌받지 않는 이상 별다른 가책이나 부끄러움을느끼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그리고 어느날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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