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의술이 발달한 현대의학이라 한들,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수없이 반복되는 억겁의 시간 속 생로병사를 어떻게 잠깐 스쳐가는 삶이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저 잘 회복해서 밝은 봄의 기운을 보여주는 환자들에게 감사할 뿐이고, 나는 그저 회복에 도움을 준 보조자로서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달빛의 은은함은 사람의 마음을 은근하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은 성숙을 의미한다고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애벌레가 고치 껍질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것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육체의 변화, 추함, 죽음 등은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다.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추구하는가? 아름다움은 생명 자체인가? 그렇다면 죽음으로 가는 것, 소멸되는 것은 추한가?
살아갈 날이 더 많아야 할 청춘이 병으로 변해가는 모습, 특히 아름다움에서 다른 쪽으로 변해가는 것, 그것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병으로 급격히 변화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꽃이 시들 때와 같은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생명에서도 마찬가지 비유를 들자면, 생명 자체가 규칙과 조화이기 때문에 그 조화가 깨진 것을 추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윤이 나는 혈색 좋은 피부와 고운 자태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쇠락해가고 퇴색하고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에서는 추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생生과 사死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의 큰 섭리로 보자면 추한 것은 오히려 아름다움을 위해, 마치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아름다운 나비로의 변태變態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 단계인 것은 아닐까?
학생 시절에 진료를 할 때는 지나친 감정이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위로의 말과 행동은 병을 치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의사에게도 역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슬픈 울음을 위로하는 주제넘은 의사가 된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지 자문해보았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죽음을 경험하거나 중대한 시험에서 떨어지는 등 살아가다보면 크고 작은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럴 때면 눈물을 흘린다. 울음은 육신의 정화작용이며 눈물에는 스트레스의 배설물이 들어 있다
눈물이 많은 나는 어찌보면 공감할 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돌고 도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사랑은 꼬리를 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누구도 다가오는 미래를 알 수 없다. 불안감을 안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누군가와 함께 기꺼이 선택하는 것은 커다란 희생과 사랑을 요구한다.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으로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불투명한 부분을 같이 감수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는 서로 무수한 교감을 통해 만들어진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각자의 마음에 각인된 사랑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힘을 주는 원천이자 인간답고 고귀한 인생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고 그럼으로써 자연은 새로운 창조를 이어간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새싹이 나는 것처럼, 낙엽이 대지에 떨어져 썩으면 나무의 거름이 되는 것처럼, 생과 사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고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연적인 귀결歸結을 본인이 선택하고, 또한 품위 있게 마감하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 몸은 정교한 기계와 같아서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일상적인 삶이 불편해진다. 이러한 이상을 바로잡아주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마음속 깊이 친절한 마음을 깨우는 동기는 이렇게 상대방의 상황을 내 일처럼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작은 것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은 아마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이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곁에는 많이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사무쳐도 외롭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주변을 자세히 살피고 귀 기울이는 것뿐일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너무 가혹한 고통은 아니기를, 인간의 존엄성만큼은 유지시킬 수 있는 고통이기를 기도해본다
먼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이 특별히 필요하겠는가. 당신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잘 가라고? 잘 가라는 인사는 결국 잘 오라는 뜻이 내포된 말이 아니었던가. 그 말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뿐이다. 침묵 속에서 그와 함께 있는 일뿐이다. 너무나 귀한 시간이라서 차라리 거룩한 침묵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느끼는 데 온 정신을 몰입하면서 보내는 것이 옳다. 이때 언어는 방해만 될 뿐이다. 만약 당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 말없이 그의 옆에 서서 함께 있음을 느껴보라. 그 함께 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 맛보라"고 했다. 진료실에서 잠깐 동안의 침묵을 경험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단지 일찍 가고 늦게 가는 시간의 차이와 자신의 남은 생이 얼마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이다. "세상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 우리의 헤어짐을 노래하게 하소서"라는 가수 유익종의 노랫말처럼
흔히 인생을 드라마나 연극에 비유한다. 이야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나 관객들은 결말이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한 사람의 시각으로 생각하는 해피엔드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모두를 아울러 본다면 해피엔드는 다차원적일 수 있다
해피엔드를 꿈꾸며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성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아니면 언젠가 먼 훗날 ‘누군가’의 해피엔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대가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한다. 힐드 교수의 경우 조깅을 한다고 했다.
둘째, 나이가 들어서도 첨단기술을 잘 활용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힐드 교수 역시 컴퓨터와 슬라이드를 직접 다루었는데, 실제로 그날 발표한 자료를 자신의 컴퓨터에 다 넣어 가기도 했다. 또한 다른 젊은 일본의사들과 나란히 앉아 다빈치로봇수술을 보면서 관심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전공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시키는 열정이 저 사람을 젊게 만드는구나 생각되었다.
셋째, 자신의 생각과 기술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힐드 교수는 평생을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남미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직장암 수술에 대한 강의와 수술을 실연했던 분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관심과 호기심이 쇠퇴하며 시들하기 마련인데 대가들은 결코 식지 않은 열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은 고통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힘들어 한다. 나 역시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만을 보았을 것이다. 병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고 지나가거나 알 이유가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가끔씩 나는 지식과 경험, 기술을 파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곤 한다. 매일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보다보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 대신 가끔 귀찮기도 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어 힘들다. 진정한 의술, 인술은 옆에서 같이 아파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육신이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지만 마음은 미처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 마음속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냈던 그 피서지로 가는 길을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빛바랜 사진 속, 딸아이의 함박웃음 속에서나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딸아이의 행복한 웃음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도해본다. 또한 내 일상의 한 컷 한 컷을 아름답게 간직하며, 하루하루 마주치는 이웃들과 환자들에게 잘하자는 다짐을 해본다.
체력과 건강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임을 실감했다. 신체 나이와 실제 건강 및 체력 상태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꽃과 식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관심을 가지면 더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식물이라는 생명체에 경외심마저 느끼게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아기자기한 꽃을 키우는 집사람은 분명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마음의 휴가를 갖고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좁은 문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소설 속의 지나친 금욕주의와 종교적 숭고함을 추구하는 삶에 대해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삶인데, 어떻게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얽매여 살 수 있어?" 하고 당장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수많은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삶의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고 옳게 살아간다면 진정 아름답게 공명하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좁은 문’도 활짝 열린 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완성하는 ‘좁은 문’을 무사히 통과하게 도와주는 마술피리는 어디에 있을까. 건강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부단한 고민 속에 그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하는 일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어려움이 오면 같이 고통을 감수하겠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랑이 만드는 에너지와 그로 인한 반사작용은 너무나 크다. 그러니 내가 이루어낸 사랑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상대를 아끼고 지키려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언제나 다짐한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난처한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합병증을 겪을 때마다 내 소견과 경험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더욱 채찍질하게 된다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시 <이타카Ithaca>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상의 섬 이타카를 향해 항해를 시작할 때 온갖 바다괴물과 풍랑, 난파 등 두려운 상황을 너무 떠올리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니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항해하라고 말이다.
비록 외과의사의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환자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과 그 치료에 헌신한다면 그 목적지인 ‘환자를 살리는 섬’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날은 사실 개인적인 약속이 있었는데 이 수술로 인해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한 시간 늦게 참석하게 되었다. 외과의사와의 약속은 믿지 않는 편이 좋다
대장암이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특히 젊은 연령층의 대장암 발병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구식 식생활, 지나친 음주, 흡연, 비만, 운동부족,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잘 알려진 위험요인을 피하는 것은 대장암 예방의 한 방법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가끔씩 식단이나 생활습관 등을 체크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옛날 중국의 어느 의원이 진료를 받고도 형편이 어려워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돈 대신 집 주변이 허전하니 살구나무 묘목이나 심어달라고 요청했지. 수십 년이 지나자 의원의 집 주변은 온통 살구나무 숲으로 변했고 그의 인술을 기리는 뜻에서 이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행림지업
오늘날 의사에게 그 옛날 중국의 의원과 같은 행림지업은 어렵겠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헤아리고 도와주고 격려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행림지업이 아닐까 싶다. 의사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수십 년 후 그들의 마음속에 살구나무 숲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보는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위태로운 마음을 잘 붙잡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내게 예정된 시간을 의식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지금 여기에 왜 있고 왜 왔는가? 최선을 다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기를 부탁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의 조언을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10년 뒤 모습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어느 날, 아버지가 이웃집 소를 외양간에서 훔치는 것을 보면 자식은 관가에 고발할 것인지 아니면 부자 간 정을 생각하여 덮어줄 것인지 질문하였다고 한다. 어느 쪽도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어려운 상황인데, 진실을 밝히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신념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각자의 가치관을 따라 개인이 판단할 몫일 것이다.
노부부의 소박한 삶은 거룩한 삶이다. 어떤 철학자보다 귀중한 철학과 메시지를 현대인에게 전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인간적이고 소박한 삶이야말로 하늘이 보기에 좋은 삶이 아닐까.
나무에게도 삼나무, 참나무, 소나무 각자 나름으로의 길과 목적이 있듯,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오늘, 일상에서 보기 드문 성자聖者를 마주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였다
오늘 같은 일상에서의 탈출이 도리어 일상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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