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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샤일록 작전
  • 필립 로스
  • 19,800원 (10%1,100)
  • 2025-02-24
  • :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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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을 재미있게 읽고 단박에 필립 로스의 팬을 자임하고 다녔다가 <유령퇴장>에 급실망, 손절을 해? 말아? 적지 않은 세월 헤맸다. 무려 5년이나 망설이다 <우리 패거리들>을 읽고 으악, 이게 내가 알던 필립 로스 맞아? 작품 속에 간혹 경박한 면이 조금 눈에 뜨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폭력적으로 가볍게 입을, 또는 손모가지를 놀리다니 이제는 정말 가까이할 수 없군. 일단 마음먹었다가,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 딱 한 번만 더 읽는다,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책이 <샤일록 작전>이다. 내가 기억하는 유대인으로서의 필립 로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특별한 프라이드도 갖지 않는, 그러니까 유대인이라기 보다 마치 한국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렇듯이 그냥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샤일록 작전>을 읽으면서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어쩌면) 로스가 튀는 행동을 해 오랜 세월 유럽쪽에 머물렀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모르겠으나,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이슬람 지역에서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생활한 유대인들을 주축으로 한 시오니스트들 하고는, 아주 내놓고 그러지는 못했겠지만, 서로 앙금 비슷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필립 로스는 시오니즘을 내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식?


  로스를 읽으면서 아주 예외적으로 <샤일록 작전>에서 그는 놀랍게도 포스트모던이라 할 수 있는, 그러나 이젠 벌써 클리셰가 되어버린 방식을 채택한다. 1988년 1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친척 앱터가 뉴욕의 필립 로스에게 전화를 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준다. 나는 분명히 뉴욕에 있는데, 또다른 필립 로스가 예루살렘에서 폴란드의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Ivan’이라 불린 존 데미야뉴크의 전범재판을 방청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고, 라디오에서도 필립 로스가 재판을 방청했다고 소개했다는 거다. 이를테면 문학 작품 속에 간혹 등장하는 “또다른 나” 혹은 “페르소나”가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스위트룸 511호에 묵고 있으며, 스위트룸에서 강연회를 겸한 팬들과 만나는 행사로 할 예정이라고. 정작 진짜배기 필립 로스는 책 한 권을 끝마치고 그간 쌓인 긴장을 풀 겸해서 책을 끝마치면 거의 언제나 그랬듯이 맨해튼의 방 두 개짜리 호텔 스위트룸에서 아내 클레어와 함께 거의 5개월 동안 피난민처럼 지내고 있는데 말씀이다. 웃기지? 방 두 개짜리, 맨해튼의 이름있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5개월 동안이나 불쌍하게도 “피난민처럼” 지내고 있다니 말이지.

  이스라엘의 킹 데이비드 호텔 스위트룸 511호에서 로스 흉내를 내고 있는 미친놈의 입을 빌려, 필립 로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이상적이기 때문에 전혀 가능성없는 이스라엘-이슬람,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기막힌 방안을 제시한다. 오죽했으면 나도 읽으면서 화들짝 놀랐겠느냐 말이지.

  이스라엘의 유명한 작가 아하론 아펠펠드가 뉴욕의 로스에게 전한 말에 의하면, 킹 데이비드 호텔의 필립 로스는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의 ‘공포의 이반’, 존 데미야뉴크 전범재판을 방청하기 바로 전에 폴란드 그단스크의 모처에서 레흐 바웬사를 만나, 언젠가 폴란드에서 노동 솔리다리티가 정권을 잡을 때, 폴란드 내에서 유대인들의 재정착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단다. 예루살렘의 로스가 주장하기를,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다시 자기들이 살던 유럽으로 이주하는, 역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지면, 이스라엘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을 1948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어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역시 1948년 이전처럼 별 다툼 없이 서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만일 지금처럼 미국과 이슬람 세력간의 무력충돌이 계속되면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두 진영 가운데 한 쪽에 의하여 원자폭탄이 날아들어 한 쪽을 거덜내 완전한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주장이다. 만일 생존자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지구인이 몽땅 멸망하는 순간까지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예전 나치들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신세로 떨어질 것이며, 전세계 유대인들도 이마에 불그죽죽하게 찍힌 낙인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란다. 당연히 너무 순진하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과하게 낭만주의적인 발상이지만, 탁 읽어보면 어찌됐던 간에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인물 한 명. 존 데미야뉴크. 1920년생 우크라이나인. 1940년에 소련군에 징집되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 1942년에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다. 북한을 비롯한 붉은 군대 소속원들은 포로로 잡히는 것을 수치로 알았고, 포로였던 병사들이 교환으로 귀국을 해도 경멸을 받았으며 심할 경우엔 범죄인처럼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소련 시절의 숱한 수용소 소설 읽어보시라. 내 말이 맞다. 스물두 살의 데미야뉴크는 나치군이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할 인원을 뽑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저요, 저요, 손을 번쩍 들어 몇 군데의 절멸수용소에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데미야뉴크가 특히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으로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를 지휘하면서 나신 상태로 가스실로 향하는 수만, 수십만 유대인들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갖은 악행과 고문과 폭행을 저질렀다는 거다. 천운을 타고나 수용소에서 생존한 자들이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특정한 반면, 존 데미야뉴크, 본명 Ivan Mykolaiovyxh Demjanjuk는 무려 43년도 넘게 지나 목격자의 기억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그곳 교도관이었던 것은 맞는데 공포의 이반은 다른 교도관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끝나고 1951년에 미국으로 이민 가 포드 계열사에서 자동차 정비일을 하던 데미야뉴크는 1986년에 미국 경찰에 전범으로 체포되어 신병이 이스라엘로 넘겨진다. 이후 1988년에 첫 재판을 받는데, 이걸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에 머무는 가짜 필립 로스가 방청을 했다는 거. 하여간 1심에서 데미야뉴크는 유죄, 사행 판결을 받지만 1993년 대법원에서 피고의 진술을 받아들여 진짜 ‘공포의 이반’은 다른 교도관이었다고 판결, 석방되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2001년에 미국 정부에 의하여 절멸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것이 확실하다고 결정이 나 다시 체포되어 2005년에 이번엔 유럽, 독일이나 우크라이나 또는 폴란드로 강제송환할 것을 결정하지만 정작 독일 법정으로 보내진 것은 2009년 5월, 그의 나이 89세 때였다. 뮌헨에서 있었던 1심 결과 데미야뉴크가 2만9천 명의 유대인 학살에 관련이 있는 자라고 판결해 5년 형을 받았으나, 데미야뉴크는 이를 다시 부인해 항소했고, 독일 정부는 일단 그를 석방했다.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는데 내 생각으로는 보석 아니었을까 싶다. 재판은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2013년 3월 17일이 도래해, 그는 최종판결을 받지 못하고 독일의 노인 복지 시설에서 93세의 나이로 죽었다. B급 문화의 대변인인 나무위키는 엄밀한 의미에서 데미야뉴크는 무죄인 상태로 죽었다고 썼다.

  필립 로스는 <샤일록 작전>을 1993년에 써서 세번째로 펜/포크너 상을 받았다. 펜/포크너 상을 몇 월에 주는 지 모르겠으나, 1993년은 이스라엘 대법원에서 데미야뉴크에게 무죄를 선고한 해인데, 이 책에서 로스는 데미야뉴크가 빼도 박도 못하게 ‘공포의 이반’임을 확신한다. 독일 법정에서도 2만9천 명의 살해에 관련이 되었다고 했지,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공포의 이반으로 고문과 학대와 폭력을 <샤일록 작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실제로 했다면 유대인 관련해서는 거의 무조건적, 습관적으로 엄벌에 처하는 독일 법정이 왜 5년형만 때렸을까?

  하여간 나는 좀 이상하다. 지금 데미야뉴크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범인으로 확정하지 않은 시점에 한 인간을 뒤꿈치로 자근자근 밟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데미야뉴크를 이반으로 설정해서 다큐멘터리, 드라마 같은 것도 만들었다. 시청률과 박스오피스는 진실에 우선하니까.


  하나 더. 내 중딩 시절에는 확실하고, 고딩 시절에는 기억이 없는 거 보니까 그랬던 거 같은데,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대표하는 작품은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가 거의 유일했다. 확인하기 위해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을 검색해보니까 소설은 1979년, 영화가 1982년이다. 그럼 맞다. 내 청소년기 시절에는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샤일록 작전>에서 필립 로스 역시 1960년대까지 나치에 의한 유대인 멸절을 그렇게까지 강하고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처럼 <안네의 일기> 정도면 충분했다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다수의 홀로코스트 작품이 있었겠지. 로스의 주장은 ‘세계인의 주목을 크게 받을 만큼’이 아니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다가 1967년 6일 전쟁이 벌어지고, 이스라엘이 거의 완벽하게 이슬람 세계에 승리하면서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홀로코스트가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유대인은 지난 2천년 동안 차별받고 탄압받은 역사와 아울러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중동부 유럽에서 있었던 불행한 멸절 시대를, 돈과 정치력과 문화의 힘으로 세계만방에 알림으로써, 1차, 2차, 3차…n차 중동전쟁을 통한 무슬림에 대한 가혹행위를 무마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거, 나도 독후감을 통해 자주 주장했던 것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유대인인 필립 로스의 입과 펜을 통해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니까, 비록 좋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반갑기는 했다. 반가워? 아니, 아니. 이런 비극적인 사건에 적당한 다른 단어 없을까? 하여간 눈이 번쩍 띄었다니까.

  결론을 말할 시간이다. 분량이 너무 많다. 비슷한 이야기가 자꾸 중첩되어 지루한 느낌이 든다. 특히 “또 다른 나”와 “페르소나”와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별점을 준다면 셋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이 들 즈음, 역 디아스포라를 주장하고, 중동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유행이 터져 별 하나 추가, 넷 정도가 마땅하지 않을까. 필립 로스가 60세에 발표해 펜/포크너 상을 받은 작품이다. 괜히 내 독후감과 선입견 때문에 이이의 작품을 멀리하실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말했다. 분량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했다고. 지루한 스토리를 굳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메모해둔 것이 아깝기는 하네.) 이것만 인용하자. 500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늙은 스파이 스마일스버가가 필립 로스에게 하는 말이다.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중략)

  언젠가 팔레스타인이 승리한다면, 그래서 여기 예루살렘에서, 예를 들면 지금 데미야뉴크 씨의 재판이 열리는 바로 그곳에서 전범재판이 열린다면, 그 재판에서 거물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하급 관리들도 다뤄진다면,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난 앞에서 나 자신을 변호할 말이 하나도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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