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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 마힐  2025-12-10 14:31  좋아요  l (1)
  • 필리아님께서 소개해 주신 생성-의미-정동은 제 눈엔 불교의 ‘공‘ 을 서양 철학 언어로 풀어내신 것 처럼 느껴졌어요. 둘다 관계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공은 ‘비워내기‘에 가깝고, 생성과 정동은 ‘확장과 변형‘ 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해서요. 제 이해가 맞는지 궁금하네요.
    같은 산을 다른 능선에서 오르다 보면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ㅎㅎ
    생각할 수 있는 텍스트 남겨 주셔서 감사 합니다.
    참, 이 달의 당선작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 비의식  2025-12-10 14:53  좋아요  l (1)
  • 말씀하신 확장과 변형에 ‘가깝다‘와 근사한 개념이지만, 오히려 개체의 환경세계에서 지각되는 어떤 기호로 인해 개체의 신체가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정서, 혹은 감응의 결과라고 이해될 수 있는 ‘변용‘을 지칭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空)‘에 대한 지식이 결여되어서 어설프게 말을 한다는 것이 저어 되지만. 들뢰즈는 ‘존재 일의성‘의 철학자로 불리거든요. 여기서 존재의 일의성이란 궁극적 모든 존재는 하나의 전체에 이를 수 밖에 없음이라고 거칠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이 일의성이 공의 다른 표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마힐님, 댓글 고맙습니다. ^^
  • 비의식  2025-12-10 17:42  좋아요  l (0)
  • 동양과 서양의 사유 접근에 관한 흥미있는 비유가 있네요.
    동양은 전체(궁극)에서 개체로, 서양은 개체에서 전체로라는 것인데요, 동양(한국, 중국, 일본)은 주소를 표기할 때, 나라, 큰지역명, 작은 작은지역명,이름(개체)으로 쓰고, 서양은 이름에서 점진적으로 큰지역, 국가로 표기하는 것처럼, 동서의 사유접근의 방향이 마힐님의 지적처럼 비워내기,형성화 또는 생성의 극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 들뢰즈가 공(空)에 대해 나름의 식견을 지니고 있었네요. 그의 저술 <시네마 1>에서, ˝동양의 근본적 원리의 하나인 근원적인 공(空)˝을 말하면서, ˝그것은 일자 안에 있는 사물에 스며들어 있으며, 그 모든 사물들을 하나로 회집하고, 거대한 원환 내지는 유기적 나선의 움직임을 따라 사물들을 변형하는 생명의 숨결이다.˝ 고 인식하고 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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