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딱 절반 읽었다.
이제 조금 더 전개가 이어지다가 절정을 맞을 참이다.
절반 읽은 지점에서 잠시 책을 덮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는 여전히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한다.
9p
루시의 '부재'가 느껴진다.
떠났든, 죽었든.
절반의 결말을 내놓고 시작하는 첫문장이다.
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하지만 루시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면 다들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지며 허물없는 눈동자로 넌지시 말한다. '그래, 너도 기억하지?'
화자가 복수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다. 해버퍼드 마을 사람들.
이들은 이젠 떠나고 없는 루시를 떠올리며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진다.
Lucy Gayheart.
'lucy'는 라틴어 'lux'가 어원이다.
그 뜻은 '빛'.
gay=lightheaded/carefree
심장이 밝은.
루시 게이하트.
빛의 밝음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그래서 전체 서사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화자)과 함께 독자(나)는 루시 게이하트를 회고한다.
떠나지 않은 상태의 루시를 돌아본다.
독자는 그녀를 만난 적 없으니 화자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안내한다.
3인칭 관찰자 신분이면서 루시의 눈과 귀와 머리와 마음이 된다.
마음대로 그 내면을 들어간다.
뿐만 아니다.
주요 인물인 서배스천, 해리의 마음 속에도 거리낌없이 들어선다.
윌라 캐더는 자유간접화법의 달인이다.
인물과 서술자의 목소리가 자유자재로 섞인다.
누가 인물이고 서술자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 구분이 어렵다는 건 이 소설의 미덕이 된다.
3인칭이란 렌즈로 줌아웃한 거리감을 자유간접화법으로 바짝 당긴다.
한 발 떨어져 루시를 보면서도 어느새 루시가 되기도 한다.
(소설의 자유간접화법을 익히고 싶은 소설가라면 이 책은 고퀄의 텍스트북!)
절반까지 읽은 상태에서 '삼각 관계'를 한 번 들여다보자.
루시-서배스천-해리
루시는 무언가를 동경하는 시골 처녀.
서배스천은 위대한 예술가(루시가 보기에)
해리는 속물적인 부잣집 도련님
해리를 택하면 편안한 삶이 보장된다.
서배스천은 유부남이고 나이도 아버지뻘에 아는 건 노래밖에 없다.
루시는 서배스천에게서 예술의 열정을 본다.
루시가 동경하던 것의 정체다.
해리와 서배스천이란 남자는 모두 루시를 '통해' 무언가를 본다.
해리는 루시를 통해 자신의 취약성을 채우려 한다.
서배스천은 루시를 통해 청춘의 열정을 채우려 한다.
루시가 서배스천을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배스천은 이미 루시의 많은 것을 파괴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파괴자다.
이전 세상의 파괴자.
서배스천을 만나기 전의 루시는 낱말에 직접적인 뜻 외에 다른 의미가
깃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03p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창조자.
낱말의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창조자.
파괴자면서 창조자.
서배스천으로 인해 루시의 이전 세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인생에 이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나는 건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다.
이런 사람 옆에 '사랑'이란 단어를 붙이는데 우리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런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에 '사랑'을 붙이는 게 문제다.
물론, 루시에게 서배스천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많은 사랑이 그렇듯이.
어쩌면 진짜 사랑이 그렇듯이.
이들의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절반을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