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 카이에 소바주 3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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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증여가 가져다주는 것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지'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서, 숲의 하우와의 사이에 마치 증여의 순환이 발생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해하려고 합니다... 증여와 순수증여 사이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증여의 원리가 순수증여와 접촉할 때마다 거기서부터 영력의 증식이 일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순수증여'란 '자연'의 별칭인 셈입니다. _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p72


 증여와 순수증여 그리고 교환. 저자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 '보로메오의 매듭'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와 회복해야 할 정신에 대해 말한다. 교환의 매개체인 상품을 통해서는 아무런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화폐-상품의 1:1 대응이 교환이라면, 증여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호혜성'이며, 순수증여는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방적인 '베풂'이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이기적인 교환관계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수탈-착취의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보고, 사람들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생겨난 근원으로 눈을 돌릴 것을 강조한다.


 노동의 증여와 순수증여를 하는 대지의 힘이 서로 만나서 뒤섞이는 부분에 '순생산'은 출현합니다. 인간의 섬세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노동을 받음으로 해서 대지라고 하는 신체는 기뻐하고 열락悅樂을 느끼며, 바로 그때 증식이 일어나고 진정한 잉여가치가 발생합니다. _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p145


 저자는 사람의 노동력과 자연이 만나는 곳에서 순생산이 발생하고, 이로부터 잉여가치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본문에서 잉여가치가 소비되는 '교환'의 세계가 아니라, 가치를 유통하는 '증여'의 세계와 이를 생산하는 '순수증여'에 힘이 실리는 것은  바로 저자의 관심이 비대칭적 문명(文明)을 넘어선 대칭적 문화(文化)로의 복귀 때문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 문명의 경제학이라면, 나카자와 신이치의 경제론은 문화의 경제학이며, 사랑의 경제학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증여 중심의 경제에 바탕한 사회의 사람들은. ‘물‘의 이동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이 활성화되고, 인간 사회와 자연을 끌어들여 힘찬 유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환에서는 증여에서 활동하던 인격성의 힘이나 영력 같은 것이 전부 억압을 받고, 배제 당하고 제거되어 버립니다. - P53

우리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국가와 화폐는 신석기 시대의 특징이 남아 있던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한, 인류의 마음의 구조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서, 그 본질이 완전히 똑같다는 결론입니다. - P118

농업에는 사람들에게서 예술적, 종교적 표현을 유도해내는 힘이 감추어져 있는 듯합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증여의 원리의 극학에 출현하는 순수증여의 원리를 분명한 이미지로서 조형하는 능력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한 발 더 안으로 들어가서, ‘대지‘ 나 ‘자연‘을 신의 활동의 표현으로 간주하게 되면, 어김없이 종교적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직전 상태에서 계속 멈춰 있으면, 예술의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 P142

성령과 순수증여의 작용은 참으로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사람의 내부에서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정신적인 흥분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세계에서 순수증여의 힘이 격렬하게 움직이면, 그 힘이 교환이나 증여의 원리와 접촉하는 경계 영역에서 순생산이나 자본의 형태로 격렬한 증식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풍부한 정신성이 실현되고, 현실의 물질적 세계에서는 풍요로운 부의 증식이 일어나는 병행현상이 나타나게 되겠지요.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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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꺼내들었다. 책을 읽으며 화자는 자신의 길을 찾았지만, 내 자신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만들었던 책이라, 손에서 놓은 지 꽤 되었던 차다. 만화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길을 잃어버린 나에게 시각적 지도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로 펼쳐들었지만, 19세기말의 시대상을 현대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여줘 한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부분들이 있었다. 마들렌의 과자를 먹는 화자와 뱅퇴유의 소나타를 듣는 스완.


 이들은 모두 외부자극에 의해 자신의 기억을 찾는다는 점에서 '비자발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와 동시에 이들 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화자는 마들렌 과자를 먹으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반면, 스완은 뱅퇴유 소나타를 들으며 오데트와의 사랑을 되새기며 고뇌한다. 전자가 '미각/후각'이라는 여운을 남기는 감각을 통해 '개인의 시간'을 찾는다면, 후자는 '청각'이라는 일시적 감각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한다. 여운을 남기는 미각은 자신에게 머물며 자신의 시간을 돌려준다. 소멸되는 청각은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에 의해 재생(연주)되어야 한다. 자립과 외부 의존. 그것은 문학과 음악의 차이로 연결된다. 화가의 캔버스와 작가의 문학작품은 '영속성'을 가진 높은 단계의 예술로 승화되어 화자에게 내면적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소멸하는 음악은 스완을 수동적인 감각의 덫에 묶어둔다.  뱅퇴유의 소나타가 스완을 오데트에게 묶었듯, 후에 화자를 알베르틴에게 묶었듯. 이러한 차이는 훗날 화자가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화자에게 되찾은 시간 속에서 '게르망트 쪽 길'과 '메제글리즈(스완네) 쪽 길' 사이의 차이일 것이다. 영속과 순간, 예술과 감각적 사랑 사이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떠올리게 된다. 신앙과 제롬 사이 선택의 갈림길에 선 알리사의 모습은 게르망트와 메제글리즈로 향한 두 갈래길에 선 화자를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알리사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 제롬을 버렸고, 좁은 문에 들어가는 대신 현실에서의 사랑과 자신을 잃는다. 반면, 화자는 게르망트로 가기 전, 메제글리즈로도 가본다. 알베르틴을 통해. 오데트에 대한 스완의 사랑은 알베르틴에 대한 화자의 사랑으로 변주되지만, 이러한 변주와 경험은 화자를 파멸이 아닌 한 단계 높은 완성으로 이끌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앙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목표를 두고, 두 갈래 길에 선 두 주인공의 선택은 이렇게 같은 듯 다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텍스트로만 읽을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많은 부분을 만화라는 시각자료를 통해 찾게 된다. 화자의 미각/후각 그리고 스완의 청각.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시각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감각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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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이 알고 있는 이 사랑의 병은 너무도 커져 버렸고, 그가 가진 모든 습관이며 그의 모든 행동,
생각, 건강, 수면, 삶, 심지어 자기가 죽고 난 후 바라는 바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깊숙이 개입돼 있고,
그 자신과 완전히 한 몸을 이루고 있어서, 그에게서 그 병을 끄집어내려면 거의 그 자신을 송두리째 파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외과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그의 사랑은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는 상태였다. - P22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고, 스완은 이미 시작된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빠져나갈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도 괴로웠다.
게다가 그는 오데트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곳에 발이 묶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데트가 살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완이 미처 알아차릴 새도 없이, 오데트가 그에게 연정을 품었던 시절의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 P35

창백하고, 뺨이 너무나 여위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고, 눈가가 거무스름한 오데트의 모습뿐 아니라,
그녀를 처음 만난 이래 다시 마주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쁜 기분이 가실 때 흔히 그러듯, 또 정신 상태가 한껏 고양돼 있지 않은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 불평을 내뱉었다.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내 타입도 아닌 여자 때문에,
내가 몇 년을 허비하고, 또 죽으려 했다니!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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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이 다른 똑똑한 사람에게 어리석게 보일까 봐 두려워하지않는 것처럼, 품위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품격이 이를테면 대영주가 아니라무식쟁이한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법이다. - P6

그러자 물결치는 선율 위로 잠시 동안 떠오르는 바로 그 악절을뚜렷하게 분간할 수 있었다. 그 악절은 듣기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특별한 관능을 일깨워 주었고, 오로지 그 악절만이 그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치 미지의 사랑을 만난 듯했다. - P19

사랑이 싹트는 여러 방식 중에서도, 이따금씩 우리에게 거센 동요의 물결이 밀려들 듯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또 없을 것이다. 그런 순간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지며, 우리는 곁에 둘 수 있어 좋은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그 사람이 주는 쾌락은 느닷없이 우리 내면에서 바로 똑같은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불안한 욕구로 대체되기에 이르는데, 실상 이같은 욕구는 도저히 채울 수도 없고 또 벗어 버릴 수도 없는 부조리한 욕구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소유하고픈 엉뚱하면서도 고통스런 욕구이기도 하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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