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문답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홍대용 지음, 김태준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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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자(虛子)는 은거하며 독서한 지 30년에 천지의 변화와 성명(性命)의 오묘함을 연구하고 오행(五行)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깊은 뜻에 통달하여 사람의 도리를 밝히고 사물의 이치에 회통했다. 심오한 이치를 캐내어 세상일을 환히 꿰뚫은 뒤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듣고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작품에는 딱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허자는 이 글의 문답자로 설정된 실옹(實翁)의 상대 인물입니다. 허(虛)와 실(實)의 대화입니다.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허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실옹을 만나면서 그의 부족한 학문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허자는 스스로 큰 사람, 큰 바위얼굴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지혜를 가진 자들과는 더불어 큰 것을 말할 수 없고, 비속한 자들과는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 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행장을 꾸려 귀국길에 오릅니다. 허자는 의무려산(중국 서북쪽에 위치한 산입니다. 중국인들은 의무려산을 백두산, 천산(千山)과 더불어 동북 3대 명산으로 꼽습니다)에 오르는군요. 그 곳에서 실옹(實翁)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실옹지거(實翁之居)라고 써 있는 현판을 보면서 허자는 이런 독백을 합니다.


"내가 '허자'라고 이름 한 것은 천하의 '참'을 살피고자 한 것인데, 이 자는 '실'로 이름 했으니 천하의 '거짓'을 이기고자 함일 터이다. 허허실실은 현묘(玄妙)한 도의 진리이니 내 그의 말을 들어보리라."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다 못해 매우 깊습니다. 실학정신이 펼쳐지고, 우주론과 역사론에 이르는 철학적 내용이 중심입니다. 한편으론 이 작품이 철학소설이라고도 하지만, 문학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찾아간 것은 허자이지만, 실제 문답에선 실옹이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철학적 수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조선 18세기가 이룩한 동아시아 최고의 지적 성취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화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허자가 물었다. "땅에 지진이 있고 산이 움직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말했다.  "땅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 혈맥과 혈기가 실로 사람의 몸과 같다. 다만 그 몸체가 크고 몸가짐이 무거워 사람의 몸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해서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고 망령되이 길흉을 가늠하는 것이다. 사실은 물과 불, 바람의 기운이 돌아다니며 흐르다가 막히면 흔들림이 일어나고 거세지면 밀려 움직이게 만드는데,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허자가 물었다. "땅에 온천이나 짠 우물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대답했다. " 우주는 물의 정기이고 태양은 불의 정기이며 지구는 물과 불의 찌꺼기다. 땅은 물과 불이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다. 빙빙 돌다가 한자리에 머물러 만물로 변하는 것은 물과 불의 힘인 것이다. 온천이나 짠 우물은 물과 불이 서로 부딪쳐 생기는 것이다."


수백 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주변화와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이론이 대단히 깊습니다. 지은이 홍대용(1731~1783)은 18세기 북학파의 대표적 실학자입니다. 지금의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습니다. 열두 살에 벌써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고학(古學)을 하기로 결심하고, 남양주의 석실(石室)서원으로 김원행(金元行)선생을 찾아가 10년 넘게 공부합니다. 20대에 들어 스승 곁을 떠나 고향에서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29살에 자명종과 혼천의 두 대를 만드는 데 여러 해를 보냅니다. 고향집에 천문관측소 농수각(籠水閣)을 세워 이 기계들을 설치하고 천문에 힘을 쏟습니다. 35세 때는 북경에 가서 독일 신부를 만나 담화를 하며,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여 선교사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이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가장 친했던 후배이자 친구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호질(虎叱)]과 비교 했을 때 창작 동기나 저작 의도가 너무나 닮아 있어 흥미를 끈다고 합니다.  연암의 [호질(虎叱)]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통합과학자라고도 불리우는 홍대용은 철학, 문학, 역사학, 자연과학, 수학과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사상을 이룩한 분입니다. 이 [의산문답]이 그의 통합 과학적 사상을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 준 저작입니다.  학문적 자료가 빈약한 그 시대에 이렇게 깊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있었다는 부분에 큰 도전을 받습니다. 이 작품의 지은이에게 학문의 자세와 깊이를 추구하는 열정을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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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조이
도미니끄 라피에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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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다보니 TV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오버랩 됩니다. SBS의 '힐링 캠프'입니다. 게스트는 연예인 차인표씨입니다. 인도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이야깁니다. 원래는 그의 아내 신애라씨가 갈 예정이었으나 여의치못하게 되자 차인표씨에게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그 때만해도 나눔과 베풂이 마음에 들어오기 전이었던 그는 모든 자원종사자들이 자비를 들여서 오가는데, 그는 그 일을 주관하는 단체에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주문했답니다. 그 이유는 본인의 인기를 이용해서 사진이나 찍고 홍보를 해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판단이었답니다. 어쨌든 그 단체에선 항공권을 구입해줬고, 예정일이 되자 인도로 향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기전 주관하는 단체의 리더가 차인표씨에게 부탁을 하더랍니다. 가게 되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게 될텐데, 그저 그 아이들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만 해줘도 그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차인표씨는 '뭐 그 정도 쯤이야'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6~7살 쯤 되는 사내아이가 먼저 악수를 청합니다. 차인표씨가 그 손을 잡으며 부탁받은 그 멘트를 날리려던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내적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 소년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소년의 손과 눈빛을 통해 들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는 음성은 나의 삶에 크나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006년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무대는 바로 그 인도땅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 제작이 되었지요(1992년.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  저자는 캘거타에 간 어느 날, 인력거를 타고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도 없이 길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곳은 아니러니 하게도 '환희의 도시'라는 뜻의 아낭 나가르라는 슬럼가였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양의 부유한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용기와 사랑, 나눔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걸 소유한 듯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성자(聖者)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랍니다.

 

'환희의 도시'에서는 테레사 수녀뿐 아니라 프랑스 신부인 폴 랑베르처럼 그들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료기구는 커녕 기본적인 약과 주사제만 있어도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환자들이 그저 죽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탄탄대로의 의학과정을 마친 미국 플로리다 출신 젊은 의사는 그가 학교에서 미처 익히지 못한 병과 환자들을 위해 땀을 흘립니다. 물론 그 역시 자원봉사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가난과 궁핌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저자 도미니크 라피에르는 이 대서사시를 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수개 월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합니다. 이 점이 저자의 열정과 진실성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듭니다. 자료 조사와 몇 차례 현지 답사 정도로 쓴 글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거처한 오두막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의 초라한 방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쪽방 수준입니다. 환기도 되지 않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 방. 쥐와 지네가 들들끓었고 소나기가 내릴 때마다 물과 오물이 넘쳐 들어옵니다. 저자는 결핵환자들, 나환자들, 거세 당한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일상을 이해합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 시간속에서 그는 이렇게 소회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면 조그만 호의에도 신에게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을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작품에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중심 인물인 인도의 서른 세살 농부 하사리 팔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하사리는 동부 벵골지방의 방쿨리 도시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꿈과 희망을 키워가던 하사리의 아버지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대지주들의 농간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과 집을 모두 뺏기게 됩니다.

 

어떡하든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땅을 소작해야했지요.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주고 나면 쭉정이 밖에 남지 않을 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충해와 가뭄으로 결국 하사리는 캘거타로 무작정 상경을 합니다. 집도 절도 없습니다. 하사리처럼 고향을 떠나온 다른 가족들처럼 역앞에서 노숙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매혈(賣血)을 해서 가족들의 끼니를 때웁니다. 하루에 바나나 한 쪽만 먹어도 감지덕지한 삶이 이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력거를 끌게 됩니다. 대단한 발전이지요.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체력으로 달리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하사리의 딸이 초경을 치루고 결혼을 하게 될 나이가 되었군요. 신부의 지참금 문제가 매우 심각하군요. 정부에서 아무리 규제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하사리는 뼈를 판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돈을 빌립니다. 인도의 인체 골격 시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 갖고는 매우 부족합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체 골격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거액의 가격표가 매겨진 후 서구사회로 건너갑니다. 물론 뼈를 제공하는 것은 사후에 처리됩니다. 완성 처리된 골격에 붙여지는 가격표에 비해선 거의 푼돈이나 다름 없는 돈을 받고 뼈까지 팔아야하는 참담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사리는 힘들게 딸을 결혼시키고 난 후 그간의 쇠약해진 몸에서 그나마 붙어 있던 생명력이 떠나갑니다. 하사리의 뼈는 계약서대로 이행됩니다.

 

인도라는 나라.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이해하기 힘든다는 부분은 밝음과 어두움 모두에 있습니다. 어두움은 과연 그 나라엔 정부의 행정력이라는 것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피아와 같은 암흑세력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엔 언급이 안되었지만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 동부의 오리사 주를 방문했답니다. 최근 부족민 사이의 빈부격차로 지역에서 갈등과 내란이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그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이미 부족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물질적 원조를 목표로 하는, 충분한 기금을 가진 정부 프로젝트와 법적 장치가 이미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원래 도우려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도는 세게에서 이슬람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이슬람교도의 본거지입니다. 그리고 인도에는 수백만 의 시크교(15세기 인도에서 힌두교 신앙과 이슬람 신비 사상이 결합되어 탄생한 종교)신자와 기독교인이 있고, 상당히 많은 자이나고, 불교, 조르아스터교, 유대교 공동체도 있습니다. 인도에는 민족적 종교적 소수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도 없다 합니다. 게다가 오늘날 인도에서는 수백 가지의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도 언어상의 문제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종종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분쟁이나 갈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가진 것에 감사" 를 마음에 담습니다. 작품에 그려지는 하층 인도인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거의 귀족같은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글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과연 그럴까? 설마?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마음이 나오는지 경이로울 따릅니다. 앞서 언급드린 프랑스 신부 랑베르가 어느 인도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사람을 접대하는 데 극진했다. 랑베르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 식구가 뛰어나와서는 벵골 사람들이 끔찍이도 좋아하는 온갖 사탕과 차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를 대접하는 데 식량을 써 버려 며칠 먹을 그들의 양식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럼 현재 '환희의 도시'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책과 영화로 소개된 이후 '환희의 도시' 까지는 아니더라고 '희망의 도시'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상조회의 회원이 7,000명이 넘어 섰다고 합니다(지금은 더 늘어났겠지요). 물론 모두 인도가 아닌 타국 사람들입니다. 무료진료소, 허약한 어린이들을 위한 회관, 산원(産院), 노인과 극빈자들을 위한 무료 급여소,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소, 성인을 위한 가내 공장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예방접종과 결핵 조기 발견 계획도 수립됩니다. 이어서 벵골 지역에서도 가장 빈곤하고 뒤처진 지역의 관개와 우물 파기, 무료 진료소 설립이 추진됩니다. 인도에서도 최하의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가던 이곳 '환희의 도시'는 보석상과 고리대금업자들이 들어서고 사무원들과 공무원들, 상인들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주거시설이 철거되고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문제가 나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고자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더욱 좋은 소식이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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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쓴 페이스북, 芝山通信
김황식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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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나의 마음도 조여듭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그러나 내 몸은 꿋꿋하게 바닥을 디디고 서 있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붙박이장처럼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의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하루의 일상이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십년이 됩니다. 아마도 평생을 그리 보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간 중간 일탈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부메랑처럼 제자리에 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단상을 적어 간다는 것은 잠시 기분에 따라 몇 차례 적어 볼 수 있지만, 꾸준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느낌을 적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리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공직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느끼는 단상을 웹상에서 그 누구도 볼 수 있는 상황에 오픈 한다는 것은 여간한 마음 갖고는 시도하기 힘든 부분이지요. 그러나 그 일을 꾸준히 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조금 망서려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공직자들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입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찬찬히 글을 읽어가던 중 그 못된 선입견을 잠재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도 있구나. 이런 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인 김황식님은 1974년 법관 생활을 시작으로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내셨습니다. 얼마전 40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셨군요. 이 책은 국무총리실 페이스북과 감사원 발간 계간지, 광주지방법원 내부 통신망에 게재했던 글을 모은 책입니다. '연필로 쓴 페이스북'이라는 책 제목이 붙은 것은 저자가 편지지에 쓴 글을 사진으로 스캔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탓입니다. 


총리 재임시 일상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 어린이 병원을 찾아 소아암 등 병마와 싸우는 어린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고 격려 하는 이야기, 제주 4.3사건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쓴 詩, 119 구조대원들을 만난 후의 단상, 안산에 있는 외국인지원센터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고인이 되신 어머니 생각, 스승의 날을 앞둔 날 파주 봉일천고교를 찾아 '1일 교사'특강을 한 이야기, 장애인들이 근무하는 신사복 제조업체에서 맞춘 25만 원짜리 맞춤 양복 등.


책 읽기가 일상인 저에게 저자가 책 이야기를 할 때는 우선 멈춤 했습니다. 김승옥, 최인호, 천상병, 이청준 작가의 이야기도 하시고 개그맨 김병만의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대화], 30년간 변호사로 근무한 존 크랠릭의 [365 Thank you]라는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존 크랠릭은 2007년 당시 그가 운영하던 로펌이 망해가고 결혼생활 파탄 등 가족관계가 엉망이 된 막다른 상황에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새해 첫날 홀로 나선 등산길에서 "네가 원하는 것들을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하리라"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감사할 사람과 사연을 찾아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감사편지 프로젝트'입니다. 15개월간 365통을 썼답니다. 


그 효과는 경제적, 이득, 좋은 인간관계, 마음의 평화와 신체적 건강 등 즉각적이고 다양한 것들이이었다고 합니다. 희망하던 법관까지 되었다네요. 삶 자체가 완전히 변화 된 것이지요.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일본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의 "하나님이 인간을 벌할 때는, 그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어려운 일로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벌을 주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뺏어버림으로써 벌을 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행복에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저자와 책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옵니다. "책을 읽으면 세상 시름도 잊게 되고 조금은 행복해집니다." 짧지만,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특히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면 내 안에 암덩어리처럼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의 크기가 줄어들게 되지요.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나만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같아도 소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도 있습니다. 나를 객관화 시켜보는 과정이라고 생각듭니다. 


"경찰 아저씨들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해서는 100% 못 잡아내요. 반에서도 화장실에서도 CCTV가 안 달려 있거나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괴롭힘은 주로 그런 데서 받죠." 학교 폭력 문제로 또 안타까운 소식을 접합니다. 3월 11일 경북 경산에서 고교 1년생 최모군이 23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저자도 학교 폭력 문제에 깊은 관심과 염려를 갖고 글을 연이어 올렸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적습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한 두사람이 애쓴다고 해결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야 할 큰 숙제입니다. 


세인들이 잘 모르는 법조계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제법 많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서의 고뇌가 실려 있는 글들을 봅니다. "법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따지는 문제는 쉽지 아니하여,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혜와 실력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법률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지 법률을 위한 것이어서는 아니 되며, 또한 법률가가 법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후배 법관들에게 이런 당부의 글을 남기셨군요.

"좋은 법률가는 가끔 법률을 짐짓 잊어버려야 한다"는 법언(?)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음미해보곤 합니다. 법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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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인문학 - 흔들리는 직장인을 위한
이호건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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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인문학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중 '존재의 모호성'을 뜬구름이라고 가정한다면, 세상 모든 뜬구름 속에 숨은 다채로운 이야기의 무지개를 찾아내는 힘. 그것이 인문학의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이 점에 공감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고달픕니다. 직장에 출근하는 아침이 놀이동산을 가듯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퇴근 무렵이면 다크 서클이 생겨서 다른 얼굴로 변모되어 집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자기 존재 감각'이라고 풀이됩니다. 자존감이 사라진다는 말은 나의 존재가 비누방울 터지듯 사라져 버린다고도 표현 할 수 있겠지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직장인들의 기(氣)를 살려주고 싶어합니다.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길 원합니다. 그 처방은 증상에 맞는 인문학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생각에 깊이를, 행동에 확신을, 말에 설득력을 더하는 인문학의 힘!".


인문학을 만난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직장인들이여 좀 덜 흔들리고 싶으면 책을 읽으시오! 라고 했다면 그 누가 관심이나 갖겠습니까? 저자는 각 챕터마다 직장인들이 흔히 접하는 상황을 펼쳐놓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을 갖게 될 꼭지글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맞는 동,서양의 고전들을 소개합니다. 이럴 때 이 책을 읽으면 뭔가 길을 찾게 될 겁니다.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 저자를 만나보시오.  이 책을 읽어보시오. 하고 권유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삶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남이 만들어 놓은 규칙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데도 삶은 늘 힘겹고, 행복을 느끼기가 힘들다는 이야깁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스스로 삶의 규칙을 만들어서 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그 결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은 쉬운 듯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지요. '내 삶의 규칙'이라, '내 삶의 주인'이라 '내 문제의 답'이라. 어디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가.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이지요.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학문, 인간의 삶에 대한 학문입니다. 따라서 삶을 성찰하고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줍니다. 


반대 의견도 있겠지만, 직장생활에서 휘둘리는 것도 휘둘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휘둘리고, 흔들릴 만하기 때문에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의 힘이 키워져 있지 않으면 쉽게 흔들리고 쉽게 깨지고 아주 쉽게 열을 받습니다. 급기야는 집어 던집니다. 사표를 집어던지든 물건을 집어 던지든 나 자신을 내동댕이치든 아뭏든 집어 던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요.


책 내용 중에서 한 꼭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제목은 '과거에 실패했던 기억이 마음에 걸린다면'입니다. 사실 저도 이 타이틀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 들에 기억 중 '그 때 왜 그랬지? 바보같이..' 하는 마음이 꼭 샤워 할 때마다 떠올라서 혼자 궁시렁거리게 만듭니다. 이런 경우 저자의 의견은? 

"플라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으로 서양 철학에서는 기억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진리라는 말의 뜻을 풀어봐도 알 수 있다. 진리를 나타내는 고대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etheia)는 부정어인 'a'와 망각의 강을 뜻하는 'lethe'가 결합된 단어다. 진리란 망각의 강을 거슬러 가는 운동, 즉 기억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 능력을 중시했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의 철학에서는 망각의 능력을 중시했다. 나가르주나의 '공'개념이나 장자의 '허(虛)'나 '망(忘)'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장자의 '망'을 살펴보면 동양 철학에서는 기억보다는 오히려 망각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처방전에 '니체'의 [도덕의 계보]라 적습니다. 니체가 사유의 두 가지 상반된 능력, 즉 기억과 망각의 능력 중에서 망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서양 철학자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망각에 대한 니체의 사유가 동양의 불교나 장자의 사유와 공명하고 있는 점입니다. 니체는 창조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과거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망각의 능력이지요. 우리가 가진 의식의 구속 상태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망각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요. 또 그렇게 쉽게 잊을 것 같으면, 저처럼 샤워할 때마다 기억의 서랍 이곳 저곳에서 튀어 나올 일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니체는 무조건 다 잊으라는 이야기는 안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이 현재를 향유하고 긍정하도록 돕는 데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하면, 과거의 기억은 제거 되어야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다시 어찌 해 볼 수 없는 좋지 않았던 선택이나 실수는 깨끗이 잊는 것이 좋겠습니다. 너무 뒤를 안 돌아보고 사는 것도 위험하지만, 너무 자주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상황별 처방을 주고 있지만, 캡슐 형식의 단방입니다. 공정 과정을 거친 인삼 캡슐을 먹는 것 보다는 인삼 한 뿌리를 통째로 먹는 것이 내 몸에 더욱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책을 사던, 빌리던 간에 읽어봐야겠습니다. 인문약(人文藥)을 통해 내면의 힘이 커지고 마음의 근육이 키워지면,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문제 덩어리의 크기는 줄어들 것입니다. 나를 좀 덜 힘들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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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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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둘 입니다.

제목에 나와 있는 그대로 다운사이징(Downsizing)과 데모크라시(Democracy)입니다.

 

Downsizing은 주로 두 영역에서 많이 쓰입니다. 경영에선 기업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비대해진 조직을 소규모의 팀 형태로 개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혁명을 말합니다. 인원감축이나 구조조정의 어두운 일면도 있습니다. 한편 정보기술의 영역에서 보면 컴퓨터 어플리케이션의 전부 혹은 일부를 더 작은 컴퓨터 시스템이나 데스크 탑의 네트워크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Democracy,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의사결정시 시민권이 있는 대다수나 모두에게 열린 선거나 국민 정책투표를 이용하여 전체에 걸친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하는 사상이나 정치사회 체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합해진 책 제목은 그리 밝지 못한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부제는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입니다. 미국이 그럴진대 한국 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독일의 실천적 사회학자 페터 슈피겔은 그의 저서 [휴머노믹스](Humanomics, Human + Economics)에서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현시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미래의 성공요소는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제안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인간을 성공요소로 인식할 수 있는지, 이러한 인식을 경제와 학술교류 시스템에 얼마만큼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치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인간과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국가의 성장을 위해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뿐 아니라 개개인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에 실린 내용을 보느라면 깨우긴 깨우는데 겨우 잠든 사람 깨워서 수면제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됩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자주 눈에 띄는 용어 중 '정치 동원'(political mobilization)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저자들(2인)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입니다. 정치 동원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정치 행위입니다. 동원과 참여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저자들은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이 평범한 시민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의 절정기가 가능했으며, 동원이 줄어들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운사이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정치 동원이 없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고 참여도 불가능했던 평범한 시민들은 점차 정치의 세계에서 사라져 갑니다.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이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합니다. 건국 초기 예외적일 만큼 인상적이었던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서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릅니다.


투표자없는 선거
미국에서 국가 안보, 공공 재정, 정부 행정이 시민의 협력과 능동적 지지에 의존하는 한, 정치의 권위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투표에서 이기는 것은 대중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만이 아니었지요. 선거는 통치 능력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1890년대로 가보면 투표가 가능한 유권자들의 80퍼센트 정도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21세기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서조차 유권자의 절반 정도만이 간신히 투표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경쟁하는 엘리트들은 유권자 속에서 해결책을 구하기보다, 정책을 경쟁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장으로 옮겨 버리는 장치들인 소송이나 행정절차, 민영화나 바우처, 관료적 조정을 이용해 상대를 이기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때 자기편이 되어 달라며 도움을 요청받았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남게 됩니다. 어제의 주연배우들이 오늘은 관중이 되었으며, 시민이 아니라 구경꾼과 소비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개인민주주의의 많은 특성들은 데자뷰를 느낄 정도로 한국 정치에서도 발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옮긴이 서복경의 표현을 빌리면, '벨트웨이 안 이익 옹호 행위의 폭발과 벨트웨이 저편 침묵 간의 기묘한 결합'은 '여의도 안 이익 옹호 행위 폭발과 여의도 밖 침묵 간 결합'을, 시민의 정치 동원은 부재한 채 '워싱턴 안의 정당 갈등만 양극화 되는 현상'은 '여의도 안의 정당 갈등만 양국화 되는 현상'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민(民)이 주(主)가 되는 민주주의가 다운사이징 되고, 관(官)이 비대해지는 기현상은 단순히 현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도 더 이상 기묘한 형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야겠습니다.


다운사이징된 데모크라시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김기림 시인의 "데모크라시(democracy)에 부치는 노래"를 붙입니다. 1930년대에 쓴 시입니다. 그러나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詩처럼 다가옵니다.


나라를 판 것은 언제고 백성이 아니라
벼슬아치와 세도댁이었다

 

사천년 오랜 세월을 두고
이겨본 일이 없는 백성이다
떳떳이 말해본 적이 없어
참고 견디기에 소처럼 목만 부었다

 

지금 백성은 무엔가 말하고 싶다
백성의 입을 막아서는 아니된다
백성의 소리는 구수하고 진심이 들어 좋다

 

그들의 머리 우에서 한울과 태양을 가리지 말어라
三韓 신라적부터 남의 것 아닌
본시 아니라 백성의 별이요 한울이 아니냐

 

인제사 그들의 역사가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번은 백성들이 이겨야 하겠다
백성을 이기게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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