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전달하는 미디어에는 여러 조건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사람들 대부분이 편리함과 가격만으로 그 미디어의 우열을 정합니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정말로 중요한 요소는 ‘세월과 비바람을 견뎌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누구든 원한다면 손수 만들 수 있는가‘, 두 가지가 아닐까요.
그 점에서 인류는 종이책보다 더 나은 것을 아직 발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P116
읽고 싶어지면 그때 바로 사서 읽을 수있습니다. 그것이 전자책의 가장 큰 장점이지요. 하지만 저는 책이란 미리 사 두어야만 교화적으로 기능한다고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을 사지요.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싶다고 느끼고 읽을 수 있을 만큼의 문해 능력을 갖춘, 언젠가는 충분히 지성적·정서적으로 성숙한 자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모종의 책을 책장에 꽂도록 이끕니다.- P118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책을 고르는 것과 비치하는 것에 자신의 지적 정체성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읽고 싶은 책‘과 ‘당분간은 읽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언젠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과 ‘읽을 마음은 없지만 내가 읽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해 주길 바라는 책‘은 같습니다.- P125
책의 본질은 ‘언젠가 읽어야 한다는 관념‘ 위에 있습니다. 출판 문화와 출판 비즈니스는 이 ‘허‘의 수요를 기초로 존립합니다.- P126
책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공재입니다. 책은 읽어도 줄지 않고 ‘물건‘으로 독점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책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열린‘ 공간입니다.- P129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바탕은 사적 이해利害가 아닙니다. 내가 공동체에 낸 돈과 서비스만큼 ‘보상‘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코뮌이 성립할 수 없지요. 코뮌이 존립하려면 먼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코뮌의 초기 성립 조건에는 반드시 ‘제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 포함됩니다.
구성원 전부가 사재의 일부를 내고 개인의 이익 중 일부를 포기해야 비로소 ‘공공‘이 성립합니다.-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