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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 - 추억의 해독제
  • 기억의 빛
  • 마이클 온다치
  • 15,300원 (10%850)
  • 2025-01-24
  • : 1,050

말러는 자기 악보의 특정한 악절들 옆에 schwer(슈베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어렵다'는 뜻이다.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44-45쪽)


'슈베어'와 '워라이트(warlight)'는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너새니얼의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발령이 났다. 아직 십 대인 레이철과 너새니얼을 집에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간다고 했다. 대신 보호자로 '나방'이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는데 부모님이 떠난 집에 '나방'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워라이트'는 전쟁 때 도시가 정전된 시간 동안 비상용 차량들을 안내하던 흐릿한 불빛을 의미한다.(105쪽 각주) 독일 폭격기가 영국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트리는 동안 영국은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불빛은 공격 대상이었고 사람들은 불을 꺼야만 했다. 그리고 화약 등을 나르기 위해 밤길을 이용했던 요원들은 아주 희미한 불빛에 의지한 채 달려야 했다. 이는 너새니얼이 자신의 어머니인 로즈의 삶을 추적하는 것과도 비슷했으며 자신의 삶이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나방, 화살, 올리브, 아서, 애그니스의 삶을 추적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는 일, 어머니가 하는 일, 그들이 어디 있는지, 나방이나 화살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말이다. 부모가 곁에 없는 동안 너새니얼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주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그리고 애그니스를 만났다.


스파이를 다룬 소설들은 많다. MI6나 CIA, 모사드, KGB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달랐다. 스파이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안개에 쌓인 듯 모호했으며, 수많은 상처와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그가 온다면 잉글랜드 남자 같을 것이다...

내 죄는 여러 가지야. 


로즈는 돌아온 뒤 저 두 문장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하던 로즈. 이엉장이 막내 아들이나 체스 천재 이야기를 하던 로즈. 팔에 있던 흉터만이 어쩌면 진짜 그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워라이트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가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 안다고 믿지만 어떤 상황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로즈는 레이철과 너새니얼을 구하려 했지만 길은 어긋나 버렸다.


너새니얼은 레이철과 달리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양이를 잊어버렸던 것처럼 자신을 상처주는 일들을 외면했던 걸지도 몰랐다. 나방과 화살과 올리브가 준 관심과 사랑이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너새니엘 앞에 있는 '슈베어'들을 치워줬기 때문일지도. 이제 너새니얼은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자신이 외면한 진실을 깨닫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인지도.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며 선택하고 슈베어를 만나고 후회하고 다시 선택하고... 가지 못한 길은 늘 마음에 남고 '힘든 일'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고 흐릿한 빛 속에서 아름답던 것이 사실은 무거운 과거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만다.

말러는 자기 악보의 특정한 악절들 옆에 schwer(슈베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어렵다‘는 뜻이다.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P44
그가 온다면 잉글랜드 남자 같을 것이다...
"누가 어머니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만약 내가 알았다면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끔찍한 짓을 하셨기에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내 죄는 여러 가지야."라고.-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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