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알라딘 중고매장에 안도 다다오 도록이 있어서 구입했다. 저자와 출판사가 똑같은 구판도 이미 갖고 있었지만, 저 건축가가 아직 건재한 상황에서 도록의 부제가 "1975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전집"이니, 구판의 간행년도인 2007년부터 신판의 간행년도인 2023년 사이에 추가된 내용이 있을 듯했다. 물론 실제로는 추가 분량만큼 삭제도 있어 쪽수는 비슷했지만.


추가 내용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톰 포드와 리처드 버클리의 주택과 마굿간'이었다. 건축주가 마주인 모양인지, 미국 뉴멕시코의 산꼭대기에 있는 개인 소유 목장에서 말 여러 마리를 기르면서 관리하는 시설을 지었는데, 비록 안도 다다오 특유의 콘크리트와 원형과 복도와 연못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 용도를 생각하면 뭔가 좀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톰 포드가 뭐 하는 사람인가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구찌와 이브생로랑 같은 브랜드에서 근무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라 한다. <싱글맨>과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를 감독해서 호평을 받은 이력도 있다는데, 두 권 모두 원작 소설이 나와 있다. 함께 이름을 올린 리처드 버클리는 예상대로 동성 배우자인데 2021년에 이미 사망한 모양이다. 


그런데 안도 다다오 도록에서는 두 사람 소유의 건축물 중에 '마굿간'만 보여주고 '주택' 이야기는 없어서 그 현재 상태가 궁금해졌다. 설명에 따르면 마굿간과 그 부속 건물만 먼저 완성되었고, 거기서 자동차로 15분쯤 걸리는 부지에 예정된 "절벽 위에 자리잡고, 마굿간에 있는 것과 유사한 투영 연못도 곁들인" 주택은 여전히 설계 중이라고만 했기 때문이었다.


구글링해 보니 해당 주택은 결국 건축이 불발되고 말았는지, 지금 와서 검색해 보면 안도 다다오가 톰 포드를 위해 설계한 건물이라고는 단지 저 마굿간과 그 부속 건물뿐인 것으로만 나온다. 그나마도 이를 포함한 목장 전체가 2016년에 무려 1천억 원에 매물로 나왔는데, 이후 유찰을 거듭하다가 결국 절반 가격인 500억 원에 새로운 주인에게 매각되었다고 한다.


나귀님이 안도 다다오를 좋아하는 까닭은 빛의 교회나 스미요시 주택처럼 유난히 비좁고 불편하며 폐쇄적인 구조물을 매력적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설계한 미술관이나 주택 단지 같은 대형 구조물을 보면 감탄과 동시에 그 실용성에 대해 의문을 느끼게 마련이었는데, 위에 언급한 마굿간과 그 부속 건물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의문이 따라다녔다.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건물이지만, 정작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불편을 호소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또 다른 거장 르 코르뷔지에도 실제 거주민을 배려하지 않은 설계로 악명이 높아서, 급기야 어느 공동 주택에서는 주민 모두가 건축가의 의도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개조를 일삼았다고도 전한다.


결국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 벌어진 셈인데, 건축의 경우에는 설계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거주자의 편의도 중요한만큼, 이런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다. 안도 다다오의 출세작인 스미요시 주택만 해도, '이곳에 실제로 사는 분들이 더 대단하다!'는 어느 건축 전문가의 평가가 있으니만큼, 건축가와 거주자의 뜻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런데 이번 안도 다다오의 최신(이라고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20여 년 사이의) 작업들을 도록에서 살펴보고 있으니, 대형 건축물의 경우에는 실용성뿐만 아니라 낯설음과 공허함의 느낌마저 새삼스레 받게 되었다. 인상적이라 여겼던 빛의 교회며 스미요시 주택이며 4X4 주택 같은 비교적 작은 구조물에 비해서는 역시나 지나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매립 사업을 위해 토사를 채취하면서 망가진 자연 환경을 되살리는 프로젝트인 아와지 유메부타이가 그러한데, 그 결과물이 결국 콘크리트 더미라는 점은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콘크리트라 하더라도 수십 년 세월이 지나면 결국에는 부서지고 무너지게 마련이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물론 그것까지 건축가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나귀님이 너무 속물이라서 '가성비' 걱정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멕시코의 몬테레이 소재 개인 주택 같은 경우에도 산중턱 경사면에 설치한 인피니티풀 형태의 투영 연못을 보니, 제아무리 이상이고 예술이라도 결국 '돈지랄'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물론 세계적인 건축 거장에게 마굿간 설계를 맡긴 또 다른 '돈지랄'만큼은 아니겠지만...




[*] 안도 다다오는 김건희와의 회동 소식이 전해져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당시 김건희의 갖가지 부적절한 행보와 관련해서,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쁜 일본인' 정도로 폄하되었던 모양인데, 애초에 예술계에서 꽤나 행세하고 다닌 사람이었으니 저 건축가와의 친분을 쌓을 만도 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건축이야말로 큰 돈이 오가는 사업이다 보니, 갖가지 구설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권력자나 벼락부자의 변덕을 맞출 수밖에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건축가나 예술가도 거기 부화뇌동하는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고, 여차 하면 명성 대신 오명만 얻게 되는 경우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안도 다다오 측에서도 이번 한국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문자 그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는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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