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스틴 파워>에서 세계 정복을 꿈꾸다가 주인공에게 저지당한 악당 두목은 좆같이 생긴 (욕하는 게 아니라 진짜 레이더에 c==3 형태로 나온다!) 우주선을 타고 도망쳐 냉동 인간이 되었다가 30년 만에 돌아와 다시 지구를 위협한다. 그런데 수십 년 사이에 화폐 가치가 달라졌음을 모르고 무려 "100만 달러"를 협상 조건으로 내놓았다가 오히려 비웃음만 당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현재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불과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가 내놓는 정책마다 이처럼 세상의 변화를 감안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발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에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혼란이 지속되던 차에, 급기야 무분별한 관세 부과와 실시 유예의 영향으로 미국과 한국 모두 증시가 요동쳤다고 전한다.
관세 장벽은 어느 나라에나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나름대로 자국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악명 높은(?) '칼라 힐스'가 출몰하던 시대도 아니고, 게다가 이른바 세계화로 인해 지구 전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 영향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상황에서 거칠고 섣부른 조치가 이어지니 자연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탄핵 심판으로 쫓겨난 한국의 전직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한 진지한 의문도 제기되었던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비상 계엄 선포 동영상을 유튜브로 보면서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반국가 세력이니, 공산주의 위협이니, 마약 천국이니 하는 횡설수설한 내용이 어딘가 시대착오적이라 느꼈던 까닭이다.
일각의 지적처럼 극우 유튜버 동영상이나 인터넷 뉴스 댓글 내용과도 유사하니, 마지막 계엄 선포가 있었던 한 세대 전 사고방식 그대로 머리가 굳어진 걸까. 어쩌면 계엄 선포가 일상적이었던 시대에 살았던 까닭에 그걸 상당히 쉬운 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파장 따위는 계산하지 못한 채 일단 저질러 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이런 식으로 '내가 곧 법이다'라는 주장이 흔해진 것만 같다. 한국과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논란이 지속 중인 동덕여대 락카칠 사태며 뉴진스의 계약 파기 사태에서도 핵심은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런 독불장군 행보가 국가와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마치 시대정신이라도 된 듯한 모양새다.
트럼프부터 뉴진스까지 저 여러 사건의 공통점은 '내 생각에는 불법이 아니므로 실제로도 불법이 아니다'라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주장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할 리는 없으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가 봐도 무리하고 설득력 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저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거나, 조만간 치르게 생겼으니 사필귀정이 아니려나.
특히 미국은 그놈의 세금 때문에 혁명이며 독립까지 했던 나라임을 감안해 볼 때 미국인들로서도 지금의 사태가 달가울 리 없을 듯하니, 트럼프가 폭주의 결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궁금하다. 이미 야당에서부터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보도가 있으니, 여차 하면 징검다리 재선 대통령에서 징검다리 탄핵 소추 대통령이라는 진기록도 세울 만하다고나...
[*] 그나저나 트럼프 당선 직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갖가지 '예측' 서적 중에서 지금의 사태를 정확히 예언한 것이 있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알라딘에서 목차를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관세'에 대해 언급한 책도 몇 권 있기는 하던데, 만약 지난 주의 주가 요동 같은 구체적인 사건까지 콕 집어냈더라면, 적어도 그 서적과 저자의 '주가' 만큼은 급등하지 않았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