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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서재
  • 새왕의 방패
  • 이마무라 쇼고
  • 19,800원 (10%1,100)
  • 2024-11-29
  • : 4,003

이마무라 쇼고, 이규원 역, [새왕의 방패], 북스피어, 2024.

Imamura Shogo, [SAIOU NO TATE], 2021.

제166회 나오키상

올해 읽는 책 중에서 제일이라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책으로 골라서 읽어도 이 책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이니... 이마무라 쇼고의 소설 [새왕의 방패]는 16세기 일본의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최고의 방패와 최강의 창이 격돌하는 역사소설이다.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축성 장인을 새왕(塞王)이라고 하고, 어떤 방어도 깨뜨리는 철포 장인을 포선(砲仙)이라고 한다. 오미국은 열도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를 둘러싸고 있다. 농지가 부족해서, 농부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기능집단을 형성했는데... 석축으로 성벽을 쌓는 아노슈가 있고, 대장간에서 총포를 생산하는 구니모토슈가 있고, 전쟁에서 첩보와 공작을 하는 시노비 고카슈가 있다.

"바위의 무엇을 보았니? 색? 모양? 눈이니?"

"눈?"

"무늬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엇을 보고 그리 생각했지?"

"모르겠어...... 그냥, 보고 있으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p.29)

지리적으로 천혜의 요새인 이치조다니 성은 아사쿠라 가의 지배를 받는다. 함락된 적이 없고, 오랜 평화는 마음을 느슨하게 했을까?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은 오다 군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진다. 살육을 피해서 달아나던 어린 교스케는 가족을 잃고, 도비타 겐사이라는 방패(축성) 장인의 도움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교스케는 바위와 돌들의 목소리를 듣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세상이 평온해도 성은 필요합니다. 난세의 전투용 성이 아니라 성주의 위세를 뽐내는 성이 되겠지만."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곽의 근본인 석벽의 미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정연함이 아니라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함이야말로 석벽의 미 아닌가.(p.43-44)

23년이 지나고, 오미국의 석공 마을에서 교스케는 겐사이의 양자가 되어 아노슈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성장한다. 남다른 재능과 열정으로 일을 배우고, 뛰어난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자 세상은 평온해진다. 그토록 바라던 평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전란이 있어야 호황인 장인들은 모순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축성도 방어의 효용보다는 다이묘의 위세를 뽐내는 용도로 화려하게 바뀐다. 하지만 교스케는 어린 시절에 낙성으로 가족을 잃은 기억 때문에 성은 견고함이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성, 대군이 몰려와도 물리칠 수 있는 성을 쌓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노슈의 규율은 알고 있겠지."

"의뢰가 들어오면 그게 누구든 성을 쌓는다. 악인이라고 해도......"(p.101)

'가카리'는 총동원으로 전쟁의 목전에서 성을 쌓거나 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투 중에도 공사를 계속해야 하고, 희생자가 나오기도 한다. 아노슈의 규율은 누가 의뢰를 하든지 성을 쌓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노슈가 특정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교스케는 과거에 한 번 부모의 원수인 오다 군의 성벽 수리를 거부한 적이 있다. 겐사이는 이것을 분노했고,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교스케는 함락되지 않는 성을 짓는다면 전쟁은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같은 지역, 같은 시기에 태어난 두 천재. 한 명은 철벽같은 성벽을 쌓는다고 해서 '새왕'이란 이름으로 존경을 받고 또 한 명은 새로운 철포를 끊임없이 제작해서 '포선'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 빛과 어둠, 안과 밖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전쟁이 빈발하던 기간에 일했다. 두 사람이 만든 창과 방패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겨루어 왔다.

한쪽은 어떤 성이라도 깨뜨리는 최고의 창, 한쪽은 어떤 공격도 물리치는 최강의 방패. 모순이라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p.180)

교스케는 오쓰 성의 수리를 맡는다. 성주는 교고쿠 다카쓰구로 유력한 혈통의 가문이지만, 여기저기 떠돌다가 우여곡절 끝에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발탁되어 반딧불이 다이묘라는 별명을 얻는다. 평화가 만들어낸 성의 약점은 구조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스케는 성벽의 해자를 정비하고 물을 끌어들인다.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난세가 닥쳐와도 가족과 가신과 영민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아노슈의 기술을 돋보이게 한다.

"최후의 전쟁......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평화의 질이 달라질 게야."

만약 창이 이긴다면, 병력이 적어도 양질의 무기만 얻으면 천하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 방패가 이긴다면 가령 병사를 모아봤자 성 하나 함락시키기도 힘들다고 포기하는 자도 나올 것이다. 평화로 연결되는 최후의 전쟁, 즉 이번 전쟁은 평화의 형태를 결정짓게 될 거라고 겐사이는 말했다.(p.331)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등장한다. 무단파와 문치파, 동군과 서군으로 분열되어 또다시 전쟁의 공포가 몰려온다. 후시미 성이 함락되고, 오쓰 성이 위기에 처한다. 교스케는 가카리를 발령하고, 오쓰 성의 방어에 총력을 기울인다. 3천의 병력으로 수성하는 반딧불이 다이묘와 4만의 병력으로 공성하는 서국무쌍의 대결, 새왕의 성벽은 포선의 철포를 막아선다.

일진일퇴의 접전, 백중세의 전장은 군사뿐만 아니라 장인의 피와 땀과 눈물의 헌신을 잘 드러낸다.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서 축성 장인과 철포 장인의 활약을 역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견고한 성을 쌓겠다는 집념, 석축에 관한 상세한 묘사, 기발한 대결까지... 역사소설의 교과서로 여길 만큼 짜임새가 좋고, 이야기는 흥미롭다. 오쓰 성의 역사는 바뀌지 않아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데, 이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이 승리하고 에도막부의 시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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