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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눈감지 마라
  • 이기호
  • 13,500원 (10%750)
  • 2022-09-25
  • : 1,695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15.

인문책시렁 432


《눈감지 마라》

 이기호

 마음산책

 2022.9.25.



  찰칵이를 늘 쓰되 으레 헌것으로 장만합니다. 마지막으로 새것을 장만해 본 적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장만해 준 무릎셈틀을 열 해째 쓰다가 지난해에 숨을 거두어 떠나보낸 뒤, 살림돈을 어찌저찌 헐어서 헌것으로 장만했는데, 셈틀집에서 들려주는 달콤말에 홀렸는지 자꾸 간당간당하면서 숨이 넘어가려고 합니다.


  시골집을 떠나서 바깥일을 할 적에 늘 곁에 둘 무릎셈틀입니다. 어떡해야 하느냐 한참 곱씹지만 뾰족한 길은 안 나옵니다. 지난이레에도 어제오늘도 간당간당 무릎셈틀을 붙잡고서 울지만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뻐근한 등허리를 쉬다가,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서 빨래를 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지난 한 해 애쓴 무릎셈틀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입니다. “고마워, 애썼어. 네가 나한테 와서 우리집에서 함께 지내기에 반가워.”


  《눈감지 마라》를 2025년 첫여름에 읽었습니다. 서울과 인천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길에 읽었습니다. 엄청나게 붐비고 시끄러운 복판마을(센트럴시티)에서 첫 쪽을 폈고, 한참 읽다가 눈을 드니 곧 시외버스를 탈 때이더군요. 한 시간 즈음 책에 파묻혔습니다. 눈을 들고 나서야 둘레가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줄 다시 느꼈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마저 읽는 동안, 이 시외버스에서 떠드는 다른 손님 말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마지막 쪽을 덮고서 고개를 들고 보니, 둘레 적잖은 손님이 참으로 시끌시끌 손전화로 수다를 떨더군요.


  이기호 님이 쓴 《눈감지 마라》는 아주 잘 엮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두 젊은이는 그다지 ‘돈을 쓰는 일’이 없어 보이는데, 끝없이 곁일을 하면서도 왜 빚을 못 갚거나 목돈을 못 모으는지 꽤 알쏭달쏭했습니다. 모르는 분은 그냥 모르는데, 서울과 큰고장에서는 나절삯(시급)으로 곁일을 하지만, 시골에서는 ‘통크게’ 곁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는 밥집도 술집도 찻집도 적습니다만, 요사이는 ‘이웃일꾼’이 시골에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다가 나들꾼(관광객)이 두멧시골로 꽤 찾아다녀요. 그래서 밥집과 술집과 찻집이 드물지는 않고, 이제 웬만한 시골 면소재지까지 나들가게(편의점)가 있습니다. 시골은 한 해 내내 다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있어요. 논과 밭뿐 아니라 공장이 되게 많은 시골이에요. 바닷가라면 김공장까지 있습니다. 젊은이가 김공장에서 한 해만 일해도 빚을 다 갚고도 목돈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가 뜻을 펴거나 꿈을 이루는 길을 열기는 만만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나라와 고을에서 젊은이를 북돋우려는 길을 여러모로 내려고 힘쓰기는 하지만, 막상 모든 젊은이한테 안 와닿기도 하고, 가난한 젊은이한테는 아주 안 와닿기까지 합니다. 또한, 차츰 ‘젊은돌이’가 설 만한 자리가 얕고 버거워요. 지난날 ‘젊은순이’가 겪어야 하던 높다랗고 까마득한 담벼락을 이제는 젊은돌이가 꽤 버겁게 맞닥뜨리면서 헤매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알뜰살뜰 품어내는 손끝에 ‘시골살이’와 ‘일자리’와 ‘곁일’을 조금 더 깊넓게 짚으면서 얼거리를 살피려 했다면 한결 나았겠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글을 쓰실 적에는, 겉훑기로 그려내고서 그치기보다는 몸소 여러 ‘시골일’과 ‘시골일자리’를 해보고 나서, 살갗과 삶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여미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ㅍㄹㄴ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들은 대번에 채무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대학만 다녔을 뿐인데도 정용은 800만 원, 진만은 1200만 원 빚이 생겼다. (19쪽)


정용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연차나 반차, 월차 같은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70쪽)


그래, 사는 게 팍팍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이 궁금하기도 하겠지. 최저임금이나 고용 상황이니 하는 것들보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도 만만치 않게 중요한 거겠지. (98쪽)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112쪽)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건너 한 번씩 이웃집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43쪽)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거나 작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서 계속 계속 그걸 치우다 보면 어쩐지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99쪽)


진만이 죽었다는 것,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 차가운 길에 오랫동안 홀로 누워 있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294쪽)


“나 여기 올라와서 아직까지 한 명도 만난 사람이 없어요. 형 말고 말해본 사람도 없고.” (314쪽)


+


《눈감지 마라》(이기호, 마음산책, 2022)


엄지손가락만 해져 있었다

→ 엄지손가락만 하다

→ 엄지손가락만큼 작다

11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 다른 무엇이 되어 가는 듯했다

→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38


그게 다 자신의 기초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 이는 다 제 밑동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밑머리가 어리숙하기 때문이라고

→ 다 제 바탕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41


가끔씩 놀라기도 했으니까

→ 가끔 놀라기도 했으니까

124


바로 고향인 무안으로 내려갔다

→ 바로 둥우리 무안으로 갔다

→ 바로 보금자리 무안으로 갔다

158


오래된 구옥 20여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동네였다

→ 오래된 집 스무 채 즈음 모은 작은 마을이다

→ 옛집이 스무 채 즈음 모인 작은 마을이다

26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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