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13. 논틑밭틀
고흥살이 열다섯 해를 돌아보니, 버스때를 앞두고서 늘 밭게 움직였다. 오늘도 밭게 길을 나선다. 논틑밭틀로 걸으려다가 그냥 큰길을 따라서 걷는다. 시골 큰길이란 두찻길이지. 이 만해도 크다. 이 만한 길에도 뱀과 개구리와 새와 사마귀와 지렁이와 들고양이와 들개와 고라니와 멧돼지와 나비와 벌과 갖은 이웃이 뻥뻥 치여죽는다.
간밤에 내린 비는 길주검을 달래었을까. 짙구름을 올려다보며 질빵을 조이고서 달린다. 옆마을 버스나루에 닿아서 숨을 고른다. 땀을 훔치고서 노래 한 자락을 쓴다. 시골버스에 타고서 마무리한다. 두 꼭지를 새로 쓰고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미닫이를 열고서 들바람을 쐰다.
오늘 시골제비는 어떤 노래와 춤으로 배웅하려나. 읍내 버스나루에서 부산버스를 기다린다. 부산에 닿으면 어느 곳을 들러서 〈책과 아이들〉로 걸어갈는지 헤아려 본다. 요즈막에 사들인 책이 집에 자꾸자꾸 더미를 이루지만, 부산마실을 하는 길에 책집마실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 부산버스에서는 꽃글(동화) 한 자락을 매듭지으려나. 오늘 매듭을 못 짓더라도 신나게 쓰자. 새벽에 길을 나설 즈음에, 우리집 앵두나무에 맺힌 이슬이랑 빗물 한 방울을 아침밥으로 삼았다. 옆마을로 달려가는 길에 쐰 새벽바람 한 줄기로 낮밥을 삼으련다. 곧 해가 나면서 날이 개려나 싶다. 다시 비를 뿌릴 수도 있지. 어떠한 하늘이어도 반갑다. 씩씩하게 걷고 달리고 쉬고 쓰고 읽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