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13. 읽고 싶은 대로
간밤부터 비가 싱그러이 내리다가 새벽녘에 그치는 하루이다. 세 사람 배웅을 받으면서 부산으로 건너온다. 사상나루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자니 빈자리가 없이 붐빈다. 등짐을 내려놓고서 눈을 감는다. 시외버스에서는 여러 글을 손으로 쓰면서 안 쉬었으니, 이제 비로소 가볍게 온몸을 느긋이 쉰다.
한참 달린 시내버스는 보수동에 닿는다. 토닥토닥 내려서 걷는다. 오늘은 보수동 〈대영서점〉에 들른다. 등짐과 앞짐을 거의 다 내려놓고서 책을 살피고 읽는다. 예전에 장만한 판이 있으나, 책숲에 건사한 판은 고이 모시기로 하고서, 밑줄을 그으면서 읽을 판으로 새삼스레 《陽文文庫 R-9 89 가난한 사람들》(도스또예프스키이/이동현 옮김, 양문사, 1960.4.15.첫/1961.12.3.재판)을 집어든다.
도스토옙스키 님이 1846년에 선보였다는 이 책은 언제 처음 한글판이 나왔을까. 아무래도 1960년에 나온 한글판은 러시아말이 아닌 일본말을 옮긴 듯싶다. ‘일본글을 옮겼다는 티가 물씬 나는 낱말’이 곳곳에 있다. 그러나 이런 몇 낱말을 빼고는 옮김말씨가 매우 정갈하다. 이름있고 커다란 펴냄터에서 곱상하게 내놓는 ‘세계문학전집’은 아마 러시아말을 옮겼으리라. 러시아책이니 러시아말을 살피고 짚으면서 옮길 노릇이다. 그런데 어느 말씨로 옮겼을까? ‘우리말씨’로 옮기는가, 아니면 ‘일본말씨’나 ‘옮김말씨’나 ‘일본스런 옮김말씨’나 ‘옮김일본말씨’에 갇히는가?
나는 ‘세계문학’은 되도록 오늘판과 옛판을 나란히 놓고서 살핀다. 오늘판은 틀림없이 바깥말을 바로 읽어내면서 옮길 텐데, 어쩐지 우리글 같지 않기 일쑤이다. 옛판은 곳곳에서 빠지거나 놓친 대목이 있을 만하되, 낱말과 얼거리와 말씨가 그저 우리말씨이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둘 사이를 어떻게 채우거나 메꾸거나 돌아볼 수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이 틈바구니를 어떻게 보듬거나 살피거나 여밀 만한가.
누구나 읽고 싶은 대로 읽을 노릇이되, ‘싶다’라는 대목이란 무엇인지 더 헤아려야지 싶다. “-고 싶은”이며 “-고 싶은 대로”란 참으로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어울리면서 오가고 흐르는 빛인가? 나다움과 너다움을 잊거나 잃은 채 헤매는 수렁은 아닌가? 그러나저러나, 도스토옙스키 님 첫 글꽃을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옮긴 말씨를 여태 고스란히 잇는 대목이 고맙다. ‘빈민’도 ‘빈자’도 아닌, 그저 ‘가난이’이다. ‘가난이웃’이요 ‘가난벗’이고 ‘가난님’이다. ‘가난꽃’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