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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귀차니스트의 책읽기
  •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 15,120원 (10%840)
  • 2025-04-06
  • : 242,975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마음은 뭔가 좀 특별하다. 원래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싶다는 것이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 사생 팬도 아닌데 작가 집 앞에 가서 무작정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으니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하던 에세이가 나오면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놓고, 그 다음은 전혀 우아하지 않게 커피를 홀짝이다가 어느 순간 소파에 드러누워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새겨듣듯 읽어나가는 것이다. 가장 편한 친구와 어딘가 놀러가서 맘껏 수다를 떠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이 수다는 일방적이다. 굳이 내가 뭔가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작가가 알아서 일방적으로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나 그에게 궁금했던 생각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해준다. 나는 그저 듣기만, 아니 읽기만 하면 된다. 이 편안함을 어쩔 것이냐? 좋아하는 작가 앞에서 나는 소리내어 커피를 홀짝여도 되고 드러누워도 되고 비염에 시달리는 코도 팽팽 풀어가면서 가장 편한 포즈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심지어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보통 나의 생각과 코드가 잘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읽기는 더욱 편해지는 것이다.몸도 마음도 모두 다.....


 보통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책 읽기가 마냥 편한 것 만은 아니다. 어떤 책은 책상에 각 잡고 앉아 밑줄 긋고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읽다가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회의론에 빠져들거나, 책의 내용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부짖거나 뭐 그런 책들이 훨씬 많다. 얼마 전에 너무 재밌게 읽었던 <삼체>도 너무 너무 좋았지만 편한 책 읽기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건 뭔가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놓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 102쪽


 작가의 말처럼 나는 어쩌면 내가 아는 나를 확인하거나,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어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이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면 그렇지 사는게 그런거야라는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 그리고 내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는 느낌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 결이 완전히 적대적이지만 않다면-좋아하는 작가의 책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아 나는 그 순간에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됐을텐데 왜 그랬을까라며 뭔가 더 나은 그런걸 발견한 느낌으로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글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아는 나를 좀 더 낫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생각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좀 더 나은 내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테니 그도 괜찮다.


 어머니의 빈소에서 시작하는 이번 에세이의 글들은 이제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내게는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사랑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내 부모와 나의 관계가 글을 읽는 내내 투영되었고, 나의 아이들 역시 그러하리라는,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을 다잡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책은 심각한 이야기도 사소한 이야기도,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역시 나의 일상에 닿는다.


누구든 일회용 삶을 살고 있어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 그 단 한번의 삶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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