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저자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현대지성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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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테마문학 >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외로움이 숨어 있다.
■ 책 속 밑줄
왕자는 나무 주위에 자라난 풀숲에 몸을 숨기고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정원에는 마치 수백만 마리의 새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불-불 새가 나타난 것이지요! 새는 자신의 새장에 내려앉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물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군요. '불-불 새야, 너도 자야지?'라고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라는 게 그것뿐이라면 못 들어줄 이유가 전혀 없지!'
그는 곧바로 말했습니다.
"불-불 새야, 너도 자거라!"
그 순간 불-불 새가 날개를 펼쳐 왕자를 쳤고 왕자는 그 자리에서 자작나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한 방만 제외하면 집 안 어디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된단다"
양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양어머니가 들어가지 말라고 한 방들 가운데 하나를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별이 날아가버렸습니다.
한편 집에 돌아온 양어머니는 별이 없어진 것을 알고 몹시 화를 냈습니다.
"내가 그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이제 나는 너와 살 수 없다. 널 이 집에서 쫓아내야겠어!"
"죄송해요, 어머니.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쫓아내지만 말아주세요."
양어머니는 엉엉 울며 비는 소녀를 보고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결국 소녀를 쫓아내지 못하고 얼마 뒤 또다른 여행을 떠났지요.
"이 정도면 사람들에게 내놓아도 되겠어요. 그런데 소금에 절인 쇠고기와 감자를 조금만 넣으면 아무리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신사라도 맛있게 먹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뭐, 없는 걸 굳이 신경 써서 뭐하겠어요?"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쇠고기와 감자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나그네가 죽 젓는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와, 이 정도면 최상급의 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어요."
"놀랍구먼! 못으로 끓인 죽이 그렇게 훌륭하다니!"
나그네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쯤에서 한 입 떠먹을 만도 한데 그는 또다시 중얼거렸습니다.
"만약 보리와 우유를 조금 넣을 수 있다면 왕에게 진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왕이 저녁마다 드시는 게 바로 이거거든요. 제가 예전에 왕의 요리사 밑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잘 알아요."
작고 낡은 오두막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거기엔 늘 숲이 있고 불빛이 있고 기다림이 있다.
늑대가 아니어도, 마녀가 아니어도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동화는 그 어둠을 건너는 이야기이다.
용이 나타났을 때 누군가는 도망쳤고 누군가는 싸웠으며 누군가는 이해하려 했다.
이야기는 언제나 선택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 끌림의 이유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화의 문을 조용히 그러나 전혀 다른 결로 열어주는 책입니다.
노르웨이 민담을 수집한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과 욘 모르겐투르드의 기록은 환상과 현실, 상상과 교훈 사이에 놓인 북유럽 정서의 깊이와 어둠, 따뜻함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32편의 북유럽 동화는 또 하나의 동화의 얼굴을 띄고 있었는데, 깨끗하지만 어둡고 잔인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새롭게 느껴지며 삶의 이면을 서늘하게 비춰주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북유럽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특색 있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무민, 산타 그리고 겨울왕국까지!
소복소복 눈이 가득 쌓인 환상적인 이야기의 본고장, 북유럽!
그곳의 동화들은 어른들도 아이처럼 변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를 읽고 나니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읽는 동안 여러 문장이 조용히 제 마음에 내려앉았고 그 문장들은 오랫동안 침묵해 있던 감정들을 살며시 건드렸습니다.
무엇보다 각양각색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해주었습니다.
책 속에는 낭만보다 현실, 마법보다 상실이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끝내 희망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고된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어둠을 인정한 뒤 빛을 기다리는 이야기들은 서늘하지만 단단한 결을 지니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정화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원작을 처음 알았을 때, 나름의 충격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흑설공주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둠을 피해 달아나는 공주가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끝내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는 존재로 다시 읽히는 동화들을요.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그런 새로운 해석의 또다른 출발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동화를 낯설게 다시 만나고 싶은 분
삶의 어둠을 인정하면서도 따뜻한 결말을 원하는 분
북유럽 특유의 서늘함과 정서를 책으로 경험하고 싶은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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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