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뻥 뚫린 동그란 구멍 하나.
손끝으로 가만히 만져보게 되는 그 작은 빈 공간이
이 책의 시작이자, 첫 문장이었습니다.
『앗, 구멍이다!』는 말 그대로
구멍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구멍이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구멍은
달이 되기도 하고, 안경이 되기도 하며,
마침내는 아이의 상상력 속으로 스르륵 스며들어갑니다.
이 책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유도합니다.
무엇일까요? 다음엔 뭘까요? 하고
아이가 먼저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이 참 좋았습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기며
같은 구멍을 보는데
서로 전혀 다른 답을 내놓게 되는 순간들.
그 안에 담긴 아이의 세계와
내가 잊고 지낸 어린 시절의 마음이
문득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앗, 구멍이다!』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은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그 조용한 틈 사이로
아이의 마음은 자라고,
어른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구멍 하나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니.
이 작은 책이 열어준 상상의 문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며
“그게 뭐야, 그냥 구멍이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그 구멍이 우주가 되고, 친구가 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문이 됩니다.
읽고 나서 책을 덮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도
작은 구멍 하나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구멍을 통해
나는 무엇을 상상하고 싶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