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행복을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닫힌 행복'과 '열린 행복'이다. 요리에 비유하면, 닫힌 행복은 레시피대로 잘 나온 요리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맛이 특색이다. 반면에 열린 행복은 레시피가 아니라 방송프로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다소 불확실한 식재료를 사용해 맛있게 만든 요리에 해당한다. 예상하기 힘든 반전의 맛이 특색이다.
다시, 여행에 비유해 본다면, 닫힌 행복은 여행 스케줄대로 착오 없이 매끄럽게 진행된 편안한 여행을 말한다. 반면에, 열린 행복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인연 따라 기분 따라 발길 따라 조우하게 된 뜻밖의 설렘과 긴장이 있는 그런 여행을 말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행시킨 '소확행'도, 만약 모닝커피나 오후의 밀크티처럼 매일 의례처럼 진행되는 소확행이라면 닫힌 행복에 해당하고, 우연성에 기댄 돌발적인 소확행이라면 열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지속성에 따라 구분한다면, 닫힌 행복은 잔잔히 지속되는 가벼운 즐거움과 편안함이라면, 열린 행복은 짧고 강렬한 쾌락이나 희열감이라고 하겠다.
노르웨이의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이 행복을 화두로 잡았다. 췌장암 말기를 선고받은 직후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대폭 줄어든다. 저자는 행복의 본질을 탐구한 방대한 문헌을 두루 참조하는데, 나는 왜 저자가 자신이 일상에서 만끽하는 행복한 순간에 대한 감상이나 신변잡기적 에피소드가 적은지 좀 의아해했다.
행복의 정의엔 객관적인 조건보다 주관적인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 이기주의자의 행복과 이타주의자의 행복이 결이 다른 것처럼, 개인주의자의 행복과 공동체주의자의 행복도 당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진화생물학자의 행복과 사회인류학자의 행복도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물학적 기본 욕망의 충족에 기댄 행복론이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자의 단순한 양적인 행복론에 반대한다. 하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행복론은 여전히 부정신학의 경우처럼 불명확하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이 그나마 진지한 행복 연구의 합리적 결론처럼 다가오지만, 그것 역시 '그런 건 진짜 행복이 아니야' 수준의 거친 마무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