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전 세계 고위 성직자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종교 지도자, 266명의 역대 가톨릭 교황 가운데 가장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 바로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시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이주민, 가난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병든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시고, 교회 내부를 비롯해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과 평화에 대한 사랑을 강력히 실천하고 계신다.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교황님이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두 분이 아닐까 싶다. 두 분 모두 한국을 방문해 한반도의 평화를 축원해 주셨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1984년 5월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당시 신앙심이 충만했던 초등학생이던 나는 여의도광장에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때 거룩한 하얀 십자가가 수놓아진 광장의 푸른 하늘이 기억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그 광경은 TV 중계를 통해 지켜보았다. 직접 뵙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보다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인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기도 하고ㅡ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프란치스코 평전을 읽고 벅찬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인 최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이 바티칸에 계시기 때문에 그런지 한결 정겹게 느껴진다.
『나의 인생』(윌북, 2025)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초 공식 자서전이다. 서점에 가면 『희망』이란 큼직한 자서전이 종교 신간 매대를 차지하고 있어 둘 중 어떤 책이 정말 '공식 자서전'인지 살짝 혼선이 오기도 한다. 뭐 여유가 된다면 두 권 모두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비닐 커버로 밀봉한 벽돌책보단 지금 내 앞에 놓인 교황님의 인자하신 미소가 표지인 이 작은 책이 더 나아 보인다.
『나의 인생』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바티칸 전문기자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의 대화를 정리한 기록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교황의 본명)의 성장기를 직접 들려주는 교황님 목소리와 당시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는 보조자 역의 라고나의 목소리가 번갈아 등장한다. 교황님은 88년의 세월 동안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셨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냉전과 매카시즘, 비델라의 군사 쿠데타, 베를린 장벽 붕괴, 글로벌 경제 위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그러하다.
교황은 인생 이야기를 통해 신앙, 가족, 가난, 종교 간 대화, 스포츠, 과학적 진보, 전체주의, 평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견해와 입장을 피력하신다. 교황은 복음서처럼 개인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강조하신 바 있다. "인생 이야기는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작고 단순한 것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바로 그 작은 것에서 위대한 것들이 탄생합니다."
또한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폭력은 물론, "모든 폭력을 거부해야 합니다"라는 교황님의 강한 어조에서 친위쿠데타로 인해 난장판이 된 한국 사회의 오늘을 떠올리며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시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을 말살하려던 한 권력자의 거친 폭력은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라는 교황님 말씀이 우리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