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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서재
  • 추락
  • 존 쿳시
  • 13,950원 (10%770)
  • 2024-12-23
  • : 3,872
N25071

"어쩌면 가끔씩 쓰러지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죠. 부서지지만 않는다면요."


지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볼 때마다 안정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했었었다. 왠지 아프리카 이지만 아프리카가 아닌듯한 나라, 왠지 다른 아프리카 대륙 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나라라는 인상이 있었다. 아무래도 백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생긴것 같은데 쿳시의 <추락>을 읽고 내가 정말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인종차별주의 시각이 있었다는걸 반성했다.


<추락>은 크게 세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이야기는 수도인 케이프타운에서 노년의 대학교수이자 백인인 루리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여러 여자들과 난잡한 성생활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여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대학교에서 쫓겨나는 추락이다. 사실 이런 난잡(?)한 이야기는 소설속에서 많이 봤었기 때문에 별 거부감은 없었다. 나쁜놈이긴 하지만...백인사회의 도덕적 몰락...

["우리가 당신들 손에 아이들을 맏기는 건 당신들을 믿을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대학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딸을 독사의 소굴로 보낸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어요. 루리 교수님. 당신이 고매하고 권력있고 온갓 학위를 다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당신이라면, 하느님 맙소사, 나는 나 자신이 이주 부끄러울 거에요. 민약 내가 상황을 잘못 짚었다면, 이제 당신이 얘기할 차레입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군요."] P.58



두번째 이야기는 대학에서 쫓겨난 루리가 딸 루시가 살고 있는 이스턴케이프의 시골농장을 방문하면서 겪게 되는 추락이다. 수도인 케이프타운과 다르게 흑인의 권력이 우세하던 지역이었던 이스턴케이프는 백인 여성인 루시가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었다. 루시가 왜 그곳에서 혼자 살아가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진 않았다. 루시는 그곳에서 흑인인 페트루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데, 어느날 루시의 집에 흑인 강도일당이 나타나 루리는 폭행을, 루시는 강간을 당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밝혀지는데도 루시는 사건을 묻으려고 한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려고 한다...백인사회와 흑인사회의 역전...

[그는 생각한다. 이것은 매일, 매시간, 매분, 이 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살아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해라. 이 순간, 속력을 내며 달리는 차 안에 포로로 잡혀 있거나 머리에 총알이 박혀 협곡 밑에 있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해라. 루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 P.139



세번째 이야기는 루리와 루시 사이의 갈등을 통해 드러나는 인권의 추락이다. 과거 백인사회의 우월함을 대표하는 루리, 그리고 지금 백인사회의 추락을 대표하는 루시. 루리는 루시에게 그곳에서 탈출하라고 설득하지만 루시는 떠날수 없다고 어쩔수 없이 굴복해서 살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딸이 저러고 있으니 속이 타겠지만 어쩌면 이건 부모세대가 저지른 인과응보일지 모른다...흑인사회의 복수...

["루시. 너는 정말 날 놀라게 만드는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너도 그걸 알고 있다. 페트루스에 관해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는데, 만약 네가 이번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이번에 실패한다면, 넌 제대로 살 수 없을 거야. 네게는 네 자신과 네 미래와 네 자존심에 대한 의무가 있어."] P.188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이 있었다. 백인 노년 교수 루리의 여성에 대한 태도도 별로였지만 특히 딸인 루시의 흑인사회에 대한 굴욕적인 태도는 거북하기까지 했다. 왜 저렇게 까지 비굴하게 구는건지, 왜 저러면서도 흑인사회에서 도망가지 않는건지 의야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는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극단적으로 그리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 루시가 백인 여성이 아닌 흑인 여성이었다면, 그리고 흑인 강도들이 아니라 백인 강도들이었더라도 내가 불편함을 느꼈을까?

["그건 너무 개인적이있어요. 그들은 제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처럼 그 일을 했어요. 무엇보다도 그것이 저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어요. 나머지는.. 에상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저를 왜 그렇게 중오했을까요? 저는 그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 P.219



인종차별에 대한 나의 편협한 시각을 다시한번 반성하고 고쳐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화해와 용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화해와 용서 이전에는 반드시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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