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스 게리첸. 이 소설로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영미권에서는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읽어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TV 시리즈 제작이 확장되었다는데 너무 기대된다. (참고로 테스 게리첸의 대표작 <리졸리 앤 아이스>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총 7시즌에 걸쳐 드라마가 제작, 방영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볼 수 있다고. 이 작품도 미국 북동부가 배경이며 여성 형사와 검시관 콤비가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재밌겠다.)
미국 북동부 메인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닭을 키우며 조용히 살고 있는 육십 대 노인 매기 버드의 전직은 CIA 요원이다. 지금은 옆집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하는 정도의 일정 밖에 없지만, 예전에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누비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서 놀다 온 매기는 집에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음 날 그 침입자는 시체가 되어 매기의 집 앞에서 발견된다. 신고를 받고 매기의 집으로 달려온 경찰 서장 대행 조 티보듀는 집 앞에서 시체가 발견된 노인 치고는 지나치게 침착한 매기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다.
한편 매기는 자신의 집 앞에 시체가 놓여 있다는 건 전적들이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낸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들 중 누가 자신을 죽이러 온 건지 알아내려고 한다. 매기는 '시라노'라는 작전명으로 유명한 그 사건의 범인이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자신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매기를 돕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들도 모두 전직 CIA 요원이다)은 문제의 사건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하고, 결국 매기는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CIA 요원직을 그만둘 마음을 먹게 할 정도로 매기가 사랑했던 남자, 대니의 이야기를.
테스 게리첸이 한때 로맨스 소설을 많이 썼다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도 로맨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존 르 카레의 소설 같은 정통 스파이 소설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나는 만족하면서 읽은 편인데, 일단 주인공이 여성이라서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에 공감이 많이 되었고, 남자를 사랑하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생기는 서스펜스가 참 스릴 넘치게 그려져 있다고 느꼈다. 현재 시점에서 등장하는 메인 주의 겨울 풍경과 이상할 정도로 추리를 잘하는 노인들의 장면도 좋았다. 빌런의 정체도 좋았는데, (빌런의 정체상) 후속편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을 느끼는 건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