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소설. 읽기가 쉽지 않은데 계속 읽게 된다. 예전에는 진정한 독서가(?)라면 취향이 아닌 책도 읽어야 한다는 (알량한) 의무감 때문에 읽었다면, 요즘은 개중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로도 읽는다. 천선란 작가의 신작 소설집 <모우어>에서도 마음에 드는 단편을 여럿 찾았다.
첫 번째는 <뼈의 기록>이다. 로비스는 장의사로 일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하루에 몇 구의 시신을 처리하는 로비스이지만, 안드로이드 로봇인 만큼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한다. 로비스는 같은 장례식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노인 모미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과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라고는 하지만, 로비스가 모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유난히 즐겁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은 건 인간인 나의 착각일까. 인간보다 더 인간을 위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과연 인간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서프비트>이다. 엄마가 일하는 가게에서 매일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주영은 어느 날 우연히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얼마 후 초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 놓고 훈련하는 기관에 들어가게 된 주영은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초능력자 남자아이 도영을 만나게 된다. 나이도 같고 이름도 비슷한 주영과 도영은 한 집에 살고 같은 학교에 다니며 쌍둥이 남매처럼 지낸다. 언제부터인가 주영은 도영을 남매나 친구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 감정이 채 여물기도 전에 도영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 본격 SF 소설이라기보다는 판타지가 가미된 청소년 로맨스 소설로 분류될 만한 내용이라서,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아직 읽어본 적 없는 독자라면 입문작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표제작 <모우어>는 언어가 사라지고 언어 대신 '의음(意音, 정신이나 마음의 작용에서 나오는 소리)'로 소통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초우는 어느 날 우연히 인간 아기를 발견하고 '모우'라는 이름(부름어)을 붙여준다. 초우는 모우가 이 사회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의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인간 아기인 모우는 초우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자꾸만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가 인간의 본능임을 이야기하는 소설 같기도 하고, 사랑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생존 의지를 능가하는 힘이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