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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한잔

2025년4월18일


둘째 날, 창세기에서 인공지능까지 언어의 진화와 소통


기독교의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는 선언 한마디로, 혼돈은 형태를 갖게 되었고 우주는 질서를 얻었다.

그 말씀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존재를 일으키는 힘이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첫 권리는 이름을 짓는 능력이었다. 아담은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벨탑의 이야기는 또 언어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하늘에 닿으려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언어를 흩어지게 하셨다.

이는 교만에 대한 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언어의 무분별한 사용과 소통의 교만이 가져오는 위험에 대한 경고였다. 언어는 세우는 힘이지만, 오해와 단절을 만들면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


동양에서도 언어는 신성한 힘으로 여겨졌다.

힌두교에서 ‘옴’(ॐ  OM)은 우주의 근원적 소리로 우주의 본질을 담았다.

불교에서는 소리를 내어 외우는 ‘진언(眞言)’수행을 중요하게 여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같은 주문(呪文)은 뜻보다도 그 음과 울림 자체로 마음을 정화하고 세계를 진동시킨다고 여겼다. 이것은 언어가 단지 전달이 아니라 ‘변화의 힘’을 지닌 에너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었고, 언어는 또 한 번의 진화를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분석하고, 다시 되돌려준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언어를 익혀가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AI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인간의 언어 속에서 감정의 구조를 읽어내고, 의미의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AI시대를 마주한 우리는 기계와 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있다. 프롬프트(prompt)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주문이며, AI와의 대화는 기술을 넘어 철학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질문 하는가에 따라 AI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게 되고, 그 대화의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언어는 시대를 초월해 진화해왔다.

신의 말씀에서, 진언에서, 시와 철학과 종교에서, 그리고 이제는 AI와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언어의 근원은 하나다.

바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 이다.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며, 존재를 부르는 소리다.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일으킬 수도 있고, 문명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에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말하기가 아니다. 언어를 잉태한, 그 침묵의 마음이다.

모든 언어는 침묵에서 태어난다. 침묵 속 산고(産苦)를 겪고 태어난 언어는 깊고도 강한 힘을 지닌다.

그 힘은 바로 소통의 힘이다. 소통은 곧 연결이다.

신과 인간의 연결, 자연과 인간의 연결, 인공지능과 인간의 연결, 외계적 존재와 인간의 연결, 언어는 이 모든 소통의 출발, 언어는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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