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제목: 딥시크 쇼크
지은이:
이용태
제 목: AI라는 거울 앞에 서서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눈앞의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증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계가 발전하는 속도, 인간은 이미 따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분야든 AI(Artificial Intelligence)로 대체될 거라고 매체에서는 난리다.
기계가 나를 대신할까 두려운 게 아니라, 나조차 나를 잊고 살까 두려운 시대다.
도대체 왜 그렇게도 세상은 빠르게 변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 같은 문과출신은 이러한 기술 발전이 그리 달갑지 않다. 그래서 올해 나온 책중 가장 읽어 보기에 무난해 보이는 <딥시크 쇼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읽은 후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딥시크(DeepSeek)와 챗GPT, 이 두 인공지능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 그 이상을 말하고 있는것 같다.
GPT-4까지 진화한 챗GPT는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림도
보고, 코드를 짜고, 글을 쓴다. 그에 비해 최근 중국에서 개발된 딥시크는 성능 면에서는 다소 뒤처지지만, 적은 자원으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성비’로 AI 업계에 놀라움을 안겨줬다.
사실 딥시크는 미국이 중국에 앤비디아(NVIDIA)의 고성능
GPU 수출을 막으면서 시작된 어찌 보면 ‘차단’의 결과로 탄생했다. 그 차단이 오히려 기술 자립이라는 뜻밖의 결과를 만들었다. 중국은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딥시크는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성능만 본다면 챗GPT가 더 뛰어나지만, 딥시크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불리한 조건 속에서 ‘스스로 해낸 것’이라는 상징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좀 더 자극을 받아야 한다. 이들과 비교하면
너무 안일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건 단순한 기술 비교로 보면 안될 것 같다.
이 안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들, 즉 자존심, 위기감, 경쟁심
같은 ‘인간적인 본능’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성능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숨은 맥락, 의지, 배경까지도 함께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계는 인간을 닮고, 국가는 거대한 인간이다. 기술은 그걸 만든
사람을 닮는다.
그리고 한 국가가 만든 기술은, 그 사회의 문화, 가치관, 정치,
욕망을 함께 담고 있다.
딥시크와 챗GPT의 차이는 단지 성능의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의 차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 차이는 결국,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AI는 이제 인류의 과제다. 더 이상, 되돌릴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제 “AI를 받아들일까 말까”가 아니라, “AI와 어떤
관계를 맺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그렇다면...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인간이고 싶은가? 그 질문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말로 필요한 건,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AI가 계속해서 ‘더 나은 판단’, ‘더 빠른 계산’을
하게 되는 시대로 진입했다.
그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더 지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더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행동하기보다, 더 깊이 성찰하고,
더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를
배우지 못하며, 스스로를 용서할 줄 모른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오류투성’ 이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완벽한 존재’ 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AI와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를 해야 할 시점까지 온 것이다.
AI는 거울이다.
기술의 거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비춰야 할까?
AI는 우리를 비추고, 우리가 던지는 질문을 반사한다.
그 거울 앞에 선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기술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가?
나는 기술에 내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것 인지, 아니면 나의 가능성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변화의 속도 속에서 나는, 정말 나답게 존재하고 있는지?
결국, 우리가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할 것은 인간의 본성(本性)이며,
발전시켜야 할 것은 영성(靈性)의 진화이다.
AI는 위협이 아니라, 질문이다. 마치 스핑크스가 주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질문 앞에서 멈춰 서서 사색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더 높은 영성을 지닌 인간으로 진화해가는 시작이라 나는
확신한다.
나는 지금 AI 라는 거울 앞에서 인류의 미래를 천천히 바라본다.
우리는 여전히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