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다. 제목이 단 한 글자. 무엇을 이야기할까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표지를 보면 여우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면 '호'는 여우다. 여우하면 구미호를 떠올리니, 이건 전설의 고향과 비슷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총 3부로 나뉘어 있지만, 디지털 문학상을 받은 작품답게(?) 내용들이 각각 끊어져 있다. 딱 그 내용만 연재될 수 있도록,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지니고, 그 다음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도록.
디지털 문학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런 형식이 아미도 예전에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 역시 그 자체로 이야기가 있지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면서 끝을 맺었으니...
하여 이 소설은 읽기에 편하다. 여우를 만나고 어려움을 겪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전설의 고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현대로 끌어왔다.
버스 사고가 난다. 혼자만 살아남는다. 우연이다. 이 우연을 구미호와 관련짓는다. 구미호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 할머니가 구미호의 존재를 알아낸다. 헤어짐. 그러다 할머니가 쓰러지고, 이제는 저승사자라 할 수 있는 존재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구미호에서 벗어난다.
이 정도면 쓰러진 할머니 역시 일어나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전설의 고향과 갈라진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고는 어쩔 수가 없다. 환상 속에서 치유가 가능할지라도 현실에서는 아니다.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임. 그리고 거기서 나아감.
소설은 그 점을 보여준다. 구미호 역시 마냥 인간을 이용하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구미호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그렇지만 함께할 수 없을 때 물러나는 것. 그것까지 보여준다.
순수한 사랑. 그런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을 걸며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런 사랑에는 위험이, 파경이 뒤따르지만 이 소설 인물들처럼(남자 인물이나 구미호나) 조건 없이 그 자체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사랑의 결말과는 관계없이 사랑하던 그 순간만은 서로가 행복했음을 보여준다.
소설 2부의 마지막에 구미호가 한 말, 그것이 이런 순수한 사랑을 말해주고 있다. "해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걸, 나도 해보고 싶었어, 그 사람이 당신이라서." ... '"행복했던 거.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198쪽)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어쩌면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같은 일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환상을 끌어들이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을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작가의 상상을 따라가면서 읽으면 되는, 재미 있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