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하다. 돌려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간결하다. 어려운 말을 하지 않는다. 똑바로 자신의 말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무겁다. 말에 실린 낱말들 하나하나가 무겁다. 고통과 분노. 하지만 이 고통과 분노는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와 고통을 똑바로 본다.
어쩌면 바닥까지 내려가본 사람이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 이제는 올라가야만 할 때, 그럴 때 올라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그러한 모습이 그려진다. 나만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남겨둘 수 없다는. 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버릴 수 없다는.
함께하기. 이 함께하기에는 차이를 없앤다는 말은 들어설 공간이 없다. '함께'라는 말에는 '같다'는 의미보다는 '다르다'는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한다. 함께하기 위해서 차이를 없앤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이런 말들이 쉽게 내뱉어진다. 그런데... 그럼 언제 말을 하지?
지금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의 적을 물리친 다음에는 차이를 말할 수 있나? 그때 차이를 말하면 이제는 '적'이 되지 않나? '차이'는 대의를 위해서 묻어두어야만 하는 그런 것인가? 오드리 로드는 이를 거부한다. 차이는 차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가 없다. 세상에 누군가의 다름을 묵살하고 이루어지는 진보를 진보라고 할 수 있나?
하여 '함께'라는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이 '함께' 속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동등한 존재로 남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함께 행동을 한다고 해서, 생각들까지도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행동을 하면서도 차이들을 드러내고, 그 차이들이 서로 부딪치고 부딪쳐 또다른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발전,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오드리 로드가 말한, 쓴 글들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차이'들이 모여 '함께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중요함을 생각한다.
오드리 로드는 '차이는 우리의 창의성이 불꽃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극성polarities과도 같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176쪽)'고 말하고 있으며, '차이는 우리가 각자의 힘을 벼려낼 수 있는 강력한 연결점이자 원료입니다(177쪽)'라고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에서 말하고 있다.
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할까? '아웃사이더인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지지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99쪽)'는 말에 그 답이 나와 있다.
경계 위에서 살기 때문이다. 이쪽 저쪽 확실한 영역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에 속하지 못한(현재로서는) 경계에 있기 때문에 경계는 이런저런 차이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온전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결코 어떤 이념이나 행동으로 뭉뚱그려져서는 안 된다.
다양함, 세상에 어떤 사람이 하나로 정의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다양함을 인정하고 거기서 함께할 수 있는 부분들, 함께해야만 하는 부분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경계 위의 삶이란 고정된 삶이 아니라 늘 변하는 삶이다. 유동적인 삶은 자신의 것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삶이다. 그것은 '차이'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받아들여 다양함이 풍부하게 발현되는 삶을 살아가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존재로부터 강요된 삶을 던져버려야 한다.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고통에서 분노가 발생한다. 이 분노가 자신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왜냐하면 '정확한 대상에 초점을 맞춘 분노는 진보와 변화를 추진하는 강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217쪽)'고, '분노를 우리의 발전과 미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표출하고 행동으로 전환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의 힘을 강화하는 정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 분노에는 정보와 에너지가 장전되어 있(218쪽)'고 '분노란 우리들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슬퍼하는 감정이고,그 목적은 변화(221쪽)'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분노는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 자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보는 데서, 분노는 힘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들 가운데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헌신하는 것이며, 그런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독특한 정체성에서 나오는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의 동일성은 인식하는 동시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251쪽)'고 로드는 말하고 있다.
다시금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이다. 흑인이자, 여성이고, 성소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 이런 그이기에 '차이'을 인정하고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 깨달았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차이들이 있나, 그런데 우리는 그 차이들을 차별로 뒤바꾼 경우가 있지 않나? 기득권에 사로잡혀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것이 어째서? 라고 말하고 있는 경우가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한다.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주는 오드리 로드의 글들이었다고, 이 책을 곁에 두고 계속 읽으면서 곱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