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트래블이 마련한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쓰면서 참고한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그는 건물 고층에 있는 구석방에 앉아 있다. / 그는 자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른다. / 그는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걸 원치 않았지만 / 결국 올라갔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시의 소재는 E.T.A. 호프만의 소설 『사촌의 구석 창문』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작가의 사촌은 젊은 방문객인 화자를 건물 고층의 구석방에서 만나 창문을 통해 내다보며 작가의 기본 자질 중 하나인 ‘보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다보니 호프만의 『사촌의 구석 창문』과 일본 작가 에도가와 란포의 「지붕 속 산책자」에 나타나는 도시산책자의 동기를 비교한 연구논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촌의 구석 창문』에서는 ‘정지된 도시산책자’를, 『지붕 속 산책자』에서는 ‘도착적 도시산책자’로 해석되는 특성을 도출해냈다는 것입니다. 두 작품을 직접 읽어보려 했습니다만, 『사촌의 구석 창문』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고, 「지붕 속 산책자」이라는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에 실려 있어 읽어 보았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에도가와 란포는 본명이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의 필명으로 에두거 앨런 포의 이름을 빌어온 것이라 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에는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그리고 「천장 위의 산책자」 등 세 편의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거미남』이 실려 있습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와 「애벌레」는 일종의 기담을 소설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천장 위의 산책자」와 장편소설 『거미남』는 일종의 탐정 추리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에서 화자는 혼슈의 중간쯤에서 동해로 열리는 우오즈(魚津)에서 신기루를 보았다고 합니다. 신기루(蜃氣樓)를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커다란 조개가 내뿜는 숨결 속에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입니다. 화자는 신기루를 보고 돌아오는 열차에서 만난 노인이 가지고 있던 오시에 기법을 적용한 에마(絵馬)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됩니다. 에마는 일본의 신사 및 사원 등에서 소원을 담아 봉납하는 그림을 그린 목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시에(押し絵)기법은 꽃,새,인물 등의 모양의 판지를 여러가지 빛깔의 헝겊으로 싸고 솜을 두어 높낮이를 나타나게 하여 널빤지 따위에 붙인 전통 기법을 말합니다. 노인의 형님이 83m가 더 되는 료운카쿠(凌雲閣)에 올랐을 때 보았던 아름다운 여성을 찾아다니다, 그녀가 그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애벌레」에서는 전쟁에 나갔다고 사지가 잘리고 얼굴도 망가진 남편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아내가 남편을 성적으로 학대하다가 눈을 찔러 실명케 하는데, 자신이 한 짓에 놀라 용서해달라고 말하는데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편이 ‘용서한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우물을 향해 꿈틀거리는 물체를 발견합니다.
「천장 위의 산책자」는 살고 있는 하숙집의 천정으로 숨어들어 하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구경하다가 한 사람을 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범죄흉내를 내던 주인공이 천장 속을 누비다가 완전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완전범죄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 부각됩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특별한 감정이 없는데도 살인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싶습니다.
천장 속을 누빈다는 생각은 새집인 경우에는 쉽게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시골에서 다니던 초등학교의마루는 나무판자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자에 있는 옹이가 빠진 곳이 있으면 물건들이 바닥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건물에 있는 숨구멍을 통해 마루 아래로 들어가 떨어진 물건을 찾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천정 속을 누빌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산책자>는 법의학을 전공하는 자가 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다는 구성이 놀라웠습니다. 살인자가 경시청의 사건수사를 자문하다보니 상황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막판에 범인이 특정되기까지 범인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흥미로운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