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그 부역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무려 6백 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했다.(이 외에도 5백 만명 이상의 희생자들이 더 있었다. 전쟁 중 사망자 이외에도) 이른바 “홀로코스트”다. 가히 인류가 행한 가장 잔혹한 범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홀로코스트에 단지 나치와 정신 나간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고생해 보이는 교회와 대학의 구성원들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해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목사들과 교수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경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매우 중요하고, 옳은 일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나치의 이상에 동조하거나 찬동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교회의 다수가 여기에 동조했다는 점이 안타깝다. 최근의 우리나라 정국에도 빗대 볼 수 있는 부분인데,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겁박하고,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총칼을 겨눈 쿠데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의 탄핵을 막고 오히려 내란을 옹호하던 이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목사들이 잔뜩 끼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대다수는 중국인에 대한 격렬한 혐오감정을 감추지 않았는데, 이는 유대인에 대한 격렬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나치와 그 부역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만약 그들에게 나치와 같은 힘이 있고, 중국이 작은 나라였다면 실제로 행동으로도 옮겼을지 모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교회 내 나치 반대세력의 활동과 노력을 지나치게 축소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준다. 대표적으로 본회퍼 같은 인물인데, 저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본회퍼나 고백교회의 활동범위와 영향력이 좁았음을 이유로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치부해 버리려고 한다. 여기에는 단순히 정량적인 기준만을 사용하겠다는(혹은 중요하다는) 편견이 개입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네가 뭘 해봤자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 노력 따위 의미 없다는 식의 사고가 옳을까?
그리고 이 정도의 책을 내면서 교회나 대학 당국의 나치 부역행위에 관한 증거 수집이, 단순히 연설문이라든지, 입장문 같은 ‘말’이 주가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 볼만하다. 물론 이들의 주요 도구가 ‘말’이긴 하지만, 그리고 선전선동 역시 분명한 잘못이긴 했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도 그들이 직접 홀로코스트에 개입했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나치 당국에 적극적인 협조를 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만.

저자가 교회를 비판하는 지점 중 하나는 히틀러와 나치가 본색을 드러내기 이전, 그러니까 초기에 교회의 저항이 단지 교회의 자유(종교활동의 자유)에 국한된 것이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좀 애매한 것이, 그렇다면 교회와 (아직 실현되기 이전의) 정권의 정치행위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는 말일까? 그건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비판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사실 정책이라는 건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고, (이번 친위쿠데타 사건처럼) 그 정도가 과도할 때가 아니면 교회는 정치와 거리를 어느 정도 두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 두 장에는 히틀러와 나치가 몰락한 뒤, 급히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려고 했던 교회와 대학 당국의 행태에 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때로 그들은 나치활동에 꽤나 깊숙이 개입했던 이들마저 구해내려는 시도를 했고, 이 과정에서 명백한 거짓이 동원되기도 했다. 끝까지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래도 이즈음 우리네 비슷한 이들은 이 와중에도 자신들의 행적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그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