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독일어 가사를 가지고 희가극을 썼다는 점에서도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1782년작인 <후궁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은 독일 오페라의 미래로 직통되는 첫 번째 획기적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독일 작곡가들이 그가 밟은 길을 따랐고 그 가운데는 <뉘른베르크의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쓴 바그너도 있었습니다.- P294
그렇지 않다면 드뷔시 유일의 오페라인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et Mélisande>에서 무소륵스키의 영향이 느껴지는 걸 설명할 수 없을테니까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 <보리스 고두노프> 다음에 오는 획기적 작품입니다. 몬테베르디의 이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작곡가의 의중이 읽히는 작품으로, 마테를링크 MauriceMaeterlinck(1862-1949)의 시적 드라마가 담은 언어를 최대한 충실하게살리고 있습니다. 음악은 그저 언어를 담을 틀 정도로만 기능하게 하면서 가사의 시적 의미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지요.- P299
한마디로 <펠레아스와멜리장드는 절제된 표현의 승리라고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포르테 패시지는 손에 꼽을 정도고, 어디나 신비롭고 통절한분위기 속에서 멱을 감는 것만 같은 느낌이 지배적이지요. 드뷔시의 음악은 마테를링크의 작은 희곡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고, 이제는 음악과동떨어진 원작 희곡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P300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음악이 원작 희곡과 완벽한 일체성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다소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노선을 따르는 후속 오페라를 기대하긴 그만큼 더 힘들었던 것이겠죠. 당장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만큼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희곡 자체가 극도로 드물기도 하고 말이지요. 게다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주는 매력을 십분 즐기려면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게 필수입니다.
작품 고유의 특성 중 상당 부분이 가사의 이해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계보를 이을 만한 후속작이 등장했더라면 상황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지 못한 관계로 음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고대신 교향곡이나 발레 같은 장르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지요.- P300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려도 현대 오페라의, 아니 총체적인 극음악의향후 존립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벗지 못하는 독자들이 계실 테지요?
그렇다면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현대음악의 발전 과정에서 획기적사건으로 기록된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 모두가 무대를 위한 작품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일보 전진은 콘서트홀이 아니라 오페라극장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리한 예측은 아닐 겁니다.- P305
제가 이렇게 갈라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니 동의하지 않으신다 해도 괘념치 마십시오. 모든 현대음악이 하나같이 접근하기 어려운 건 아니라는 점만 전달되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십이음기법에 입각한 쇤베르크 악파의 음악은 심지어 뮤지션들조차 난색을 표할 정도로 까다로운 작품이 많습니다.- P310
모든 음악적 시대는거기에 진정한 활력이 깃들어 있다면-실험적이고 논쟁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현상입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이 때로는 험난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받아들이는 애호가가 무척이나 드문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 듣는 음악이 대번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당장 호기심부터 듭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집니다. 도전의식이 생기고 의욕이 솟아납니다. 음악 예술에 대한 저의 흥미를 계속 살아숨 쉬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몇 번을 되씹어 들어도 곡이 제 마음을 두드리지 못한다 해서 현대음악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방금 들은 그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요.- P315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는 반복 청취입니다. 음반이 지천에 널린 세상이니 우리는 얼마나 다행입니까. 낯선 곡이라 할지라도 되풀이해서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도 점차 안개가 걷히며 뚜렷해진다는 것이 많은 애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현대음악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판별하기 위해서는 일단 음악을 들어보는 것 이상의 길은 없습니다.- P318
작곡가가 주는 건 바로 그 자신입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빚어낸 작품은 그 자신의표현일 테지요. 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작품과 창조자 사이의 관계가 한층 직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는 외부 ‘사건‘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본질적인 부분-한 명의 인간으로서 가진, 그리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담은 가장 완전하고 깊은 표현을 떼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P334
감상자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만이 음악 역시도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중해서 듣고, 의식적으로 듣고, 우리 지성을 모두 동원해 들읍시다. 그리하여 인류가 남긴 영광된 유산인 음악 예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도록 합시다.- P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