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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김웅
  • 19,800원 (10%1,100)
  • 2025-06-13
  • : 1,100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그는 재판을 받았다, 그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가 알기론 그를 철학자로 알고 있는데, 철학자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재판을 받았단 말인가?

 

이 책은 그런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설명 끝에 그 재판이 오심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죽게 한 재판이 어처구니 없는 오심(誤審)’이었다니!

 

그런데 우리 인류 역사상 그런 오심은 소크라테스 재판이 처음이었던가?

아니다.

저자는 그런 오심이 그전부터 있었음을 밝힌다.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이런 것이 있다.

약자들이 강자에게서 상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14쪽)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캄비세스는 재판관 시삼네스가 부패했다는 이유로 그의 살가죽을 벗겨 의자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시삼네스 아들 오이네우스에게 그 의자에 앉아 재판을 하게 했다. (15쪽)

 

시삼네스가 부패했다니 그가 한 재판이 오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 역사에서 오심이 이루어진 사례들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죄목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고, 젊은이를 타락시켰으며,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겼다고 고발을 당했다.

 

여기서 무신론자라는 게 고발의 이유었다니, 그 안에 어떤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당시 무신론자라면 사람들은 잠재적인 흉악범으로 보았다. 신을 믿지 않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사후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아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고 믿었다. (18쪽)

 

이런 논리가 가당키나 할까, 라는 생각은 그후 인간의 이성이 깨어난 다음에나 나온 것이고 당시는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 재판의 과정을 이 책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22쪽에서부터 35쪽까지)

 

마녀사냥과 재판

 

인류 역사상 희한한 재판이 있었다.

바로 마녀재판.

이 책에서 그 마녀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잘 살펴볼 수 있는데 몇 가지 기록해둔다.

 

마녀재판은 전적으로 로마 가톨릭의 책임이다.

마녀재판의 시초는 13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도입한 이단 심문제도다.

교회는 십자군 원정 실패, 교회의 부패, 간음, 살인 등 자신들의 실정과 죄악을 덮기 위해 마녀재판을 조장했다.

 

1486년에 이런 책이 나왔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이 책에는 마녀를 판별하는 법, 검문하고 체포하여 고문하는 법,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는 법까지 들어있다.


그런데 여기 이상한 대목이 있다.

바로 마녀의 능력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녀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악운의 원인인데, 마녀는 아이를 잡아먹거나 악마에게 바치고, 폭풍과 악천후을 부르며 사람과 가축을 불임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능력이 있는 마녀라면, 사람에게 잡힐 리가 없는데.......하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을까?

설령 사람에게 잡힌다 해도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면 재판장을 바람에 날려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오히려 능력자로 숭배했을 것인데?

 

이런 마녀재판은 사람의 이성을 완전히 초월한다. 지금으로보면 황당한 것이지만 인류의 역사에 그런 무지몽매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마녀사냥은 비단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 문제다

현대에서도 마녀사냥은 일어난다. 그 사례가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어떤 일일까?

이 책 chapter 11 <마녀재판은 진행형>을 참고하시라. (161쪽 이하)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이 책 곳곳에 우리가 새겨야할 게 많다.

현재의 재판이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들이다.

그걸 일일이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예수의 재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대중의 요구로 결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 ) 

정의보다는 그냥 무고한 한 명을 죽이는 것이 이득이다. (43쪽)

 

대중은 쉽게 판단하고, 즉시 분노하며, 전심전력으로 맹렬하게 공격한다. 남을 공격하고 혐오하는 것이 정의라고 오판하기 때문이다. (46쪽)

 

형사소송법이 경직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대중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정의라고 확신하는 대중보다 더 파괴적인 괴물은 없다. 이들과 싸우기 위해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미란다 원칙, 불소급의 원칙, 유추해석 금지 원칙 등을 새겨넣은 것이다. (46쪽)

 

결국 어떤 사람, 어떤 신분에 수사권을 맡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든 막강한 힘을 손에 쥐면 그것을 휘두르게 된다. 그걸 막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다. 오직 절차와 제도뿐이다. 그래서 절차적 정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102~103쪽)

 

다시, 이 책은?

 

인류 역사를 이런 식으로, 재판과 오심, 그런 과정을 통하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과정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현재 우리나라, 아니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런 과정에서 과연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를 성찰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다.


해서 이런 말은 특히 기억해두고 싶다.

 

인간이 정의를 알 수 있다면 미란다 원칙이니 적법절차니 하는 것도 불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정의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문제다. 그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인간은 형사사법제도를 만들었다. 형사사법제도는 ‘인간은 부조리하고 감정적이며 부정확하다’라는 깨달음 위에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고, 감정과 분노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말도록 여러 가지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 그 견제 장치가 바로 적법절차이다. 그래서 검사가 지키는 정의는 실체적 정의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이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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