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중음악은 세계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자국의 음악이 그 나라를 넘어 세계에서 이 정도로 흥행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우린 변방인 아시아가 아닌가. 그치만 그 이름은 한국음악이 아닌 K pop이다. 글자 그대로 외국, 특히 미국음악을 들여와 우리의 색을 입힌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한국의 음악은 국악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음악을 단순히 음악이라 하지 않고 국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앞에 별도의 지칭이 붙었다는 것은 이미 즐기고 듣는 생활음악의 자리를 서양음악에 내주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은 그 외에도 자국의 언어 교과를 국어, 역사는 국사라고 하는 좀 이상한 면이 있다.
한국인은 대개 국악을 즐기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고 대중음악이 아니며, 학교에서 딱히 배운적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음악교과의 거의 절반을 국악이 차지한다. 하지만 개정 이전 교육과정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음악시간에 국악을 접한 비중이 10-20%정도에 불과했었다.
국악은 한국인의 현대 정서와 다르게 좀 많이 느리다. 물론 빠른 곡도 있지만 대개 확실히 서양음악에 비해 느리다. 이는 서양음악이 빠르기의 기준을 심박수로 한 것에 비해 국악은 호흡수로 하기 때문이다. 심박보단 호흡이 확실히 느리다. 여기에 국악은 궁중,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발달하다 보니 그들의 유교문화가 반영되어 느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악을 일상생활에 잘 활용한 예가 서울지하철의 환승음악이다. 기존엔 서양음악과 다른 음악을 사용하다 2009년부터 국악곡 '얼씨구야'를 음악으로 사용했다. 다들 한 번은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14년만에 곡을 '풍년가'로 바꾸었다.
국악은 원래 작곡가가 없다. 그냥 연주자들이 다양하게 변주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국악도 작곡가가 출현한다. 그리고 음악도 다양화한다.
국악은 원래 양반과 중인이 즐기는 정악과 서민 중심의 민속악으로 구분한다. 정악은 양반, 중인이 모여 취미로 음악, 시낭송, 서예, 그림, 바둑 등을 즐기며 듣는 풍류악이다. 민속악은 서민 중심으로 생성되고 향유한 음악이다. 대표 장르가 판소리이며 숙종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는 12마당이었지만 치정극과 복수 이야기를 덜어내고 삼각오륜에 부합하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만 전해진다. 없어진 이야기들은 모두 재밌고, 양반을 비판하며, 성적인 면이 많은데 무척 아쉽다. 민속악엔 기악독주곡인 산조, 사물놀이, 시나위 등이 있다. 현재 국악은 여기에 창작국악이 더해져 지금은 총 3장르가 된다.
국악기를 만드는 재료는 8가지다. 대한제국의 백과사전은 증보문헌비고는 이를 팔음이라 칭한다. 쇠, 돌, 명주실, 대나무, 바가지, 흙, 가죽, 나무로 각각 금부, 석부, 사부, 죽구, 포부, 토부, 혁부, 목부라 한다. 금부악기는 편종, 특종, 방향, 징, 꽹과리, 나발이 있다. 편종은 가장 낮은 황종부터 반음씩 총 16음계고 특종은 황종음 하나만을 내는 큰 종이 매달린 악기다. 방향은 16개의 건반이 있는 큰 실로폰 같은 악기다. 석부악기는 편경과 특경인데 편종, 특종과 같은 방식으로 돌로 만든 차이다. 사부악기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비파가 있다. 죽부는 대금, 중금, 소금이 있고 리드로 부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와 단소, 풍소가 있다. 포부는 생황이 있는데 이것은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연주가 가능하다. 토부는 훈과 부가 있는데 훈은 오카리나와 비슷하고, 부는 큰 질 그릇을 내서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혁부믄 장구와 북, 소고가 있다. 목부는 박과 축, 어, 태평소가 있다. 축은 제사의 시작에 어는 제사의 끝을 알리는 악기다.
국악의 시작은 당연히 민족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왕산악은 중국의 칠현금을 참고하여 6개 줄의 거문고를 만든다. 백제는 금동대향로에 5명의 악사가 등장한다. 유명한 노래 정읍사는 수제천의 전신이다. 신라는 진흥왕대에 가야의 우륵을 통해 가야금을 만든다. 12줄 악기로 왕은 우륵에게 계고, 법지, 만덕의 세 제자를 붙여주고 이들은 각각 가야금과 노래, 춤을 배운다. 하지만 가야와 신라의 정서가 달라서인지 이 세 제자는 스승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음악을 변형한다. 신라는 국가음악기관은 음성서를 설립하고 삼현(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삼죽(대금, 중금, 소금)의 악기를 편성한다. 그리고 나당연합군 시절 당에서 당악이 유래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향악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발해는 왕립음악기관인 태상시가 있었고, 연해주에서는 유목민의 악기인 바르간이 출토된 걸로 보아 초원의 음악도 수용한 것 같다. 고려는 송을 통해 교방악과 사악이라는 음악이 유래하여 당악에 편입된다. 송휘종은 1116년에 대규모 아악을 보내주었는데 이 때부터 우리 음악이 당악, 아악, 향악으로 구분된다. 고려는 궁중무용인 중재가 유행했고, 청산별곡, 서경별곡, 가시리, 쌍희곡, 사모곡이 유행했다. 고려는 궁중음악을 관장한 대악서, 공인의 실질적 음악 연습과 교육을 하는 관현방, 종묘에서 노래와 연주를 익히는 아악서가 있었다. 조선전기는 외국의 영향이 없는 독자적 음악의 발전시기다. 세종은 정간보를 창안했고, 새 악곡을 창작하고 아악을 정비했다. 세조는 궁중음악기관 5곳을 통폐합하여 장악원을 만들고 종묘제례악의 기틀을 마련하고 아버지가 만든 곡들은 여기에 편입시켰다. 성종은 최고의 음악 교본은 악학궤범을 완성한다. 양난으로 조선은 많은 악기를 상실한다. 그리고 음악이 중심이 민간으로 이동한다. 조선 후기에는 성악곡이 기악곡화하는데 염니락, 영산회상, 낙양춘, 사관풍류, 횡성곡 등이 그렇다. 그리고 악곡의 속도가 빨리지고 고음화한다. 개화기는 판소리를 오페라처럼 만든 1인 1역의 창극이 크게 유행한다. 일제강점기 정악은 이왕직아악부로 명맥만 유지했고 민속악은 민중자각의 모태가 되어 크게 발전한다. 1951년 국립국악원이 개원하고, 54년 대학에 국악과가 신설되었으며 62년 중요무형문화재법에 따라 64년 종묘제례악이 1호로 지정된다. 그리고 1994년이 국악의 해로 지정된다.
조선 세종은 음의 기준을 정한다. 황해도 해주의 곡식 기장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여 국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황종 음을 대는 대나무 율관을 제작한다. 이를 근거로 주선율을 연주하는 편종과 편경을 제작한다. 세종은 전반기엔 아악, 후반기는 향악에 집중한다. 여민락, 취풍형을 작곡하고 종묘제례악도 작곡한다. 세종은 아악이 궁중음악이므로 왕과 왕비의 제사인 종묘제례악에 당연히 향악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학문의 덕을 기리는 보태평과 군사적 업적을 기리는 정대업을 작곡한다. 하지만 반대가 심해 당대엔 어려웠고 그 아들인 세조가 이를 종묘제례악으로 지정한다.
한국의 아리랑은 본래 강원도 정선을 비롯하여 영월과 평창 등 태백산맥 일대에 분포한 메나리조의 아라리에서 유래했다. 아리랑의 의미는 밀양의 전설적 인물 '아랑'이라는 설, 신라왕비 알영비라는 설, 긴(아리) 강(라)이라는 의미라는 설, 아리따운 임을 의미한다는 설, 나의 이치를 찾는다는 설등 다양하다.
사물놀이는 풍물놀이 중 판굿을 극대화한 음악이다. 1978년 김덕수와 금용배를 비롯한 젊은 20대 예인들이 완성했다. 단기간 폭발적 인기를 얻었으며 리듬만으로 하나의 장르를 완성한 매우 독특한 음악이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 징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각 별, 인간, 달, 해를 상징하고 소리는 번개, 비, 구름, 바람에 비유된다.
민속악 중 유일한 기악 합주곡이 시나위다. 시나위는 전라대 일대의 무속음악의 반주가 독립하여 발전한 것으로 재즈의 즉흥성을 갖고 있다.
민요는 지역별로 독특한 음계와 발성법을 갖고 이를 토리라고 한다. 경기, 충청일부의 음악은 경토리다. 맑고 경쾌하며 음악이 분명하고 빛깔이 부드럽다. 굿거리 장단과 세마치 장단을 쓴다. 전라도는 육자배기 토리다. 극적이고 굵은 목을 눌러내는 특유의 창법이 있다. 떠는 목, 꺽는 목이 있으며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을 쓴다. 평안도와 황해도는 수심가토리다. 하늘하늘한 소리와 큰소리로 부르다가 콧소리를 낸다. 함경도와 경상도는 메나리토다. 경상도는 장단이 빠른 반면 함경도는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