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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 별 하나
  • 소리 없는 쿠데타
  •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 22,500원 (10%1,250)
  • 2025-04-18
  • : 940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사회주의나 중국이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건 책으로 많이 읽었는데 기업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지 또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 클레어 프로보스는 비영리단체 저널리즘•사회변화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이자 공동소장, 독립 언론매체〈오픈 데모크라시〉의 국제 조사 부문 책임자, 런던 탐사보도센터cu회원, 〈가디언〉의 데이터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또 다른 저자 매트 켄니드는 영국의 외교정책을 조사하는 탐사보도 전문 언론〈디클래시파이드 유케이〉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석 조사원, 런던 탐사보도센터의 회원과 이사를 지냈으며, 〈파이낸셜 타임스〉의 전속 기자로 워싱턴 DC, 뉴욕, 런던에서 근무했다. 지은 책으로 『비정규군』『부정한 돈벌이』 등이 있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유럽의 제국들이 무너지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 구조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이어 일어난 것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소리 없는 쿠데타였다. 전 세계에서 기업의 권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프라가 세워진 것이다. 투자를 내세워 개발도상국의 자원을 약탈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정책을 가로막으려는 초국적 기업 제국의 민낯부터 안정적인 비즈니스로 변질된 국제개발원조 활동, 경제특구와 민간이 개발하는 신도시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 군대와 안보에까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의 형태 등을 다뤘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탐사 저널리스트는 수많은 자료를 샅샅이 살피는 동시에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25개국을 찾아가 밀착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개빈이라는 남자를 만난 곳은 런던 중심가의 작고 분주한 식당이었다. 사방이 검정 널빤지로 덮여있고, 소박한 영국 음식을 내는 곳이었다. 평일 점심시간이었고, 식당은 근처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와 대화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심에 찬 젊은 기자들이 원하는 것을 잔뜩 가진 듯한 남자와 인생을 바꾸는 만남을 가질 장소로 안정맞춤이었다. 남자는 탐사보도로 대단한 업적을 쌓았을 뿐 아니라 ‘말썽꾼’이자 가까운 친구인 동료들과 신념을 위해 모험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개빈 맥페이든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개빈은 중요하면서 어려운 탐사보도를 지원하기 위해 2003년 런던에서 탐사보도 센타를 설립했고, 우리는 CIJ의 회원 면접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하지만 우리는 개빈과 그의 이력에 관한 자료를 닥치는대로 찾아 읽었다. 그는 런던에 오기 전 미국의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니카라과 혁명을 취했으며, 최근에는 위키라크스와 줄리언 어산지를 적극 지지해 이름을 더욱 널리 알렸다. 우리는 개빈이 사는 세계, 즉 위험천만하고 파란만장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했다.

그 세계는 자신이 하는 일에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원하는 주제로 공익을 위한 탐사보도를 할 수 있도록 2년의 기간과 급여를 제공한다는 두루뭉술한 구인 광고에 지원했고, CIJ의 회원으로 뽑혀 개빈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면접에서 개빈은 흔히 할 법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우리의 이력이나 성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산업폐기물 처리장 인근 지역에서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 그곳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알아낼 거냐고 물었다.



개빈은 시나리오 새 조건을 덧붙이는 식으로 여러 질문들을 했다. 이 문제를 파헤치는 중에 그동안 중요한 환경 영향 연구가 묻혀 있었고, 이제 연구의 저자들이 그 정보를 공개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자. 하지만 연구자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고, 이메일로 정보를 공유하길 꺼린다.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저자가 처음 만났던 런던만큼 조사와 거점으로 알맞은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조사한 제도와 추세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확정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약소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의 오랜 지배를 위협하는 시기였다. 영국과 독일의 고위층을 위시한 유럽의 자본가 엘리트들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기업의 이익을 보장할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한데 뭉쳤다. 이후 이들이 만든 인프라는 민주적 토론 없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기에 이르렀다. 그런 얘기에는 세실 로즈나 마거릿대처 같은 유명 인사도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대부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야기의 한쪽에는 변호사, 은행가, 경제학자, 영국의 비누 제작자와 아시아의 거대 재벌들이 있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개빈처럼 진지하면서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 태도로 저마다의 저항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밝혀낸 문제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엘리트 계층은 이미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투쟁의 최전선에 선 평범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기업에 맞서 싸우는 동안 이 이야기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언론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저자가 아무런 체제가 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설레는 동시에 사람을 미치게 했다. 개빈은 그가 우리 또래였던 1960년대에 예술학교를 운영했을 법한 방식으로 CIJ는 매일 정신없이 쏟아지는 뉴스에서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는 평화로운 피난처이자 굵직굵직한 질문을 던질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회의는 즐거웠고 정해진 의제가 없었으며, 개빈의 멋진 친구들이 자유롭게 CIJ회원으로서 받는 지원을 최대한 잘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저자는 업무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아침에 만나 함께할 만한 프로젝트를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엘살바도르는 전 세계 광산 반대 운동의 수도다” 그러나 현장에서 투쟁을 이끄는 사람들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 문제는 광산 회사가 제기한 소송만이 아니었다. 지역 활동가들을 살해 협박 받았고, 실제로 몇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상에 이 이야기를 꼭 알려야 한다.” 미라라는 여성이 흥분과 걱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들려주며 저자를 독려했다. 그녀는 국제사회의 면밀한 감시와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으면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핵폭탄이 처음 터진 곳은 히로시마, 나가사키가 아니라 뉴멕시코였다.” 페나라는 사람은 1945년 7월 16일 로스엘러모스에서 320킬로미터 떨어진 트리니티 실험장에서 최초로 원자폭탄을 실험한 사건을 언급했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은 그로부터 몇 주 뒤였다. 페나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인근 지역에 가하는 위협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가령 연구소 주변 지역에는 암 발생률을 높이는 유독성 화학물질인 6가 크롬이 지하로 흘러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폐기물을 저장해온 처리장은 뉴멕시코 북부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는 대수층(지하수를 함유한 지층)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페나는 연구소가 지역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임무를 맡아야 하며, 과학자들을 핵무기가 아니라 시급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우리는 무기 산업이 가져온 부수적인 피해에 시달린다고 실감할 때가 많다.” 저자는 현지에서 사진기자와 함께 조사에 나선 덕분에 생생한 사진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

저자가 개빈을 만나 사진을 한 장씩 건네며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발생한 화제가 지역에 남긴 상처와 연구소 인근 지역의 극심한 불평등, 민간 업체가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생긴 문제를 보여주는 흔적들, 연구소의 비밀을 파헤치려 애쓰는 활동가들의 얼굴과 자택 사무실의 풍경 등을 보여 주었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자신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유권자가 선출한 대표자가 생각만큼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고 언론이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여러 조사로 다국적기업과 투자자가 어떻게 국가의 행위를 제한하거나 없던 일로 만들고, 기후변화와 핵전쟁처럼 인류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지를 밝혔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바꾸거나 환경 보호 조치를 시행해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핵무기를 만들어 돈을 벌며 관련 사업을 중단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민간 업체가 핵무기 개발 계획을 좌우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생각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투자 조약을 맺어 국제법 제도가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보장한다.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제공하는 국제복지제도는 기업 이익을 얻고 사업을 확장하도록 돕는다. 경제특구처럼 민간의 손에 맡겨진 구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잘 쪼개놓았다. 부유한 권력층과 그들이 고용한 엘리트 조언가, 변호사, 로비스트가 있으며 반대쪽에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이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국제기구들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 특구의 공장 노동자 대부분이 더 ‘유순’하고 통제하기 쉬운 여성인 경우가 많다.

저자의 조사 결과는 대체로 암울했다. 한 국가 안에서 정치적 논의와 선거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일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으며, 언론을 장식하는 스캔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리 없는 쿠데타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아직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역사적 기록에서)이러한 흐름에 저항하고,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민주주의 미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개빈처럼 진지하면서도 희망에 찬 태도로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진실을 말할 책임이 있다.’ 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진실에 ‘그럴듯한 진실’ 이 아니라 ‘추악한 진실’ 에 매달렸다. 이 책은 추악한 진실을 다루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렸다. 세계 각지에서는 활동가와 인권변호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각종 국제 제도와 정책을 활용해 횡포를 부리고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제한하는 기업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복지를 증진하고 발전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아낸다. 그런가 하면 각국 정부를 영토 안에 경제특구와 같은 별도의 구역을 만들어 기업에 특혜를 제공하며, 국가의 전유물로 여겨진 군사•안보 분야까지 민영화해 기업의 손에 넘기고 있다. 기업과 민주주의는 본질상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기업이 어떻게 쿠데타를 일으키는지 이 책을 보고 안 것은 기업은 정부의 다양한 혜택, 변호사, 은행가, 언론을 끼고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들을 상대하는 건 너무나 큰 따움이지만 일반 시민이라고 해서 침묵하면 안되고 계속 소리를 내고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다. 우리 주변에 개빈같은 사람들이 많으면 기업의 쿠데타에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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